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와 바그너, 오페라의 두 거장

-탄생 200주년

2013-02-08     진회숙

올해는 오페라의 두 거장 주세페 베르디와 리하르트 바그너가 세상에 태어난 지 딱 200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올 한 해 동안 한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공연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같은 해에 태어나 동시대를 살았고 똑같이 오페라를 작곡했지만, 두 사람의 예술세계는 사뭇 달랐다. 비록 방식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오페라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것은 틀림없다.

로시니·벨리니·도니체티 같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들이 무대에서 사라진 뒤, 184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50년 동안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은 베르디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르디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세계화에 기여한 작곡가다. 그는 로시니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확립해 푸치니에게 계승했다.

베르디, 피 끓는 이탈리안 멜로드라마

베르디는 오페라에서 극적 요소가 음악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오페라에 드라마를 도입한 작곡가다. 이탈리아 오페라들은 레치타티보(말하듯이 노래하는 것, 말과 노래의 중간적 성격을 갖고 있다) 사이에 아리아, 중창, 합창이 들어가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음악에는 나오는 순서에 따라 번호를 매기는데, 그래서 이를 '번호 오페라'라고 부른다. 번호 오페라라는 말은 오페라가 극적으로 탄탄한 구성력을 갖기보다 그저 '노래들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그렇고 그런 줄거리에 얹힌 '노래'를 듣기 위해 오페라 극장에 갔다.

그런데 베르디가 이런 세태에 반기를 든 것이다. 베르디는 연극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집념을 가진 작곡가였다. 그는 오페라에서 노래 못지않게 극적 요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면 베르디의 오페라도 대부분 번호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최대한 극적인 효과를 살리려고 했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피 끓는 멜로드라마'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의 오페라는 근원적인 인간의 감정을 아주 직접적으로 명료하게 드러낸다.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극적 사건들이 빠르게 전개된다. 오페라의 극적 요소에 대한 베르디의 신념은 확고했다. 드라마에 활기가 있으면 음악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이런 신념 아래 연극적 가치와 음악적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를 '음악의 셰익스피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활기 있는 드라마', 즉 강렬한 극적 효과를 가진 오페라를 원했기 때문일까. 베르디의 오페라는 대체로 무겁고, 남성적이며, 선이 굵다. 바빌론의 왕 나부코도노소르와 그의 딸 아비가일레의 권력 다툼을 그린 <나부코>, 12세기 신성로마제국을 상대로 거둔 이탈리아의 승리를 소재로 한 <레냐노 전투>를 비롯해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 <아틸라> <잔다르크> 같은 역사 드라마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파리 화류계 여성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 <라트라비아타>처럼 눈물샘을 자극하는 여성 취향의 신파 오페라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보다 더 무거운 문제, 즉 역사의 비극, 영웅의 일대기, 민족의 수난, 인간의 근원적 문제, 가혹한 운명을 이야기한다.

남녀의 사랑을 그릴 때도 베르디는 강렬한 드라마를 추구했다. 그의 오페라에 나오는 사랑은 그냥 달콤하거나 슬프기만 한 사랑이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 인과응보, 복수, 배신, 죽음으로 수렴되는 핏빛 사랑이다. 그렇게 베르디의 오페라는 늘 관객으로 하여금 격렬한 가슴과 충혈된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도록 만든다.

<리골레토>에서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의 충실한 부하로 공작의 바람기를 부추기고, 그에게 여자를 갖다 바치는 악역을 도맡아 했던 광대 리골레토. 하지만 마지막에 벌을 받는 것은 공작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죽은 딸을 안고 절규하는 리골레토를 통해 베르디는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인과응보의 법칙을 피해갈 수 없음을 깨우쳐준다.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아이다>는 이집트에 포로로 잡혀온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와, 그녀를 사랑하는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 사이의 금지된 사랑을 그린 오페라다. 사랑 때문에 조국을 배신하는 죄를 지은 라다메스는 아이다와 함께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아름다운 이중창을 부르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다.

자신의 어머니를 화형에 처한 백작에게 복수하기 위해 백작의 어린 아들을 납치해 자신의 아들로 키운 뒤 나중에 친형의 손에 죽게 만드는 집시 여인의 치밀한 복수극을 그린 <일트로바토레>,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주는 <운명의 힘> 등 베르디 오페라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가혹한 운명과 비극적 사랑에 울고, 갈등하고, 배신하고, 절규하고, 죽이고, 죽어간다.

오페라의 셰익스피어

베르디가 오페라에서 극적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은 그가 유난히 문학작품에 집착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드> <오델로> <윈저의 즐거운 아낙들(팔스타프)>, 프리드리히 실러의 <군도>(群盜) <루이자 밀러> <돈 카를로스>, 조지 바이런의 <두 명의 포스카리> <해적>, 빅토르 위고의 <에르나니> <환락의 왕>(리골레토), 알렉상드르 뒤마의 <동백꽃 여인>(라트라비아타) 등 쟁쟁한 문호들의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오페라로 탄생했다.

베르디는 특히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팬이었다. 머리맡에 늘 그의 희곡을 두고 틈나는 대로 읽으면서 "어떻게 이토록 훌륭한 극본을 쓸 수 있을까? 인생은 어차피 한 편의 연극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우리 인간들의 심정을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했는지 정말 대단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이 피 끓는 드라마를 오페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 것이다. 베르디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에서 <맥베드>와 <오델로>를 오페라로 만들었다. 1887년 <오델로>가 초연됐을 때, 이것을 본 버나드 쇼는 "<오델로>는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 오페라를 위해 쓴 희곡"이라고 말했다.

베르디는 셰익스피어의 비극같이 스케일이 크고 무거운 주제를 좋아했다. 오페라 작곡가로서 베르디의 개성 역시 스케일이 큰 비극에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이는 깃털처럼 가벼운 소재와 음악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로시니나, 아름다운 아리아의 나열에만 신경을 썼던 벨리니,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비교적 소박한 주제를 다루었던 푸치니와 구별된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디는 가히 '오페라계의 소포클레스'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리기 위해 베르디는 때때로 그전까지의 오페라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아름다운 목소리'를 포기하기도 했다. 주연은 대개 고음의 소프라노와 테너가 맡는다는 공식도 깼다. 예를 들어 <맥베드>에서 맥베드 부인 역이 그렇다. 맥베드 부인은 강렬한 욕망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철의 여인이다. 베르디는 욕망의 화신인 멕베드 부인 역을 아름답고 고운 목소리가 아닌, 거칠고 무겁고 강렬한 목소리를 가진 소프라노에게 맡겼다. 그래야만 이 무시무시한 인물을 제대로 노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맥베드 부인 역을 맡은 소프라노에게 어둡고 공포에 싸인 목소리로 대사하듯 노래하게 했으며, 가수가 대사의 연극성을 완벽하게 익히도록 무려 150번이나 연습을 시켰다.

맥베드 역을 저음 파트인 바리톤에게 맡긴 것도 극적 측면을 중요시한 결과다. 베르디의 오페라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처럼 '고뇌하는 인간형'이 많이 나온다. 이런 캐릭터에는 높고 화려한 음색의 테너보다 깊고 중후한 울림의 바리톤이 더 적격이다. 베르디는 배역에 따라 고음과 중저음을 적절히 배치해 극중 인물의 성격이 생생하게 살아나도록 했다.

베르디의 오페라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오케스트라의 역할이다. 그의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는 극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오페라가 아름다운 노래의 나열이기만 할 때는 오케스트라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아르페지오나 화음으로 노래를 받쳐주는, 말 그대로 '반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베르디의 오페라에 이르러 오케스트라가 자신의 드라마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맥베드>에서 맥베드 부인이 실성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이 대목에서 베르디의 음악은 특유의 드라마틱한 빛을 발휘한다. 여기서 베르디는 음악의 문맥이 연극적 문맥과 일치하도록 했다. 저음부에서 같은 음형으로 반복되며 상승하는 현악기의 절박한 움직임은 죄의식에 사로잡힌 맥베드 부인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베르디는 관악기의 밝은 음색을 삭제하고, 클라리넷과 잉글리시 호른을 사용해 암울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장면에서는 특히 인상적인 리듬을 통한 성격 묘사가 압권이다. 숨가쁘게 오르다가 다시 반음씩 주저앉는 멜로디가 서서히 파멸해가는 맥베드 부인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때로는 극의 분위기와 정반대로 오케스트라 음향을 구사해 뜻하지 않은 효과를 내기도 했다. <리골레토>에서 리골레토가 살인청부업자를 만나 은밀히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이 음산한 장면에서 베르디는 오히려 아주 아름다운 첼로 독주 선율이 흐르도록 했다. 음산한 분위기에 음산한 음악이 아닌,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게 하는 이 상식의 배반은 역(逆)을 취함으로써 오히려 더 강렬한 극적 효과를 얻는 베르디식 반어법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베르디는 오페라의 혁명가는 아니었다. 오페라에서 연극적 요소를 중요시했다고 해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본령인 '노래'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오페라에서 아리아가 지닌 극적 성격과 정서의 음영이 더 짙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른바 '혁명'이라고 할 만한 시도는 없었다. 베르디의 오페라에 나오는 감동적인 아리아와 합창은 그가 여전히 모국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르디는 관객이 원하는 '음악'을 충분히 들려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페라에 혁명이라고 할 만한 변화는 정작 오페라의 종주국인 이탈리아가 아닌 나라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니, 그 혁명의 주인공은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였다.

바그너, 오페라의 혁명가

과거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바그너 음악에 대한 평가는 극한의 대립을 보이고 있다. 음악에 대해 어느 정도 감식안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바그너의 숭배자이거나 비판자였다. 바그너의 음악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어정쩡한 입장에 있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늘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그 논쟁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애증으로 점철돼 있었다.

바그너는 작곡가라기보다는 연극쟁이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종합예술가였다. 만약 바그너가 요즘 세상에 태어났다면 그는 분명 공상과학(SF)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감독·대본·음악·특수효과까지 모두 담당하는 전천후 연출가로서 말이다. 그는 자기 작품의 대본을 직접 썼고, 여기에 곡을 붙이고 이를 '음악극'이라고 불렀다. 그의 음악극은 기존 오페라처럼 '음악을 위한 극'이 아니다. 음악과 연극이 완전히 하나로 합쳐진 종합예술이다. 노래는 언어와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고, 오케스트라는 영화의 배경음악같이 끊임없이 흘러간다.

<탄호이저>나 <로엔그린> 같은 초기작을 제외하고, 바그너의 음악극에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구분이 없다. 아니, 아리아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번호 오페라에서는 중간에 노래 몇 곡이 빠져도 별 문제가 없지만, 바그너 음악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단 없이 계속 흘러가기 때문에 부분 생략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가 번갈아 나오는 번호 오페라에서 탈피해 극 전체가 유기적인 통일성을 갖도록 했다.

연극성을 강화하기 위해 바그너는 '유도동기'를 사용했다. 유도동기란 어떤 특정한 인물이나 상황을 가리키는 동기를 말한다. 극이 흘러가면서 특정한 인물이나 상황이 나올 때마다 이에 해당되는 동기가 나오는데, 이는 연극에서 배우가 무대에 등장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낸다. 바그너의 음악극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유도동기를 이해해야 한다. 아무 사전 준비 없이 들어도 좋은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오페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바로 바그너의 음악극이다. 그는 자기 음악극을 열심히 공부한 소수의 감상자들에게만 감동을 허락한다.

바그너 음악극을 흔히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극'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오케스트라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앞에서 얘기한 유도동기처럼 바그너의 음악극에서 오케스트라는 등장인물이나 어떤 사건, 사고, 상징의 음향적 현신(現身)이다. 그저 극의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아니라 성악 파트와 긴밀하게 유대하면서도 나름의 독자성을 갖고 극을 이끌어간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의 <전주곡>을 예로 들어보자. 이 곡은 몽환적으로 시작해 사랑의 엑스터시로 절정에 이르는 곡이다. 처음에 우주를 유영하듯 떠도는 짧은 멜로디가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하나의 화음으로 귀결된다. 몽롱한 느낌의 이 화음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쓰였다고 해서 '트리스탄 코드'라고 불린다. F―B―D#―G#으로 구성돼 있는데, 전통적 화성학에서 보면 일종의 변종에 해당된다. 정체불명의 이 화음은 전체적인 곡의 조성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그래서 일부 학자는 이것을 무조(無調) 음악의 효시로 보기도 한다.

'트리스탄 코드'는 바그너가 추구했던 음향적 탐미주의의 상징이다. 딱히 어떤 조(調)에 속한다고 할 수 없는 화음, 으뜸음으로 귀환해야 하는 의무에서 해방된 화음, 마치 꿈을 꾸듯 비현실적으로 흘러가는 화음. 이 화음이 만들어내는 애매모호하고 감각적인 음향이 에로틱한 판타지를 펼치는데, 그 세계는 매우 낯설지만 한편으론 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신비롭고 황홀하다.

바그너는 현세에서 해방되려는 강렬한 열망과, 무대 위에 어마어마하게 장대한 비현실적 세계를 구현해보겠다는 야망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음악극의 소재는 되도록 현실과 멀리 떨어진 것이어야 했다. 그래서 소재를 대부분 신화와 전설에서 따왔다. 그의 음악극에서는 '신'이 아주 중요한 존재다.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극의 배경이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탐미적 구원의 장대한 비극

주제 역시 '영원한 사랑', 특히 여성의 사랑이나 희생을 통한 구원과 영생 같은 거창한 것이 대부분이다. 바그너의 음악극은 대부분 죽음으로 끝난다. 바그너에게 죽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문이다. 죽음으로 인해 등장인물들은 육체의 굴레를 벗고 천상의 사랑, 영원한 구원 같은 한 차원 높은 세계로 올라간다.

<탄호이저>의 주인공 탄호이저는 비너스의 성에서 향락에 빠졌다가 사랑하는 여인 엘리자베트의 죽음으로 속죄를 받는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불륜의 사랑에 빠진 트리스탄과 이졸데 역시 죽음을 통해 천상의 영원한 사랑을 구현한다. <리엔치>의 리엔치와 이레네는 신전에 들어가 불에 타 죽고,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악마의 저주를 받아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도는 네덜란드 사람은 자신을 사랑한 젠타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바다로 뛰어든 순간 구원을 받는다. <로엔그린>의 주인공 로엔그린은 성배의 수호신 파르지팔의 아들로 엘자와 결혼하지만 신분이 밝혀지자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이에 절망한 엘자는 절망 속에 죽음을 맞는다. 바그너는 장대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장황한 수사를 통해 죽음을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과의례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재주를 보여준다.

무대 위에 비현실적인 세계를 펼쳐 보이려는 바그너의 야망은 <니벨룽겐의 반지>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이 작품은 4부작으로 무려 나흘에 걸쳐서 공연한다. <라인의 황금>은 약 2시간 30분, <발퀴레>는 3시간 40분, <지그프리트>는 3시간 50분, <신들의 황혼>은 무려 5시간 20분이 걸린다. 공연 시간도 엄청나게 길지만 무대 장치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웅장하다. <니벨룽겐의 반지>의 대본 역시 게르만과 북구의 신화와 전설, 영웅들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바그너가 직접 썼는데, 나흘간 펼쳐지는 장황한 이야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라인의 처녀가 지키던 황금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라인의 처녀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바그너의 음악극은 현실성 없는 신화적 공간에 인적·음악적 물량 공세를 퍼부음으로써 관객을 놀라게 하고 감탄시키려는 바그너의 과대망상과 허장성세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음악의 웅변가였다. 그의 음악극은 강렬하고 매혹적이고 때로는 최면적이기까지 하다. 한번 빠지면 절대 못 빠져나오는 중독성을 지녔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바그너가 중산층은 물론 상류층도 이해하지 못할 작품을 마치 진정한 예술작품인 것처럼 꾸며 인간들의 허영심을 조장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혹시 바그너 음악의 중독성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바그너는 음악극을 통해 오늘날의 영화와 비슷한 것을 구현하려고 했다. 엄청난 물량 공세의 SF 영화 같은 가상의 현실을 무대 위에 장대하게 펼쳐 보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는 효과적인 오케스트라 음향을 추구하고, 당시로서는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무대장치를 요구했다. 그렇게 시대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 같다.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그 과대망상을 신나게 펼쳐 보였을 텐데 말이다. 여하튼 그는 자신의 음악극을 '미래 종합예술'이라고 부름으로써 본의 아니게 영화의 시대를 예고한 작곡가가 되었다.

베르디는 극장으로, 바그너는 독일로

올해 두 거장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국내의 여러 단체가 기념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윈저의 유쾌한 아낙들>에 곡을 붙인 베르디의 유일한 희극 오페라 <팔스타프>, 수에즈운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한 스펙터클 오페라 <아이다>가 있다. 또 바이런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돈 카를로스>가 오페라로 공연되고,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오델로>는 무대 공연이 아닌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된다. 오페라는 아니지만 오페라 작곡가로서 쌓은 베르디의 극적 역량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대표작 <레퀴엠>도 공연될 예정이다.

베르디에 비해 바그너의 작품 공연 목록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의 음악극 중에서 <파르지팔> 하나만 무대에 오른다. 그 밖에 두 건의 바그너 스페셜이 계획돼 있지만 이것은 연주회 형식으로, 전곡이 아닌 발췌곡 형태로 연주될 예정이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미 말한 대로 바그너의 음악극을 하려면 엄청난 물량 공세를 퍼부어야 한다. 가수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바그너 음악극만 전문으로 부르는 바그너 가수가 따로 있는데, 국내에서 그 많은 배역을 다 소화해낼 만한 바그너 가수는 찾을 수도 없다. 그래서 쉽사리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다. 바그너의 음악극을 제대로 보려면 전용극장인 독일 바이로이트의 축제극장으로 가야 한다.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이래저래 '접근하기 힘든' 작곡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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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음대,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 평화방송 <FM 음악공감-진회숙의 일요스페셜> 진행.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나비야 청산가자> <영화로 만나는 클래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