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를 슬프게 하는 것들

2013-02-08     외제니오 렌지

1998년 양자 간 투자협정에 반대해 전개된 투쟁은, 문화정책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국가의 권리가 인정받도록 함으로써 문화 분야의 예외를 인정했다. 프랑스 영화를 보호하는 장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예다. 그러나 이 장치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을까?

큰 파문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문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예외적인 문화 현상 하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다. 2012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프랑스의 영화지원제도에 대해 또다시 이의를 제기했지만 언론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영화 제작자 겸 배급자인 뱅상 마라발이 지난해 12월 <르몽드>에 "프랑스 영화가 보조금에 점점 더 의지하는 경제구조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몇몇 스타가 엄청난 출연료를 받고 있다"(1)고 비판한 글은 격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양쪽 모두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시스템은 'CNC'(le Centre National de la Cinematographie)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고, 국가산업과 예술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설립되고 발전해온 국립영화센터(몇 년 전 '국립영화·동영상센터'로 바뀌었다)의 운영 방식이다.

CNC는 상영관의 대부분을 미국 영화에 개방한다는 조건으로 프랑스가 미국에 진 부채의 일부를 탕감해주는 내용의 블룸-바인즈 협정에 대응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설립됐다. 협상을 거친 끝에 프랑스 영화는 매달 일주일씩 상영할 수 있게 되었다.(2) 그러나 CNC의 역할은 1948년 특별부가세(TSA)를 재원으로 하는 지원기금이 조성됨으로써 한층 더 커졌는데, TSA는 상영관의 입장 수입 중 10.72%에 해당하는 액수를 징수해 영화 제작을 지원한다.

1959년 막 신설된 당시 문화부(장관 앙드레 말로)는 선택적 지원 제도인 '우수영화제작 사전지원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의 목적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투자하려 하지 않는 작품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결국 1980년대 초 시청자가 TV에 빠져들자 자크 랑 문화부 장관은 지원기금에 참여할 것을 각 방송사에 요구했다. 그는 영화산업 및 TV 드라마 투자회사(SOFICA)도 설립했는데, 이 회사들은 세제상 우대 조치를 통해 민간 기금에 투자된 일종의 우수영화 제작 사전지원기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책의 핵심(영화 배급업자에게서 기금을 징수해 영화 제작자에게 나눠주는 것)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게다가 기금 징수는 비디오로까지, 그리고 2007년 3월부터는 인터넷을 통한 각종 계약으로까지 확대됐다. 2011년에는 기금 총액 8억629만 유로 가운데 1억4307만 유로는 TSA에서, 6억3104만 유로는 TV 프로그램 제작자와 배급업자가 내는 부과금에서, 3100만9600유로는 비디오에 부과되는 부과금에서 충당됐다. '작은 금광'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다.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에게까지 부과금을 매겨 현대화하려는 이 불굴의 이단(異端)에 대해 EU 집행위원회가 격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EU 집행위원회는 내친김에 프랑스의 영화 정책이 가진 또 다른 특성을 비난했다. 즉 지원의 영토화 현상인데, 영화 제작자가 다른 회원국에서 지출하는 제작비가 총제작비의 20%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내 영화 관련 직업 종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이번에도 또!).

이런 보호주의 정책은 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 에리크 가랑도 CNC 소장이 말하는 것처럼(3) 이 정책은 '좀 지나칠 정도로 공격적인 영화시장의 해로운 효과를 감소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함으로써 실제로 프랑스 영화가 외국 영화에, 특히 미국 영화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했다. 이것은 유럽에서 유일한 경우다. 마찬가지로 공적자금이 '대작영화에서 작가영화 쪽으로, 그리고 다양성의 영화 쪽으로 다시 배분된다'(4)는 사실은 시장만능주의의 영화산업에 하나의 예외를 만들겠다는 의지(이 의지는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다)를 확인시킨다. 그러나 이런 예외를 실현시킬 수 있는 조건을 오랫동안 실행하다 보니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누구와 무엇을 위한 '공적 자금'인가

프랑스 영화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매년 20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된 것이다. 몇몇 작품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2011년 프랑스에서 관객이 가장 많이 든 영화는 에리크 톨다노와 올리비에 나카슈 감독이 만든 <건드릴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고 같은 해 프랑스에서 관객이 가장 많이 든 10편의 작품 중 하나인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블랙 스완>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 <블랙 스완>은 폭넓은 관객층을 겨냥해,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하고 세계적인 스타들을 캐스팅해 만든 영화다. 또한 탁월한 솜씨를 발휘해 실험영화로 탈바꿈시킨 고전적 스토리의 한 본보기이기도 하다. <카에르 뒤 시네마>(2011년 2월호) 편집장에 따르면, 아르노프스키를 고무시킨 것은 '완벽의 추구'였다. 이 저널리스트는 프랑스 영화를 '역겨운 마시멜로'에 빗대기도 했다(2011년 11월호).

이런 식의 선호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하나의 견해를 표명한다. 즉, 프랑스 상업영화의 질은 대체로 미국 상업영화의 그것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건드릴 수 없는 자들>의 구조는 작품의 심리학적·도덕적 문제가 제기되는 처음 5분에서 대단원의 이중적 결말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 영화의 황금률을 충실히 따른다.(5) 그러므로 프랑스 영화산업과 미극 영화산업의 문화적 차이가 '대중' 영화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차이가 우수영화제작지원제도(<건드릴 수 없는 자들>과 상관없는)라는 상징의 혜택을 받는 작품에서는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2009년 정관이 바뀐 CNC에 영화는 이제 더 이상 그 지원 분야들 중 하나(시청각 작품, 멀티미디어, 비디오게임과 함께)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영화 지원금은 1억5500만 유로까지 증가했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제공되는 이 지원금은 작품 구상부터 제작·배급에 이르는 생산 공정 전체에 투입된다. 그리고 단편영화에서 장편영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픽션영화에서 다큐멘터리영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여러 장치들 중에서 2천만∼3천만 유로를 지원하는 우수영화제작지원금은 영화 제작 프로젝트들 중에서 50여 개만 선정하는데다 제작비의 절반밖에 지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적어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우수영화제작 사전지원제도는 '창작 행위를 보호하겠다'는 국가적 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여전히 프랑스 영화제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런데 무슨 창작 행위를 말하는 것일까? 자크 드와이옹이라든지 필리프 가렐(그의 작품들 중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연인들> 한 작품만 거부당했고, 이 일은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올리비에 아사야, 브뤼노 뒤몽, 코스타가브라스, 미카엘 하네케, 아비 모그라비 등 거의 모든 작품이 사전지원금을 받는 감독들을 통해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짐작해볼 수 있다. 매우 엄격한 장마리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에 부부, 르네 알리오(<칼뱅파 신교도들>, 혹은 미셀 푸코의 세미나에서 영향을 받은 <나 피에르 리비에르는 내 어머니와 누이, 남동생의 목을 잘라 죽였다>…), 내년에 시네마테크에서 회고전이 열리게 될 장클로드 비에트, 혹은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뤼크 물레 등 사전지원금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한 감독들은 이 제도의 한계를 보여준다. 제작자인 토마 랑그만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만 했지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한 얘기를 공식화하면서 사전지원작품 선정위원회를 '정실(情實)위원회'(6)로 단정지었다. CNC 위원들 말고도 여러 영화 관련 종사자들 중에서 선정됐고, 흔히 우호관계나 이해관계에 의해 기금 신청자와 연관된 인물들이 이 위원회의 위원을 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무엇보다 주요한 프랑스 영화의 선정 장소인 이 위원회가 분명한 기준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 것 같다. 그리하여 2011년 혜택을 본 작품들 중에서 현재 위대한 감독으로 꼽히는 아비 모그라비의 <베이루트로 돌아가다>와 파스칼 보니체르의 복고적인 영화 <오르탕스를 찾으세요>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CNC가 생각하는 작가영화의 기준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존재하는데, 모범적이라고 판단되는 '프랑스의 특질'(트뤼포가 그 전에는 전통을 고수하고 시나리오 작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이유로 비난했던 바로 그 특질)을 재창조한 프랑수아 트뤼포의 <마지막 지하철>(1980)이 바로 그것이다.

문화적 예외와 산업적 예외

이런 경향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이 최근에 수립됐다. 비르질 베르니에라든가 토마 살바도르, 라리 클라르크 등 전통적 서술 구조를 배제한 작품을 옹호하는 몇몇 감독이 2012년 수혜자들 가운데 포함됐다. 그러나 단조로운 주제들(영화의 유산에 가해지는 위협에 대한 자기도취적 강박도 그중 하나고, 아사야의 작품들은 그 좋은 예다)에 의해서도 드러나는 이같은 '규격화'는 TV의 영향력과 연관돼 있다.

1985년부터 TV 방송사들은 관련 법에 따라 '예산의 1%를 영화 작품을 선매(先買)하는 데 씀으로써 영화 제작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런데 TV 방송사들은 인기 배우와 반전 없는 스토리,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축소된 영화적 기법 등에 의해 TV용 영화나 상업영화와 비슷해질 수밖에 없는 중간예산(400만∼800만 유로) 영화 쪽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몇몇 영화는 SOFICA나 자비 제작 덕분에 영화시장에서 거의 완전히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혁신적인 이 시스템은 제작 방식 규정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지원금을 받는 데 반드시 필요한 CNC의 승인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여전히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15년 전부터 전세계의 유명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지만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장클로드 루소의 <그의 아파트에서>(2009년 마르세유에서 열린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같은 작품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다르다'는 것이 더 분명하게 느껴지는 작품에 힘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런 작품에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상업영화의 위력을, 특히 그것의 광고예산을 줄임으로써 그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비평의 영역까지 포함한 영화 제작 단계 전체에 더 넓은 공간과 큰 가능성을 제공해줄 수 있다. 요구와 창조성의 부재는 두 가지 영화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사실은 경제적 수익성을 문화의 제단 위에 희생물로 바친다고 간주되는 작가영화가 문제시될 때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상업영화의 보잘것없는 수준 역시 똑같은 불안감을 안겨줄 것이다.

CNC는 제대로 잘 기능하는 영화산업의 일반 경제를 방패로 삼을 수 있다. 그러면서 단지 경제적인 것만은 아닌 영화산업의 어려움을 모르는 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전술은 세울 수 있지만 전략은 세울 수 없다. 장기적으로 볼 때, 눈에 거의 띄지 않는 문화적 예외의 이름으로 산업적 예외를 옹호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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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니오 렌지 Eugenio Renzi 영화평론가.

번역•이재형

(1) <르몽드>, 2012년 12월 29일.
(2) Geneviéve Sellier, ‘블룸-바인즈 협정의 선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3년 11월호.
(3) 가랑도, “우리는 풍성하고 강력한 영화를 갖고 있다”, www.lefigaro.fr, 2013년 1월 3일.
(4) <프랑스앵테르>, 2013년 1월 3일.
(5) John Truby, <시나리오의 해부: 영화, 문학, 텔레비전 연속극>, 르누보몽드 출판사, 파리, 2010.
(6) <르피가로>, 파리, 2013년 1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