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후원의 즐거움

2013-01-12     조안 포프라르

"미술관들이 기업가들에게 헐값으로 팔려나가고 있어요. 메츠에 있는 퐁피두센터 벽에서 (중략) 웬델의 이름을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아팠답니다."(1)

대통령 선거 운동 당시 로렌주의 모젤 지방 국회의원이던 오렐리 필리페티는, 수백 년 동안 로렌주의 강철업을 지배하다 투자회사로 업종을 변경한 옛 철강그룹과 한 미술관 사이에 맺은 제휴관계에 반대해 항의하고 나섰다. 웬델그룹은 그녀의 이같은 발언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필리페티의 발언은 프랑스에서 10년 전부터 문화예술후원제도를 발전시키고, 미술관을 (2005년 루브르 미술관 발전 담당 책임자의 표현에 따르면) '기업이 마치 자기 회사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2)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기울여온 노력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필리페티는 현재 문화통신부 장관이다. 웬델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메츠의 퐁피두센터 벽에 새겨 있을 뿐만 아니라, 필리페티는 자신이 기업의 문화예술후원제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발언을 틈날 때마다 하고 있다. 그녀가 문화통신부 장관이 되어 맨 처음 한 발언 중 하나는 이런 유형의 재정 지원과 관련된 세제의 이점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즉 "국가는 문화예술후원제도의 도움을 거부할 수 없으며"(3), 문화 분야에 투자되어야 하는 공적자금이 감소할 때는 특히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마르크 아이로 정부는 30년 전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문화예술후원제도를 유지하려고 애써온 이전 정부들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1983년 이미 자크 랑은 경제계와 창작자들의 세계를 결합시키는 데 관심을 쏟으며 "기업정신과 상상력의 힘이 합쳐지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4)고 주장한 바 있다.

1980년대 말, 문화통신부 장관이던 프랑수아 레오타르에 이어 재정부 장관인 에두아르 발라뒤르의 주도하에 취해져 입법과 세법의 기틀을 마련한 최초의 조처들에 이어 결정적 역할을 해낸 것은 바로 2003년 8월 1일 제정된 법안이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장자크 아야공(현재 문화 자산의 취득이나 생산 프로젝트 분야에서 사업가 프랑수아 피노를 비롯한 다른 예술애호가들의 고문으로 일함)이 제출한 이 법안은,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기업에 기부금의 60%를 세금 감면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프랑스 문화부의 인터넷 사이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 법안은 '프랑스가 유럽에서 가장 고무적인 것들 중 하나인 세제 장치의 혜택을 보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신중한 표현이다. 프랑스 회계감사원은 2011년 3월 발행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앞에서 말한 세제 장치는 앵글로색슨계 국가, 특히 미국 세제 장치의 수준에 맞춰지지 않았다. 프랑스 세제 장치는 미국 세제 장치를 훨씬 넘어섰다." 이 세제 장치는 성공을 거두었다. 즉 2006~2009년 문화예술 후원금이 두 배로 늘어나, 규모가 큰 관련 기관들이 우선적으로 혜택을 보았다. 그리하여 루브르 미술관에는 후원금이 3년 만에 1001만 유로에서 2849만5천 유로로 늘어났다. 이는 각각 총수입의 6.2%와 11.9%를 차지한다.

세금 감면만 유일한 이점은 아니다. 문화예술 후원자는 아무 제약 없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부금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을 홍보나 공적(公的) 교류 형태로 보상받을 수 있다. 즉 미술관의 포스터나 초대장, 인터넷 사이트 등에 이름이나 로고를 넣을 수 있으며, 심지어 루브르 미술관의 경우에는 고액 기부자들의 이름을 피라미드 대리석 아래 새겨놓기까지 했다. 이처럼 기업의 '가시적(可視的) 요소'들이 예술 작품 옆에 자리잡고 미술관 입구에 버티고 있는 것을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가 보면, 문화예술후원제도와 스폰서제도의 차이가 매우 애매모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문화예술 후원제도와 스폰서제도(스폰서제도는 광고 효과를 노리며 상업적이다)는 법에 의해 구분되지만, 두 제도의 차이는 주로 성격보다는 그것의 정도에서 비롯된다. 문화예술후원제도의 새로운 형태 및 맞춤형 전시회 개최라든지 전시실에 후원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다루는 국회문화교육위원회는 이렇게 분석한다. "그것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공적 자금의 투자원이 점점 더 드물어지는 상황에서 문화예술 후원자를 찾기 위해 경쟁을 벌이다 보면 수익자에게 항상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역학관계가 수립될 수도 있다."(5)

사실 경쟁적이며 불평등한 문화예술후원제도의 구조는 관련 단체들로 하여금 그것에 적응하도록 유도한다. 문화는 기업의 언어에 친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문화는 금방 배운다.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임대되거나 양도되는 그랑팔레의 중앙홀은 기업에서 주최하는 파티 공간으로 바뀌었다. "칵테일 파티, 디너 쇼, 음악, 플라즈마 TV, 게임용 콘솔, 장터를 연상시키는 활기…. 사람들은 회전목마와 범퍼카를 타면서, 특히 '장난감 오리 낚시질'을 하면서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6) 미술관은 기업가와 '결정권자'들을 위한 사교장이 된다.

"루브르 미술관의 후원자가 됨으로써 프랑스와 외국의 파트너들로 이루어진 막강한 조직에 합류하게 됩니다."(7)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의 문화예술 후원 책임자인 장폴 클라브리가 국회문화교육위원회에서 상기했던 것처럼(2012년),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이용되고 사기업화되어 행복한 소수를 위한 클럽이나 봉급생활자들을 위한 놀이공원으로 변한 미술관(혁명 때 만들어진 기관)은 사적 이익에 지배당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런 이점보다는 박애 차원과 비물질적 이익을 내세우는 것을 더 좋아한다. 산업적·상업적 문화예술후원제도를 위한 협회(ADMICAL, 1979년 설립. 회원이 180명이며 그중 130명이 기업이다)에서 2012년 예산부 장관이 고려한 '기업 문화예술후원제도의 세제 장치에 대한 엄격한 개편 작업'에 반대해 작성한 연판장은 상징적이다. '문화예술후원제도는 광고활동이 아니다.'

문화예술후원제도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기업들도 그것을 통해 사회에 관심을 쏟는 한편, 유용하며 효율적인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기부 행위이자 참여 행위다. 그것은 영혼의 보완물이다. 그러나 꼭 그것만은 아니다. 즉, 문화예술후원제도는 사회적으로 구원자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타인에 대한 거부와 위축의 원인이 되는 불안정성과 실업, 문화의 빈곤화 등 위기의 가장 심각한 결과들을 해결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 수단은 '문화예술후원제도'라고 불린다.

과연 무엇이 이처럼 과장된 표현을 정당화하는 것인지 궁금해질 수도 있다. 문화예술 후원자는 이타주의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2011년 '모뉴멘타'(매년 파리 그랑팔레 중앙홀에서 개최되는 예술 행사) 당시 언론에 배포된 보도자료에는, 한 택시회사에 '사상의 순환과 창조의 움직임, 인간들의 이동을 결합시키는 운동성에 봉사한다'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8) 요컨대 '예술 작품으로서의 택시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변모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예술 후원자들은 그랑팔레를 돕는다. 그러나 분명히 그들은 '그랑팔레의 이미지나 활기'와 결합되어 있다. 그들의 '기부'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며, 이 점이야말로 '파트너십'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임이 틀림없다. 문화예술후원제도는 기업가와 창조자의, 자본주의적 기업과 예술적 기업의 반사화(反射化)에 형태를 부여한다. 창조성, 상상력,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취성을 갖춘 기업가는 이제 더 이상 이익만 추구하는 단순한 자본주의자가 아니며, 착취자는 더욱 아니다. 기업가는 예술에 근접해 그것을 시각화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품격이 높아진 자선가다. 요컨대 기업가는 로렌초 데 메디치 같은 문화예술 후원자에 조금씩 가까워질 것이다. 기업가들이 르네상스 시대의 군주처럼 되는 것이다.

문화예술후원제도의 이런 구조가 어떤 특별한 미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일이다(어쨌든 일부 대규모 행사들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생각하도록 권유한다). 모뉴멘타를 비롯해, 낭트에서 열리는 에스튀에르, 릴 3000,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리는 현대예술전시회 등은 모두 웅장한 것과 유희적인 것을 결합시키려 애쓴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한눈에 과장되어 보이는 이 행사들은 언론계를 위해 기획된 듯하다. "매년 단 한 명의 예술가에게 그랑팔레를 내어주는 모뉴멘타는 어마어마한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그것은 두 초강자가 맞서싸우며 서로 목을 조르는 거인들의 전투다. 한쪽에는 현대 기술의 정상인 그랑팔레 대성당이 있고, 그 앞에는 괴물처럼 보이는 현대예술가가 있다."(9)

이런 행사는 예술 작품과 기발한 기계 설비, 최신 유행을 따르는 파티와 서민적인 무도회가 뒤섞여 있는 '축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익을 남겨야 한다. "거대한 철학 인용문이 쓰여 있는 암벽 기어오르기, 미니골프하면서 예술의 역사를 발견하기, 예술적인 시설물에서 수영하기. 왜 운동을 하든지, 아니면 전시회를 보든지,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단 말인가?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릴 3000'이라는 행사의 한 전시회 카탈로그에 실린 글에서 글쓴이는 이렇게 묻는다.

이 의문에는 또 다른 의문들이 감춰져 있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예술은 수익성의 의무에서 벗어나려 한단 말인가? '어떤 예술 작품에 주어진 시선은 오직 그 작품만을 본다'라는 주장은 과연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국가는 미술관에 대한 재정 지원처럼 비생산적 지출을 책임진다는 주장은 또 어떻게 정당화될 것인가? 오렐리 필리페티가 말했던 것처럼 미술관들이 기업가들에게 헐값으로 팔려나가면, 결국 이 미술관들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그저 고객에 불과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예술은 '보편적 이해관계'의 산물로 인정된 자본주의를 정신적으로 합법화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 조안 포프라르 Johan Popelard 파리1대학 예술사 박사과정

번역 / 이재형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박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