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재구성의 9가지 이유

Corée 새로운 시작

2013-01-11     박성민

비행기는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가 위험하다. 사람도 잘나갈 때와 망가질 때 인격이 드러난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크게 이겼을 때 오만에 빠지기 쉽고, 충격적으로 졌을 때 '네 탓' 하며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진다. 유도에서는 낙법이 아주 중요하다. 잘 떨어져야 안 다친다.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범야권은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75.8% 투표율, 3.58% 차이, 1470만 표 득표. 패배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치들이다. 지금 야권 지지자들은 마치 전쟁에서 패한 국민 같은 심리적 상태에 빠져 있는 듯하다. 하기야 자기가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 져도 분노가 치솟고 우울해지는데 대선 패배는 당연할 터이다. 사실 대선은 스포츠와 전쟁의 중간쯤 어딘가 놓여 있을 것이다. 룰은 스포츠처럼 정해놓고 전쟁처럼 싸운다. 스포츠·선거·전쟁은 모두 전력과 전략, 정신력에서 승패가 갈린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보수와 진보 양 진영 모두 반드시 이기겠다는 정신력에서는 어느 쪽도 밀리지 않았다. 전력도 전보다는 진보 진영이 많이 따라잡았다. 아직도 '기울어진 운동장'이긴 하지만 그 차이는 2~3%에 불과할 정도로 평평해졌다.

야권이 승리한 1997년과 2002년에 비하면 확실히 전력상 차이는 좁혀졌다. 두 번의 승리는 노무현의 표현대로 '의외의 결과였고, 기적이었다'. 전력의 열세를 전략과 정신력으로 극복한 승리였다. 이번에는 전력도 비슷해졌고, 이명박 정부 5년간 정신력(?)도 강해졌으므로 상당히 낙관했던 터라 충격이 클 것이다. 낙관의 근거도 제법 있었다. 선거는 본디 정권 심판의 성격이 강하므로 야당이 유리하다. 정권 교체를 원하는 국민이 정권 재창출을 원하는 국민보다 꾸준히 더 많았던 조사 결과가 그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안보'나 '성장' 같은 보수 의제가 아니라 '복지', '경제 민주화', '노동' 같은 진보적 의제가 핵심인 선거라는 점도 유리한 지형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주요 의제로 부각된 이래 보수 진영은 사회·경제적 의제에서 줄곧 수세였다. 그리고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총선, 그리고 이번 대선에 이르기까지 야당의 강력한 지지 기반인 20~40대의 높은 투표 참여 열기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안철수가 몰고 온 '새 정치' 바람도 야권에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과거사에 발목 잡힌 박근혜가 '보수 결집 전략(?)'으로 돌아간 것도 중원 장악에 절호의 기회였다.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기면 이긴 이유가 100가지 되고, 지면 진 이유가 100가지 되는 것이 선거다. 보수 진영은 후보·전략·당·캠페인이 모두 훌륭해 보이고, 진보 진영은 모두 잘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여간 선거, 전쟁, 스포츠 모두 일단 이기고 봐야 한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이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모두 잘한 것은 아니지만 이겼으면 다 잘한 것이 된다. 졌으면 다 못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왜 진 걸까? 복기해보면 패착과 완착이 드러날 것이다. 모두가 수긍하는 패착이 지적될 수도 있고, 사람마다 의견이 엇갈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승부의 흐름을 바꾼 완착도 찾아낼 수 있다. 나름의 생각 몇을 보태려고 한다.

1. '진영 전선'이 '정권 심판'을 약화시켰다

이번 대선을 흔히 '보수 진영 대 진보 진영'의 일대일 맞대결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사실도 아닐뿐더러 전략적으로도 실수다. 지역 대결, 세대 대결의 성격은 강했지만 이념 대결, 계층 대결의 성격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표현을 쓰면 쓸수록 계층·계급적 대립이 약해지는 것이 역설적인 한국의 특수성이다. 저소득·저학력층은 진보의 기대만큼 계급 투표를 하지 않는다. 이런 진영 구도는 오히려 양 진영을 총결집시킴으로써 현 정권에 대한 '심판' 명분을 약화시킨다. 겉으로는 대립 전선을 분명히 드러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권 교체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박근혜 지지로 몰아낸 전략적 실수다.

한국 대선의 현실적 전선은 '보수 대 진보'가 아니라 '새누리당 대 반(反)새누리당'이다. 평생 새누리당만 찍는 유권자가 38%, 새누리당을 한 번도 찍지 않았고 앞으로도(?) 안 찍을 유권자가 35%, 왔다 갔다 하는 스윙보터가 27% 정도 된다. 3%는 1990년 3당 합당 이래 20년간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지역적 기반의 차이를 반영한다.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찬반 전선을 나누는 것은 새누리당만이 통합·연대 없이 독자적으로 집권 가능한 세력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무엇보다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의 전선은 '현재'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전략적 유리함이 있다. 그러나 '보수 대 진보'의 전선은 '과거'에 대해 서로 책임을 물으면서 '현 정권 심판'이 소멸된다. 그러면 지지 기반의 차이만큼 지게 된다.

2. 대선은 '권력투쟁'이지 '담론투쟁'이 아니다

지지 기반의 차이는 이번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1997년과 2002년에는 지금보다 전력의 차이가 더 컸기 때문에 담대한 전략이 필요했다. 보수의 분열과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같은 호재에도 불구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보수 세력과 연합도 필요했고, 지역 연합을 위한 메가이슈(행정수도 이전)도 필요했다. 담대한 전략과 메가이슈를 선점한 김대중·노무현이 전력의 우위만 믿고 아무런 전략 없이 나온 이회창을 연거푸 이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전략의 담대함도 없었고, 선거를 주도할 이슈도 없었다. 방법과 실행이 전략이지 희망과 의지는 전략이 아니다. '이겨야 한다'거나 '이길 수 있다'로는 이길 수 없다. 두 번의 승리는 정치인과 정당이 주도했기 때문에 담대함이 있었다. 이번 대선은 후보도, 정당도, 정치인도 선거를 주도하지 못했다. 시민단체, 명망가들에게 끌려다닌 선거였다. 대선은 '권력투쟁'이지 '담론투쟁'이 아니다. 정치인은 권력과 승리에 집중하고 운동가들은 가치와 명분에 집착한다. 승부수가 없으면 승부를 뒤집지 못한다.

3. 2002년의 기적이 민주당 최고의 역사일까

2002년에는 두 개의 '기적'이 대한민국을 흥분시켰다. 월드컵 4강 진출과 노무현 당선이었다. 그 순간이 한국 축구와 민주당의 역사상 최고 장면일까? 그보다 더 찬란한 순간이 다시 올까? 한국 축구는 그 뒤 두 번의 월드컵에서 조별 예선 탈락과 16강에 머물렀다. 민주당도 그 뒤 두 번의 대선에서 530만 표차와 108만 표차로 패배를 당했다. 사실 2002년에도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아 기적이 만들어졌다.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과 8강 스페인전 모두 질 수 있는 경기였다. 그러나 어쨌든 월드컵 역사에 4강으로 남았다. 운 좋으면 한 번은 가능하지만 기반이 약하면 운이 계속 일어나지 않는다. K리그가 꾸준히 발전해야 다시 한번 4강에 갈 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당 기반이 약해지면 집권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2002년 이후 지난 10년간 민주당은 꾸준히 무너지고 있다. 조직의 붕괴, 리더십의 약화, 정체성의 혼란, 당원의 사라진 자부심, 두 지도자의 죽음이 10년의 결산이다. 지난 10년간 민주당은 정당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당헌·당규를 통해 탈정치, 탈정당의 길을 일관되게(?) 걸어왔다. 그 결과, 이번 대선처럼 치열한 백병전(白兵戰)이 벌어질 경우 조직적 열세를 절감하게 된다.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축구 강국들은 자국 리그가 강한 국가들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아무리 자국 리그가 강해도 다른 나라의 용병이 리그를 주도하는 나라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잉글랜드가 그렇다. 선거 때마다 외부로 눈을 돌리는 민주당으로는 새누리당을 이길 수 없다. 새누리당은 대선 후보를 밖에서 데려오는 것을 상상하지 않는다. 지더라도 자기들 후보로 지는 쪽을 선택한다. 후보를 선택할 때도 당원들의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한다. 새누리당은, 당명은 바꿔도 당은 해체하지 못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차이다. '동거' 수준의 민주당으로는 '동업' 수준의 새누리당을 이길 수 없다. '동지'의 결사체가 되어야 이길 수 있다.

4. '누가 안 되느냐'가 더 중요했던 후보 단일화

야권의 유일한(?) 전략이 후보 단일화였다면, 여론조사나 경선이 아닌 '담판' 방식이 더 좋았을 것이다. 여론조사 방법 갖고 싸우다가 그냥 관둬버린 방식은 '아름다운 단일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것이었다. 이제 와서 안철수가 나갔더라면 이길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은 안철수가 왜 후보가 못되었는지 다시 확인시키는 아마추어적 발상일 뿐이다. 그의 사퇴는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다. '새 정치'를 들고 끝까지 가기에는 내용도,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단일화를 피할 수 없었다면 2012년 10월을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된다.

사실 그는 1987년의 DJ(김대중)와 같은 입장에 몰려 있었다. 당시 '후보 단일화'는 중립적 용어였음에도 사실상 '김영삼 후보론'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번 '담판'도 2012년 11월에는 사실상 '안철수 양보론'의 다른 이름이었다. 따라서 그는 후보가 되는 데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문재인이 후보가 안 될 수도 있는 상황'을 널리 확산시켰어야 한다. 2010년 경기도지사, 2011년 서울시장에 후보를 내지 못한 민주당 입장에서는 '문재인 양보'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안철수는 10월에 계속 물었어야 한다. "나는 양보할 수도 있고, 지지자들을 설득할 수도 있다. 경선에 져도 승복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도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문재인 지지자들도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것에 실패한 순간 남은 선택은 끝까지 출마해 3등하거나, 포기하고 문재인을 돕거나, 여론조사에서 지는 세 가지 길뿐이었다.

5. 민주당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국민이 정치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세 가지다. 업적, 비전, 이미지가 그것이다. 업적은 과거에 대한 평가다. 비전은 미래에 대한 평가다. 이미지는 현재에 대한 평가다. 이미지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로, 하나는 '지도자'의 이미지고 다른 하나는 '혁신'의 이미지다. 정당에 대한 평가도 이 세 가지가 중요하다. 민주당의 업적은 '민주화'와 '남북 화해'로 대표된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국민에게 주는 비전은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결국 김대중의 업적이 민주당의 업적인 셈이다. 그 뒤 민주당의 지도자들은 김대중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마치 강원도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한반도 평화'를 내세워 두 번 실패한 것을 연상시킨다.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이미 올림픽과 월드컵을 유치할 때마다 써먹던 논리가 또 먹히겠는가? 세 번째 도전에서 성공한 것은 동계올림픽의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내세운 '시대 교체'를 넘어서는 비전이 없었다. 그 결과, 민주당의 이미지는 어떤가? 오늘날 국민이 민주당에 대한민국의 경영을 맡길 만큼 '대안 정당', '책임 정당', '혁신 정당'의 이미지가 있는가?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철학'이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가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지도자'가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폴 발레리의 말대로 "생각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철학 없이, 지도자 없이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다가 민주당을 대표하는 브랜드는 사라졌고, 정체성은 모호하고, 감동의 스토리도 없는 정당이 되었다. 대중에게 민주당은 능력(브랜드)도 없고, 매력(스토리)도 없고, 신뢰(정체성)할 수도 없는 정당이 되어버렸다. 민주당은 보수주의 정당인가, 자유주의 정당인가, 아니면 진보주의 정당인가? 소설가 이인화의 표현을 빌리면 '민주당이 어떤 정당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6. 운동의 정치를 청산하라

국회는 갈등이 끝나는 곳이지 갈등이 시작되는 곳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지혜가 없는 것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그것이 바로 정치다. 운동적 사고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으로 인식한다. 상대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틀리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적으로 보기 때문에 분노와 증오를 계속 선동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민주당을 세 가지 큰 위험에 빠뜨린다.

첫째, 지지하는 국민은 끊임없이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반대하는 국민은 노골적으로 '경멸'한다. 정당과 정치인이 먹고살기 힘든 국민에게 도와달라고 손 내밀면 안 된다. 정당과 정치인이 국민을 편들어주어야지 국민에게 편들어달라고 하면 되겠는가? 둘째, 운동의 정치에는 '혁신'이라는 말만 요란하지 결코 혁신은 없다. 절대 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상대에게만 혁신을 강요한다. 그것은 기득권이다. 혁신은 자기를 바꾸는 것이다. 민주당은 기득권을 버리고 혁신에 서야 한다. 과거를 버리고 미래로 가야 한다. 낡음을 버리고 새로움을 입어야 한다. 분열에서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운동의 정치는 기득권, 낡음, 과거, 분열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혁신, 미래, 새로움, 통합의 줄에 서지 않으면 민주당은 새누리당을 이길 수 없다. 셋째, 운동의 정치화, 정치의 운동화를 청산하지 않으면 정치도 실패하지만 운동도 실패한다. 보수의 상징주자는 '대기업'이다. 진보의 상징주자는 '시민단체'다. 지난 10년간 대기업이 이룩한 성취와 시민단체가 이룩한 성취를 비교해보라. 성찰이 없으면 혁신도 없다. 혁신이 없으면 승리도 없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후 한나라당과 총선 패배 후 민주당의 혁신 차이가 대선 승부를 갈랐다.

7. 지지자를 배신하지 마라

이번 대선은 역사상 가장 치열한 '세대 전쟁'이었다. 가히 에스프레소 커피 세대와 자판기 커피 세대의 대결이라 할 만했다. '2030세대 대 5060세대'의 대결 속에 40대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기대한 것은 야당에 불리한 구도였다. 세대 전쟁을 하려면 세대 삼분지계를 썼어야 한다. 20~30대, 40~50대, 60대 이상으로 나눴어야 한다. 선거가 끝난 후 50대가 승부를 갈랐다고 하지만, 사실 50대는 20대와 30대보다 득표율 차이가 작았다. 62% 대 37%. 박근혜와 문재인의 50대 득표율이다(출구조사 결과). 60대 이상에서 박근혜는 72%를 넘겼다. 거기서 승부가 갈렸다. 20~30대는 투표율도 높았고 66~67%의 압도적 지지를 문재인에게 보냈다. 승부처는 40~50대였다. 인구도 많고 투표율도 높은 60대 이상에서 일방적으로 밀린다면 40~50대를 잡기 위한 이슈와 메시지에 집중했어야 한다. 20~30대는 '새 정치'로 잡을 수 있지만 40~50대는 고단한 삶의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 공약이 필요했다. 이 세대는 1980년대부터 줄곧 민주 진영을 지지해온 세대다. 김대중, 노무현의 승리도 이 세대의 지지 덕이었다. 한마디로 이들은 민주당의 오랜 단골손님(?) 같은 존재였다. 동네 구멍가게 주인도 단골에겐 뭐 하나라도 더 주는데 민주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새로운 고객인 20~30대의 취향만 좇았다. 20~30대는 힘들어도 뭔가 도전해볼 시간이 있지만 40~50대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삶의 고단함을 꾹 참고 잘나가는 명망가와 또래 정치인들을 다시 한번 지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하루가 다르게 뛰는 집값에 놀라 무리한 대출을 끼고 집을 샀다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세대가 이들이다. 40~60대 자영업자들도 힘들고 팍팍했다. 대학 등록금, 가계 부채, 노인 의료 모두 이들의 이슈였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자처하는 민주당이 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핵심 공약의 순서를 비교해보라. 40대의 11% 우세를 더 벌리고, 50대의 25% 열세를 좁힐 기회가 정말 없었을까? 민주당이 오랜 지지자들을 배신한 것은 아닐까?

8. '민생'과 '통합' 선점당하면서 끝났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2012년 12월 19일 승리의 기쁨에 아쉬움을 묻어버릴 수 있었지만, 만일 졌다면 그토록 공을 들인 호남과 20~30대에게 실망을 넘어 환멸을 느꼈을 수도 있다. 오랜 시간 호남에 들인 노력에 비해 10%는 인색한 지지율이다. 황우여 당 대표는 선거 기간 내내 호남에 있었다. 호남의 대표적 정치인들을 대거 영입했고, 후보 주위에 많은 호남 인사들이 포진해 있었다. 선거 때마다 호남에서 유세를 시작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정성을 다했다. 두 자릿수 지지율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20~30대에게 다가가기 위해 청바지를 입고 '말춤'도 췄다. 공약도 많이 준비했다. 대학생들이 공약만 보고 뽑은 결과는 1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박근혜가 20~30대에서 얻은 득표율은 50대에서 문재인이 얻은 득표율에 미치지 못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가장 먼저 '국민대통합위원회'와 '청년특별위원회'를 배치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집요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어떤가?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20~30대에게 들인 공과 문재인과 민주당이 60대 이상에게 들인 공을 비교해보라. 호남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과 대구·경북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비교해보라. 보수 정당의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들고 나왔다. 민주당은 보수 지지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결국 이번 대선은 '신자유주의' 정당의 후보가 '민생'을 선점하면서 끝났다.

9. 이끌어라! 못하겠으면 떠나라

권투 선수는 두 다리가 풀리면 끝이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정체성과 리더십의 두 다리가 풀리면 그대로 무너진다. 지금 민주당이 딱 그 모양이다. 리더십과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지지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민주당이 무너지면 진보 세력은 보수와 새누리당을 이길 수 없다. 기업이 성공하려면 좋은 제품을 만들면 된다. 제품만 좋으면 어느 정도 돈을 벌 수 있다. 국내 최고의 기업이 되려면 회사와 최고경영자(CEO)가 팔려야 한다. 세계적인 대기업이 되려면 '꿈'을 팔아야 한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5년 뒤 집권하기 위해서는 좋은 정책, 좋은 지도자, 국민의 신뢰를 받는 당의 이미지, 그리고 국민에게 가슴 설레는 꿈을 주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핵심은 리더십이다. 정책, 조직, 정체성 모두 지도자의 결단으로 결정된다. 지도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당 밖에서 영입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당원과 함께 당의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지도자다. 민주당은 중요한 선거에 당에서 성장한 사람이 후보로 나서고, 당원들이 후보를 뽑아야 국민이 당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 2014년 지방선거부터 외부에서 영입하지 말고 당에서 후보를 내는 것이 좋다. 문재인과 박원순처럼 큰 선거에 나가면 이기든 지든 지도자로 성장한다.

야당은 어떤 경우에도 관리형 대표가 필요하지 않다. 모든 지도자가 나서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집단지도 체제로는 혁신이 어렵다. 단일지도 체제가 야당에는 더 어울린다. 그래야 혁신이 되고, 좋은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 당 대표와 대선 후보를 뽑을 때는 당원들의 의사를 50% 이상 반영하는 것이 좋다. 당원들이 자부심을 잃은 당은 싸울 수 없다. 민주당이 국민 정당으로 가든, 아니면 자유주의 정당과 진보주의 정당으로 분화되든 핵심은 지도력이다. 지도력이 없는 정치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국민은 없다. 정당에서 지도자는 선거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모든 선거에 선명한 노선을 걸고 모두 나와 싸우라! Lead or Leave!

 

/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정치컨설팅 '민' 대표. 저서로 <정치의 몰락>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