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인 ‘평화 회복’
긴급 출동한 순찰차 때문에 가뜩이나 복잡한 도로가 더 꽉 막혀버리는 광경은 리우데자네이루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일지 모른다. 하지만 젊은 여성의 항의에 경찰관이 "그만해라. 이곳에서는 우리가 법이다"라며 버럭 소리치고 면박을 주는 곳은 오로지 평화 회복 작전이 실시 중인 판자촌(파벨라)뿐일 것이다. 2009년 이후 판자촌 파바웅 파바웅징뉴에 사는 주민들은 "여기 달동네에 두목이 바뀌었다"고 말하게 됐다. 그저 무기와 권력을 쥔 자만이 바뀌었을 뿐, 오늘날 마약 밀매 조직의 자리는 고스란히 경찰의 차지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는 2008년 실시된 파벨라 '평화 회복 작전'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평화 회복 작전이 반드시 부정적 영향만 초래한 것은 아니다.
사실 '달동네 두목들'(Os donos do morro)은 사회학자 이그나시오 카노 박사가 이끄는 폭력분석연구소 연구팀이 리우시의 평화 회복 작전을 주제로 실시한 한 연구조사(2012년 7월 발표) 제목이기도 하다.(1) 이 보고서에서 카노 박사는 비록 완전하거나 완벽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쨌든 평화 회복 작전이 어느 정도 치안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음을 확인시켜줬다. 카노 박사는 "초기 평화 작전이 실시된 리우 13개 파벨라에서는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70%나 줄어들었고, 경찰 출동에 의한 사망도 거의 제로 수준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공권력이 자행하는 폭력에 대해 줄곧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오던 카노 박사가 돌연 공권력의 옹호자가 됐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사실상 그는 보고서에서 경찰이 저지른 실책이나 석연치 않은 전략적 문제점도 함께 지적했기 때문이다. "범죄조직이 가장 극성을 부리는 파벨라부터 평화 회복 작전을 실시했다면 한층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범죄의 현실보다 대형 스포츠 행사에 더 역점을 두고 작전지구가 선정됐다." 평화 회복 작전의 주역으로 활약한 리우 헌병대 소속 로브슨 로드리게스 대령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 "우리의 선택을 좌우한 것은 2016년 올림픽이었다. 만일 리우가 올림픽 개최지로만 선정되지 않았더라면 아예 이런 정책 자체가 빛을 보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평화 회복 작전은 리우시가 이른바 '경제특수'로 부르는 한 스포츠 행사에서 비롯됐다. 리우가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자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좌파 정당 노동당 출신)과 세르지우 카브랄 주지사(중도우파 정당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에두아르두 파에스 리우 시장(PMDB) 등은 치안 회복에 앞장서자며 정치적 동맹을 결의했다. 사실 그동안 리우시가 벌인 범죄조직과의 전쟁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기 일쑤였다. 오히려 흑인 청년층의 사망률은 더욱 증가하기까지 했다. 2005년 일부 경찰관이 미국 보스턴에 급파됐다. 보스턴 슬램가(다시 말해 흑인가)에서 시행 중인 '사격중지(Cease Fire)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오기 위해서였다. '사격중지 프로그램'의 기본 뼈대는 1994~2001년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이 주창한 '무관용 원칙'과는 정반대로, 근린경찰대를 창설하는 데 있었다. 이 원칙을 기본으로 보스턴과 리우의 경찰관들은 무기 소지와 마약 밀매 근절에 온 역량을 집중했다. 사실 이는 브라질로서는 훨씬 더 힘든 과제일 수 있었다. 급박한 폭력 사태가 일어났을 때만 아주 가끔씩 위험을 무릅쓰고 개입해오던 통제 불능 지역에 대해 다시금 통제권을 회복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2008년 첫 번째 작전이 실시됐다. 홍보업체가 조언한 대로 카브랄 주지사는 '평화 회복'(보스턴에서는 사용되지 않은 용어)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작전명에 사용했다. 이후 평화 회복 작전에서 몇 가지 상징적 행위가 탄생했다. 가령 브라질 블록버스터 영화 <엘리트 스쿼드>(2007년)의 흥행으로 한층 유명해진 브라질경찰특공대 'BOPE'는 작전을 수행한 뒤 성공적으로 치안을 회복한 지역 한복판에 작전 성공을 기념하는 깃발을 꽂았다. '주인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새로 영토를 점령한 뒤에는 좀더 면밀한 수색 작업이 진행됐다. 대규모 빈민촌의 경우에는 이 과정이 무려 1년 동안 진행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수색 작업이 끝나면 마침내 현장에 평화유지경찰대(UPP)가 배치됐다. 브라질 경찰은 폭력 사태를 피하기 위해 사전에 작전 지역을 선포했다. 마약이나 무기 밀매 조직들이 알아서 해당 지역을 떠나도록 유도한 셈이다. 덕분에 대부분의 작전은 단 한 발의 총성도 울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일단 평화유지경찰대가 배치되고 나면 두 번째 평화 작전 단계가 이어졌다. 바로 평화 회복을 위한 사회적 조처에 나서는 것이었다. 이는 "치안 정책을 성공리에 완수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라고 로브슨 로드리게스 대령은 힘주어 말했다. 여기서 사회적 조처란 공공시설을 설치하거나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말했다. "물론 이는 이론적으로는 훌륭한 계획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계획을 실행할 만큼 민주주의가 원활히 정착된 것도 아니고, 재정적 여건이 뒷받침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도시계획 전문가 네이바 비에이라 다쿠냐는 안타까워했다. 달동네 주민들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병원이나 하수 처리 시설인데도, 정작 정부가 값비싼 통신 시설부터 설치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기저기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거주지로는 위험하다는 거짓 이유를 내세워 리우시가 주민들을 가차 없이 빈민촌에서 몰아낼 때도 당사자인 시민의 목소리는 철저히 묵살됐다. "모든 파벨라가 위험지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리우시가 이 언덕지대에 살던 주민들을 몰아낸 배경에는 시내의 아름다운 경관을 확보하려는 속셈이 자리하고 있다. 최초로 평화 작전이 실시된 산타마르타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이 지역이 오랫동안 주민들의 보금자리였다는 사실 따위는 완전히 무시되기 일쑤다." 다쿠냐의 지적이다.
브라질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프로비덴시아 빈민촌에서도 올림픽 개최에 따른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주민들이 외지로 추방됐다. 이곳 주민들에게 평화 회복은 그저 쓰디쓴 기억만 남겼을 뿐이다.
리우시에서는 사회·경제적 변화가 가시화되고 있다. 카노 박사는 이 변화를 평화 회복 작전의 긍정적 결과로 평가한다. "실제로 파벨라를 부정적으로 낙인찍던 기존의 관습은 몰라보게 줄어들었다. 주민들은 이제 취직할 때 굳이 자신이 파벨라 출신임을 속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덕분에 평화 회복 작전이 실시된 파벨라의 주민들은 합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빈민촌의 젊은이들은 마약 밀매의 마수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비정부기구 '피파 리오'의 루벰 세자르 대표는 "마약 밀매에 손대는 것은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다. 마약 밀매는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평화 회복 작전은 무기 소지 근절을 통해 범죄조직의 근거지를 파괴했다. 이제 마약 밀매의 매력은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역으로 경찰의 매력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더욱이 지금처럼 경찰이 '점령지'의 정복자와 비슷한 행태를 부리며 과거의 범죄조직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독재적인 사회 통제 방식을 계속 고수한다면 말이다.
글 / 안 비냐 Anne Vigna 언론인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Laboratorio de Analise da Violência, 'OsDonosdomorro: uma avaliaçào exploratória do impacto das unidades de pol?cia pacificadora (upps) no Rio de Janeiro', 리우데자네이루 연방대학,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