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항구의 중국식 노사 모델
Dossier 그리스라는 실험실
그리스 정부는 채권자들의 압력에 굴복해 항구 여러 곳을 민영화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미 2010년부터 중국 회사가 피레우스항의 컨테이너 터미널 2곳을 운영하고 있다.
1840년대 초, 영국은 무역항 확대를 명분으로 중국에 포탄 세례를 퍼부었다. 청나라가 아편 거래를 단속하기 위해 영국인들에게 항구를 영구적으로 폐쇄하는 조처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전쟁에 패한 청의 황제 도광제는 1842년 8월 29일 홍콩의 할양, 광둥 이외의 다섯 항구를 추가 개항하는 내용의 난징조약에 서명한다. 이윽고 벌어진 제2차 아편전쟁(1856~60) 이후 아편 무역은 합법화되고 청나라의 주권은 갈수록 약화됐다. 오늘날의 역사 교과서는 두 번의 아편전쟁 후 체결된 합의를 '불평등조약'이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2008년 11월 24일. 그리스 피레우스항 노동자들은 '코스코 고 홈!'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펄럭이며 아테네 거리를 행진했다. 그리스 제1의 항구 운영을 중국원양운수총공사(COSCO)에 넘기는 데 반대하는 집회였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조인된 계약 내용에 따르면, 코스코가 35년간 피레우스항 컨테이너 터미널 3곳 중 2곳의 운영을 맡게 된다. 코스코는 시설 현대화를 위해 투자하고, 나머지 터미널 1곳의 관리를 맡게 될 그리스의 항만공사에 매년 사용료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누적 사용료를 계산해보면 최대 8억3200만 유로에 달한다.
세계 금융위기가 절정에 달한 2009년 3월, 신민당(우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그리스 의회는 코스코에 대한 사회분담금 면제와 세금 감면 혜택이 포함된 내용의 계약을 승인했다. 전문가들은 "피레우스 항만 공사에 아무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점만으로도 이 계획을 재고해야 한다. 과연 두 회사 사이에 경쟁을 붙이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따져봐야 한다"(1)며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영국의 포탄 세례에 비해 중국의 방식이 훨씬 평화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의 역전으로 중국이 이제 구대륙의 항만에 손을 뻗치는 것을 그리스 노동자들은 가만히 지켜만 보지 않았다. 거대 컨테이너선들이 지나가는 수에즈운하와 근접해 있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양 고속도로'상에 위치한 피레우스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기반시설 중 하나다. 피레우스항은 중국 상품이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터키와 흑해 연안 국가로 향하는 아시아 상품을 위한 이상적인 기착지 역할을 한다. 코스코가 운영을 맡게 되면서부터 이곳은 일종의 사회적 실험실 구실까지 하고 있다.
피레우스항은 2010년 6월부터 코스코 운영하에 새로 문을 열었다. 언론은 푸청추 사장의 효율적인 항만 운영에 찬사를 퍼부었다. 2011년에는 이곳을 거쳐간 컨테이너가 100만 개를 넘어서면서 경제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푸 사장은 복지국가 체제 아래 굳어진 노동자들의 나태한 습관을 척결하기 위해 분투한 결과, 좋은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코스코는 노조 가입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기존 임금의 절반만 주고 비정규직을 고용한다. 단체협약 내용을 준수하지 않으며 퇴직연금을 삭감하고, 직원 교육을 소홀히 하고, 휴식 시간을 줄인다. 작업장 안전시설 미비에 항의하는 직원들은 해고하고, 9명으로 구성된 작업팀원을 4명으로 줄이고, 추가 금액 없이 잔업 수당을 계산했다. 현재 코스코 터미널의 상근직은 중국인 7명을 포함해 총 270명이다. 여기에 수백 명의 비정규직을 덧붙여야 한다. 대부분 하청업체에 소속된 이들은 직업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상태에서 문자메시지로 고용 사실을 연락받고, 몇 시간 만에 일을 시작한다. 노동조합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푸 사장은 단호하다. "너무 멀리까지 갈 필요는 없다. …이미 말했듯이, 우리 직원들은 행복하다."(2)
그곳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피레우스 항만 공사가 운영하는 터미널이 있다. 정규직 노동자 1300명이 '현대화'의 전초기지, 코스코 터미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분투하고 있다. 이처럼 두 시설이 나란히 가동되는 이곳은 생산시설 내부 이전의 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장 노릇을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아시아로 생산시설을 이전할 필요가 없다. 아시아의 노동조건을 수입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사회적 성취물을 포기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유럽의 등을 떠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코스코 경영진은 현재 그리스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두 주체의 요구를 간신히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강력한 로비를 펼치는 선주들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트로이카가 그들이다.
"그리스 정부는 중국이 들여온 노사 모델을 마음에 쏙 들어하고, '트로이카'는 그런 그리스 정부를 마음에 쏙 들어한다." 프랑스 노동총연맹(CGT) 항만부두전국연맹 사무국장 토니 오부아의 설명이다. "그리스 정부에 민영화를 요구하고 중국 자본을 들여오도록 한 것은 바로 '트로이카'다." 2003년과 2006년 유럽에서 두 차례에 걸쳐 항만시설을 민영화하려 했지만 노동자들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혀 유럽의회가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EU 집행위원회 부의장 겸 교통정책 담당 집행위원 심 칼라스는 "유연하지 못한 노동법규와 경쟁력 없는 고용체계"를 격렬히 비판하면서 다시금 항만 시설 민영화를 주장했다.(3) 2012년에는 '트로이카'의 압력으로 포르투갈의 항만 관련 법률에서 항만 노동자들이 누리던 몇 가지 특권이 삭제됐다. 칼라스 위원은 소원풀이를 한 셈이다.
코스코가 피레우스항을 접수하는 과정에는 트로이의 목마가 있었다. 광석운반선과 유조선 분야에서 세계 최대의 상선을 보유한 그리스 선주들이다. 이들은 중국 정부와 일정 부분 이해를 공유한다. 그리스의 상선들이 중국의 산업시설에 원재료와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동안, 달리안·상하이·광저우의 조선소에서는 선주들을 위해 배를 건조한다. 그리스 선주들은 중국의 성장에 힘입어 재빨리 금융위기로 입은 손실을 만회했다. 그리스 정부가 지역 경제를 살려달라고 간곡히 요청하는 상황 속에서, 푸 사장의 경영 방식과 EU 집행위원회의 요구사항은 선주들에게 탈규제를 추진하기 위한 든든한 두 개의 기둥이 돼주었다. "거대 해운업체들이 그리스 내에 투자하도록 설득하려면 우선 그리스 시장 역시 숨 막히는 규제가 철폐되고 경쟁에 개방됐으므로 이윤을 뽑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는 <월스트리트저널>(2012년 12월 7일)의 설명은 노골적이다. 코스코는 이 권고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트로이카'의 압력 속에서 피레우스항 전체를 민영화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우리는 과거 중국이 아편전쟁에 패하고 불평등조약을 맺자 인민이 평등주의를 주창하며 '태평천국의 난'(1861~64)을 일으켰던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1) Harilaos N. Psaraftis & Athanasios A. Pallis, ‘Concession of the Piraeus container terminal: turbulent times and the quest for competitiveness’, <Maritime Policy & Management>, vol.39, n°1, p.27~43, 2012년 2월.
(2) Magali Serre, ‘중국의 유럽으로의 생산 이전’, <Arte France>, 2012.
(3) 유럽 항만 정책 콘퍼런스, 브뤼셀, 2012년 9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