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NHN의 생존투쟁(?)

르 디플로 에세이

2013-03-12     류한석

지난 2월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 NHN이 창사 이래 가장 큰 폭의 조직개편을 발표했다. NHN은 2000년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게임 사이트 한게임이 합병을 결정하고 2001년 사명을 네이버컴에서 NHN으로 변경하면서 탄생했다. 그 후 NHN은 검색, 지식인, 블로그, 카페 등의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광고 수익과 한게임을 기반으로 한 게임 수익을 양대 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해왔다.

2012년 NHN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12.6% 증가한 2조3893억 원을 기록했다. 그중 검색 광고 매출은 1조2065억 원, 디스플레이 광고 매출은 3467억 원을 차지했으며, 게임 매출은 6084억 원을 차지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1% 증가한 7026억 원,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20.7% 증가한 5456억 원을 기록했다.

현재 NHN은 국내 인터넷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한게임의 주된 수익 기반인 포커·고스톱 등 웹보드 게임의 사행성 논란에 꾸준히 시달려왔다. 한게임의 사행성과 그로 인한 폐해에 대해서는 지난 수년간 여러 미디어에서 다룬 바 있으며, 관계 기관에도 수많은 민원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사실상 '사이버 도박장'과 다를 바 없는 한게임의 웹보드 게임이 여전히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건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다.

그런 한게임에 대한 사회적 눈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데다 인터넷 시장이 기존 데스크톱 중심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됨에 따라, 지난 2월 NHN은 한게임을 독립시키고 신규 모바일 서비스를 담당하는 캠프모바일,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담당하는 라인플러스를 설립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대해 NHN의 김상헌 대표는 "포털과 게임은 서로 다른 사업 환경에 놓여 있다고 판단했다. 빠르게 변하는 모바일 시장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사업적 전문성을 더욱 강화해나가기 위해 인적 분할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간 NHN은 혁신적 서비스를 선보이기보다는 돈벌이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모바일 인터넷 시장에도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NHN 내부적으로도 이같은 현실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창업자 이해진 이사회 의장이 조직 구성원들에게 과거 벤처기업 시절처럼 열정을 발휘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며 강하게 불만을 표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NHN은 이런 내·외부적 요인들로 인해 한게임 및 모바일 사업을 분사하기로 결정했다. NHN의 조직개편이 과연 현명한 경영적 판단이었는지는 머잖아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판결 날 것이다.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지만, NHN에 국내 최고의 인재가 모여 있는 점을 볼 때 시장의 변화와 경쟁업체들의 견제, 사내 정치 등 NHN을 둘러싼 여러 장애요인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낼 것으로 본다.

실제로 NHN은 모바일 시장에 뒤늦게 대응했음에도 라인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라인은 지난해 4분기에 전년 대비 200% 증가한 48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현재 라인은 총 1억 명이 넘는 가입자가 있으며, 일본에서만 4천만 명의 가입자가 있다. 또한 올해 총 가입자 수를 2억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신규 모바일 서비스 캠프도 NHN다운 융단폭격식 마케팅을 통해 서비스를 선보인 지 얼마 안 돼 의미 있는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인터넷 기업 빅3(NHN, 다음, SK컴즈)는 모두 모바일에 집중한다는 전략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NHN이 상대적으로 뒤늦게 모바일에 대응했음에도 라인을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달성한 데 반해, 다음은 NHN보다 신속하게 모바일에 대응했음에도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내는 서비스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2012년 다음의 매출은 전년 대비 7.6% 성장했지만 영업 이익은 12.8% 하락했다. 다음은 매번 마케팅과 뒷심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다음이 그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현재 추세로 고착화될 수 있다. 빅3 중 모바일에 가장 늦게 대응한 기업은 SK컴즈다. SK컴즈는 2012년 매출이 전년 대비 무려 24.3%가 하락하면서 영업 적자를 기록했는데, 최근 모바일 전략을 재정비했지만 빅3 중 미래가 상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국내 인터넷 시장은 포털 빅3가 지배해왔지만, 모바일 인터넷에서는 판도가 완전히 바뀔 것으로 본다. 현 시점에서 향후 국내 모바일 인터넷 시장을 지배할 가능성이 가장 큰 업체는 역시 카카오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과 모바일 SNS 카카오스토리 등을 운영하는 카카오는 최근 모바일 소셜 플랫폼으로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SMS/MMS 메시지를 대체한다는 점에서 모바일 메신저는 스마트폰 최고의 킬러 앱이다. 카카오톡은 일찍이 그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모바일 인터넷 시장에서 플랫폼 기반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유리한 발판을 마련했다.

서비스로서 SNS가 플랫폼으로 진화해 애플리케이션/콘텐츠 생태계를 갖춘 것을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 줄여서 '소셜 플랫폼'이라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소셜 플랫폼이면서 다른 서비스에 일종의 롤모델 역할을 한 서비스가 바로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2007년 페이스북 기반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선보였고, 이를 통해 지금까지 수십만 개의 페이스북 기반 소셜 애플리케이션이 만들어졌다.

그런 소셜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통해 페이스북은 데스크톱에서 확고한 지위를 누려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스마트폰을 홀대함으로써 실기하게 된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해 한 행사에서 모바일 전략의 실패를 시인하기도 했다.

이처럼 페이스북이 모바일에서 애플리케이션/콘텐츠 생태계를 만드는 데 소홀한 틈을 타, 카카오톡이나 라인 등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가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상황이다. 지난 2월 기준 카카오톡은 가입자 수 8천만 명을 돌파했다. 카카오톡에 기반한 모바일 SNS인 카카오스토리는 가입자 수 3400만 명을 돌파했으며, 포스팅 수 11억 개, 댓글 수 108억 개를 돌파한 상태다. 카카오는 공공연하게 페이스북이 경쟁자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결코 허황된 주장이 아니다. 카카오톡은 이미 국내 모바일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으며, 페이스북이 부진한 해외(최소한 아시아 지역)에서 성과를 낼 가능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정리해보면, 이제 데스크톱 인터넷보다 모바일 인터넷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됐다. PC 판매 대수는 계속 감소하는 반면 모바일 기기의 판매 대수는 큰 폭으로 증가하는데다, 사람들이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는 시간 또한 계속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바일에서는 포털 등 그 어떤 서비스보다 메신저가 가장 강력한 킬러 앱이라는 것이 자명해진 상태다.

이같은 내용을 종합해보건대, 앞으로는 모바일 메신저라는 킬러 앱을 기반으로 각종 애플리케이션(게임, 쇼핑, 커뮤니케이션, 엔터테인먼트 등) 및 디지털 콘텐츠(음악, 영화, 전자책 등) 생태계를 구축해 사용자들을 록인(lock-in)하는 업체가 인터넷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카카오톡과 라인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두각을 나타남에 따라 페이스북 본사에선 국내 메신저들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번 NHN의 조직개편에는 국내 및 해외 시장에서 라인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전략이 담겨 있다. 그에 따라 앞으로 국내외에서 카카오톡과 라인의 불꽃 튀는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하나의 패턴이 파괴될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NHN이 과연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에서도 성공을 이어갈 수 있을까? 미래를 확언할 수 없겠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NHN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을 했으며, 그것에는 자기혁신 및 성공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담겨 있다.

*

/ 류한석 고려대 컴퓨터학 박사 수료.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장. <주간경향> IT 칼럼니스트. 소프트뱅크미디어랩 소장, 한국SW아키텍트연합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