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에서 보고 들은 것

2013-02-08     에르난도 칼보 오스피나

올리브색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언제나 정문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허리에 총을 찬 이도 보기 힘들다. 나무와 정원으로 둘러싸인 1층 집 몇 채가 작은 호수 주위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벽은 높지만 눈에 띄는 경비대나 전기철조망,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없는 이곳은 바로 아바나의 엘라기토다. 쿠바 정부가 국제적 인사에게 제공하는 거주지다. 이곳에 콜롬비아 정부와 대화를 시작한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대표들이 묵고 있다.

콜롬비아 정부와 FARC의 평화협상을 보도하기 위해 해외 특파원 60여 명이 엘라기토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들은 게릴라병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원하는 기삿거리를 얻지 못해 게릴라병을 둘러싼 화려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곤 한다. 현대적 건물인 점은 맞지만 크게 튈 정도로 호화롭지는 않다. 그렇지만 마치 궁궐에서 사는 듯한 기분이 드는 반군도 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수풀과 산, 소박한 주거지뿐이기 때문이다. 1964년 FARC 출범에 기여한 미겔 파스쿠아스 지휘관은 "시골이라면 흔히 들려오는 작은 소음도 없는 이곳에 적응하고 문이 닫힌 침실에서 잠을 자는 게 어색했다. 이렇게 편안한 매트리스는 처음 써본다"고 털어놨다.(1)

'로드리고 그란다'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최고지도부인 서기국의 멤버이자 외교업무 담당자인 리카르도 테예스 지휘관은 FARC에 매일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고 했다.(2) 그들은 콜롬비아의 주요 언론사에서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에 회의적인 모습이었다. 그란다는 "우리에게 불리한 스캔들을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난해 10월 18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평화회담 개회식에서 콜롬비아 주요 뉴스채널 <카라콜TV>와 <RCN>은 FARC 서열 2위이자 평화회담 대표인 이반 마르케스 지휘관이 연설을 시작하자 방송 중계를 중단했다. 그란다는 "콜롬비아인 대다수는 정부 쪽 대표인 움베르토 데 라 카예 롬바나가 나와 연설하는 모습만 봤다"고 덧붙였다.

그곳에서 만난 지휘관에게 그들이 엄청난 돈이라고 했더니 의아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봤다. 콜롬비아와 미국 정부가 그들과 다른 협상 대표의 목에 적게는 50만 달러에서 많게는 500만 달러를 걸었다고 설명했다. 마르케스와 그란다, 파스쿠아스는 생사 여부와 무관하게 가장 높은 '현상금'이 붙었다. 파스쿠아스가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말했다. "우리가 콜롬비아에서 쿠바를 거쳐 오슬로로 가기 위해서 정부는 우리 중 여러 사람에게 내려진 체포령을 거둬달라고 인터폴에 요청했다. 또 오슬로에서 돌아와 이틀 뒤 다시 체포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고선 "체포령이 유효하지 않은 곳이 쿠바와 노르웨이밖에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반군이 질 것 같으니까 평화협상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마누엘 마룰란다 FARC 설립자의 미망인 산드라 라미레스는 "많은 공격을 받았고 우리도 수없이 공격했다. 그들이 군비와 최첨단 기술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콜롬비아 전역에 실재한다"고 반박했다. 그렇지만 선거를 통해 집권한 좌파 정부가 속속 들어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무장투쟁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에 앉은 그란다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물며 대답했다. "콜롬비아 국가 테러주의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왜 무장투쟁이 계속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선 과두제가 불합리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조금이라도 비위를 거스르면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물 만큼 거칠게 억압한다. 따라서 무장투쟁은 정당한 항쟁 수단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을 손에 넣으려는 모든 정치적·사회적 시도는 실패했다."

그란다는 산토스 대통령이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정치적 해법을 찾으려는 FARC의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상기시켰다. 산토스 대통령은 정부가 '콜롬비아를 위협하는 제1의 적'으로 간주한 FARC의 지도자 중 하나인 일명 '모노 호호이', 호르헤 브리세뇨를 통해 대답을 전했다. 그는 비공개 회담을 제안했고, 게릴라 지도부는 이를 수락했다. 그란다는 "2010년 9월 22일 폭탄과 미사일 30여 발이 호호이의 숙소로 날아들었을 때 우리도 그곳에 있었고, 그중 7발이 정확하게 그가 자고 있던 곳에 떨어졌다"고 전했다. '소돔 작전'이 있기 20일 전에 브리세뇨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폭탄이나 미사일, 폭격기가 아니라 국민의 필요에 대한 해답과 성찰, 전략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FARC의 강력한 반격을 예상했지만 지도부는 절제된 성명서를 통해 "적을 말살시키는 방법으로 콜롬비아가 평화와 화해를 되찾을 수 없다. (중략) 내부 무장투쟁과 사회적 분쟁에 대한 평화적이고 정치적인 해법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라고 발표하며 기존 입장을 견지했다. FARC 서기국은 정부 쪽과 접촉을 계속하기로 결정했지만 산토스 대통령은 투항하지 않는 이들을 제거하라고 명령했다. 2011년 11월 4일 FARC의 최고지도자 알폰소 카노는 특수군 800명과 폭격기, 헬리콥터에 포위당했다. 병사 4명과 전투견 한 마리가 그를 연행했다. 그란다는 "그가 모살된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평화의 깃발을 거두지 않았다. 우리의 사상에 부합하는 활동을 계속하기로 결정하고 대통령의 특사와 만남을 중단하지 않았다." 새롭게 FARC의 수장이 된 티몰레온 히메네스, 일명 '티모첸코'는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그 서한은 "산토스, 당신은 길을 잘못 들어섰습니다"라는 문구로 끝난다. 여기에 대답이라도 하듯 정부는 군사작전을 강화했다.

마르케스는 종려나무와 꽃나무로 그늘진 낮은 담장에 걸터앉아 "우리는 협상 테이블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우리는 협상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공격을 계속하며 우리를 자극하겠지. 어떤 구실이라도 찾거나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회적 정의를 동반한 평화의 필요성을 역설할 것이다. 평화는 총탄으로 얻어낼 수 있는 침묵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19일 FARC 참모부는 조직 내 모든 기구에 1월 20일까지 모든 공격작전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콜롬비아인이 전쟁을 걱정하지 않고 크리스마스를 보내도록 정부 쪽도 동일한 조치를 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제안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군사작전을 강화했다. 게다가 움베르토 드 라 카예 롬바나의 대변인은 "경제모델은 물론 군사주의, 해외 투자 등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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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난도 칼보 오스피나 Hernando Calvo Ospina 언론인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1) ‘우리는 나라를 포기하거나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를 위한 또 다른 콜롬비아를 논의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hcalvospina.free.fr, 2012년 11월 12일.
(2) 모리스 르무안, ‘FARC의 수장, 입을 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