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이슬람주의자들
세계의 창(窓)
지난 2월 6일 괴한에 의한 좌파 운동가의 암살은, 집권 이슬람 정당에 대한 분노의 시위 물결을 촉발했고 내각 교체까지 가져왔다. 새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과제는 공공의 질서를 다져야 하는 동시에 실업률 축소에 매진하는 일이다.
튀니지에서는 혁명의 결실이 위협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위협하고 있는 것일까? 2011년 10월 제헌의회 선거에서 이슬람주의 보수정당 엔나흐다당이 압승을 거두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속주의' 야당일까? 아니면 자신들의 승리를 이용해 정부 내에 비밀세포를 조직하고 살라피스트들(코란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에 대한 국민의 공포심을 부추겨 튀니지 사회에서 더 온건한 이슬람화를 꾀하는 집권 엔나흐다당인가? 그것도 아니면 잦은 개각으로 혼란스러웠던 프랑스 제4공화국을 방불케 하는 정치게임이 위협의 주체일까? 실제로 튀니지의 현 정치판을 보면 의회 내에 파벌이 형성됐다가도 각료를 배출하지 못하면 이내 와해되고, 온갖 난장판이 벌어졌다가도 24시간도 채 못 돼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히고, 수많은 당파가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광산업은 몰락하고 관광업은 흔들리고 사회불안은 가중되고 있으며, 벌써 수백 명의 튀니지 청년들이 이슬람 지하드(성전) 투쟁에 합류하기 위해 시리아·알제리·말리 등지로 떠났다.
지난 2월 16일,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는 지하드 깃발과 엔나흐다당의 깃발이 나란히 휘날리는 가운데 시위가 벌어졌다. 많은 이들이 여기에 동참했지만 일주일 전 무장 괴한에게 살해된 좌파 운동가 초크리 벨라이드의 장례식에 운집한 반대편 지지자들의 규모에는 못 미쳤다. 야당의 대표적 지도자인 벨라이드의 피살 이후 야권은 결속을 다진 반면, 엔나흐다당의 대중적 신뢰는 하락했고 당내에는 분열이 발생했다. 엔나흐다당 2인자인 하마디 제발리 총리는 사태 해결을 위해 "정파를 초월해 범국민적으로 등용된 인재들로 정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지만 측근들부터 이를 비난하고 나섰다. 반면 이런 중립정부안은 일부 야권 조직과 튀니지노동총동맹(UGTT), 군, 재계, 알제리, 서방국가 대사관 등의 지지를 얻었고, 엔나흐다당을 정권에서 배제한 채 새로운 헌법을 마련하고 선거를 치르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에 반대하는 이들이 2월 16일 시위의 주축이었다. 이들은 엔나흐다당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튀니지 미디어와 해외 여론, '반혁명주의 세력', '구체제의 찌꺼기'들이 결탁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난했다.
엔나흐다당처럼 보수적 정치세력이 마치 프랑스혁명기 자코뱅파처럼 강경한 어조의 장광설을 늘어놓자 많은 이들이 놀랐다. 더욱이 엔나흐다당의 이슬람주의자들은 2011년 10월 선거로 집권한 이래 경제·사회 질서 전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이집트의 집권세력이나 걸프만 연안국 왕조의 (점점 힘을 잃어가는) 후원세력이 그렇듯 이들도 극단적 자본주의(1)와 구시대적 가족문화와 윤리를 결합하려 든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기성 정당들이 반대파를 묘사할 때 흔히 쓰는 담론을 적절히 섞는 것도 잊지 않는다. 라시드 간누시 엔나흐다당 당수는 "저들은 길을 막고 공장을 폐쇄하더니 이제는 권력의 정당성까지 공격하고 있다. 엔나흐다당은 튀니지의 중추이므로 이를 깨부수거나 배척하는 것은 국가적 통합을 저해하는 일이다"라며 당원들에게 역설했다. 그런데 그의 말에서 논쟁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대체 '국가적 통합'이란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 것일까? 국가적 통합을 지키기 위해 튀니지 국민은 어디까지 희생과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슬람주의 정당이 튀니지 정부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기존 헌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새로운 헌법을 마련하고 수십 년 동안 소외된 지방을 중심으로 국가 경제개발을 추진한다는 것이 논란거리가 될 이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새로운 헌법의 채택은 지연되고, 공공질서는 위기에 처했고, 투자자는 줄어들고, 지역발전은 여전히 요원하다. 이같은 엔나흐다당의 실정으로 과격 이슬람 세력은 더욱 극단으로 치닫고 있고, 이들의 무장화를 저지하기 위해 정치판으로 포섭해야 하는 과제까지 주어졌다. 그런데 포용을 통해 극렬 이슬람 세력까지 점진적으로 '정상화'해야 한다면 결국 튀니지 사회는 한층 급진적인 이슬람화를 피해갈 수 없게 된다.
폭력 노선 전환을 대가로 무엇을 줬나
바로 이 점을 두고 야권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튀니지의 야권은 엔나흐다당의 대화와 설득이 지금까지 살라피스트 및 지하드 조직의 폭력적 행태를 조금이나마 억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엔나흐다당이나 강경 조직들이나 결국 민족국가의 와해라는 하나의 정치·종교적 목적으로 연결된 한통속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2012년 4월에는 간누시 엔나흐다당 당수가 살라피스트들에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라. 엔나흐다당과 살라피스트 조직은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서로 역할을 분담했을 뿐이다"라고 설명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여기에서 역할 분담이란 엔나흐다당이 국민을 진정시키는 담론을 전개하고 살라피스트들이 야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엔나흐다당의 불투명한 당내 운영 방식은 이런 해석을 부추긴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 치우치다보면 엔나흐다당을 관통하는 긴장을 과소평가할 우려가 있다. 얼마 전 엔나흐다당을 중심으로 발생한 정부 위기에서도 당의 위태로운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최근 비정부기구인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은 풍부한 자료 조사와 뛰어난 분석력을 바탕으로 작성된 보고서 하나를 발표했는데 그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엔나흐다당은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다. 인기 영합적인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이를 정기적으로 미디어, 특히 해외 언론을 통해 표현하는 당 지도부와 확고한 투쟁 신념으로 무장한 일반 당원층 사이의 간극이 상당하다." 보고서는 다른 정당과 종교단체들도 같은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과격한 살라피스트 저항세력과 이들의 흠집 내기에 혈안이 된 세속적 야권 사이에 옴짝달싹 못하고 끼어 있는" 엔나흐다당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설교적이고 종교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비이슬람 교도들의 우려를 살 것이고, 정치적이고 실용적 태도를 취한다면 현재 당원 가운데 상당수가 떨어져나갈 것이며 살라피스트 운동, 그리고 엔나흐다당보다 우경화된 정당들에 유리한 기류가 형성될 것이다."(2)
그렇지만 야권은 이제까지 최악의 사태를 면할 수 있었던 게 그나마 엔나흐다당 덕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지하드 조직원 5만 명의 과격성을 잠재우지 못한다면 인구 1100만 명인 튀니지의 각종 민간기관(교육·문화·사법 부문)들이 이슬람화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는 현실은 더욱 인정할 기세가 아니다. 벨라이드 피살에 격분하고 그의 장례식에 모인 인파에 힘을 얻은 야권은 엔나흐다당 당수가 진정으로 고뇌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도좌파 야권 단체인 '현대민주주의거점'에서 활동하는 리야드 벤 파델은 "간누시는 한 번도 살라피스트나 지하드 조직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간누시는 살라피스트와 지하드 조직원들은 혁명의 영혼으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이슬람 가족의 일원이고 길 잃은 어린양이라고 말했죠. 간누시에게 이들은 엄청난 표밭이며, 무엇보다 체계적으로 조직된 대원들은 간누시가 민주주의 진영을 직접 공격할 때 모습은 직접 드러내지 않은 채 지원세력이 돼줍니다. 간누시는 자기가 하기 싫은 추악한 임무를 이들에게 대신 수행토록 하죠. 하지만 이제는 가면이 벗겨지고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UGTT의 어조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3) UGTT는 튀니지 양대 세력 사이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집권당과 가까운 혁명보호연맹(LNPR)이 UGTT 본부를 공격했고, 그보다 6개월 전에는 UGTT의 젠두바 지부가 살라피스트들의 습격을 받았다. 이제 튀니지 좌파는 정치조직·협회·노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로 엔나흐다당에 대항하는 전선을 구축하고 있으며, 엔나흐다당을 '극우 정당' 또는 '파시스트 정당'으로 표현하는 걸 서슴지 않는다. 민주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가 함께 시련을 겪던 독재시대의 기억이 불과 몇 달 사이에 증발해버린 것이다. 이와 동시에 과거 독재 정당 책임자들에게 가하던 배척도 어느새 거둬버린 듯하다.
튀니지민주여성연합(AFTD)의 알렘 벨하지 대표는 집권당이 극렬 이슬람주의자들을 평화적으로 포용한다는 시나리오에 코웃음을 친다. "그런 식의 포용이 가능하다면 왜 튀니지에서 훈련받은 조직원 수백 명이 시리아와 말리까지 가서 목숨을 내놓고 투쟁하는 걸까요?" 이에 덧붙여 벨하지 대표는 "진 엘아비딘 벤 알리 집권기보다 신자유주의적인 현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서민층의 청년실업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과격화를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독일 게르다 헨켈 재단의 연구원인 파비오 메론은 "튀니지의 살라피즘과 지하드 운동은 모두 사회적 역동성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벤 알리 집권기의 '튀니지 신화'도 중산층에나 해당되는 얘기였을 뿐, 튀니지의 또 다른 계층은 이탈리아 등지로 도피하거나 종교단체 형태로 조직화되면서 소외돼갔다. "결국 살라피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너온 것도 아니다. 이는 사회에서 고립되거나 학교 교육에서 낙오된 젊은이들의 정치적 조직화를 보여준다." 아울러 벤 알리 시대의 문화적 황무지 가운데 젊은이들의 정체성 확립 욕구는 커져만 갔고, 와하브(이슬람 교리에 충실한 삶을 살자는 운동) 지도자들의 설교가 이를 신속히 충족시켜주었다.
지난 2월 16일 엔나흐다당의 주도로 튀니스에서 열린 시위에서 연단에 선 베시르 벤 하센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훈련받은 와하브 운동원 중 하나였다. 청중 가운데는 집권당 지지자, 지하드 조직원뿐만 아니라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자리를 함께한 여성부 장관을 비롯한 각료들도 눈에 띄었다.
'해결해야 할 튀니지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일간지 <라 프레스 드 튀니지>의 구인광고란만 훑어봐도 짐작할 수 있다. 2013년 2월 17일자에는 '벽돌공, 정육점 직원, 간호사, 치과조무사' 등의 캐나다 이민을 장려하는 광고가 실렸고, 어느 튀니지 세미트레일러업체는 '대졸 학력'의 재고관리 직원을 찾고 있었다.
사시 국장은 "실업을 비롯한 사회문제 해결에서 현 집권세력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고, 벤 알리의 경제모델을 답습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개발이 미흡해 비공식 경제활동이 확대되자 UGTT는 가프사, 시디부지드, 카스린 등 밀수가 성행하는 국경지대의 인프라를 발전시키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매입한 생필품을 리비아 등지로 몰래 빼돌리고 이것이 비싼 값에 다시 유입되는 현실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우유, 토마토, 국수, 통조림, 생수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주요 품목이다. 결과적으로 튀니지에서는 상품 부족 현상까지 나타나며, 식료품 가격은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기자이자 독립 블로거인 타뫼르 메키는 "튀니지가 우유를 수입하는 건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처음"이라며 "정부는 뒷전으로 물러나 방임주의로 일관하며 아무런 통제도 가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한다. "정부 관계자들이 사무실에서 일하기보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으스대기를 더 좋아하며, 어쩌다가 사무실에 앉아서는 이슬람 국가 건설에 몰두한다."
초크리 벨라이드가 몸담았던 야권 연합체 인민전선의 중추인 튀니지 노동당의 질라니 하마미 대변인은 "새 정부는 모든 것을 무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재건 계획을 내놓기는커녕 벤 알리 전 총리의 선택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에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사실 엔나흐다당이 그토록 꿈꾼 '아랍-이슬람' 연대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튀니지는 걸프만 국가들로부터 지원금 대신 겨우 융자만 받아냈을 뿐이다. 그것도 얼마 되지 않는 금액(5억 달러)에 비교적 높은 이자율(2.5%)로 말이다('아프리칸 매니저'라는 한 경제정보 사이트에 따르면, 튀니지 정부는 카타르에서 50억 달러에 달하는 지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단다).
부채 상환 유예하고 일자리 창출 도와야
국제통화기금(IMF)은 벤 알리 집권 당시의 튀니지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08년 11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당시 IMF 총재는 "튀니지에서 건전한 경제정책이 전개되고 있다"며 이는 "신흥국가들이 따라야 할 바람직한 사례"로 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걸프만 국가들의 지원 부족을 IMF가 보충해줄 수는 없을까? UGTT는 몇 가지 걸리는 게 있지만 대체로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다. 사시 연구국장은 "UGTT는 IMF에 대해 선입견이나 괜한 적대감은 없다"고 말한다. "UGTT 사무총장은 튀니지를 방문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현 IMF 총재 및 세계은행의 여러 대표단을 접견한 바 있다. 국제 체제를 벗어나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세계은행 쪽에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벤 알리 정권을 지지했다. 이제는 튀니지의 낙후된 지역에 각종 시범 개발 프로젝트를 실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당신들의 의지를 보여줄 때다'라고."
인민전선의 의지는 더욱 확고해 보인다. 먼저 인민전선은 유럽연합(EU)이 튀니지에 부여한 특별협력국(Privileged Partner) 지위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수출의존도가 높고 매우 취약한 중소기업들이 주축을 이루는 튀니지 경제는 유럽의 결정에 마냥 끌려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또한 "3~4년 동안 외채 상환을 중단해 튀니지 예산의 18%가량을 여유 자금으로 확보하고 이를 일자리 창출에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질라니 하마미 노동당 대변인은 "프랑스,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미국, 걸프만 국가들이 정말로 튀니지를 생각한다면 부채 상환을 유예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도 실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타뫼르 메키는 "튀니지 국민의 구매력이 계속 악화되고 불안이 고조된다면 더 이상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우려한다. "현재 튀니지 국민은 민주주의가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낙후 지역에 널리 침투한 살라피스트들은 정부의 취약성을 이용해 자신들이 비공식 지하경제의 주역이 되어 주민들을 포섭하고 뿌리를 내리겠다는 속셈이 있다. 한 치안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죠. '잘 봐, 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어. 이게 다 사람들이 선지자의 본보기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야.' 그들은 주민들이 선거나 정당을 외면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살라피스트 자신들이 궁극적 해결책으로 내세우는 '이슬람 율법의 철저한 이행'을 주민들이 언젠가는 자발적으로 요구하리라고 보는 거죠."
이보다 낙관적인 태도도 찾아볼 수 있다. 벨하지 AFTD 대표는 "여성의 권리에 대해 이미 상당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과거 이 문제에 별로 관심도 없던 정당에서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시민사회의 저항 덕분에 좌·우파를 막론하고 법적 측면에서는 적어도 퇴보하지 않았다." 이처럼 민중운동의 깨어 있는 의식, 초크리 벨라이드의 장례식에 모인 인파, 진보세력의 결집 움직임, 그리고 엔나흐다당의 분열을 지켜보며 야권 운동가 리야드 벤 파델은 "튀니지의 이슬람화를 꾀하는 투쟁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패한 것"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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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주요 저서로 <새로운 경비견>(Les Noveaux Chiens de garde·2005) 등이 있다.
번역 / 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 2>(공역·2010) 등이 있다.
(1) Gilbert Achcar, ‘극단적 자본주의 추구하는 무슬림형제단’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월호 참조.
(2) 국제위기그룹, ‘튀니지: 폭력 그리고 살라피즘의 도전’, www.crisisgroup.org, 2013년 2월 13일.
(3) Héla Yousƒi, ‘튀니지노동총동맹, 저항의 신(新)주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1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