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자격심사'

4월의 '르 디플로' 읽기

2013-04-09     이인우

안철수는 일종의 자격심사를 자처했다. 노회찬씨가 의원직을 상실한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 신분 획득에 나섰다. 안씨가 당선된다면 그의 연대 세력뿐만 아니라 잠재적 적들에게도 환영하는 바가 될 것이다. 비로소 링에 들어와 같은 룰을 적용받을 텐데, 게임은 '뒹굴기'이다. '현실정치인 안철수'가 눈덩이 굴리듯 커지면 새로운 '헤쳐모여'의 지렛대로 활용하기에 딱 좋다. 반대로 그의 뒹굴기가 자신의 외피를 벗기는 것에 그친다면, '과대포장'된 한 대통령 지망생의 좌충우돌기를 감상한 것으로 치면 된다.

안철수씨 개인은 이번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정치도의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은 게 훨씬 더 많다. 그는 '안전한 제도권 진입'이라는 실리를 위해 대의와 명분을 외면했다. 이번 선거에서 무난히 당선된다 해도 그 승리는 두고두고 그의 정치 행로에 걸림돌이 될 것이 틀림없다. 대인의 면모를 보이지 못한 약점은 그가 거물이 되면 될수록 함께 커질 것이다. 사실 '정치인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외생적 조건이 없으면 탄생하지 못했다. 새 정치에 대한 국민적 갈망과 정치에 대한 환상의 산물이란 뜻이다. 그는 주어진 정치적 영향력에 비해 정치적 역량이 너무 빈약하다는 사실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드러났다. 정치 입문 과정도 그렇다. 주식투자 전문가로 소문난 의사, 힐링과 처세로 유명한 종교인, 원조급 개념 연예인 등이 그의 정치적 '인도자'로 꼽혔고, 대중은 안철수를 연예 버라이어티쇼와 강의 콘서트를 통해 '발견'했다. 그는 의사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벤처사업가에서 국립대학 교수를 거쳐 정계로 진출했다. 명석한 두뇌 소유자의 현명한 사회적 진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분야가 정치에 이르면 그 철학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는 의사나 기술자나 사업가의 이해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치인 안철수가 국회의원의 부푼 꿈을 안고 노원병을 누비는 동안, 거대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 30명이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2명을 의원 자격심사에 '회부'했다. 검찰이 처벌을 목표로 벌인 수사에서도 혐의가 나오지 않자, 아예 입법부 스스로 두 의원을 솎아내기로 '작당'한 셈이다. 검찰이 기소조차 못한 사안을 가지고 다른 당 의원의 자격을 심사하겠다는 것은 다수당의 횡포 수준을 넘어 마녀사냥이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극우 언론인조차 이를 비판하는 것으로 자기 논조의 건강성을 포장하는 재료로 삼았겠는가.

만약 두 의원이 국가보안법상에 문제가 있다면 검찰이 엄중히 조사해 그것으로 감옥에 보내든지, 북송을 시키든지 하면 된다. 무엇이 어려운가. 윤리적 흠이 있으면 그 또한 국회윤리위 차원에서 다루면 된다. 심재철 의원처럼 누드사진을 보다 들키면 윤리의원직을 물러나면 되는 일이다. 그걸 가지고 심재철 의원의 국회의원 자격을 다루는 심사를 여야 합의로 벌여야 하나? 두 의원이 '종북주의자'란 게 함께 놀기 꺼림칙하다는 것이 속내인 듯한데, 그건 미숙한 지성의 실토일 뿐이다.

민주당은 우스꽝스러운 청부 심사위원 노릇을 하루빨리 그만두기 바란다. 안 그래도 민주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가 바닥이 났는데, 그나마 한다는 짓이 겨우 '색깔론 차단'을 위한 사상검증이라니 정말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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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 editor@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