판자촌 딱지 싹쓸이하는 삼바 졸부들

2013-01-11     자크 드니

“민간 영역이 야수처럼 포효하도록 내버려두라.”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경제성장 둔화에 빠진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게 던진 충고다. 일부 분야에서는 이미 투자자들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거대 스포츠 행사 개최를 준비 중인 리우데자네이루의 부동산 시장이다.

2012년 9월 초, 가톨릭의 나라 브라질에서 대미사가 열리는 시기다. 그런데 요즘 브라질 사람들은 매일 저녁 텔레비전 연속극 <아베니다 브라질>(Avenida Brasil)에 빠져 울고 웃느라 여념이 없다. 6개월 전 시작한 이 연속극의 주인공은 갈색 머리의 히타. 블론드의 계모 카르미냐와 갈등한다. 히타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리우 변두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성장한다. 카르미냐가 집을 팔아버리고 히타를 버렸기 때문이다. 히타의 아버지가 숨진 거리, 아베니다 브라질은 빈부 격차가 심한 브라질의 현실을 상징하는 장소다. 이 뻔한 줄거리의 이면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주립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가르치는 에두아르두 그란자 코티뉴 교수는 이 드라마가 "현재 리우 남부의 고급 지역에 살고 있지만 곧 북부 지역으로 이사해야 할지 모르는 중산층 계급 일부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지적한다. 특정 드라마가 사회적으로 인기를 끌 때는 그보다 덜 가상적인, 즉 훨씬 현실적인 이야기를 이면에 담고 있기 마련이다. 이 경우에는 리우데자네이루 전체를 거대한 보드게임판으로 만들고 있는 부동산 가격 폭등 현상이 현실의 스토리다. 드라마 주제가 중 <내가 사는 곳>이라는 노래 제목이 암시하는 바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요즘 리우에서는 해변에 가도, 버스를 타도, 저녁 식사 자리에 가도 온통 부동산 얘기뿐이다. 몇 년 전부터 투기 열풍이 불면서 리우의 부동산 가격은 조금씩 오르기 시작해 이제 리우 주민들(Cariocas)의 생활에 큰 부담이 될 정도까지 이르렀다. 2008년 1월에서 2012년 7월까지 리우의 집값은 380% 뛰었고, 집세는 108% 올랐다. 평생 감히 발을 들여놓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파벨라(Favela·브라질의 슬럼)로 이사 갈 생각을 하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다. 그에 발맞춰 당국은 주기적으로 '안정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더욱이 리우가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부터 이런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2010년 11월 3일 경찰평화유지대(UPP)는 레블롱과 이파네마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비지갈 언덕의 빈민가를 장악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소년들이 버젓이 권총을 들고 어슬렁거리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유일한 진입로 에스트라다두탐바 거리에서 마주치는 건 경찰들뿐이다. 이 길을 지나면 벽돌로 얼기설기 쌓은 집들 사이로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이 나타난다. 가시적인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역 UPP 책임자 파비우는 "쓰레기가 제대로 수거되고 있고 전기 공급도 순조롭다. 메뉴에서 3개 국어를 선택할 수 있는 현금인출기도 설치됐다. 공공서비스가 다시금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철거와 재건축 표지판도 곳곳에 눈에 띈다. 부동산 투기 열풍이 이곳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빈민가 술집들이 부잣집 애들의 파티장으로

지역 주민 단체는 치안 회복에 대해서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단체 회장 세바스티앙 알렐루이아는 새로운 위험을 경고한다. "오늘날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자본이 우리 땅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부동산이 우리 삶을 압박하고 있으며 모두가 투기 광풍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유럽의 경제위기가 계속되자 브라질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이 지역의 성장 잠재력을 보고 몰려들고 있다. 비지갈 아래쪽에 위치한 복층 아파트 가격이 1년 사이 5만 헤알(약 2600만 원)에서 25만 헤알(약 1억3천만 원)로 5배가 뛰었다!" 게툴리우 바르가스 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이 안정화된 첫해부터 이미 집세 상승률이 리우의 다른 지역보다 6.8% 높았다.

비지갈은 룰라 집권(2003~2010) 초기 산타테레사 언덕에서 시작된 유행의 마지막 기착지다. 과거 빈민촌이던 산타테레사는 이제 전세계에서 온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이곳에는 철저한 보안 시설을 갖춘 빌라, 지속 가능 품질 인증을 받은 포우사다(호텔식으로 꾸민 민박집), 최신 유행 식당이 즐비하다. 이 지역의 치안이 회복된 지 채 1년도 안 돼 예전에는 감히 발을 들여놓을 엄두도 못 내던 부유층 자녀들이 몰려와 젊음을 즐기고 있다. 이들은 자주 'Luv'(영어의 'Love'와 가까운 의미)라는 이름의 파티를 벌인다. 이름만 들어도 이곳에서 밤새 벌어질 장면을 대충 상상할 수 있다. 유명 DJ, 귀청을 찢는 듯한 음악 소리, 몰려드는 젊은이…. 부유층 자제들이 얼씬도 못하던 시절에 열리던 '바일리 펑크'(Baile Funk) 파티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극빈층 젊은이들에게 입장료 80헤알(약 4만2천 원, 월 최저임금의 7분의 1에 해당한다)은 결코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연극 연출가 구티 프라가는 1986년 '언덕 출신, 우리'(Nos do Morro)라는 단체를 설립해 지역 통합을 위한 문화운동을 실천해오고 있다. 그는 시에서 인정해준 합법 거주 지역과 무허가 판자촌이 공존하던 시절을 기억한다. 합법 지역에는 포장도로와 준공받은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고, 빈민촌에는 '토지대장 미등기'라고 적힌 붉은색 표지판이 녹색 언덕을 조금씩 점령해나가고 있었다. 레블롱 인근의 파벨라, 프라이아지핀투에서는 1969년 방화로 약 2만 명의 빈민이 집을 잃고 쫓겨나 공동 거주 구역에 수용된 적도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시다지지데우스(영화 <시티 오브 갓>의 무대)다.

비지갈은 현재 새로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안정화 작업은 일종의 트로이 목마 구실을 한다. 프라가는 곧 문을 열 예정인 프랑스 식당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과연 이 지역 주민들을 위한 식당일까요?" 그러고는 5성급 호텔 건설 계획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노르데스테(비지갈 주민 대부분이 이 빈민 지역 출신이다) 사람들이 그 호텔에 묵을 수 있을까요?" 언덕 꼭대기에 오스트리아인이 경영하는 유스호스텔도 예외는 아니다. "알레마옹(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거대한 파벨라) 사람들이 주말에 이곳에 묵으며 해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요?" 한 경찰 간부는 "비지갈은 유럽인들이 와서 사진을 찍고 가는 매력적인 관광지로 변모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뛰는 이곳에 투자를 위해 찾아오는 이도 넘쳐난다.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모두 한몫잡기에 혈안

"리우에는 900개가 넘는 파벨라에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이 지역에 어떤 구조적 변화가 찾아올지 예의 주시하는 이들에겐 돈벌이를 위한 모험의 장소이기도 하다." 브라질 수도권 관리국 산하 도시지역계획연구소(IPPUR) 소장 루이스 세자르 케이루스 히베이루의 분석이다. 브라질에서는 돈이 많든 적든 많은 이들이 여전히 약탈(부자는 권력을 동원해 땅을 차지해버린다)과 점거(빈민들은 한꺼번에 몰려와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한다)라는 비합법적 방식으로 땅을 차지하고 산다. 이 연구소는 그 전형으로 리우 지역의 부동산 소유 실태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브라질은 바로 지금이 매치 포인트다. 동남아시아에서 스페인까지 휩쓴 전세계적 부동산 투기 열풍이 이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더욱이 브라질은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는 세계경제의 중심부에 비해 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부동산 가격도 아직 싼 편이다. 투자자들이 몰려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케이루스 히베이루가 말을 잇는다. "이런 이면의 움직임은 관광산업을 매개로 월드컵과 올림픽 등 거대 행사의 개최 예정지라는 전망에서 가속화했다. 전형적인 부동산 투기 열풍 속에서 토지 관리는 곧 자본 투자를 보장하는 길이다. 이를 위해 토지 소유의 합법화와 규제가 필요하게 되었다." 최종 목표는? "부동산 소유의 법적 기초를 마련함으로써 부동산 시장을 비공식(Informal) 지역까지 확장하기 위해서다." 달리 말하면, 투자자들이 최상의 조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나라 전체를 현대화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미래의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해 당국은 1937년 법 제정 이후(1984년 폐지됐지만 토지 소유 문제는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했다), 토지대장과 전혀 무관하게 존재해온 파벨라의 부동산 소유권을 정리하는 사업을 벌여오고 있다. 주간지 <베자> 2012년 7월 4일자 기사에 따르면, 비지갈 UPP 주변 반경 500m 내 지역의 땅값 상승률이 다른 지역보다 28% 더 높았다.(1) 꽤 잘사는 편에 속하는 B클래스(2)의 리우 주민들조차 이곳에 집을 사서 정착하는 게 점점 어려울 정도가 되어버렸다.

"오랫동안 파벨라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발을 통해 이런 지역을 없애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발이 늦어지자 정부는 파벨라를 밀어버리거나 여기저기 새로운 파벨라가 생겨나도록 방치했다." 세르지우 마갈라예스의 말이다. 그는 1993~2000년 시 사무총장을 지냈고, 건축연구소 소장으로 155개 지역에서 파벨라 바이후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1993년 당시 이 지역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3~4세대에 달했다. 더 이상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현실을 인정하고 파벨라를 실질적인 거주 지역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 파벨라 주민들을 변두리로 이주시키는 정책에만 의존해오던- 1962~74년 14만 명 이상이 변두리로 이주했고 리우의 파벨라 80여 곳이 사라졌다- 당국은 이제 지역의 역사와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해 그곳에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려 했다. 이 계획을 위해 인터아메리칸개발은행(IDB)이 6억 달러, 연방정부 지원금 2억5천만 달러, 시 지원금이 투입됐다.

첫 번째 정비 사업이 끝나고 다양한 프로젝트들(Bairriho, Morar Lagal, Novas Alternativas 등)이 뒤를 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여러 단체와 개인들이 공식적인 땅 소유주로 인정받기 위한 행정 절차를 밟고 있다. 이미 200여 곳의 등기가 이루어졌고 여전히 수천 건이 대기 중이다. 그 지역들에 사는 인구를 정확히 모르니 앞으로 몇 명이 더 남았다고 말할 수 없는 실정이다. 2만, 4만, 6만 명?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모른다. 로크라는 이름의 남성 역시 1976년부터 이 지역에서 살아왔다. 바이아 출신인 그는 '그링고스'('북쪽'에서 온 외지인)가 이 지역에 점점 관심이 많아지는 것을 반긴다. 이웃집 여성은 협상 과정에서 집값이 5배나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집을 내줄 생각이 없다. 1995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지은 방 두 칸의 소박한 집이다. 이미 70살이 넘은 로크에게 이곳은 무엇보다 자신의 고장이다. 그는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다고 여긴다. "당시에 나도 주민협회에서 딱지를 받았다. 현재 공식 주인으로 인정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내가 죽으면 자식들에게 얼마간 재산을 물려줄 수 있게 됐다. 그 전에 이 지역을 떠날 마음이 없다. 이곳은 곧 내 삶이다."

소유권 정비 사업은 결국 기존에는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일종의 토지법에 따라 다스려지던 각각의 지역들을 단일한 이데올로기 속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인 셈이다. 파벨라 관리국에서 활동하는 사회학자 자일송 지 소자 이 시우바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가 보기에 이 사업은 한마디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빈민가의 고급 주택지화)의 기초 단계"다. "많은 주민들이 집을 팔고 떠나려고 한다. 나는 파벨라 주민들에게 토지 소유권을 준다고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소유권을 갖게 되는 순간 그것을 팔 가능성이 생기고, '시장'의 게임에 말려들기 시작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브라질의 갑부 에이키 바티스타는 UPP 장비 구입비로 수백만 달러를 지원했다. 그는 대규모 부동산 회사들도 거느리고 있다. 당연히 지역 정비 사업에 관심이 많다. 나중에 그 지역들 중 일부는 그의 수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소자 이 시우바는 투기는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보사노바의 도시를 관광·상업 도시로"

그러나 에두아르두 파이스 리우 시장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2012년 10월 7일 65% 득표로 1차 투표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노동당의 지원 덕분이기도 했지만 이 중도파 시장이 재선에 성공한 것은 그의 업적을 인정한 파벨라 주민들의 지지 덕분이었다. 그의 이름은 지역 정비와 도시 재개발의 시장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중 한 예가 '포르투 마라빌랴 프로젝트'다. 예전에는 밤에 감히 발을 들여놓을 엄두도 내지 못하던 빈민 지역이 거대 상업·관광 지구로 탈바꿈할 것이다. 주거 환경이 개선되고 예술가들을 위한 아틀리에들도 들어설 것이다. 파이스 시장의 두 번째 임기는 올림픽과 함께 멋지게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는 상파울루에 경제적 수도 자리를 빼앗긴 리우데자네이루의 국제적 위상을 새롭게 고취할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셈이다. 서비스 산업의 중심지, 브라질의 제1항구이면서 석유까지 생산하는 리우데자네이루는 여전히 세계인의 눈에 브라질을 대표하는 도시다. 2012년 7월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케이루스 히베이루는 "리우가 마케팅의 중심지로서 브라질의 얼굴이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2011년 이후 리우에 가본 사람들은 공항을 빠져나갈 때 거대한 벽을 보았을 것이다. 그 벽은 소음 차단을 위해 세워졌지만 사실상 아베니다 브라질 거리의 비참한 현실을 숨기는 구실도 한다.

 

/ 자크 드니 Jacques Denis 언론인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

(1) Carla Luciana Silva, ‘베자, 브라질 신자유주의의 선봉’,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2월호.
(2) 브라질에서는 통계를 위해 사회계층을  5개 클래스, 즉 A(수입이 최소임금의 30배 이상), B(15~30배), C(6~15배), D(2~6배), E(~2배)로 분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