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안의 인문학 서재] 경제학의 새로운 자연과학으로서 생물학과 후성유전학
일원론과 결정론을 극복하자
경제학자들은 자연과학과 무척 친해지고자 한다. 자연과학적으로 사유하고, 그 결과를 자연과학의 언어와 상징으로 형식화하며, 그 위에 경제학을 정초하고자 한다. 경제학을 설득력 있게 만들고 대중에게 신뢰감을 주는 최선의 방법이 경제학의 ‘과학화’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간의 삶이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추상적 관념 세계와 천국에 살지 않는다. 자연에 발을 딛고 살 수밖에 없는 자연인(!)이다. 경제학자의 자연주의적 성향이 전혀 터무니없지 않은 이유다.
일원론의 시대
그러다 보니 자연과학에 대한 경제학자의 열광과 흠모는 대단하다. 예컨대, 19세기가 시작되던 무렵 뉴턴의 고전물리학이 ‘시대정신’(Zeitgeist)을 이루고 있었다. 애덤 스미스와 빌프레도 파레토 등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뉴턴의 고전물리학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이를 사유모델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런 물리학적 사유방식은 철학과 경제학에서 유물론적 방법론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모든 것을 물질이나 경제라는 한 요인으로 환원해 버리는 일원론(monism)이 지배적인 인과율로 정착되었다. 물리학이 일원론적 방법론의 시대를 연 것이다! 일원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다양한 요인들의 상호작용과정이 보이지 않게 되고, 미래를 확실성과 결정론에 따라 전망하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교조주의와 ‘신학’으로 인도하는데, 주류경제학은 이런 방법론에 따라 경제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물리학 대신 생물학으로
그런데, 자연과학에는 물리학만 있지 않다. 자주 잊고 있지만, 물리학 못지않게 ‘생물학’도 자연과학의 훌륭한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경제학은 사회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사회과학이다. 사회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사람은 생명체다. 이 경우 사회는 죽어 있는 무생물체, 곧 물질로 이루어진 물리적 세계와 다르다. 따라서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 물리학보다 생물학에 더 친화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생물학은 일반 생물체를 넘어 정신적 생명체인 사람도 연구대상으로 삼는데, 진화생물학, 생리학, 유전학, 특히 신경생물학, 뇌과학, 심지어 진화심리학은 사람의 생리, 유전, 신경, 뇌 그리고 그 심리에 집중한다. 생물학이 이처럼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자연과학이며, 바로 그 때문에 생물학이 오히려 사람들의 모임인 사회를 다루는 사회과학, 그중에서도 특히 경제학의 자연과학적 기반이 되기에 더 적절하다는 말이다.
유전자결정론의 문제점
최근 일반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생물학 분야는 진화생물학일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생물학의 존재를 대중에게 알린 대표적인 책이다. 그러나 그런 공적과 별도로 그것이 끼친 부정적인 영향도 작지 않다. 이 글이 다루는 책의 주제와 관련해 지적해야 할 결정적 오류는 ‘유전자 결정론’이다. 도킨스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 기계이며, 자기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존재다. 이 경우 유전자 결정론은 ‘생물학의 일원론적 버전’이다.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데이비드 무어 지음, 정지인 옮김, 2023, 아몬드)는 이러한 도킨스류의 유전자 결정론,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일원론적 연구방법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책이다.
우리의 형질은 유전자형과 표현형으로 나뉜다. 표현형은 신체적일 수도 있고, 심리적인 것일 수도 있으며, 눈동자색과 머리 크기부터 음악적 재능, 주의력 지속시간, 술에 잘 취하는 성향 그리고 그 사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우리의 관심 대상인 이런 표현형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저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표현형은 유전자나 DNA 그 자체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다양한 요인들이 함께 작용해 이뤄낸 결과일 뿐이며 유전자가 그것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DNA는 우리의 그 어떤 특징도 단독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 하지만 유전자가 표현형을 결정하지 않는데도, 세상에 나와 있는 다수의 생물학 교과서는 여전히 유전자가 표현형을 결정하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고 그렇게 일종의 유전자 결정론을 유포하고 있다.”(28)
유전자뿐 아니라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할 때, 거기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될까? 나 같은 비주류경제학자는 물론 모든 사회과학자들이 주목하는 ‘맥락’(context)이 당연히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한 인간이 처하는 맥락에는 경제적 맥락, 곧 물질적 기반이 첫 번째 후보로 거론될 수 있다. 물질적 조건이 우리의 표현형의 결정과정에 참여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제대로 못 먹은 나머지 영양실조에 걸리면, 키가 작아지는 것과 같다.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후성유전학
그러나 그런 얘기는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어서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물적 조건에 대한 그러한 경험이나 노출이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원래 큰 키의 유전자를 가졌던 사람이 영양실조로 인해 작아졌는데, 그 작아진 키가 내 자식에게까지 대물림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추정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일어났다. 쥐의 실험 사례를 보면 어미쥐가 임신 기간 동안 영양섭취가 부족하면, 그러한 어미쥐의 자손은 다른 쥐에 비해 비만이나 심장병에 시달릴 확률이 더 높았다.
인간도 다르지 않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봉쇄정책’ 탓에 열악한 영양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때 태아였던 사람과 그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을 조사했는데 봉쇄정책때 태아였던 사람들의 키가 뚜렷하게 작았다. 놀라운 사실은 그 사람들의 자녀들도 키가 작았는데, 영양실조에 걸린 부모의 태아의 키가 작을 건 예측 가능하지만, 상황이 개선되어 충분한 영양이 공급된 다음 세대 부모의 자녀마저 작은 키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곧, 지금까지 정통유전학설인 ‘신다윈주의 종합설’에 따라 유전되지 않을 것으로 단언되어 왔던 ‘획득형질’이 ‘유전’된 것이다.
유전자형질 뿐 아니라 획득형질이 유전되는 현상은 ‘후성유전학’이 주목한 주제다. 이 책은 후성유전학을 바탕으로 유전자결정론을 비판하고 있다. 이제 획득형질이 ‘획득’되는 경로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형질은 먼저 외부환경의 변화로 획득되지만 한 생물개체와 집단이 겪은 ‘경험’으로부터도 획득된다. 앞에서 본 것처럼 쥐의 경험이나 네덜란드인들이 당한 봉쇄정책으로부터 획득된 심장병이나 작은 키와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겪은 트라우마도 비슷한 사례에 속한다.
문제는 이런 획득된 형질들이 ‘어떻게’ 유전까지 될 수 있느냐다. 어떤 변화도 유전자나 DNA를 경유하지 않고 유전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유전자와 DNA의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유전’되었다면 유전자나 DNA에 무언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후성유전학의 핵심은 이 과정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것이다. 후성유전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DNA나 유전체에서 ‘DNA 메틸화’, ‘히스톤 변형’(85~86), ‘RNA 스플라이싱’(69) 등 몇 가지 생물학적 변형이 일어난다. 그 중 “후성유전의 프리마돈나”(142)로 불릴 정도로 중요한 것은 ‘DNA의 메틸화’다. 곧, DNA에 메틸기(CH3)가 붙어 유전자의 발현을 활성화하거나 비활성화함으로써, 다시 말해 “유전자의 스위치를 끄거나 켬으로써” DNA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45).
간단히 말해 외부 맥락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뇌 속에 일시적으로 저장된 후 시간이 지나면 소실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유전자에 그 흔적을 남겨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유전자 구조나 염색체의 염기서열 그 자체의 변화는 없다. 단지 그것들의 발현방식이 바뀌며, 그 바뀐 ‘방식’이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변화는 히스톤 변형이나 RNA 스플라이싱(splicing)에서 비슷하게 일어난다.
이처럼 DNA와 유전자 구조 그 자체의 변화를 초래하지 않는 대신, 그것들의 발현방식의 변화만을 일으키고, 그 결과가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현상을 순수한 ‘유전’과 달리 ‘후성유전’(後成遺傳, epigenetics)이라고 부른다.
후성유전학의 요지는 이렇다. 우리의 ‘발달’과 삶의 여정은 유전자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유전자는 물론 비유전자적 요인, 곧 환경과 양육과정을 아우르는 우리의 경험이 유전자에 족적을 남기는 후성유전과 공동으로 결정된다.
후성유전학과 총체론적 연구방법론
이러한 후성유전학의 연구결과가 사회과학자에게 주는 교훈은 작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결론은 우리의 발달과 삶을 일원론이 아니라 다원론으로 이해하며, 이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총체론적(holism) 사회과학 방법론’의 자연과학적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런 총체론적 과정의 결과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미결정된 상태로 열려 있다. 이러한 생각은 제도경제학을 비롯해 대다수 진보적 비주류경제학이 예측하는 미래상이다. 후성유전학은 유물론으로부터 시작해 도킨류의 유전자결정론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일원론을 극복하게 해 주는 점에서 현실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참세상을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물리학과 유물론을 벗어나야 한다. 이제부터 생물학과 후성유전학이 경제학의 새로운 자연과학적 기반이 되어야 한다.
글·한성안
문화평론가. 경제학자. 영산대학교수 역임. 중앙대 대학원 객원교수. 현재 '좋은경제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집필, 기고, 강연 중이다.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진보적 경제학을 주제로 시민들과 활발히 소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