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폭력과 만행에 신음하는 콜롬비아

2009-03-02     파올라 오로즈코 수엘 | 저널리스트, 콜롬비아

우리베 독재 정권, 정치적 반대 진영 무자비한 탄압
민병대·군대'원주민, 인권·노조운동가, 지식인' 살해
비무장 시민사회'미디어·돈·절대권력' 횡포에 저항

   
 
카메라로 감시받는 보고타 중심가 한 고층건물 입구에서, 안전요원이 방문객에게 방문 층, 방문목적, 신분증, 전화번호를 기계적으로 묻는다. 통행증을 부여받고 중앙 홀을 가로질러 세심한 검색을 받은 후 엘리베이터에 접근한다. 25층에서 다른 안전요원이 똑같은 질문을 한다. 마지막으로 두 개의 방탄 문을 지나 안전검색을 마치고 나면 인권운동기관들, 노동조합들, 정당들, 독립기구들의 사무실이 눈에 들어온다. 야당 인사의 일정에는 신변 경호원들 외에도 때때로 앰뷸런스가 뒤따른다.

 방치된 '대중 안전'
2002년 권좌에 오른 알바로 우리베 벨레즈 대통령의 '대중 안전 정치'는 허황된 것인가? 수많은 법관, 비정부기구 멤버들, 노조 운동가들, 남녀 정치인들, 심지어 상당수의 기자들까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인권운동가인 알리리오 우리베는 '엘리트'들, 기업들, 다국적기업들 같은 몇몇 특권층만 '대중안전' 정책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반면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체제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은 악마로 취급을 받는다. 미디어는 너무 바빠서 이에 침묵으로 일관한다.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의 인질이 된 잉그리드 베탕쿠르(2002년 2월 23일부터)', '석방된 잉그리드(2008년 7월 2일)' 같은 긍정적 감정 표현을 기사화할 때 미디어들은 무척 바쁘다. '베탕쿠르, 사르코지를 만나다', '잉그리드 베탕쿠르, 세계 여성상에 선정', '교황과 만난 성녀 잉그리드', '인질 잉그리드, 콜롬비아에 돌아오다' 같은 표현을 발표할 때는 엄청나게 열광한다. 그 유일한 목적은 더 이상 인질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FARC는 여전히 27명의 시민, 군인 또는 경찰, '정치인 포로'를 억류하고 감옥에 갇힌 게릴라 전사들과 맞교환을 요구한다.

 관제데모 지원, 반정부 시위 탄압
2008년 11월 28일, '내가 콜롬비아다'라고 적힌 흰색 티셔츠를 입은 수십만 명의 시위대가 콜롬비아의 주요 도시들과 파리, 마드리드 등에서 행진을 벌였다. 항상 그런 것처럼 콜롬비아 정부의 묵시적 지원과 국내외 미디어의 명시적 지원 혜택을 받은 일종의 관제 시위는 콜롬비아 분쟁의 유일한 주모자로 게릴라를 지목했다1).
공교롭게도 같은 해 3월 6일 벌어진 국가폭력반대 시위는 언론이나 카메라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했다. 마약계의 거물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사촌이며 우리베 대통령의 자문관인 호세 웁둘리오 가비리아는 이 시위를 'FARC가 부추긴 행진'으로 규정했다. 신설 민병대 그룹인 '검은 독수리'는 시위 주최자들과 참가자들에 대해 살해 위협을 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위 참가자가 외쳤던 것처럼, "민병대들이나 대통령이 협박을 할 때마다" 시민단체가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확신한 3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집결했다.
1주일 후 6명의 시위 주도자가 살해되었고, 같은 달 6명의 노조운동가도 마찬가지 운명을 맞았다. 한 시위 주도자는 "FARC 반대 시위 행진이 누렸던 제도적, 경제적, 미디어적 지원 없이 행해진 3월 6일의 시위는, 우리에게 강요된 만장 일치주의를 거부하고, 폭력이 오직 게릴라들로부터 온다는 순진한 생각과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반군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국가 수반은 자신이 권좌에 오른 이래 군사적 수단만을 우선시 했다. 2002~2007년 사이 1만3천634명의 시민이 사망했는데 이들은 정치 폭력의 희생자들이었다2). '인권과 강제이주 위원회(Codhes)'에 따르면, 1985년 이래 강제 이주된 400만 명중 300만 명이 우리베 정권 치하에서 이주 당했다.3).
마르코 로메로 'Codhes'의장은 '부패공무원들에 의해 불법적으로 매매되거나' 수용된 땅이 680만 헥타르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프리카-콜롬비아 공동체들이 살고 있는 태평양 연안지역 초코(Choc?)는 상징적이다. 폭력을 피해 떠나야 했던 수천 명의 농부들은 '식물성 대체연료 생산에 사용되는 아프리카 종려나무 재배를 위한 대형 프로젝트 때문에' 그들의 토지를 포기해야 했다(4).
칸쿠아모 공동체에서 강제 이주당한 다니엘 마에스트레씨는 "'우리베 정권시기'가 원주민 공동체들이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가장 억압적인 시기다. 1991년의 헌법과 국제헌장이 인정한 우리 땅과 권리에 대한 행사를 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민병대, 게릴라, 군대(콜롬비아 원주민 기구에 따르면 발생 사건의 60% 이상에 군대가 연루되어 있다)에 의해 지난 6년간 2천200명 이상의 원주민들이 사살되었다. 엠베라-카티오 주민인 하이로 쉬카마씨는 "'대중안전'정책으로 혜택을 본 사람보다 살해된 사람이 더 많다."고 털어놨다5).

 정부 '어두운 현실' 은폐
2008년 10월 12일부터 약 4만 명의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한 존중과 대화소통'을 정부에 요구하면서 집회를 열었다. 이미 '라 마리아 피엔다모' 공동체에 4명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를 내며 정부군에게 과격하게 진압당한 원주민 단체 '밍가'6)는 군사행동을 정당화하는 우리베 대통령에 대해 반박했다.
"우리의 운동은 평화적이며, FARC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대통령 말대로 심각한 사회 위기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범죄자들이고 게릴라들이라면, 모든 콜롬비아 사람이 FARC의 조직원인 셈이다!"
1950년대부터 이미 내전이 존재해 온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국내에 정치적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테러리스트의 위협'이란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군대는 국가의 평화를 회복시킨다는 명분으로 농민, 학생, 교수, 노동운동가, 인권운동가, 기자, 정치투사들을 대량으로 살해한 민병대들과 오래전에 타협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민병대들을 '동원해제 시키고' 그들 희생자 가족들은 범죄를 밝히기 위해 2005년 채택된 소위 '정의와 평화'라는 법률에 의해 열리게 된 법정에 모든 희망을 걸었으나, 곧바로 환상을 버리게 되었다7). 국가범죄전국희생자운동단체(Movice)를 축으로 결집한 희생자 가족들은 대통령의 망각과 '계획적인' 무(無)처벌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대통령은 가장 잔인했던 민병대 대장 14명을 미국에 인도했는데, 그들은 단지 마약밀매범이란 죄목으로 기소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콜롬비아에서 반인륜범죄로 기소된다면, 정치 권력과 맺은 과거의 협력관계를 밝힐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170명 이상의 국가공무원이 '파라폴리티크'라 불리는 스캔들에 연루되었다. '파라폴리티크'란 용어는 우리베 대통령의 세력 하에 있거나 혹은 대통령과 가까운 지역 의원들, 정치인들, 민병대들의 패거리 공모(共謀)를 지칭한다.  그들 중에는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행정안전부(DAS)8) 국장인 요르헤 노구에라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자기 부서를 이용해 민병대를 돕고, 암살해야 할 노조 지도자, 대학 교수, 야당인사들의 명단을 민병대에 넘긴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곧장 석방되었다9). 안티오키아 지방검사이며 내무부 장관의 동생인 귈레르모 코시오는 '마약밀매범들'과의 밀월 관계 때문에 파면되었다.
여당의원 36명과 전 상원의원 2명이 투옥되었고, 여당의원 65명 이상이 조사를 받고 있다. 1995년부터 1997년 사이 우리베 대통령이 통치한 안티오카 지방정부 산하 우라바 코뮌의 카레파에 기지를 둔 17여단 전(前)사령관은 민병대 대장 에베르 벨로자의 증언에 의해 민병대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장한 책임자로 밝혀져 체포되었다.

 어용 민병대의 만행과 탄압
전체 32개 도(道)중 22개 도에서 '동원 해제'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민병대 조직들은 엘리트들의 비호를 받아 마음대로 활동한다.10) 망명하거나 도피한 희생자들이 비록 외국에 거주할지라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세페다는 보고하고 있다. "망명자들은 FARC의 일원으로 고소당하여 콜롬비아 외교 기관의 추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프란시스코 산토스 부통령의 가족과 후안 마누엘 산토스 국방장관의 소유이며 외신정보의 출처인 일간지 <엘 티엠포>처럼, RCN과 Carocol과 같은 TV 채널들은 권력에 봉사한다.
6년간 망명 후 귀국하여 <폴로>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안토니오 모랄레스처럼, 독립 언론의 이름으로 현실의 오도된 비전, 만장일치주의, 우리베주의(主義)에 반대 투쟁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은 '신문광고시장 접근과 신문 배급을 방해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인권침해'를 보도하기 때문에 행정부로부터 '테러행위를 조장한다'고 비난받는 '콘트라비아' 방송사 기자인 홀만 모리스 같은 사람들은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그는 "이런 위협과 더불어 살든지 아니면 자율검열을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민병대 지역에서는 표현의 자유, 정치다원주의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시민사회의 평화적 저항시위가 계속된다면, 피의 보복 공포도 항상 존재할 것이다. "우리베 정부 같이 강압적이고 불관용적인 정부는 비무장 정치 야당이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이 정부는 야당을 꼭 필요한 것으로 보지 않고 민주주의에 대한 방해물로 간주한다." '대안민주주의 축(PDA)' 의장인 카를로스 가비리아의 단언이다.
좌파를 결집한 이 신 정당은 대통령의 공격과 야당 지도자들의 암살 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이미 1980년대 4천 명에 달하는 애국연합 투사들이 몰살된 전력을 간직하고 있다11). 콜롬비아 정치사에 일획을 긋는 이런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데, '시민사회로 하여금 무장투쟁을 부추기는 정부의 논리'를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독재와 노조 탄압
세 번째 연임을 원하는 대통령은 1991년 헌법을 확실히 해체하려고 한다. 2006년에 재선되기 위해 그는 국회의원 표를 매수하여 헌법 개정에 성공했다.12) 페르난도 시푸엔테스 검사는 "대통령의 업무방식, 헌법위반행위, '파라폴리티크'의 행위를 보면, 이들은 민주주의의 근본원칙을 존중하지 않는다. 이렇게 계속되면 우리는 전체주의적 독재로 가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대통령의 독재에 대하여 사법부가 법을 통해 항거하는 동안, '카사 드 나리노' 대통령궁은 최고법원 법관들을 불법화시키기 위한 전략들을 짜냈다. 몇 달 전부터 국가 고위 공무원들과 민병대조직의 밀사들이 결집하고 있다. 그들의 임무는 무엇일까? 게릴라와 테러리즘 놀이를 즐기면서 폭동을 선동하는 부패 관리들에 대한 증거를 찾는 것이다. 우리베는 '파라폴리티크'패들을 수사하는 법관들과 예비 판사들을 폭동 선동 부패관리로 규정해 버렸다.
노조운동가들이 볼 때, 억척스런 '대테러' 전쟁의 목적은 실업증가, 경기침체, 70% 이상의 빈곤층, 코카 잎 플랜테이션의 27% 증가 같은 권력의 실책들을 숨기는 데 있다13). 이런 상황에서 우리베가 무장 반군과 대화나 협상을 시도할 이유가 있을까? "FARC가 사라지면 우리베의 정책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대중안전'조치, 국방비(국민총생산의 6%), 복지투자 부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베는 테러리스트의 위협을 유지시켜야만 한다."고 노조운동가 루시아노 사닌은 주장한다.
노조가 미 하원에 영향을 끼쳐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콜롬비아-미국 자유무역협정을 보류했다. 우리베의 주요 목표인 자유무역협정이 보류되었기 때문에 노조가 압박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총연맹(CUT) 의장인 타르시지오 모라는 고용주가 단체협상, 건강과 퇴직연금과 같은 의무에서 면제되는 연합노동조합(CTA)처럼, "권리도 노조도 없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값싼 노동력을 사용하는 신자유주의의 꿈을 대통령이 실현하고자 한다."고 했다.
피고용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는 이 시스템은 '발레 델 카우카' 지역의 사탕수수기업 노동자 부대를 지배하는 수단이다. 어떤 사회 보호망도 없이 노동자들은 월 200달러(147유로)의 돈을 벌기 위해 벌채용 큰 칼을 들고 하루에 14시간씩 일주일 내내 사탕수수를 자른다. 9월 15일 파업이 발생했을 때 약 1만 8천명의 사탕수수노동자들이 노동조건과 CTA시스템 철폐를 요구했다. 56일 간의 파업 후 보건복지부와 노동조건 개선협정이 맺어졌다. 그 사이 정부는 이 운동을 'FARC가 침투시킨 범죄자들의 항의 시위'로 간주해 군대를 개입시킴으로써 1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비무장 시민사회 '도박같은 투쟁'
다른 경제 분야도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천900만 명의 노동자 중에 500만 명 이하의 노동자만이 사회보호를 받고 있다. 85만 명이 노조에 가입되어 있고, 1%만이 단체협약을 맺고 있다. ENS에 따르면 복지부가 5년간 515개의 신규 노동조합 등록을 거부했다. "이 나라에서는 노조 설립보다 게릴라 양성이 더 쉽다."고 세네드 니뇨 콜롬비아 교육자연맹(Fecode)의장이 말했다.자신과 가족의 삶을 노출시키는 콜롬비아 노조 운동가들은 사실상 자살 행동을 하고 있다. "나는 숨어야 하고, 나와 아이들의 삶을 보호해야 하고, 내 집이 강탈당할 때마다 이사를 가야 하고, 살해 위협도 감수해야 한다. 가족 입장에서 볼 때, 노조운동가가 되는 것은 이 나라에서 가장 나쁜 짓이다."고 한 노조운동 지도자는 털어놓았다.
"여성이 겪는 야만성은 정치폭력 차원을 넘는다. 치정사건으로 믿게 하기 위해 그들은 여성들을 단도로 찔러 살해한다. 여성들은 성(性)학대, 강제노역의 희생자들이며, 강제 이주민의 70%를 차지한다."고 살레 대학 교수인 필라르 루에다는 분석했다. 간단히 말해 게릴라들과 싸운다는 핑계로 "민병대들은 비무장 시민사회와 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내전 중인 나라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건설하고 싶은 콜롬비아 시민사회의 비무장투쟁은,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막도 없는, 도박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언젠가 국제 공동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어서인지, 개인과 공동체의 자발성이 넘쳐흐르고 있다.
"우리는 미디어, 무기, 돈, 권력과 경쟁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가 집단 광기에 빠졌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결코 저항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권운동가인 릴리아 솔라노 여사의 말이다.  

 

글/파올라 하미레즈 오로즈코 Paola Ramírez Orozco

번역/ 고광식

 1)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원인원은 6월 20일의 인질지원 시위 때보다 훨씬 작은 규모였다. 6월 20일 시위에는 400만 명이 집결했다.
2) 콜롬비아의 비정부기구들은 국가가 저지른 "대부분의 인권 침해"를 규탄하고 있다, <르몽드>, 2008년 9월 27일.
3) 2008년 약 30만 5천명의 시민이 강제이주 당했는데, 1/4분기에만 27만 명이 이주 당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무장분쟁의 표적이 된 시민들', 파리, 2008년 10월 28일.
4) <엘누에보 헤럴드>, 마이애미, 2008년 10월 15일.
5) ONIC에 의하면, 202개 종족, 64개 언어, 인구의 4%를 차지하는 135만 명의 원주민 중에서 45%가 땅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80%가 극빈상태로 살고 있고, 5만 4천명이 강제이주 당했다.
6) '밍가', 협동 작업을 실행하기 위해 조직된 전통적인 원주민 단체.
7) 변호사단체 '호세 알베아르 레스트레포'에 의하면, 3만1,672명의 민병대원들이 동원해제 되었고, 그중 116명만이 사법 절차의 대상이 되었으나 아무도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다.
8) 정치경찰이면서 정보부 역할도 함.
9) 노구에라는 2004년 민병대 지도자 로드리고 토바르의 협조를 얻어 베네수엘라를 혼란케 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그는 또한 2002년 선거 때 선거부정행위를 광범위하게 지휘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베 대통령이 예비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다.
10) 2007년 국가배상화해위원회는 '최근 재무장한 분리파' 그룹에 속하는 3천500 명에서 5천명에 달하는 전사들이 22개 도(道)의 200개 시, 군(전체 1,090개 시,군)에서 활동했다고 언급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앞의 글.
11) 이반 세페다 카스트로와 클로디아 지롱 오르티즈 참조, '콜롬비아에서 수천 명의 전사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5년 5월.
12) 헌법이 국가수반의 연속 2번 임기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베는 이디스 메디나 의원에게 뇌물을 주어 헌법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지게 하였다. 개정안은 이 표 덕택에 가까스로 통과되었다.
13) 2008년 6월 '유엔 코카 잎 재배 측정시스템(Simci)' 발표에 의하면, 2007년에 경작된 지역이 27% 증가했는데 이는 2002년의 경작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허위와 기만의 '대 게릴라전'
정부, 전과 조작… 무고한 이들 대량 학살도

 당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콜롬비아 게릴라들이 사라졌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국방부 발표 수치에 의하면 최근 6년 동안 게릴라와 민병대의 불법단체 조직원 11만 4천명이 사살(1만9천명 이상)되거나 체포되거나 투항했다1).
그러나 콜롬비아 사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국제감시단체들은 이런 수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990년대 말 그 세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이 1만 8천명, '콜롬비아 민족해방군(ELN)'이 7천명, 정부군과 전투를 벌인 적이 전혀 없는 '콜롬비아 자율연합민병대(AUC)'가 1만 2천명으로 평가되었다. 민병대원들과 무장반군이 '동원해제'2)된 사실을 고려한다 해도 수치가 맞지 않는다.
허풍에 불과한 것일까? 허풍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오래 전부터 사회운동단체들은 정부군이 농민들이나 공동체 지도자들을 학살했다고 규탄했다. 정부군은 이들과 충돌할 땐 살상된 '반체제폭동자들'이라고 발표했다. 그런 관행은 보고타에 근접한 소아차(Soacha)에서 소외 계층 젊은이 11명이 행방불명된 사건을 법원이 조사함으로써 밝혀졌다.
그들의 시체는 2008년 9월 소아차에서 400킬로 떨어진 북부 산타르데르의 공동 묘혈에서 발견되었다. 정부군은 그들을 납치한 후 엉뚱하게 그들을 '전투에서 사망한 게릴라들'이라고 발표했다.
'적극적 거짓'이라 불리는 스캔들 때문에 흔히 자행되는 그런 관행이 폭로됐다. 몇몇 장교들은 부하들에게 '수치를 늘리라고' 강요하고, 부하들은 행방불명되어도 관심을 끌지 못하는 노숙자들을 감금하거나 시골로 끌고 가 사살한 후 그 지역에서 충돌이 벌어진 것으로 위장한다. 위장된 죽음에 의해 '대테러 전쟁'의 수치가 부풀려지고, 군인들은 상금, 보상, 훈장을 받게 된다.
사법 절차를 거쳐 장군 3명을 포함한 27명의 군 고위인사가 면직되었고, 2008년 11월 4일 사임한 마리오 몬토야 지상군 사령관은 도미니카 공화국 대사로 발령 날 예정이었다.
  번역 | 고광식

 


 

1) http://www.codhes.org/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384
2) 공교롭게도 3만 명이상의 '민병대 전사들'이 2005년 정부와 맺은 '정의와 평화' 협정에 의해 '동원해제' 절차 혜택을 받았다. 이 동원 해제 때문에 정부군의 물자 우위가 터무니없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