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계절노동자’의 악순환
오랫동안 모로코와 튀니지 등지에서 온 농업 분야의 계절노동자들이 최근에 와서야 프랑스에서 겪은 권리 침해 사례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이 ‘순환적 노동이민’ 개념을 도입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라틴아메리카 노동자가 스페인을 기점으로 조금씩 마그레브 출신 노동자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2012년 12월 12일, 엑상프로방스 지방법원. 판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지금 제 손에 들고 있는 서류는 레디에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담고 있습니다. 불량스러운 태도를 버리고 품위를 되찾을 기회를 한 번 더 드리겠습니다. 정말로 나이마 에스 살라는 레디에에게 고용돼 일한 적이 없습니까?"
그랑에서 온 과수 재배자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한다. '농업노동자' 신분으로 일했던 모로코 여성은 2003년 9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래로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그녀는 2001년부터 텔레비전 등에 나와 이른바 'OMI 계약'(1)을 맺은 외국인 계절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폭로해왔다.
그날 이 여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1년에 8개월, 매일 12~15시간 일했던 지난 10년을 되돌아보았을까? 외출도 금지당하고 이웃과 대화라도 할라치면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받은 기억을 떠올렸을까? 사용자는 징역 1년과 집행유예, 공문서 위조와 불법 노동에 대한 상징적인 벌금 1유로를 선고받았다.
프랑스 국립농업연구소(INRA) 명예 연구부장 장피에르 베를랑은 "지중해의 노동자들은 중독성 강한 마약이다"라는 말로 외국인 계절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남프랑스의 관행을 묘사한 바 있다. 1960~70년대부터 프랑스에 선물거래 농산물의 집중재배가 정착되면서 계절노동 계약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부분 모로코와 튀니지에서 온 노동자들의 대규모 유입은 가히 프랑스 남부 농업의 부흥을 위한 '마셜플랜'이라 부를 만했다. 그러나 스페인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세계무역기구(WTO)와의 합의에 따라 농산물의 자유로운 유통이 시작되자 전세계 농업 생산자들은 경쟁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사용자에게 계절노동자는 조정 변수 구실을 하게 됐고, 생산비 절감 압박은 갈수록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조합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슈뒤론 지역은 비공식적 경제이민이 다시금 활기를 띠는 실험장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비가시적으로 진행됐다. 적어도 에스 살라스가 공식적으로 입을 열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일을 계기로 노동자들은 두려움을 벗기 시작했다. 생마르탱드크로의 세다크에서 근무하던 계절노동자 50명이 2005년 7월 벌인 파업으로 비인간적인 주거 환경이 폭로됐다. 2010년 2월 파기원에서는 항소심 판결을 확정하고, 사용자 로랑 콩트에게 징역 3개월과 벌금형을 선고했다. 또 다른 농업 노동자 아이트 발루아는 행정법원에서 부슈뒤론 도청을 상대로 법정 싸움을 벌였다. 2010년 5월 최고행정재판소는 23년간 한 농장에서 상근직으로 일하면서 거의 3년간 노동을 무료로 제공한 이 '모로코 출신의 계절노동자'에게 국가는 체류증을 발급하라고 명령했다.
2008년 12월에는 차별 철폐와 평등을 위한 고등위원회(HALDE)가 부슈뒤론의 몇몇 농장에서 계속되던 불법 관행에 쐐기를 박았다. 2007년부터 변호사 단체의 지원으로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피고용자' 체류증 발급을 신청해왔음에도 일부러 늑장 대응을 하던 관청들의 관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향후 1천 명 이상의 노동자들에게 체류증이 발급될 예정이다.
사용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력 조달 시스템에 어떻게 적응할지가 문제다. EU가 '순환적 노동이민'과 '노동력 이동을 위한 파트너십' 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상황에서 프랑스의 임시직 파견업체(ETT)들에 비상이 걸렸다. 대부분 농업 분야를 담당하는 스페인 회사들이 임시직 이민노동자들의 국가 간 파견, 특히 프랑스로의 파견 사업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2009년 이후 부슈뒤론에서는 에콰도르인 1천여 명이 기존의 OMI 계약 노동자들을 대체했다. 스페인 우엘바 지역의 안달루시안 딸기 재배자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크로 지방의 사용자들은 출신에 따른 노동자들의 경쟁을 부추기면서 노동시장을 분할하게 될 것이다. 콜롬비아인, 페루인, 볼리비아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가장 나중에 온 이들일수록 고분고분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그들은 이름조차 모르는 곳의 작업장 숙소에서 생활하다 보니 현지 언어를 익힐 틈도 없고,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는 처지다. 그러다 보니 정확한 임금이나 건강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사용자의 전체 3분의 1만 의무 신고 규정을 준수하는 상황에서 근로 감독 당국이 이들의 노동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강제할 방법이 묘연하다.
이런 노동권 침해 관행은 프랑스의 다른 지역에서도 성행하고 있다. 아스파라거스 수확을 위해 계절노동자를 고용하는 랑드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몇 안 되는 노동자 지원단체들(2)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해당 기관들에 압력을 가해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에 나서도록 강제하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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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파트리크 에르만 Patrick Herman 경제평론가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1) 국립이민국(ONI)이 국제이민국(OMI)으로 개편됐다. 이후 외국인이민자국가관리사무소(ANAEM), ‘이민과 통합을 위한 프랑스 사무소’(OFII)로 개칭됐다.
(2) 부슈뒤론에는 외국인 농업노동자 지원단체가 있다. www.codetra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