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에 시행되는 꼼수, 금융개혁

Horizon

2013-03-11     도미니크 플리옹

금융 부문의 문제가 확인되자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해결책이 나왔다. 소수 금융인들의 금융 곡예가 자신들의 활동에 강력한 규제를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브뤼셀이 제안한 금융개혁이란, 프랑스 정부가 은행들을 별로 옥죄지않는다고 자화자찬하는 프랑스의 금융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의도에 불과하다.

2012년 12월 14일 브뤼셀 유럽위원회에서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의회 집행위원장은 은행 통합 협정을 마무리지어 기쁘다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는 정말 힘든 한 해였다. 특히 가장 취약한 유럽연합(EU) 국민에게 그랬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문제의 근본 원인, 즉 공공재정 상태를 향상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 경쟁력이 가장 떨어지는 (금융)경제가 가장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금융 부문은 쇄신 중이다. 거버넌스 구조가 향상되고 있다. 우리가 승리를 노래하진 않지만 낙관할 만한 이유가 있다. 난 투자자와 파트너도 그렇게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금융위기를 해결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던 유럽 당국들은 수개월 전부터 금융감독 시스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2012년 6월 유럽 정상회담 때, EU 국가들은 유럽위원회에 명확한 (금융감독 시스템) 개혁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9월, 유럽위원회는 철저히 연방주의에 기반을 둔 이른바 '양자역학적 도약'이라 명명한 은행 통합을 위한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결국 2012년 12월, EU 27개국은 3가지 주요 사항이 담긴 이 개혁안을 채택했다. 첫째, 유럽중앙은행(ECB)이 금융기관들을 중앙감독한다. 둘째, 유럽 보증기금을 예치한다. 셋째, 은행 파산에 대한 공동 대책을 세운다.

언론과 정치계의 경제학자들 대부분은 소개된 개혁안을 마치 통합 프로세스의 적극적인 제안처럼 반겼다. 미국 메릴린치은행(1)의 경제연구기관 소장 로런스 분은 "유럽을 위한 일보 전진"이라 평가했다. 유럽 정상회담이 끝난 뒤 내수 시장을 책임지는 유럽위원회 위원 미셀 바르니에는 "역사적인 성공"이라며 환호했다.

정책이 정치논리로 뒤바뀔 때마다…

물론 경제위기는 갈수록 국제화돼가는 유럽 은행들의 특성과 국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금융감독 및 보증기금 예치 시스템 사이에서 모순을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은행들이 국제적 차원에서 영업을 하고 있어 이들의 부실이 시스템 위기로 이어져 경제위기가 국경 너머로 확산되고 있는데도, 은행 파산 규정은 국내 절차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유럽 지도자들이 예상하는 금융기관의 통합 규제 방안은 경제위기가 야기한 근본적 문제를 타결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2010년 27개 EU 회원국의 은행을 감독하는 유럽은행감독청(EBA)이 창설됐음에도 유로존에 속한 17개 EU 회원국에 초점이 맞춰진 이 계획은 유럽 은행들의 감독 총괄을 ECB에 맡기겠다는 심산이다. 두 기관의 각자 역할은 무엇일까? 유로를 채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ECB의 관할에서 벗어나려는 영국을 우리가 정말 비난할 수 있을까? 런던에서 유로의 40%가 거래되는 판국이긴 하지만.

은행이 파산할 경우 예금자들의 예금을 일정 수준까지 보호해주기 위한 범유럽 차원의 예금보증제도 창설 또한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비록 예금자보호법 조정이긴 하지만, EU엔 40여 개 예금보증제도가 존재한다. 가령 프랑스 정부와 모든 EU 국가는 은행 고객에게 10만 유로까지 보장해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스페인을 비롯한 그리스와 포르투갈이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이 제도가 과연 괜찮을까? 독일과 핀란드는 실제로 이 제도가 북유럽과 남유럽 간 소득 이전을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보증금 납부를 거부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들은 그걸 거절하고 있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은행 통합 적용 범위의 경계를 정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유로존의 6천 개 은행 중 대형 은행 200개만 ECB의 중앙감독하에 두는 데 그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장·경쟁·금융의 힘에 지배받는 EU 27개국의 새로운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선택을 발견한다. 요컨대 EU 국가들에 2가지 옵션이 주어졌다. 첫째, 대형 은행들의 예기치 못한 파산을 처리하기 위해 보증금 예치를 유럽화한다. 둘째, 은행 크기나 은행 분야에 따라 보증금 예치에 제한을 둔다. 그런데 첫 번째 옵션이 선택돼 유럽 지도자들은 금융에 대한 엄청난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CB를 독립적인 단일 금융감독 기관으로 지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금융시장에 관한 결정의 신뢰도를 강화하기 위해 정치적 요인의 역할을 제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같은 특권은 비선출기관(ECB)의 힘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은행 통합은 탈정치화를 한 걸음 앞당기겠지만, 결정이 관료적 방법으로 이뤄진다는 측면에서 보면 민주주의를 한 걸음 후퇴시키는 조치다.

이런 상황에 잘 대처하기 위해, 개혁 추진자들은 ECB가 강화된 검증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EU 집행위원장이 정기적으로 유럽의회에 들러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지만 이런 절차는, 대중이 다 알고 있듯, 순전히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은행 부문도 매한가지다. 그래서 골드만삭스 유럽의 전 책임자이자 현 ECB 총재 마리오 드라기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전체의 이익보다는 재계 거물들에게 특권을 주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새로 들어선 정권들과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 따라서 시장논리를 토대로 한 ECB의 감독과 프랑스 총리 장마르크 에로 내각이 계획하는 것 같은 공공 투자은행의 창설, 즉 금융과 무관한 결정 기준을 통해 관리되는 더 포괄적인 유럽 공공은행의 창설을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지가 관건이다. 개혁이 일관적이고 효과적이려면 ECB의 지위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유럽의회를 필두로 기관(ECB)이 민주적 통제를 받게 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개혁은 유럽 및 국제 금융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은행 규제와 기능을 문제 삼지 않는다. 은행들의 지급 능력은 전적으로 각 은행들의 자산 보유고, 즉 주주들이 낸 자본에 의지함으로써 시장평가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이것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상호저축은행 모델을 강화한다. 이 때문에 각국 은행들과 돈을 필요로 하는 기업·가정·정부 간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본연의 업무(예금 유치, 고객 밀착형 대출, 자국민과 현지인에 대한 금융 지원 등)에 집중하는 소형 저축은행들을 광범위한 은행 업무로부터 분리시켜 이들의 지급 능력을 고위험 투기 업무 금지 같은 통제 규정으로 보장해주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이런 조처의 목적은 저축은행 활동과 이들 은행과 상반된 기능을 하는 온갖 직업의 복마전인 투자 활동을 분리하는 데 있다.

금융계가 악착같이 옹호하는 보편적인 은행 모델은 규모가 상당한 그룹 형태를 취하는 이른바 '체계의 주요 실체'(대형 은행)다. 2008년의 경제위기는 사회와 기업들에 닥친 위기를 부각시켰다. 소형 저축은행들의 자산과 예치금은 투기 활동의 손실을 막는 데 투입됐다. 프랑스 대중 저축은행(BPCE) 그룹 산하 투자은행 나티시는 미국 독극물 회사에 투자했다가 50억~80억 유로의 누적 적자를 내며 BPCE를 위험에 빠트렸다. 이런 위험의 연관성이 생산 부문의 금융 지원 능력을 저하시켰다. 이것이 유로존이 지속적인 경제침체를 겪는 원인 중 하나다.

저축은행과 투자은행의 완전 분리를

그러나 유럽 당국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편적인 은행 모델(대형 은행)을 강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12년 유럽위원회가 위임해 작성된 리카넨(Liikanen) 보고서(2)는 은행들에 전문 자회사를 창설해 직접 자신의 계정으로 고위험 투자 업무를 진행하라고 권장했다. 예컨대 은행들에 자기 자산으로 투기 업무를 보라고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소극적인 조처로는 저축은행과 투자은행 간 분리가 불가능하다. 1933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제정한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 Act)과 1944년 프랑스 레지스탕스 국가위원회의 프로그램은 이들을 서로 분리시켰다. 이런 정책들은- 이 정책들이 문제가 되기 전까지(프랑스는 1984년, 미국은 1999년)- 수십 년 동안 은행들의 위기를 막아줬다. 사실, 현재 우리를 다스리는 정치인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싶어 하지 않는다.

2012년 말 프랑스 정부는 직접 은행 개혁을 추진하기로 결정함으로써, EU에 통합하는 (정권) 교체를 하겠다는 목표도 삐걱거렸다. 2012년 1월 22일 부르제 대선 연설 때,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다. "새로운 은행법을 도입해 은행들이 대출 활동과 투기 업무를 꼭 분리토록 해서 금융을 바로잡겠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로비 압력에, 프랑스 정부는 리카넨 보고서에 훨씬 못 미치는 법안을 마련했다. 요컨대 2012년 12월 19일 내각에 제출된 법안(제1조 1항)은 필요한 은행 업무와 투기성 업무의 경계를 모호하게 적시해놓았다. 비정부기구(NGO) 파이낸스워치(3)는 이 법안이 "대출 업무와 (적어도 주관적으로 판단한) 유용한 은행 업무의 의미를 뒤섞어놓아 절대로 개혁적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왜냐하면 은행 활동의 유용성에 관한 토론은 절대 각기 다른 진영의 의견을 통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이낸스워치는 또 "저축은행들이 고객과 경제자본에 유용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투자 서비스 제공 업무'(즉, 시장 업무)와 '금융 도구'(특히 파생상품에 관한 투기)를 토대로 한 시장 운영 업무를 그냥 소형 저축은행 소관으로 두어도 된다"고 했다.

물론 프랑스 법안은 은행들이 농업 원료의 파생상품 거래나 컴퓨터가 주식시장의 변동 상황에 따라 수익률이 날 때마다 자동으로 주식을 매매하는 이른바 '시스템 트레이딩'(4)을 못하게 막을 예정이다. 비록 은행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고 해도 이런 조처들은 투기 활동의 극히 일부분만 바로잡을 수 있다.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작성한 평가서에 따르면, 은행 개혁안은 프랑스 전체 은행 활동 중 2~4%만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5)

새로운 은행법 지지자들은 은행법 제2조가 프랑스 금융감독기관인 '건전성 및 결의안 규제국'(ACPR)과 금융시장 당국의 힘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기관들이 거인(거대 은행들) 앞에서 힘이나 쓸 수 있을까? 프랑스 3대 주요 은행의 누적 손실이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의 2.5배나 되는데! 소형 저축은행과 투자은행의 완전한 분리만이 경제와 사회의 안전을 그나마 지킬 수 있을 것이다.

EU와 유로존, 그리고 프랑스 차원에서 진행되는 개혁은 글로벌 금융을 장악한 세계 대형 은행들의 파워와 해악 능력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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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미니크 플리옹 Dominique Plihon 비정부기구(NGO) 단체 '시민지원을 위한 국제금융거래 과세연합'(ATTAC)의 과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번역 / 조은섭 chosub@ilemonde.com

(1) 프랑스 유력 경제일간지 <레제코>(Les Echos), 2012년 12월 19일.
(2) 에르키 리카넨 핀란드 중앙은행장이 이끄는 유럽전문위원회가 작성한 ‘은행 개혁에 관한 보고서’.
(3) 2012년 12월 11일, 파이낸스워치(Finance Watch)가 피에르 모스코비시 프랑스 재무부 장관에게 보낸 서신.
(4) Paul Lagneau Ymonet & Angelo Riva, ‘투기를 부추기는 유럽의 지도자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9월.
(5) ‘무용지물인 은행 개혁법’, 프랑스 주간 시사잡지 <렉스프레스>, 2012년 1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