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도는 초조하다

-여성 폭행으로 표출된 인도의 고민

2013-02-08     베네딕트 마니에

끔직한 범죄, 그리고 예외적인 처벌? 인도 뉴델리 여학생의 성폭행 사건 이후 시위자들은 사회의 인식 변화에서 희망을 보지만, 가해 혐의자들에 대한 공정한 재판이 없는 점은 불길한 조짐이다. 권력은 전례 없이 뜨거운 시위 열기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잠재우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성폭행에 항의하는 시위가 엄청나다. 뉴델리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위의 물결이다. 지난해 12월 28일 23살의 한 젊은 여학생이 참혹한 성폭행을 겪은 뒤 상해와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후, 남녀 가릴 것 없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몇 차례나 거리로 운집해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인도 중산층 여성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우선 이 범죄의 대상이 그녀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촌 가정 출신으로 대도시에 유학 온 여학생, 바로 사회적 계층 상승을 이루려는 이 세대의 표상이다. 세계화가 시작될 때 태어나 흔히 외국에서 공부하고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세대, 대학과 직장에서 남녀 평등을 처음 경험하기 시작한 세대(인도에선 남성보다 여성의 인구가 더 많다). 지난 10년간 고속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여성들에게 고용 가능성이 더 열렸다. 2005년 근로 여성 수가 290만 명에 달한 공공 분야 외에(1) 여성들은 고속 성장의 순풍을 등에 업은 기술·항공·제약 등의 분야에 진출했다. 실제 정보기술(IT)과 관련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정규직 300만 명 중 32%가 여성이다.(2) 경제활동인구 중 여성의 비중은 1981년 19.7%에서 2011년 25.7%로 늘어났다.

따라서 도시의 소수 여성들 사이에서 성폭행은 자신의 일과도 같았다. 이들은 시위를 통해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남성의 지배를 거부했다. 지난해 12월 시위 중에 촉발된 폭력 사태는 가부장 전통의 어두운 인도와 새롭게 떠오른 젊은이들로 상징되는 '빛나는 인도'(Shining India) 사이에 일어난 문화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수도가 위치한 인도 북서쪽 지역은 가부장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다. 여자 태아를 가장 많이 낙태하는 '낙태 벨트'이기도 하다. 여성의 열등함은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남아를 선호하며 출산 여부를 결정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남아는 가족의 성과 유산을 물려받지만 여아는 쓸모없고 심지어 가족에게 해만 끼치는 것으로 생각한다. 딸을 결혼시키려면 지참금을 준비해야 하고, 이 때문에 몇 년간 가족은 빚을 지기 때문이다. 이같은 남아 선호는 수백만 건의 태아 감별 낙태로 이어진다. 1994년 법으로 낙태를 금지해도 소용없었다. 이는 인구 성비의 불균형을 낳아 현재 인도 남성 1천 명당 여성 인구는 940명에 불과하다.(3)

만연한 대중교통 내 성희롱

부부 폭력의 발생률이 높은 이유도 전통적 남성 지배 때문이다. 인도 기혼 여성의 37% 이상이 성폭력과 신체 폭행을 겪고,(4) 그중 매년 7천∼8천 건의 폭행이 지참금 문제와 관련돼 있다. 처가에서 더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남편들이 폭행을 휘두르는 것이다. 더구나 이 수치는 신고 건수만 의미하므로 실제 폭행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인도 국립범죄기록국(NCRB)에 따르면, 성폭행은 1990∼2008년 2배 이상 증가했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성폭행은 평균 20분마다 1회꼴로 발생한다.(5)

성폭행 증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되진 않아도 분명 남성 인구수의 초과가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통계로 봤을 때 성폭행과 성비의 불균형 관계가 입증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구로 봤을 때는 많은 경우에서 관계가 있다. 낙태 벨트 지역(펀자브·하리아나·라자스탄주(州) 등)의 농촌 가정에서는 딸이 혼자 학교에 가거나 공터에 가지 않도록 주의시키고 있다. 마을 보건소의 의사들은 배우자를 찾지 못한 젊은 미혼 남성들의 집단 성폭행 사례를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또한 성폭력은 전통적으로 카스트 간의 관계를 반영하는데, 특히 농촌이 더하다. 달릿(불가촉천민)에 속하는 여성들은 높은 카스트에 속하는 남성들로부터 빈번하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들이 여성이면서 카스트 바깥에 속한 최하층민이라는 이중의 약점을 지닌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많은 경우 가해자들의 처벌 면제와 사회의 암묵적 침묵 속에서 홀로 폭행의 치욕을 견딘다. 델리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가 이런 현실을 바꾸게 될까?

인도의 수도에서는 대중교통수단 내에서 성희롱이 만연하다. 저녁 무렵 대학 캠퍼스, 교외 기차나 버스 정류장에서 성폭행이 증가했다. 뉴델리는 신고된 성폭행 건수가 가장 많다. 2011년 572건으로 뭄바이(221건), 콜카타(46건), 첸나이(76건), 방갈로르(97건), 하이데라바드(59건)에 접수된 폭행 건수 전체보다 훨씬 높다.(6)

도시화하면서 성폭행은 미디어를 통해 더욱 가시적이 되었다. 여성들의 반응은 대도시에 특별 개설된 호신술 개인강좌에 몰리는 식으로 나타났다. 인도의 여성 대통령 프라티바 파틸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7)이라며 여러 차례 여성들이 무술을 배우도록 독려했다. 뉴델리의 여러 공립 여학교에서 호신술 강좌가 점차 개설되고 있다.

어두운 인도와 빛나는 인도의 충돌

성폭행 문제에서 인도가 예외적인 경우는 아니다. 예를 들어 문화적으로 배경이 다르지만, 미국의 성폭행 수치는 여전히 높다(2010년 12살 이상에서 기록된 건수는 18만8380건).(8) 프랑스는 7만5천 명 이상의 여성, 그에 맞먹는 아동들이 매년 성폭행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9) 따라서 관건은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게 캠페인을 다시 조직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난해 12월 일어난 성폭행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들의 말처럼 "치욕이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인도 시민들의 항의가 격렬했음에도 다른 나라들과 달리 인도에서 피해자 심문은 전혀 나아진 바가 없다. 고소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치욕스러운 질문과 검사를 동반하고, 결국 가해자 체포와 처벌이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 뉴델리에서 2012년 1∼11월 접수된 635건의 성폭행 사건에서(집단 성폭행이 반영된 수치) 고소된 남성 754명 중 오직 1명만이 처벌받았다. 나머지 가해자들은 대부분 고소 절차가 계류 중이다.(10)

사람들의 격앙으로 인도 정부는 "경찰 내 여성 인력 증강 배치와 유사 범죄에 대해 엄벌로 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표가 성폭행 증가를 막는 데 무능한 경찰에 대한 불신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시위자들의 분노는 범죄자뿐 아니라 경찰, 그리고 제 역할을 못하는 국가를 향했다.

인도의 항의 시위가 정치적 반향을 일으킨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2011년 안나 하자레가 이끈 반부패운동으로 표출된 불만에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도시 중산층은 이미 거리로 나섰다. 이 두 운동은 경제·문화 면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인도와 국가적 사안에 무능하고 부패가 잦은(다양한 경향의 혼재) 지도층 사이의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운동을 통해 고등교육을 받은 세대는 공적 생활 영역에 지속적으로 안착했다. 고등교육 세대는 미디어의 시선을 붙잡아두고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하며 시의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는 슬로건을 만들 줄 안다. 처음 중산층에서 공공의식이 싹튼 계기는 소비와 고등교육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중산층은 치안과 국가의 역할에 대한 공통된 숙원을 갖고 모이고 있다. 이 운동은 미래의 더 진보적인 사회 기준에 대한 희망을 낳고 있으며, 사회의 전반적 변화에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중산층은 여전히 소수이며 변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만 봐도 태어날 권리뿐 아니라 제대로 먹고 학교에 가고, 또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받을 권리 등 변화 속도의 층위가 서로 너무나 다른 사회이기 때문이다. 인도는 영양 결핍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고, 인도 국민 중 37% 이상이 여전히 절대 빈곤 상태로 살고 있다. 경제성장 덕분에 전반적인 사회기반시설이 개선돼 특히 상수시설 이용이 좋아졌지만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사회 분열(근대성과 가부장주의, 국민과 정치 지도자층 간)에 더해 심화되는 격차로 성장에서 소외된 자들과 신흥 부유층,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 도시와 농촌이 분리되고 있다. 이런 불평등으로 농촌 이탈 현상은 가속화되고 도시의 무질서한 확대를 야기하여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복합적인 분열로 인해 인도 사회가 사회적·정치적으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성폭행으로 야기된 분노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경찰을 개혁하고 관련 법을 개선해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또 비정부기구로 하여금 오랜 성차별과 싸우도록 도와야 한다. 더 넓게 보면 크리스토프 자프를로의 말처럼 비정부기구는 경제사회의 '악성장'과 용감하게 대결할 수 있다.(11) 국가의 개입만으로는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충분치 않지만, 사회 진보를 향한 정치는 모든 여성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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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트 마니에 Bénédicte Manier 언론인 겸 작가. 저서로 <여성들이 사라진다면, 아시아와 인도의 여아 제거>(Quand les femmes auront disparu, L'Elimination des filles en Inde et en Asie·La Découverte·Paris·2008) 등이 있다.

번역박지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위원. 그린피스 해양캠페이너.

(1) 고용부 장관.
(2) ‘Government should do its part in ensuring safety of women in IT-BPO sector: Nasscom’, <The Economic Times>, New Delhi, 2013년 1월 4일.
(3) 이 비율은 펀자브(893~1000)주와 하리아나주(877~1000), 라자스탄주(926~1000), 도는 뉴델리(866~1000)에서 가장 낮다.
(4) ‘가족과 보건에 관한 3차 국가 설문조사’(National Family Health Survey), 2006.
(5) 출처 국가범죄기록국(NCRB). 많은 피해자가 고발을 포기하기 때문에 실제 범죄 건수는 알 수 없다.
(6) 출처 NCRB.
(7) ‘Teach girls martial arts for protection: president’, IBN Live, http://ibnlive.in.com, 2011년 11월 2일.
(8) ‘Office for Victims of Crime’, US Department of Justice, Washington, http://ovc.ncjrs.gov.
(9) www.contreleviol.fr 참조.
(10) ‘One conviction out of 635 rape cases in Delhi this year’, <The Indian Express>, New Delhi, 2012년 12월 30일.
(11) Christophe Jaffrelot, <인도의 힘의 이면: 불평등과 항거>(Inde, l’envers de la puissance: Inégalités et révolte), CNRS Editions, Paris, 2012.


혼자만의 상승

인도는 사회 저변에서 전반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지 않은 채 여성들에게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맡겼다. 인도의 모순 중 하나다.

인디라 간디는 1966∼77년, 1980∼84년 총리였다. 그녀의 며느리 소냐 간디는 1998년부터 국민회의당을 이끌고 있다. 이 정당 출신인 프라티바 파틸은 2007년부터 2012년 8월까지 대통령직(명예직)을 수행했다. 2009년부터 의회 하원(로크사바)을 이끌고 있는 이는 메이라 쿠마르고, 델리 지역도 1998년부터 셰일라 딕싯이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성적 불평등은 심하다. 정치계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없는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전통적 사회 관행의 힘과 낮은 법 준수 의식이다. 그 때문에 2005년 남성과 동등하게 유산 상속의 권리를 부여한 법이 제정됐는데도 여성 대부분이 여전히 상속을 받지 못하고 토지를 소유할 수 없다. 또 인도 여성의 70%가 농촌에서 살고 있다. 대부분 아버지나 남편에게 순종하며 살고, 경제성장의 혜택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개발프로그램이 남성과 여성의 평등과 관련해 매긴 순위에서 인도는 146개국 중 129위로 남아시아에서 끝에서 두 번째다(아프가니스탄 바로 앞).

정치에서는 쿼터제 덕분에 농촌 마을 단위 시의회 의석 100만 명 중 여성이 36.8%를 차지했다. 그러나 의회에서 여성의 비중은 10.8%에 불과하고, 의원 수의 3분의 1을 여성으로 채우기 위한 쿼터제 도입 법안은 1996년 이후 계속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