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의 마술, 축구를 홀리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15개국에서 425명의 축구팀 관계자, 선수, 심판들이 680여 회의 경기와 관련해 부정행위에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축구 감독들이 주목하는 숫자는 따로 있다. 바로 경험적 ‘상식’을 대체할 통계 수치다. 그들은 이제 계산기를 손에 들고 경기장에 나간다.
2004년 영국 런던의 아스널 FC 감독 아르센 벵거는 토리노의 유벤투스 FC로 이적을 앞두고 있는 스타 미드필더 파트리크 비에라를 대신할 선수를 물색하고 있었다. 벵거 감독은 장거리 주파에 강한 선수를 원했다. 역대 유럽 리그의 통계 자료를 검토하던 중 올랭피크 드마르세유 팀에서 경기당 평균 14km를 뛴다는 신인 마티외 플라미니가 그의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 수치는 플라미니가 적절한 방향으로 뛰는지, 공은 제대로 다루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벵거 감독은 직접 마르세유로 날아가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안심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리하여 이 젊은 선수는 아스널로 헐값에 스카우트됐다. 플라미니는 아스널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이후 AC 밀란과 훨씬 높은 연봉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만 해도 벵거 감독은 전략 구상을 위해 통계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몇 안 되는 축구 감독이었다. 수학을 좋아하는데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경제학 학위까지 있는 그는, 지식인과 별 인연이 없는 축구계에서 확실히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통계광이든 아니든 너도나도 통계에 열을 올리는 시대가 되었다. 유럽의 주요 클럽들은 앞다퉈 데이터 처리 프로그램을 도입해 사용 중이지만 언론은 이 사실에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아스널은 통계팀을 설치하고 투자은행에서 경력을 쌓은 독일인 전문가를 영입했다. 이런 식으로 통계는 축구 경기에 점점 더 깊이 개입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통계 데이터 처리 프로그램은 모든 영역에 보급되고 확산됐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지식 수준이 높지 않고 기술 혁신 동기가 부족하던 스포츠계는 예외였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변화하기 시작한 종목은 미국 야구였다. 1980년대 야구 경기 데이터를 기록하고 계산하는 데 여가시간을 다 할애하는 아마추어 통계광들을 중심으로 하위 문화가 형성된 덕분이었다.
그들의 정신적 지주는 빌 제임스라는 인물이었다. 통조림 공장 경비원인 제임스는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곧바로 타자기 앞으로 달려가 집필에 열중했다. 그렇게 탄생한 위대한 저작은 야구를 수학적으로 추상화해 그때까지 절대 진리로 여겨지던 온갖 믿음을 산산조각 냈다. 가령 그는 도루나 '희생 번트'(무슨 말인지 몰라도 상관없으니 걱정하지 말길) 등 진부한 전술들이 아무 효과도 없다는 사실을 통계 자료로 증명해냈다.
통계 활용 뒤 높아진 코너킥 성공률
이런 발견이 야구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었다. '빌리 빈'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윌리엄 빈도 그중 하나다. 미국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뛰던 그는 27살에 믿기 힘든 결정을 내린다. 팀 단장을 찾아가 선수직을 은퇴하고 스카우터로 일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그는 낡은 오클랜드 경기장의 사무실에서, 교통체증으로 차가 멈춰선 실리콘밸리의 도로에서 빌 제임스의 이론을 열광적으로 탐독했다. 그는 선수 시절 자신을 지도한 투박한 코치들과 달랐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한 젊은 통계 전문가를 영입해 선수들을 선발하도록 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통계 덕분에 숨은 재원들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야구계는 흔히 선수들의 신체적 기량에만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소 살찐 몸집이라도 경기 감각이 있는 선수가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지만 감각이 떨어지는 선수보다 낫다. 빌리 빈은 "우리는 덩치 좋은 선수들을 선호한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선수들은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놀림을 받았지만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당시 팀 예산으로는 기대하기 힘든 성적을 냈다. 그 뒤 많은 팀들이 그를 흉내 냈다. 빌리 빈은 최근에 전설의 뉴욕 양키스가 통계학자 21명을 고용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활짝 웃었다.
빌리 빈의 교훈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책 <머니볼>(Moneyball)은 1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브래드 피트가 빌리 빈 역을 맡았다. 이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의 이야기는 스포츠 역사상 아마 가장 영향력 있는 책으로 남을 것이다. <머니볼>은 야구뿐 아니라 농구, 축구, 크리켓 등 대부분의 단체경기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영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객관적' 기량 분석 도구가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축구를 필두로 통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옵타·프로존 등 전문 에이전시들은 각 선수가 경기당 주파한 거리, 패스와 태클 횟수 등을 집계해 축구팀들에 제공했다. 그러나 데이터는 넘쳐나는데 제대로 처리할 도구를 갖추지 못한 감독들은 캘리포니아로 직접 날아가 빌리 빈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프랑스 출신으로 벵글러를 보좌한 다미맹 코몰리도 그중 하나였다. 빌리 빈과의 만남은 코몰리의 이력에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2005년 런던 토트넘 팀의 스포츠 이사로 발탁된 그는 <머니볼>의 이론을 축구에 적용할 기회를 얻었다.
그 뒤 몇 년 동안 코몰리가 겪은 고난은 축구가 통계의 시대에 진입하는 데 얼마나 큰 대가를 지급해야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통계 덕분에 숨겨진 보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루카 모드리크, 루카 모드리치, 17살에 발탁돼 세계적 스타가 된 가레스 베일 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구단 관계자들을 언짢게 한 것도 그놈의 통계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학교를 떠나 경기장을 누빈 축구 코치들은 선수 시절 익힌 '본능적' 감각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른 전문 영역들에서 컴퓨터가 미숙한 인간들을 대체하면서 진화를 거듭해나가는 것을 목격한 축구 관계자들은 그게 남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트넘의 노장들이 선수 경력이라고 해봐야 모나코 주니어 팀에서 뛴 것이 전부인 프랑스 출신의 안경잡이를 영입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코몰리는 토트넘을 나와 생테티엔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이번에도 확실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프랑스의 축구팀 단장들은 미국 야구 따위엔 관심이 없었고, 대다수는 스포츠에서 통계를 이용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어려움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생테티엔의 예산이 넉넉지 않다보니 코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존 선수들의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정도였다.
계약 만료가 다가오는 30살의 선수 한 명을 예로 들어보자. 팀 입장에서는 2년 계약 연장을 하는 데 200만 유로가 든다. 그는 잘 뛰는 선수다. 하지만 앞으로 2년 동안 계속 잘 뛰어줄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이때 코몰리는 파일을 열어 평가점수를 검토해본다. 지난 시즌 동안 이 선수의 컨디션은 하향곡선을 그렸는가? 해가 거듭됨에 따라 그의 가속력 평균은 감소했는가? 패스 횟수는? 이런 수치들이 전반적으로 부정적 방향을 가리킨다면 그는 계약 만료와 함께 팀을 떠나야 한다.
2010년 존 W. 헨리가 리버풀 FC의 새 주인이 됐다. 그 유명한 보스턴 레드삭스 팀의 소유주인 이 미국인 사업가는 그보다 몇 년 앞서 빌리 빈을 영입하려고 했다. 그는 축구에 문외한이었지만 그것을 '머니볼'로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언을 부탁받은 빌리 빈은 그에게 코몰리를 소개했다. 그리하여 생테티엔에서 쫓겨난 코몰리는 일약 축구 역사상 최고 팀인 리버풀의 스포츠 이사로 발탁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이번에도 실패를 곱씹어야 했다. 코몰리는 헤딩슛 실력이 뛰어난 젊은 슈터 앤디 캐롤을 발굴했다. 그는 이 재원을 영입하는 데 4천만 유로를 지급했고 그의 곁에서 뛸 몇몇 선수도 함께 데려왔다. 그러나 그는 긴 센터링이 골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리버풀 선수들이 직접 경험해서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통계 수치로도 증명된 사실이었다. 실제로 짧고 빠른 패스가 골로 이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코몰리는 잘못된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결국 지난해 4월 그는 팀을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수학적 혁명은 계속됐다. 동료들은 코몰리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다. 통계는 분명 유용하지만 항상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 따라서 신중한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 뒤 통계 수치는 프리킥과 코너킥 등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경기장을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던 22명의 선수들이 일시에 멈춰 서는 프리킥, 페널티킥, 코너킥의 순간은- 야구 경기에서처럼- 분석을 위한 상대적 여유시간을 제공해준다. 바로 통계 수치가 제 몫을 해내는 순간이다. 맨체스터 시티 FC의 데이터 분석팀에서는 지난 시즌 중 여러 팀의 선수들이 찬 400여 회의 코너킥을 분석한 끝에 골라인 방향으로 들어가는 코너킥이 가장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통계 담당 직원들은 이 중대한 과학적 발견을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에게 알렸지만 돌아온 반응은 코웃음뿐이었다. 그 자신이 선수로 뛴 경험이 있는 감독으로서는 골라인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코너킥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단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실전에서 그의 생각대로 날아간 코너킥들은 좀처럼 골로 연결되지 못했다. 결국 그의 어시스턴트인 데이비드 플랫이 토라진 통계원들과 화해하고 코너킥 전략을 반대로 수정한 뒤에야 골이 터지기 시작했다. 맨체스터 시티는 덕분에 15개의 추가 골을 내며 프리미어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굴욕을 안기며 맨체스터 시티에 우승컵을 안겨준 뱅상 콩파니의 결정적 슛 역시 골라인으로 접근하는 코너킥에 이은 것이었다.
2011~2012년 시즌에 객관적 기량 분석가들은 영국 프리미어리그뿐 아니라 유럽 챔피언십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바이에른 뮌헨과 맞붙은 결승전에서 첼시의 골키퍼 페트르 체흐는 승부차기에서 상대편 선수 6명의 슛 방향을 정확히 잡아냈고 그중 2개를 막아냈다. 팀 우승에 수훈을 세운 이 골키퍼는 경기 직후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다. "내가 예상을 잘한 것일 수도 있고, 예상할 준비가 잘돼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경기 전 첼시의 데이터 분석팀은 그에게 2007년부터 바이에른 선수들이 찬 승부차기가 모두 담긴 2시간 분량의 DVD를 건넸다.
실시간 활용 '기적의 데이터' 시대 온다
오늘날 세계 어느 축구팀도 독일만큼 통계에 열광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경기가 펼쳐지는 실시간에도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적의 공식을 개발하려고 분투 중이다. 지난 수년간 독일 국가대표팀을 위해 일해온 쾰른 고등연구학교 스포츠분과의 교수·학생 연구팀은 2012 유로컵에서 독일과 맞붙을 팀들에 대한 분석을 담은 수백 쪽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폴란드 그단스크의 드보르 올르브스키 호텔에서 날마다 비밀리에 모여 전략을 구상하던 코치들은 이 보고서를 십분 활용했다. 그 안에는 유용한 정보가 가득했다. 내가 막아선 선수가 패스나 가속을 위해 자주 취하는 경로는? 어떤 순간에 호나우두는 그 무시무시한 드리블을 시작하는가? 특정 팀이 공을 빼앗긴 뒤 수비 진영을 갖추는 데 몇 초가 걸리는가?
2012 유로컵에서 네덜란드와 맞붙기 전 쾰른의 연구자들은 적의 단점을 찾아냈다. 네덜란드 수비수들은 서로 지나치게 간격이 벌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후방 수비수 2명 사이는 8m를 넘으면 안 되는데 네덜란드 선수들은 그 이상의 간격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로 침투하기가 용이했다. 계산은 맞아떨어졌고 독일은 네덜란드에 2대1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사이 지난해 가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실질적으로 최종 미국 챔피언을 가려내는- 플레이오프 토너먼트를 치르고 있었다. 오클랜드의 상대 팀들 역시 모두 전략 수립 과정에 통계 수치를 응용했다. 그러나 빌리 빈과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출신의 동료 파란 자이디는 이들보다 한발 앞서 좀더 정교한 지표를 고안했다. 숫자를 너무나 사랑하는 그는 한 전자우편에 "이제 개개의 작전이 미리 주어진 통계적 분석을 기초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자찬을 늘어놓았다. 20년 정도 늦긴 했지만 축구 역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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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이먼 쿠퍼 Simon Kuper 스테판 지만스키와 함께 <사커노믹스>(Soccernomics)를 썼다.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