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전전하는 이주민들

Dossier 그리스라는 실험실

2013-02-08     그레고리 라살

신발이나 바지에 달라붙은 진흙은 그들이 밀입국자임을 보여주는 징표다. 겨울철 에브로스강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밀입국자는 육로를 선호한다. 하지만 더러 거친 물결에 몸을 맡기는 이들도 있다. 가령 무스타파가 그러하다. 모로코에서 밀입국한 무스타파는 그리스 영토에 속하는 알렉산드루폴리스역 플랫폼에 앉아 있다. 그는 왼팔을 점퍼 속에 감추고 있다. 이유를 묻자 처음에는 답변을 회피하더니, 마지못해 먼지가 폴폴 일렁이는 땅바닥 위에 수갑 한 쌍을 그려 보인다. 그는 터키 병사의 공격을 받고 한쪽 팔이 탈구된 채로 터키와 그리스를 가르는 에브로스강을 건너게 되기까지, 그간의 자초지종을 몸동작으로 묘사했다. 그날 밤 각각 밀입국자 6명을 실은 밀항선 두 척이 전복했다. 아프가니스탄인 2명과 모로코인 1명이 무스타파 눈앞에서 익사했다. 무스타파도 그들처럼 수영을 할 줄 몰랐다. 하지만 그는 구명조끼를 입은 덕에 물에 동동 뜬 채로 서쪽 강가까지 헤엄쳐 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무스타파는 모든 소지품을 잃어버렸다. 담요와 장갑, 모자, 옷가지는 물론 기도할 때 쓰는 양탄자와 여권까지.

에브로스강은 그리스와 터키 사이를 가르며 흐른다. 북쪽 불가리아에서 시작된 강줄기는 삼각주까지 이어져 내려와 에게해로 흘러 들어간다. 170km에 달하는 국경선을 따라 그리스와 터키군 초소가 줄줄이 마주하고 있다. 터키 쪽 영토에는 붉은색 터키 국기와 감시탑들이 하늘 위로 우뚝 서 있다. 그리스 쪽 영토에는 군 주둔지와 밭 옆에 나란히 대인지뢰밭이 펼쳐져 있다. 2011년 이후 유럽연합(EU) 국경관리기구(FRONTEX)는 외국인 불법 이주자의 월경을 막기 위해 그리스 경찰을 지원해왔다. 이 기구가 파견한 순찰요원들은 특히 그리스 북쪽에 위치한 오레스티아다 지역을 중점적으로 감시해왔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알렉산드루폴리스였다. 에브로스강이 터키 영토 쪽으로 휘어져 흐르는 탓에 국경선이 10.7km에 걸쳐 농경지를 지나는 알렉산드루폴리스에서는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것이 가능했다.

기차역 플랫폼에는 무스타파와 (그에게서 수m 떨어진 곳에) 방글라데시인 여러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에게로 우르두어를 하는 아프가니스탄인 3명이 접근했다. 어두운 밤인데도 그들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3인조는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잠도 재워주겠노라고 제안했다. 가족에게 전화를 걸게 해줄 테니 자신들 집에 가서 푹 쉬다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이민자들은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이윽고 3인조가 자리를 떴다. 방글라데시인 일행 중 한 명이 조용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저자들은 마피아야. 자기 집에 따라온 자들을 억류한 뒤 가족에게 연락해 몸값을 뜯어내지. 저런 자들을 각별히 조심해야 해." 선글라스를 쓴 아프가니스탄 3인조는 매일 밤 기차역에 출몰했다.

어느새 밤이 깊어갔다. 기차역도 서서히 어둠 속에 잠기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빗방울이 두두둑 떨어졌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 탓에 빗줄기가 사선으로 들이쳤다. 순식간에 허름한 천막들이 빗물에 흠뻑 젖었다. 대합실 안에서는 밀입국자 여러 명이 무리지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후드셔츠에 달린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더러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이민자들도 눈에 띄었다. 훤칠한 키에 깡마른 체구를 지닌 맑은 눈빛의 시리아인 한 명이 플랫폼을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유럽에 들어오려고 시도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라고 했다.

기차역 인근 한 카페에서는 포커판이 벌어졌다. 카페 안에는 TV가 켜 있었다. 화면 위로 축구선수들이 열심히 공을 쫓는 모습이 펼쳐졌다. 타나시스는 그리스산 와인 말라마티나를 마시며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딴생각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그리스 정부가 10.7km에 걸쳐 국경지대에 설치한 장벽 이야기를 꺼냈다. 그에 따르면, 이 밀입국 방지 장벽을 세우는 데 무려 400만~500만 유로가 들었다. 하지만 타나시스는 장벽의 실효성을 의심했다. "돈 들여 장벽을 세우기는 했지만, 정작 불법 이민을 방지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언론들이 장벽에 대해 과대포장해서 보도하고 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장벽과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을 통해 이민자들이 국경을 넘을 수 있다."

타나시스의 아버지가 곁에서 어린 아들이 하는 말을 유심히 엿듣고 있다. 그는 자신의 마르고 수척한 얼굴이 자랑스러운 듯 카페 벽면에 온통 자신의 얼굴이 담긴 초상화를 도배해놓았다. 그는 극우 정당인 '황금새벽당'의 지지자였다. "내가 황금새벽당을 지지하는 건 첫째 종교적인 문제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 정교도인데 이주민들은 이슬람교도이지 않은가. 다음은 범죄 문제 때문이다. 이주민들이 몰려드는 아테네는 실업이 만연한 도시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이주민들은 결국 범죄의 길로 빠져들 것이다. 황금새벽당은 그리스에서 유일하게 불법 이민자를 본국으로 되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이다."

카드놀이를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가게 문을 나섰다. 이제 카페 안에 남은 사람은 타나시스뿐이었다. "많은 그리스인들이 그렇듯 아버지도 이민자들을 우려한다. 2년 전부터는 지역 민병대에 지원금까지 보내고 있다. 민병대는 시민을 보호한다는 허울 좋은 핑계를 내세워 이주민들을 폭행한다." 카페 맞은편으로 기차역이 보였다. 타나시스는 기차역에 앉아 있는 이주민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들을 도와주기가 힘들다. 괜히 도왔다가 떼로 몰려오기라도 하면 어찌하는가? 물론 그들은 악몽 같은 일을 겪고 있다. 하루 종일 굶은 채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기차역에 도착한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의약품이나 먹을거리가 절실할 것이다. 하지만 대체 무슨 돈으로 그리스가 그런 일까지 전부 책임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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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라살 Grégorie Lassalle 인류학자 겸 역사학자. 블로그 '그리스 위기'(www.greek-crisis.gr)의 운영자. 저서로 <트로이카의 목마>(파야르 출판사·파리·2013년 2월)가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