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프랑스 나토 복귀를 반대하는가

친애하는 위베르 베드린(전 프랑스 외무장관)에게

2013-03-11     레지 드브레

위베르 베드린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게서 프랑스의 나토 통합체제 복귀에 관한 평가를 부탁받았다. 그는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결정을 번복하는 것은 “프랑스의 영향력을 지금보다 확대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레지 드브레는 이런 베드린의 분석에 반기를 든다.

평소 입바른 소리를 하기로 유명한 ‘드골-미테랑주의자’(Gaulle-mitterandien·이 얼마나 대담한 형용모순인가!)의 말은 천금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지.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자네가 내놓은 프랑스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복귀에 관한 보고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닐 거야.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자네의 전문성과 경험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프랑스 나토 복귀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지. 언론이란 흔히 시답지 않은 일에 더 호들갑을 떨기 마련이야. 그러니 자네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대해 언론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 사실 국방이 국민의 관심을 끄는 주제는 아니지 않나.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과 관련한 문제는 결핵에 걸린 리옹 동물원의 코끼리 ‘베이비’와 ‘네팔’(리옹 당국이 결핵에 걸린 동물원 코끼리 2마리에 대해 살처분 명령을 내리자 왕년의 인기 배우이자 동물애호가인 브리지트 바르도가 코끼리를 구제해주지 않으면 러시아로 국적을 옮기겠다고 협박했다)만큼도 화젯거리가 되기 힘들다네. 

프랑스인의 자긍심을 드높여준 아우스터리츠 전투나 최근 말리 사막에서 추악한 이슬람 반군 잔당을 총 한 발 쏘지 않고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산악지대로 몰아낸 영웅적 쾌거는 예외겠지만 말일세.

자네의 보고서를 읽으면서 배운 것이 많다네. 물론 조금 당혹스러운 감정이 들긴 했지만 말이야. 자네는 '예스 벗'(Yes but·나토 복귀의 긍정적 효과는 미미하나 그럼에도)식의 화법을 구사하며 니콜라 사르코지가 단행한 나토 복귀의 타당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해주었더군. 예전이라면 복귀에 반대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반대할 경우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말이야. 어쨌든 자네는 나토 복귀 덕분에 프랑스가 독립성 면에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고 평가했지. 그러면서 앞으로 더욱 주도적으로 나토 활동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했어. 그렇지 않으면 프랑스는 '평범한 보통' 국가의 지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말이야. 순간 나는 자네와 1981년 5월 이후 함께했던 그 끝이 없는 논쟁을 다시 한번 벌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네. 예전에 대통령궁에서 일할 때 자네 사무실 옆에 바로 내 사무실이 있었지.(1) 운이 좋게도 우리 사무실은 내부가 연결돼 있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어.

자네는 오늘날 나토는 더 이상 피라미드식 상명하달 체계가 아니라 별 위험성 없는 협의의 장으로 변신했다고 주장했더군. 목소리만 크게 낼 줄 안다면 원하는 나라는 어디든 나토라는 전투훈련장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마디로 예전보다 힘이 빠진 나토는 과거의 비난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지. 하지만 멀리서 나토의 변화를 지켜본 나로서는 오늘날 나토가 그보다는 훨씬 번창했다고 생각하네. 나토는 상당한 수준으로 확대됐어. 가령 1949년 12개국에 불과했던 가입국이 2013년 28개국(인구만 9억1천만 명에 달하지)으로 대폭 늘어났지. 목동이 가축을 두 배나 늘린 셈이라네. 예전에 나토는 대서양 지역에서만 활동했어. 하지만 지금은 이라크, 걸프만, 소말리아 해역, 중앙아시아, 리비아(리비아에서는 직접 공습을 주도하기도 했지)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다네. 처음에 군사동맹으로 출발한 나토는 이제 정치·군사적 성격의 동맹으로까지 확대됐지. 예전에는 방어만 목표로 했다면, 과거의 적이 사라진 오늘날에는 공격에 가담하는 일도 적지 않아. 자네의 견해를 따른다면, 미국이 이른바 '선의의 무관심'(Benign Neglect)이란 새로운 정책을 펼치면서 상황이 지금처럼 변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네. 미국 정부는 태평양으로 뱃머리를 돌렸네. 파트너이자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말이야. 총체적인 노선 전환에 돌입한 것이지. 그로 인해 X는 Y를 사랑하지만 Y는 Z를 사랑하는 마리보(Marivaux)식의 삼각관계가 연출됐다네. 사랑에 빠진 유럽은 미국에 애절한 구애의 시선을 보내지만, 정작 미국은 아시아만을 열렬히 바라보는 것이야.

유럽은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어. 하지만 연인에게 버림받은 유럽은 비웃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네. 그저 자신을 조금만 존중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지. 가령 노퍽(미국)이나 몽스(벨기에) 등 참모본부에 명예직이나 기술직 몇 자리만 얻을 수만 있다면 우리 프랑스인은 그것으로도 족한다네. 자국 군산업체에 수주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일말의 희망만 있어도, 혹은 자국 관리 수백 명이 나토 사무실에 고용돼 일하거나 관련 회의나 각종 잡다한 사교모임에 참여할 기회만 얻을 수 있어도 그만이지.

대서양 지역의 역학 구도는 변하지 않았어.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세력이 다소 쇠퇴한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프랑스의 세력은 그보다 더 급격히 쇠퇴했지. 지금의 나토가 더 이상 1966년의 나토가 아니라고 했는가?(2) 그래,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프랑스 역시 더 이상 과거의 프랑스는 아니라네.

프랑스 국민은 이미 충분히 좌절을 경험했네. 더 이상 과거와 현재의 극명한 현실 차이를 모를 수 없지. 국제적 힘이나 위상, 행동의 자율성(과거 입이 닳도록 외치던 '자율성'이란 구호는 오늘날 '민주성'이라는 새로운 구호에 묻히고 말았지) 면에서 프랑스는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왔어. 가령 고용, 공공서비스, 군, 산업, 프랑스어권, 모국어 번역률, 대형 프로젝트 등 프랑스의 현 지위를 보여주는 통계 수치는 수두룩하다네. 하지만 여기서 일일이 다 열거하지는 않겠네. 다만 프랑스와 미국의 격차가 규모와 비중 면에서 여전히 1 대 5를 유지하고 있다면, 활력과 정력 면에서는 1 대 10으로 간격이 벌어졌다고만 간단히 말해두겠네.

프랑스, 불만에 찬 보통 국가

미국은 스스로를 특별한 나라라고 생각한다네. 매일 아침 학교마다 성조기가 내걸리지. 사람들은 양복 옷깃에 성조기가 그려진 배지를 달고 거리를 활보하고, 대통령은 자신의 유일한 목표가 자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드높인다네. 미국은 자국 기업이 이룩한 디지털 생태계의 중심에 서서, 자국의 문화를 대변하는 정보기술(IT) 혁명에서 한껏 추진력을 얻고 있어. 그런 미국이 쇠퇴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네. 아마 누군가는 라틴계와 아시아계 민족을 근거로 미국이 '포스트 서구' 세계의 '포스트 유럽' 같은 국가가 될 것이라 말할지 몰라. 하지만 미국이 설령 예전처럼 그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강대국이 아닌지는 몰라도, 전세계 국방비의 절반에 달하는 막대한 국방비를 쏟아부으며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그리고 '후방 지휘'(Leading from behind)라는 새로운 노선을 부르짖고 있지.

반면 프랑스는 불만에 찬 보통 국가로 전락했어. 국가·공화국·정의·군대·대학과 같은 화려한 건축 장식들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은 텅 비어 있지. 마치 폐허 속에 외관만 덩그러니 남은 장엄했던 옛 건축물의 잔해를 보는 것만 같아. 신자유주의 탈규제는 프랑스의 초석인 국가 권위를 야금야금 갉아먹었네. 예전 같으면 국무장관이나 내보냈을 '구글' 회장을 영접하는 자리에 이제는 프랑스의 대통령이 친히 마중을 나가 레드카펫을 깔아주는 실정이지. 그야말로 경악할 만한 '인격상실'(Diminutio Capitis)(3)이 아닐 수 없네. 덕분에 프랑스는 자국의 영화산업을 구제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릴지 몰라. 하지만 나머지는, 예컨대 국가의 권위는 대체 어찌되는 것인지….

1963년의 프랑스인(4)은 좌파의 경우 밝은 미래를 꿈꾸었네. 우파는 문화회관이나 핵폭탄을 소유한 자국이 EU 건설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지. 하지만 2013년의 프랑스인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네. 자신을 끊임없이 책망하며, 이웃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두려워하는 신세가 되었지. 그들에게 미래는 근심거리고, 과거는 치욕거리라네. 보통의 프랑스인은 우울증에 빠질 거라고 했던가? 아니 오히려 그들의 놀라운 회복력에 감탄해야만 한다네. 그들이 집단 자살을 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니까.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는가? 지당한 말씀이네. 얼마 전 국방부 장관은 말리의 군사 개입에 대해 '국제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제시했지. 심지어 미국에서도 더는 통용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말이야. 그 순간 더디기는 하지만 (미국이 프랑스의 사고 체계를 흡수하는) 식세포작용(병원체나 이물(異物)이 피부나 점막의 장벽을 넘어 체내로 침입하면 식세포에 의해 받아들여 처리하는 현상)이 상당히 진전됐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네. 와하비즘을 추종하는 살라피스트들(우리는 똑같은 와하비즘을 추종하는 살라피스트에 대해 말리에서는 그들을 뒤쫓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시리아에서는 그들의 목숨을 구해줬지)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테러리즘' 같은 수식어로 모두 뭉뚱그려 우겨넣는 것을 지켜보며 상호운용성이란 명목 아래 결국 모든 나라가 전부 똑같이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네.

독자적 판단에 따른 행동이 가능해야 한다고 자네는 주장했지. 그런데 그런 과제를 달성하려면 첫째는 능력, 둘째는 의지가 필요하다네.

1. 자네는 앞으로 프랑스가 "더욱 엄격하고 주의 깊은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어. 하지만 그러려면 적절한 재정적 수단과 역량 있는 '두뇌집단'이 뒷받침돼야 한다네. 특히 워싱턴 소재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나 런던 소재 국제전략연구소(IISS)와는 다른 곳을 영감의 원천, 교류의 장으로 삼고 있는 많은 독창적인 인재가 필요하지. 과거 프랑스의 핵전략을 수립했던 샤를 아이으레·앙드레 보프르·피에르 마리 갈루아·뤼시앵 푸아리에 장군들에 버금가는 우수한 전략가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설령 그런 독립적인 전략가가 실제 있더라도, 일단 이름이 알려진 인물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네.

2. 자네의 포부를 실현하려면 의지도 필요하지. 때로는 여론에 대한 무관심이 약이 될 때도 있어. 무관심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지. 가령 1954년 이후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와 그 후계자들이 은밀히 핵무기를 개발해 꾸준히 제조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여론에 대한 무관심 덕분이었다고도 볼 수 있어. 하지만 오늘날 여론 민주주의 시대에는 좌·우파를 막론하고 평균치보다 훨씬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 바로미터'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네. 정치인들은 저마다 가장 최근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나침반 삼아 다음 지방선거를 향해 조금씩 노를 젓듯 그렇게 통치를 하지. 조르주 퐁피두 이후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들은 틈만 나면 본거지를 잃고 고립된 악당들과 사막에서 한판 일전을 벌이며 환상적인 독무대를 연출해 보였어. 그러면 어김없이 지지도가 상승했거든. 반면 세계 최고의 경제·재정·군대·언론을 보유한 강대국에 맞서는 것은 흡사 투우장에서 무시무시한 뿔이 달린 황소와 전면으로 맞붙는 것과 같았다네. 결코 프랑스가 그런 모험을 감행하는 일은 없었지. 인간의 본성이 선하고 정의롭다는 것을 믿는다면 당연히 '덕'(비르투)을 행해야 하지만, 시시때때로 우리는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이고 만다네. 2013년 사회당 출신의 대통령은, 1936년 미 외무부에 그랬듯, 미 국무부의 눈치를 열심히 살피고 있다네. 이런 관습은 그 유래가 매우 깊지. 가령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따르면, 제2차 이라크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사회당 안에서 대외 관계를 담당하고 있던 피에르 모스코비시 현 재정장관이 미국에 대한 사회당의 호감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부리나케 나토 관리들을 찾아갔다네. 그러면서 자신이 대선에 승리한다면 결코 자크 시라크처럼 행동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지. 2005년 10월 24일 미셸 로카르도 프랑스 주재 미 대사를 찾아가 자신이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의 유엔 연설에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설명했다네. 그러면서 만일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드빌팽 총리는 아예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는군.(5) 하지만 과거 좌파였다가 전향한 한 미국인에게 우리의 격렬한 전쟁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라네. 1813년(나폴레옹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겨준 라이프치히 전투) 나폴레옹도 작센 지원군에게 적의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끝까지 남아 함께 싸워달라고 청하지는 않았다네.

세계를 성가시게 하는 훼방꾼

우리 사회당 친구들의 DNA 속에는 식민주의와 대서양주의의 유전자가 하나씩 들어 있다네. 물론 인간이 언제나 완벽한 것은 아니니까 유전 법칙에 벗어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거야. 하지만 자기가 속했던 세대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우리의 가치관은 우리가 겪은 역경을 토대로 형성된다네. 가령 프랑수아 미테랑, 가스통 드페르, 피에르 족스, 장 피에르 슈벤망은 전쟁, 항독운동, 알제리 사태를 오롯이 경험했지. 노르망디 상륙 작전, 1944년 해방군을 떠올릴 때마다 '점령지 연합군 군정'(AMGOT)(6)과 비시 정권의 로버트 머피(7), 번번이 딴죽을 걸며 프랑스와 갈등을 빚던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등이 그들의 머릿속을 함께 맴돌았다네. 반면 현세대는 기억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 별로 없어. 정면으로 얼굴을 가격당하는 수모는 결코 겪어본 적이 없지. 현세대는 거품 속에서 성장하며 늘 정도만을 걸어왔다네. 그리고 언제나 착하게 사는 것을 의무로 알고 자라났지. 가령 기존 질서를 타파하는 것은 결코 착한 일이 아니었어. 그래서 프랑스가 '세계를 성가시게 하는 훼방꾼'이 될 때마다 재계 거물, 고급 관료, 유력 언론 등 프랑스의 중요한 인물들이 하나둘 조국에 등을 돌렸지. 자네는 한 발짝 도약하자고 주장하지만, 이는 결국 관습에 젖은 정부기관들만 바짝 긴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거라네. 그러면 종국에는 현 체제에 반대하는 이들이 모두 미치광이나 반역자로 몰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지. '비미국적인 것'이 '반미국적인 것'으로 통하는 세계에서는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야. 그러니까 도약 따위는 현 상황에 맞지 않는다네. 더욱이 "프랑스가 위성국가의 지위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미국이 모욕적 처사로 받아들인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거야. 특히 프랑스가 미국의 어깨를 툭툭 치고 편안하게 반말을 하거나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며 동급자 사이가 되려 한다면 더욱 그럴 테지.

자네, "북대서양 동맹에 대해 우리의 생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는가? 그래, 맞아. 생각이 정리되면 표현도 명확해지는 법이지. 자네는 보고서에서 통계 수치와 실제 사실들을 근거로 명확하게 설명하려고 애썼더군. 하지만 자네 보고서는 모호하기 그지없는 완곡어법으로 가득하다네. 흔히 EU와 나토의 기술관료들이 이른바 '전문가'라는 이들을 대동해 우리를 짙은 안개 같은 모호한 언어들 속에 빠뜨리곤 하지. 가령 '통합지휘 체제'라는 말만 해도 그래. 통합지휘란 결국 리더가 다른 자들을 통합하는 것을 의미하네. 지휘자는 여전히 완전한 전권을 누리고. 통합이란 결코 상호적인 것이 아니라네. 미국은 동맹국을 정탐(뇌물을 주고, 정보를 가로채고, 도청하고,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할 권리가 있지만, 동맹국은 그럴 수 없어. 미국의 장병과 장교는 국제재판소에 출석해 해명할 필요가 없다네.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건 동맹국뿐이거든. 프랑스 항공사는 미국 영공 통과 사실을 미 당국에 보고할 의무가 있지만, 반대로 미국은 자신에게 그런 요구를 한다면 분명 견디기 힘들거야.

상투적인 표현을 하나씩 다시 해석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네. 가령 '각국이 공동의 노력에 기여해야 한다'라는 말은 다른 나라들이 참여를 결정한 활동지에 지원병을 보내라는 소리지. 또 '장비 확충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중복을 피해야 한다'는 말은 '유럽인들이여, 독자적 개발 대신 우리가 만든 무기와 장비를 구입하라. 표준은 우리가 정한다'라는 의미인 게야. '짐을 나눠 짊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말은 핵심 국가가 통신 감시 시스템을 개발·제조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라는 의미네. 'EU는 미국 행정부의 입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는 전략적 파트너'라는 말도 실은 '하위 강대국 유럽은 초강대국의 파트너가 아닌, 고객이자 수단에 불과하다'는 뜻이지. 나토 지휘 체계는 결코 둘이 아니라 오직 하나뿐이네.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어김없이 미국인 남성 내지는 여성의 차지였다네. 가령 나토의 전략 방향을 논의하는 모임의 수장직은 미국의 전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여사가 맡고 있지.

나토가 왜 해로운지 아는가?

사실 이런 추잡한 신언어(Newspeak·정치 선전용의 기만적이고 모호한 언어)는 프랑스 외교에는 걸맞지 않네. 샤토브리앙에서 로맹 가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외교는 언제나 문학성과 정확성을 숭배해왔지. 무엇이든 단도직입적으로 명확히 표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어. 대외정책의 첫 단계는 언어에서 출발하네. 정신을 각성시키는 문구.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정직한 단어. 드골과 미테랑도 이런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지. 미테랑은 자네도 곁에서 지켜봤으니 잘 알 거야. 드골 역시 처음에는 사적 자리에서 시작해 1965년 이후로는 공식 석상에서도 나토에 대해 보호령, 패권주의, 신탁통치, 종속관계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어. "미국의 외교 노선에 동조하지 않는 독자적 동맹국"이란 결국 자국 고유의 언어, 노선, 가치관을 되찾겠다는 것을 의미하네. '국방'과 결부된 '안보', 기술숭배주의,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이는 신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은 정교분리와 공화주의를 추구하는 프랑스인의 체질에는 결코 맞지 않아. 그런데도 현 집권 좌파가 과거 야당 시절에 그토록 비난하던 나토 복귀를 기어이 승인하려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나토에 대한 내 생각은 1987~93년 나토와 나토 이사회에서 프랑스 상임대표로 일했던 가브리엘 로뱅 대사의 평가로 대신하겠네. 그는 나토에 대해 이렇게 말했지. "나토는 모든 측면에서 국제 질서를 오염시키고 있다. EU가 확대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또한 러시아와의 관계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는 결코 무시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 나토는 국제체제 운영에도 장애물이다. 나토는 무력 행사 포기 협정 체결을 할 수 없기에 국제법을 준수할 수 없는 기구다. 나토는 무력 사용을 포기할 수 없다. 애당초 필요에 따라 무력을 사용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 없이 무력을 사용하기까지 한다. 나는 프랑스 같은 나라가 도대체 나토가 사라지는 것 외에 이 무용하고 해로운 기구에 무엇을 더 기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8)

먼저 나토가 무용한 것은 현시대에 맞지 않는 기구이기 때문이라네. 대국들이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기에 바쁘고(기후회의가 대표적인 예지), 문화적 정체성과 종교적 자부심이 강화되고 있는 오늘날, 나토 가입은 결코 미래지향적인 일이라 보기 힘들지. 지금은 바야흐로 임시 동맹, 양자 간 협력, 실용적 협상이 화두인 시대지 않나. 결코 흑백논리를 따르는 이원화된 세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닐세. 그런 의미에서 나토는 구시대의 유물이라 볼 수 있지. 오늘날 기존 전쟁 형태가 사라지고 비재래식 분쟁이 늘어나고 있어. 선전포고도 전선도 더는 존재하지 않지. 힘있는 개도국들은 정신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선진국들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추세라네(브라질, 남아프리카, 아르헨티나, 중국, 인도). 그런데도 우리는 세계의 변화에서 등을 돌리고 있지.

나토가 왜 해로운지 아나? 바로 우리를 무책임하고 무감각하게 만들기 때문이야. 나토는 모두 세 가지 면에서 해롭다네. 먼저 유엔과 국제법 준수 측면에서 해로워. 나토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거나, 우회하거나, 무시하기 일쑤라네. 다음으로 프랑스에 해롭다네. 프랑스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비교 우위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토는 온갖 자동 조항에 의거해 적이 아니었던 나라들을 우리의 적국으로 만들고 있어. 또한 거부권 행사 대신 모든 나라와 직접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지. 많은 개도국들이 기존에 프랑스에 대해 지니고 있던 호감 역시 무너뜨리고 있어. 프랑스는 나토 회의에서 유럽의 탄도미사일 방어체제 구축과 더불어 핵억지력을 함께 유지할 수 있도록 미국의 배려를 받았다고 뿌듯해하고 있어. 실제로 탄도미사일 방어체제가 구축되면 종국에는 프랑스가 지닌 '강대국을 견제하기 위한 약소국의 핵억지력'(Weak-to-strong Deterrence)이 약화될 터인데도 말이야. 어쨌든 우리는 아마 파리·런던·베를린에 사는 유럽인이 이란이나 북한의 끔찍한 핵공격 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결국 설득당하게 될 걸세.

나토는 강한 유럽을 위한 비전에도 해롭다네. 나토는 유럽의 군비를 감축하고 국방비를 삭감하고 활동 영역을 제한하려고 해. 유럽이 정말 영광스런 미래를 꿈꾼다면 유럽을 자치령(독립국가임에도 대외정책이나 국방 문제를 다른 본국이 결정하는 나라) 지위에 머물게 하는 길과는 다른 길을 택해야만 하네. 현 상황이 중앙유럽이나 발칸 지역 나라들에는 좋다는 건 이해하네. 그들 처지에서는 두 명의 큰형님 가운데 그나마 멀리 떨어진 형님이 좀더 나을 거야. 또 혼자서 러시아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더 수월하고. 사실 모든 나라는 자기만의 지정학적 정책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네. 우리 정책이 언제나 친구들과 똑같을 수는 없지. 대체 왜 그런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가?

'서구는 한 가족'이라는 환상

나토 참여를 통해 유럽 방위 체제의 기반을 다지겠다는 것은 사각형 모양의 원을 그리겠다는 것만큼이나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네. 오늘날 유럽국의 10분의 1은 무대책을 대책이라고 내놓고 있지. 돈도 없고, 목숨도 더는 담보할 수 없다고 나오는 거야(이미 목숨을 내놓았거든). 바로 여기서 '유럽 기둥'이니, '나토 내 유럽 참모본부'니 하는 따위의 헛소리가 비롯되는 것이라네. 프랑스와 함께 유의미한 방위 협정을 맺을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영국뿐이야. 하지만 그런 영국마저 프랑스와 협정을 맺기에 앞서 미국의 승인을 받는 처지지. 가령 영국은 최근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프랑스와 항공모함을 공동으로 운용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어. 대서양 동맹은 결코 EU(유럽의 공동 안보 및 방위 정책)의 약점을 보완해주지 않는다네. 오히려 약점을 더 악화시킬 뿐이지. 그런데도 우리의 젊고 똑똑한 외교관들은 결코 오지도 않을 그 '고도'(Godot)를 부질없이 기다리며 '유럽대외관계청'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중이라네. 이 기관이 풍족한 예산을 누리는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초인적 업무를 부과받고 있다네. 각국의 통합된 입장도 군대도 야망도 이상도 없이, EU의 대외 활동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야. 심지어 이 기관의 수장마저 별 영향력 없는 무명 인사가 맡고 있지.

자네가 말하는 '영향력'이라는 표현은 어딘지 모르게 제4공화국의 냄새를 풍긴다네. "병졸을 자처한 사람은 본인이 병졸이라고 말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법이지." 그들은 자신이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단언한다네. 아니면 미래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큰소리를 뻥뻥 치지. 하지만 원인이 없는 결과를 창출하겠다는 건 마술에서나 가능한 일이야. 사실 영향력이 있다는 건 어떤 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라네. 하지만 대체 언제 우리가 미국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적이 있었던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의 전략·전술을 바꾸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우리의 영향력 있는 국가기관에 의견을 물은 적이 있었던가? 언제나 미국의 결정에 속수무책이었다네. 미국이 결정하면 우리는 그에 맞춰야 했지. 오늘날 빛나는 2등 자리는 당연히 영국 차지라네. 하지만 유엔 안보리 상임국도 아닌 독일이 세 번째 자리를 꿰차고 말았어. 결국 프랑스는 자신의 최대 동맹국에 고작 4위에 불과한 도우미(원문은 '프롬프터') 신세가 되고 말았지(프랑스는 아프가니스탄 파병 규모 면에서 네 번째 공헌국에 해당한다네). 이런 상황에서 '나토 내 최고 영향력'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처량한 우물 안 국수주의자들의 착각이 아닐 수 없지.

자네는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지붕 위에서 떨어지는 중이었다고 말할지 몰라. 역대 대통령 시절에 시작된 몰락이 사르코지 대통령 때에 이르러 완전히 완수된 것이라고 말이야. 맞는 말이네. 하지만 결정적 빌미를 제공한 건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 한마디였네. "우리는 서구의 가족 품으로 돌아가겠다." 폐쇄된 경쟁 공간, 지배 체제가 가족으로 둔갑하는 건 비단 오늘의 일만은 아니라네. '사회주의 국가들로 이뤄진 대가족'에 기원을 둔 아주 낡은 신화지. 우리는 역사적 교훈을 통해 가족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네. 본래 가족과 내가 선택한 가족이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으니까. 내 경우를 예로 들면, 나는 정서적으로 프랑스어권 가족에 속하네. 알바니아·덴마크·터키인(나토 가입국)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알제리·모로코·베트남·마다가스카르인과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있지. 문화적으로는 라틴 가족에 속한다네(지중해·남미). 또 철학적으로는 인류라는 가족에 속하고. 도대체 단 하나의 가족에만 갇혀 지낼 이유가 무엇인가? 한때 애지중지 떠받들던 한물간 극보수적 문화관(오스발트 슈펭글러, 앙리 마시, 모리스 바르데슈, '옥시당' 그룹에서 활동하는 폭도들 등(9))을 굳이 나프탈렌 속에서 다시 끄집어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 문화관은 1949년 북대서양조약에도 명시돼 있지 않을뿐더러, 드골의 글에서 본 적도, 미테랑의 입을 통해서 들어본 적도 없지.

현실에서 서구가 세계인의 눈에 미 제국과 동일하게 인식되는 순간 사랑보다는 증오, 존경보다는 거부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라네. 프랑스에는 또 다른 서구를 발전시킬 책임이 있었다네. 관타나모 수용소, 민가를 활보하는 무인정찰기, 사형제도, 오만함 등과는 또 다른 얼굴의 서구를 보여줘야 했어. 하지만 그런 노력을 포기함으로써 서구가 지닐 수 있는 최고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들고, 서구 고유의 과거를 짓밟고 말았어. 한마디로 우리의 계획은 헛발질로 끝나버렸네.

대체 왜 그리 분노하는가? 과거 '위대한 국가'가 설령 '아름다운 지방'(안타깝게도 이제는 굳이 퀘벡으로까지 눈을 돌릴 필요도 없지. 물론 퀘벡으로선 우리가 교육을 받으러 가겠다고 하면 쌍수 들어 환영할 터이지만)으로 전락한다 해도, 결국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번영을 누릴 수 있다네. 대체 무엇이 불만인가? 이렇다 할 다른 유럽국의 협조도 없이 그저 미국의 기술적 지원(프랑스산과 달리 미국산 군사용 첩보위성은 감지도 안 되고 인터넷상에 흔적도 남기지 않지)에만 기대어 옛 수단 영토에 무력 개입한 사건만으로도 이미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나라(전세계 인구의 1%,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를 차지)로서는 자존감을 살리기에 충분하지 않았던가? 이제 그 정도 했으면 어서 빨리 우리 군사들이 모래사막에 더 파묻히기 전에 조속히 철수를 명령해야 하지 않나? 대체 무엇을 더 바라는가?

나도 과거 핵억지력에 반기를 들었던 대서양 동맹의 기수 레몽 아롱의 제자라면 어려운 시기 대서양 동맹에 동참하는 것을 오랜 동맹국에 대한 아름다운 행위라며 칭송할 것임을 모르지 않네. 가령 존 웨인이란 영웅을 가슴에 간직하고 TV와 함께 성장한 한 아이가(사르코지 대통령을 의미) 어느 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미국 뉴욕경찰 로고가 선명히 찍힌 티셔츠를 입고 버젓이 맨해튼 거리를 조깅한 것도 어찌 보면 1917년, 1944년 프랑스가 미국에 입은 은혜를 보답해야 한다는 인식의 발로였는지 모르지. 좀더 넓게 생각해보면, 문제의 그 헤겔 이후 우리는 미국식 사고방식이나 생활습관으로 변화하는 것을 이른바 기독교 도래 이후 시작된 개인의 진보로 해석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네. 한마디로 온화함의 영역이 확대됐다고 보는 거지. 이는 성적·종교적·인종적·문화적 차이를 지닌 소수자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일 거야. 한마디로 이는 문명화 과정이 한 단계 더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네. 원시가 세련으로, 희소가 풍요로, 집단이 개인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인 거지. 이 단계에서는 민족적 우월감 따위는 그만 접어두는 게 좋다네. 그러니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영웅적 역사관이 남아 있다면 어서 빨리 청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야 19세기가 아닌 21세기를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행복의 개념에 따르면, 허망한 그림자극의 세계에서 부질없고 어리석은 의자 싸움을 벌이는 것보다, 대기 환경 개선,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간의 평등한 권리, 녹지대 보호, 암 연구 등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훨씬 더 고귀하고 값진 것이라 할 수 있지.

미국, 타인에겐 남성성을 허용치 않는 나라

화성 다음에 금성이라 했던가? 아니면 화성보다 우월한 금성? 어찌됐든 여자가 남자의 미래인 것이라면, 결국 미래의 역사학자가 보기에 오늘날 유럽에서 일어나는 가치관과 관습의 여성화 추세는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네. 여성화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페미니즘이나 남녀동수법이 거둔 빛나는 승리를 넘어, 가부장적 호구제를 무너뜨리고, 군사적인 것 대신 인도주의적인 것을, 영웅 대신 희생자를, 신념 대신 연민을, 복지제도를 손보는 외과의 대신 취약계층을 돌보는 간호사를, '치료'(Cure) 대신 마르틴 오브리 여사가 그토록 경애하는 '돌봄'(Care)을 중요시하는 시대가 열릴 테니. 낫과 망치의 시대가 저물고, 핀셋과 습포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라네.

"(청소년 폭력을 해결하는 데) 우리에게 문제는 학교나 운동이 아니다. 바로 사랑이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차라투스트라가 아니고, 바로 프랑스 국가 수반 니콜라 사르코지였다네(2007년 5월 3일 몽펠리에 연설). 아마 니체가 이 말을 들었다면 버럭 화를 냈을 게야. 하지만 이븐 할둔(1332~1406)이었다면 소매를 붙들고 매달린 채 사르코지를 극구 뜯어말렸을 테지. 자네도 알다시피, 놀라운 통찰력을 지닌 아랍의 현자 이븐 할둔은 <역사 서설>에서 "국가란 남성적 미덕에서 탄생했다. 이를 포기하는 순간 멸망한다"고 지적했다네. 물론 베두인족의 청교도주의에 대한 그의 설명은 부정확하기 짝이 없어. 하지만 문명의 엔트로피를 설명하는 묘사만큼은 탁월하지. "누에고치는 실을 뽑지만, 이내 자기가 만든 실 속에 뒤엉켜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어쩌면 이븐 할둔은 이 과정을 더디 밟으며 종말의 순간을 늦추는 미국의 놀라운 능력에 찬사를 보낼지 모른다네. 미국은 기술과 영상매체의 힘을 빌려 다른 나라들을 극도의 개인주의(Hyperindividualism)와 '각자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즐거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네. 그러면서 정작 자신들은 무기 숭배, 셰일가스, 막대한 국방예산, 교내 학살극, 격앙된 애국심 등 남성성의 온갖 공포와 장점을 오롯이 품고 있지. 자기들은 남성우월론과 주권옹호론을 견지하면서 다른 나라에는 가치관과 사회체제의 여성화를 설파한다네.

자기들은 유정탑을 세우면서, 우리에게는 풍력에너지를 강요하지. 그로 인해 유럽은 미국보다 더 친환경적이고 평화롭고, 심지어는 역설적이게도 미국보다 덜 전통적인 나라가 되었어. 우리의 문학과 영화가 사적이고 내밀한 것을 추구하는 동안, 미국의 문학과 영화는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링컨 동상을 세우는 동안,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자신들의 정보원을 대동해 우리 눈에서 눈물을 뽑아내지. 가령 장 뒤자르댕이 출연한 영화 <OSS -117>은 우리를 울리고 웃긴다네.

요컨대, 문제는 헤겔이고 해결책이 부처라면, 내 반대는 별 의미가 없을 거야. 물론 그 가능성을 나는 아예 배제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그건 또 그다음의 얘기일 게야. 어쨌든 나는 자네가 언제든 국가의 부름을 받을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이 아주 기쁘네. 나 또한 '정치와 무관한 자유로운 구경꾼'으로 다시 내 소중한 연구들로 복귀할 수 있어 행복하고. 현 문제들과 무관한 연구는 내게 모든 우울함을 떨쳐버릴 수 있는 보호처라네. 각자 자기만의 방어 방법이 있는 것이겠지.

그럼 친구, 이만 줄이겠네. 잘 지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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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지 드브레 Régis Debray 세계적인 작가이자 철학자, 사회주의 운동가. 1940년 파리에서 태어났고,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철학교수 자격을 취득한 1965년, 파리 주재 쿠바 대사관에 ‘인터내셔널리스트’로서 쿠바 혁명 자원봉사를 지원했으나 거절당했고, 사르트르가 발간하는 잡지 <현대>에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전략과 전망을 분석한 ‘카스트로주의, 라틴아메리카의 긴 여정’을 발표한 뒤 쿠바로 갔다. 이 장문의 글은 마스페로 출판사에서 20만 부가 발행됐다(한국어판 <혁명 중의 혁명>, 석탑). 체 게바라의 게릴라 부대에 참여한 드브레는 1967년 볼리비아 정부군에 체포돼 30년형을 언도받았으나, 드골 정부와 국제적인 사면 요구로 석방돼 1970년 프랑스로 돌아갔다. 1981∼88년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 정부에서 제3세계 자문역을 지냈다. 1994년 소르본에서 <매개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학제적 연구를 구체화하는 매개학(Mediology)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을 개척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경험을 담은 소설 <눈이 불탄다>(한국어판 <불타는 설원>, 한마당)로 페미나 문학상을 받는 등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했다. 현재 리옹대학 교수이며, 저서로 <이미지의 삶과 죽음>(한국어판 시각과언어 간행), <유혹자 국가> <일반 매개학 강의> <정치이성 비판> 등이 있다. 최근엔 <현대의 카타콤베>(갈리마르 출판사·블랑슈 총서·파리·2013)를 저술했다.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1) 1981년, 레지 드브레는 프랑수아 미테랑 정권에서 국제관계 담당 고문으로 임명됐다. 같은 해 위베르 베드린도 대통령 직속 외교전담팀 자문으로 임명됐다.
(2) 1966년 프랑스는 나토 통합지휘 체계 탈퇴를 선언했다.
(3) 로마법의 하나로, 시민의 능력을 제한하는 조치다. 최악의 경우 자유와 시민권을 박탈할 수 있다.
(4) 1963년 드골 장군은 미국과 친밀한 관계라는 이유로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을 반대했다(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미국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자국의 핵억지력을 중시했다).
(5) <르몽드>, 2010년 12월 2일.
(6) ‘점령지 연합군 군정’(AMGOT)은 영미 장교의 지휘 아래 제2차 세계대전 중 해방된 지역에 대한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7) 비시 정권에서 일했던 미 국무부 대표(1940~44).
(8) ‘유럽안보: NATO, OSCE, 안보조약’, 레스 퓌블리카 재단이 주관한 심포지엄, 2009년 3월 30일.
(9) 차례대로, 독일의 ‘보수주의 혁명’과 관련된 저서 <서구의 몰락>(1918)을 저술한 독일 철학자, 비시 정권에 참여한 프랑스 문학비평가 겸 에세이스트, 대독협력을 옹호하고 항독운동을 ‘불법’이라 비난한 프랑스 작가, 프랑스 극우 조직(대표적 조직원은 파트리크 드브지앙, 제라르 롱게, 알랭 마들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