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미래

Corée

2013-03-12     문정인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도가 탈냉전 이후 최악의 난기류에 직면해 있다. 중국의 부상, 이에 맞선 미국의 견제 구도, 그리고 공세적 민족주의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일본의 행보 등은 동북아의 안보 지형을 구조적으로 흔들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3차 핵실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독도를 둘러싼 중-일, 한-일 간 영토 마찰, 그리고 가속화되는 역내 군비 경쟁 등은 예측불허의 위기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시되는 것은 중국과 일본 간의 첨예한 대립 가능성이다.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이 대국굴기로 방향 전환을 하고, 이에 일본의 아베 신조가 정상국가론과 미-일 동맹 강화로 맞선다면 동북아 안보 정세는 더욱 가늠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는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해 엄중한 사태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의 부상, 액면 그대로 믿어도 될까

중국의 부상은 이제 하나의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 2월 22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7.8% 성장한 51조9322억 위안을 기록하며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위 경제대국으로서 지위를 확고히 했다. 게다가 중국은 무역과 수출뿐 아니라 외화보유고에서도 세계 1위로 등극했다. 이 여세를 몰아 향후 10년 내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제 중국은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가는 것이다.

국력의 또 다른 지표인 군사력 부문에서도 중국의 부상은 주목할 만하다.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 2012 연감 기준, 미국의 총국방비 지출은 7110억여 달러(GDP 대비 4.7%)로 전세계 국방비 지출의 41%를 차지하는 반면, 중국은 1430억여 달러(GDP 대비 2%)로 8.2%에 지나지 않는다. 패권력 투사에 필요한 전략 자산, 특히 해군력이나 군사동맹의 규모 면에서 중국은 여전히 열세를 면치 못하는 형국이다. 동맹국이라고는 파키스탄 하나 정도인 중국에 비하면 미국의 동맹 혹은 준동맹 수는 68개국에 달하고, 45개국에 군사력을 전진 배치시키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미국의 경제적 침체와 재정 적자가 지속될 경우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국력 신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화평발전(和平發展) 노선의 견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2020년까지 중국공산당이 목표로 설정한 샤오캉(小康·유족한) 사회 건설을 위해 외부적으로 평화, 대내적으로는 조화사회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이 아직도 개발도상국에 지나지 않으며 지속 가능한 성장과 고용 창출, 소득과 부, 지역 간 양극화 극복, 부정부패 척결, 환경 보전과 자원 확보, 그리고 사회적 안정의 공고화 등 산적한 대내적 과제를 다루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에 패권적 부상을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일부 원로들이 아직도 '빛을 감추고 능력을 배양하며 영원히 고개를 들지 말라'(도광양회 영부당두·韜光養晦 永不當頭)를 선호하는 이유인지 모른다.

그러나 화평발전 노선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다. 반대파들은 덩샤오핑의 '도광양회, 유소작위'(韜光養晦, 有所作爲) 유훈 중에서 전자에만 방점을 두는 것은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중국의 국력이 현저하게 상승한 현 시점에서는 유소작위가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도광양회는 개혁·개방 시기에 외부의 견제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고립주의 정책이기 때문에 이제는 여기서 탈피해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추고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야 하며, 미국과도 따질 것은 따지는 대국외교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대국굴기론이 군부와 젊은 층에서 크게 환영받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그는 패권적 부상에 관심이 없고, 화평발전과 국제협력 노선을 지속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누차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주권과 영토에 관한 한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것이다. 양안 문제, 동지나해·남지나해에서의 영토 문제, 티베트·위구르에 대해서는 어떠한 외세 개입도 허용치 않을 것이며,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일본은 어디로 가는가

<Japan as Number One>. 미국 하버드대학의 에즈라 포겔 교수가 1970년대 일본의 경제성장을 높이 평가하며 집필한 책 제목이다. 분명 당시 일본은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그때의 일본은 찾아보기 힘들다. 헤이세이 장기 불황에 따른 경제적 침체, 정치지도력의 부재와 혼미, 일사불란한 사회적 기강의 해이,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기우는 평판. 여기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이오키베 마코토 전 일본 방위대 총장은 현재의 일본을 2만7천 명에 이르는 야마토(大和)군이 신라-당(唐) 연합군에 단 이틀 만에 패배한 663년의 백강전투, 막부 말기 페리 제독의 개항 요구, 그리고 태평양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네 번째 역사적 큰 위기라 진단했다.

위기 국면의 일본, 어떤 대외전략을 취할 것인가? 일본 사회의 주류는 대외전략의 핵심을 아직도 평화헌법 제9조와 '요시다 독트린'에 두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은 전쟁 포기, 정규군 불소유, 교전권 부인을 골자로 하는 평화헌법을 채택한 바 있다. 이와 더불어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해,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는 대신 경제발전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는 요시다 독트린을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 게이오대의 소에야 요시히데 교수는 바로 이런 제약 때문에 일본이 강대국을 지향하기보다는 미들파워로서 위상을 확실히 하고, 그에 근거해 대외정책을 모색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노구치 다카시 도쿄대 명예교수는 소에야의 미들파워 외교론이 일본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라면서, 그런 제약하에서도 '세계적 정상 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대국으로 성장해버린 일본이 뉴질랜드나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중견 국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해석호헌을 통해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더불어 <아사히신문> 주필 출신인 후나바시 요이치는 국제공헌을 전제로 한 세계 문민대국을, 그리고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한국이 중심이 되는 동북아 공동의 집 구상에 일본이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내건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 맥을 같이한다.

이런 주류 노선이 최근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리가 평화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 강경보수 정책 노선을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평화헌법 제9조 2항을 바꿔서 자위대를 정규군으로 재편하는 동시에, 동맹 의무를 지키기 위해 일본 자위대의 해외 파병도 불사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여기에 편승해 일-미 동맹의 해체와 일본의 독자적 핵무장을 주장하는 극우세력도 존재한다. 물론 성숙한 민주주의를 가진 일본에서 재무장을 통한 정상국가화가 1930년대의 군국주의 부활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사와 영토 문제에 대한 납득할 만한 청산 없이 일본이 공세적 행보를 보일 경우 주변국의 안보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 민족주의, 그리고 동북아 정세

중국의 부상,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진핑과 아베 신조는 국내적 제약 또는 평화헌법과 요시다 독트린이라는 제도적 관성 때문에 기존 정책을 극적으로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동북아 정책과 민족주의의 과도한 정치화 현상은 중국과 일본의 극적 정책 전환을 가져올 수도 있다.

미국은 한-미 동맹, 미-일 동맹, 그리고 한-미-일 3국 공조라는 기존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중국과는 '공동책임국가(Stakeholder)론'이라는 명분하에 협력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1년 10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채택하면서 아태 지역에서의 재균형(Rebalancing) 논의가 가시화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중국을 지목하지는 않으나, 아태 지역에 대한 군사력 증강과 역내 국가들과의 군사·경제 협력을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대중국 견제 의도가 강하게 담겨 있다. 여기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해 중국에 대한 경제적 견제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전략적 포석은 미국에 편승한 일본의 우경화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중국의 반발을 초래해, 동북아에 미국 중심의 남방 3각 구도와 중국 중심의 북방 3각 구도라는 신냉전 구도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중-미, 중-일 갈등의 첨예화는 물론 한반도의 미래에도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배타적·공세적 민족주의와 연계된 중국과 일본의 국내 정치적 파행성이다.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볼 때, 중국과 일본의 민족주의가 동북아 안보의 새로운 불안 요소로 떠오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중-일 갈등의 핵으로 등장한 센카쿠열도 영토 분쟁만 하더라도 민족주의 정서와 직결되어 있다.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의 센카쿠열도매입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노다 요시히코 내각이 국유화 결정을 내렸지만, 중국 정부는 이 움직임을 계산된 민족주의 술책으로 파악해 더욱 강경한 대응을 하고 있다. 사실 시진핑 처지에서 보면 센카쿠열도 문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아편전쟁 이후 150년 이상 굴욕의 역사를 체험해온 중국으로서는 1894년 청일전쟁에서의 패배로 일본에 넘겨진 센카쿠열도에 대한 영유권 회복이 중국 인민 모두의 염원이기 때문에 정치적 정통성 확보 차원에서 강경 대응은 예상된 수순이다.

시진핑과 아베 모두 취임 일성이 주권과 영토의 보존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일본의 외교정책에서 민족주의는 핵심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분쟁 당사국들이 민족주의를 국내 정치적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할 경우 배타적 국수주의가 확산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국가 지도부가 이런 국수주의적 여론에 좌우되면 대외정책이 예측 불허로 전개될 수 있다.

한국의 전략적 선택은?

동북아 정세가 중국과 일본, 또는 미국·일본과 중국 간 경합 구도로 흐르게 될 경우 한국은 다음 네 가지 전략적 대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첫째는 균형(Balancing) 전략이다. 전통적 세력균형론에 기초한 이 시각은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판단해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되도록 중국 영향력의 확대를 억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편승론(Bandwagoning)인데 중국의 부상에 편승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가장 유리하다는 시각이다. 이 시각은 중국이 머잖아 지역 패권국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며, '지는' 패권국이자 지리적으로 먼 미국보다 '뜨는' 패권국이자 바로 이웃의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 번째는 한국 홀로 대응(Stand-alone)하는 방안이다. 오랜 시간 강대국의 희생양이 되어온 한국으로서는 미국도 중국도 믿기 어렵다는 지정학적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특히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계기로 이 주장이 크게 탄력을 받고 있다. 한국도 핵무장한 미들파워로 자리를 굳히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지정학적 운명을 독자적으로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이 바로 이 시각이다.

네 번째는 이원외교(Double Dipping) 전략인데 중국과는 경제관계를, 미국과는 군사동맹을 유지하며 각각에서 이득을 취하는 구도이다. 이는 현상 유지 전략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바람직해 보이나 북한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정치적 사안이 얽힌 동북아 체제를 생각할 때 먼 미래까지 오래 지속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 네 가지 선택 모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3국 공조를 강화하게 되면, 중국 역시 러시아-북한과의 공조를 강화하게 되어 동북아에는 한-미-일 남방 3각과 북-중-러 북방 3각 간 긴장과 대립의 구도가 발생해 오히려 안보 불안정이 심화될 수 있다. 중국 편승론은 국내적 지지 확보가 어려울 것이며, '홀로 서기' 전략은 더 어려운 안보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아마 가장 바람직한 선택은 한국이 동북아 지역에 새로운 다자 질서를 구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 동북아 자유무역지대(FTA)를 계속 추진해 경제적 협력 관계를 심화하고, 6자회담 틀을 기본으로 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대안일 듯하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겠지만 그것만이 패권 경합과 편가르기 외교의 함정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안정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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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듀크대학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겸임교수. 미국 메릴랜드대학 정치학 박사. 최근 펴낸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삼성경제연구소·2013)와 <중국의 내일을 묻다>(2010) 등에서 양국 핵심 국제정치 전문가들의 한반도 전략을 집중 인터뷰했다. 40여 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