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터, 최후의 탈출 수단인가

2013-02-08     조안 쇠데르베르그

3D 프린터처럼 작동되며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전자식 기계를 많은 사람들이 얼마 전부터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첨단을 달리는 사람들은 이 기계들이 새로운 산업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며 열광한다. 그렇지만 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이 공작 도구들이 어떤 맥락에서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가?

21세기판 산업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앞으로는 각종 도구들을 이용해, 전에는 가게에서 사야만 했던 물건을 자기 집에서 직접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1) 레이저 절단기, 3D 프린터, 수치제어 프레이즈반(盤)… 이 기계들은 모두 하나의 동일한 기술적 원칙을 따른다. 즉, 기계로 움직이는 도구의 작동 장치를 소프트웨어로 제어하는 것이다. 이 기계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마치 3D 프린터처럼 작동한다. 어떤 물체가 디지털화된 모델에 의거해 3개의 축 위를 이동하면서 소재층(素材層·거의 대부분은 합성수지)을 겹쳐 쌓아 결국은 원하는 체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의 종류는 문손잡이에서 자전거까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 기술 덕분에 소규모 혁신기업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기술의 발달은 스스로를 '메이커'로 규정하는 아마추어들에게 힘입은 바 크다. 자유 소프트웨어의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 아마추어들은 이 소프트웨어의 가치와 실행 방법을 생산 메커니즘에 적용한다. 이들 중에서 가장 혁신적인 사람들은 "대중이 도구를 다시 소유함으로써 산업 생산의 '민주화'와 소비사회의 파괴(이것이 바로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다)로 이어지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비용을 줄임으로써 산업 생산 시설이 제3세계 국가들로 이전되는 추세가 중단되기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2) 비즈니스 서클에 더 가까운 이같은 관점은 특히 <메이크>(만드시오)에 의해 표명되는데, 이 전문 잡지가 벌이는 활동 중에 매년 미국의 여러 주요 도시들에서 개최되는 '메이커 전시회'가 있다.

게으른 노동자 추방하기?

그렇지만 예고된 혁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약간의 불협화음을 확인하려면 이 전시회가 열리는 장소의 통로를 천천히 걸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해서 관람객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11년 전시회 때 선보인 수많은 볼거리들 중에서 '프린트-빌리지'(프린트 마을)을 방문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3D 립랩 프린터(이 운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립랩 프린터는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 대부분을 프린트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자동복제'가 이뤄진다)와 수많은 2차 제품들이 전시된 20개가량의 전시장을 말한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훨씬 더 웅장한 전시관에서는 정밀한 수치제어 프레이즈반을 보여주는 여러 개의 전시회가 열렸다. 미국 국기의 3색을 자랑스럽게 게양한 전시장 하나가 특히 눈에 띄었는데, 이는 제철노동조합인 유나이티드스틸워커즈(USW)가 주요 멤버 중 하나인 미국장인(匠人)연맹(AAM)의 전시장이었다. 이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일자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권유를 받았다. 관람객을 안내하며 "제품을 미국에서 만들자"라고 쓰인 배지를 나눠주던 여성은 이 전시장 안에서 발견되는 아이러니를 인정해야만 했다. 즉 옆 전시장에 전시된 기계들은 산업 분야의 일자리를 없애는 데 기여한 기술을 그대로 이용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수치제어 기계가 탄생한 때는 냉전시대였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노블에 따르면,(3) 이 기계들을 개발하는 데 든 비용의 일부분은 군사 계약에 의해 조달됐다. 소비에트 체제와 경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이 기술은 내부의 적, 즉 노동자가 보유한 기술정보에서 힘을 이끌어내는 과격한 노동조합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프레데릭 W. 테일러가 1911년에 펴낸 저서 <기업의 과학적 운영에 관한 원칙들>에서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관리자는 과거에는 노동자들의 것이었던 전통적 기술정보와 모든 지식을 컴파일링하고 분류하고 색인으로 만들며 규칙과 법칙, 공식들로 요약할 임무를 가진다. 이 규칙과 법칙, 공식들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일상적 업무를 완수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프레데릭 W. 테일러는 이 책의 앞부분에서 노동자가 고용주를 속여 자기들이 온 힘을 다해 일한다고 믿게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을 기술했다.

테일러는 비교 포인트로 사용할 수 있는 평균 생산실적 지수를 만들어 태만하고 부정직한 노동자를 가려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생산성을 측정하는 데 필요한 기술자를 고용하려면 돈이 많이 들었고, 노동자들은 이 기술자까지 속이는 방법을 금방 터득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작업을 재조직하면 노동자들은 고분고분해진다. 그런데 다른 방법을 써도 노동자들은 순응적 태도를 취한다. 즉, 기계가 노동자를 통제하도록 하는 것이다. 19세기 초에 영국 수학자 찰스 벱베이지는 주인이 집을 비울 때 하인과 일꾼이 정직하게 행동하도록 하기 위해 기발한 솜씨를 발휘해 만든 기계장치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수많은 산업 분야를 관찰한 뒤) '기계가 놀랄 만한 이점'을 갖고 있다고 자랑했다. "기계가 인간의 부주의와 태만, 게으름을 감시할 수 있다"(4)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나중에 이 벱베이지를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그가 100년 뒤 수치제어 기계에서 다시 발견하게 될 그 펀치카드를 사용해, '분석기'를 비롯한 계산기를 처음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노블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자동화가 안고 있는 어려움은 한마디로 도구로서의 기계를 자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즉, 노동자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기계가 변덕을 부리지 않고(물론 기계는 반드시 변덕을 부리게 돼 있지만) 명시된 지시사항을 따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변적인'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도구를 변모시키거나 그것을 다시 구성하기 위해 조작자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어떤 제품을 변모시킬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래밍의 역할이 바로 여기서 생겨난다. 기술자들은 공상에 가까웠던 자신의 꿈이 완전히 자동화된 공장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손으로 쉽게 만들 수 없는 부품을 제작하려는 욕구와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는 의지, 그리고 소프트웨어와 기계를 주로 만들어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자들이 기술적·유토피아적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전망 등 다른 동기들이 수치제어 기계의 발달에 기여했다. 그렇지만 다른 길들이 존재했다. 이 길들은 노동자에게 전혀 다른 결과를 미칠 수 있었는데도 의도적으로 배제됐다."(5)

3D 메이커버트 프린터의 상업적 개발을 둘러싼 망상(이 '혁명'이 해고당한 미국 노동자들로 하여금 직업을 프리랜서 제작자로 바꿈으로써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일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도구들의 산업적 역사를 은폐해야만 한다. 어쩌면 개인의 생산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기술적 능력과 창의성을 되찾을 수 있게 해줄지 모른다. 그것은 곧 공장 노동이 거기서 일하는 사람을 항상 녹초로 만들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이 기술(능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다시 경제에 도입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하는)이 공장 노동을 하는 사람의 사기를 완전히 저하시켰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므로 메이커들은 노동운동의 계승자가 아니라 오히려 이 운동의 부정이 만들어낸 역사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메이커 운동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들은 수치제어 기계를 발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학교인 MIT 출신이다. 이 역사적 뿌리는 마치 이 운동의 '피억압자'처럼 보인다. 오직 부조화하고 불명료하고 정신적·육체적 외상을 입은 형태로만 다시 표면에 떠오르는 기억처럼 보이는 것이다. 미적(美的) 투자가 잔해만 남아 황폐해진 공단의 풍경을 꼭 어떤 강박관념처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미국 자동차 공업의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는 어쩔 수 없이 탈산업화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메이크>와 이 운동을 다루는 블로그들에서 계속 언급됐다.(6)

생산의 역사에 등장하는 이같은 여담은 대기업 지적소유권의 그것을 상기시킨다. 아이디어의 소유권이라는 문제에서 사용자와 피고용자를 대립시켰던 소송을 다룬 수많은 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한 법학자 캐서린 피스크는 동일한 유형의 지식 이전을 명백히 밝혀낼 수 있었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노동자가 일하다가 만들어낸 모든 발명품이 그들의 소유라는 사실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노동자는 다른 일을 지원할 때 그들이 노동 현장에서 획득한 지식을 자기들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직업적 역량을 갖추고 특히 백인으로서 자유롭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정신적 능력을 소유하려 했던 고용주들의 시도는 법원에 의해 빈번하게 기각됐다. 이런 요구가 일종의 노예제도에 속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기술정보가 체계화되자 역학관계가 기업들에 유리하도록 전도됐고, 기업들은 법원에서 피고용자들의 아이디어를 완전히 자기네들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7)

노동자 봉급을 깎는 일은 아닐까?

현재 전개되는 저작권에 대한 선택적 접근 실험운동(자유 소프트웨어에서 예술작품을 '창조적 공유재산'으로 나눠 쓰는 것으로)은 이 노동사(勞動史)의 맥락에 포함된다. 그리하여 일부 연구자들은 개방된 노동환경이 혹시라도 재난에 가까운 결과를 낳아 노동자가 스스로 착취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이런 예측은 예를 들어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대중'과 '외부자원 활용'의 합성어.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 과정에 외부 전문가나 일반 대중을 참여시켜 그들의 기여로 커진 수익을 공유하는 경영 혁신 방법) 모델에 의거해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구성하는 일부 기업에서 실현되고 있다.(8) 아마존 크라우드소싱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진을 보고 어떤 물체나 사람을 구분해내는 일을 하는 '피고용자'의 평균수입은 실제로 시간당 1.25달러, 즉 1유로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9)

3D 프린터의 중요성은 이런 맥락에서, 특히 이 프린터의 개발자들이 노동세계를 변화시키려 한다는 점을 고려해 판단돼야 한다. 메이커들은 인포멀(Informal) 노동자들의 식탁 위에 놓인 개인용 기계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생산라인'을 만드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했다가 산업 분야 노동자들의 봉급이 크게 낮아지는 결과가 초래될 위험은 없을까? '립랩' 프로젝트의 추진자로서 3D 프린터 붐을 일으킨 아드리안 바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노동자들 처지에서 볼 때 그게 그렇게까지 나쁜 소식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로서는 가게에서 그렇게 많은 물건을 살 필요를 더 이상 못 느낄 테니까."(10) 이것이야말로 수치제어에 의해 생산된 제품이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미래에 전개될 부의 재분배를 위한 사회적 투쟁의 관건이다. 부의 재분배에 대한 논쟁은 생산에서 소비자로, 그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옮아간다. 그러나 이 도구들의 구상은 공장에서의 수치제어와 같은 종류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일부 메이커들은 연대(連帶) 생산의 이상을 신봉하는 반면 기업가와 투자자, 지적소유권 분야의 변호사들은 완전히 대립되는 관점과 일치하는 기계의 발전에 전적인 중요성을 부여한다. 이들은 '프린트 준비가 돼 있어서' 마치 소비재처럼 구매될 제품을 만들어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기계 그 자체는 오직 카탈로그에 소개된 물건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갈등으로 점철된 그것의 역사가 메이커 운동이나 자유 소프트웨어에 관한 성찰 모두에서 억압되기는 했다. 그럼에도 지적소유권은 다시금 임금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국제기계기술자협회(IAM)가 1981년 제안했던 기술적 권리 선언문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인가? 컴퓨터가 조종하는 기계들이 산업 분야에 도입되고 있던 맥락에서 쓰인 이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새로운 자동화 기술과 이 기술이 의거하는 과학은 여러 세기에 걸쳐 전세계에서 지식의 축적을 낳았다. 그 결과 노동자와 그들의 공동체는 이런 제안과 연관된 결정에 참여하고 특권을 누릴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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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 쇠데르베르그 Johan Sӧderberg '일드프랑스 혁신과 사회 연구소'(IFRIS), '기술, 국토, 사회 연구소(LATTS)', 파리-에스트대학.

번역이재형

(1) <이코노미스트>, 런던, 2012년 4월 21일자. 사빈 블랑, ‘내일, 우리 집 응접실의 공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6월호 참조.
(2) Laurent Carroué, ‘산업, 권력의 토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3월호.
(3) David Noble, <생산력: 산업 자동화의 사회사>, 옥스퍼드대학 출판부, 1986.
(4) Charles Babbage, <기계와 공장의 경제론>, 바슐리에 출판사, 파리, 1833.
(5) Philip Scranton, <전시회와 흐름: 용구, 마켓, 그리고 미국의 기계도구 산업에서 일어난 혁신, 1945∼65 >, 역사와 기술, 25(3), 2009.
(6) Sara Tochetti, <개인생물학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아마추어 생물학자: ‘메이크’와 ‘메이커 전시회’는 개인 기술로서의 생물학을 구성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나>, 저널 오브 피어 프로덕션, 제2호, 2012. 스티븐 C. 하이와 데이빗 W. 루이즈, <공동 황무지: 탈산업화의 풍경과 기억>, ILR 프레스, 이타카, 2007.
(7) Catherine Fisk, <경영 노하우: 고용 혁신과 공유 지적재산권의 부활, 1800∼1930>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출판부, 채플 힐, 2009.
(8) Pierre Lazuky, ‘저임금 인터넷 재택근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6년 8월호 참조.
(9) Lilly Irani, <대중을 마이크로워킹(초국적 인력 아웃소싱)하기>, Limn 2, http://limn.it, 2012.
(10) 저자와의 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