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는 프랑스 영향력 확대의 마당

-친애하는 레지 드브레에게

2013-04-09     위베르 베드린

지난 3월호 본지 지면에서 레지 드브레는, 프랑스 대통령에게 “프랑스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통합지휘 체제에 잔류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한 위베르 베드린을 비판했다. 베드린은 답신에서 “프랑스가 야심차면서도 명확한 독자적 전략을 수립하는 데 나토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기존 신념을 재확인했다.

짐작하고 있겠지만 자네가 보내준 편지는 꼼꼼히 잘 읽어봤네. 개인적으로 부친 편지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실린 공개 서한 모두 잘 읽었네. 편지에서 자네는 내가 대통령에게 제출한 프랑스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지휘체계 복귀에 따른 영향과 유럽 국방 통합의 미래에 대한 보고서에 대해 다루고 있더군. 대통령도 최근 내가 쓴 보고서의 결론에 공감을 표했지. 우리가 공개 서한이라는 기발한 방식을 빌려 30년도 훨씬 전에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에서 일하며 함께했던 그 끝없는 대화를 다시 나눌 수 있게 되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르겠네. 우리는 이따금 서로를 조금 당혹스럽게 만들기는 해도 늘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그간 건설적이며 풍요로운 대화를 나눠왔지.

자네가 쓴 글은 종종 내가 다룬 글의 요지를 벗어날 때가 많더군. 내가 다루려 했던 주제는 아득해 아예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야. 프랑스의 독자적 대외정책이 점차 자취를 감추며, 오늘날 개인주의가 득세하는 상황에 대해 보여준 자네의 성찰은 훌륭했어. 황혼 녘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느끼는 우수에 찬 감상이 가득 밴 기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글이었네. 자네는 유럽에서 오늘날 과거의 영화로움을 상당히 잃은 기독교가 2천 년 전 개인주의의 싹을 틔우는 모태였다고 지적했더군. 그리고 그렇게 기독교로부터 태동한 개인주의가 오늘날 모든 집단적 역사의 기획을 무의미하게 만들기에 이르렀다고. 한편 화성에 대한 금성의 궁극적 우월성에 대한 자네의 이론도 흥미롭게 읽었네. 루이 앙투안 드 생쥐스트로의 새로운 행복의 개념으로까지 이어지는 자네의 주장은 마치 드브레가 쓴 새로운 '역사의 종언'(변증법적 발전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근원적 모순이 없어진 역사의 최종 단계. 역사의 완성)을 읽는 듯했지. 자네의 말대로라면 당대 매우 충격적이고 새로웠던 행복(개인의 행복)의 개념이 2세기를 훨씬 지난 오늘날 조만간 전세계 모두 사람이 공유하는 개념이 될지도 모르겠군.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앞으로 대체 국제관계나 역학관계, 대외정책 따위를 공부할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나도 종종 자네처럼 이런 현실 앞에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네. 하지만 나는 자네의 주장에 100% 동감하지는 않아.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래에도 아주 오랫동안, 세계 인구가 더욱 증가하는 가운데, 한계를 향해 치닫는 환경이라는 시한폭탄이 째각째각 끊임없이 카운트다운을 지속하는 동안, 공간·자원·시장·부·권력·사상·신앙 등을 둘러싼 세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네.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래에도 서로 화합하기 힘든 다양한 차이들 사이에 충돌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결국 세계는 효과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도, 세계 시민을 대표하는 세계 대통령도 만들어내기 힘들 거야. 그러니 칸트식의 유토피아가 실현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전략적 차원에서 깊은 잠에 빠진 유럽인들을 함께 걱정해야만 한다네. 깊은 잠에 빠진 유럽인들은 현실의 역사를 올바르게 판단할 능력이 없지. 자신들의 존재와는 무관하게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여전히 계속될 현실의 역사를 말이야.

탈퇴하기에 가장 나쁜 때란?

내가 보고서에서 다뤘던 주제로 다시 돌아가보세. 사실 애초 내게 주어진 과제는 프랑스가 나토의 통합지휘 체제로 복귀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었네. 나토 복귀의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었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내게 임무를 맡겼을 때 이미 프랑스는 나토에 복귀한 상태였어. 1995~97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손을 댔다 포기한 결정을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마침내 완수했지. 그러니까 내가 맡은 임무는 정확히 말해 프랑스의 과거 나토 복귀 결정이 미친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었네. 사실 평가를 내리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긴 했어. 그래서 약간의 성과는 있었지만 이를 분명히 단정하기는 힘들다는 평가를 내리게 된걸세. 가령 나토 관료체계 축소나 직무 배분, 억지력과 방어에 대한 전략적 계산 등에서 긍정적 영향이 있었어. 반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총체적 전략에 대해서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 한마디로 잠재적 측면에서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이 함께 존재했다고 볼 수 있네.

하지만 리스크- 미국의 사상에 흡수되는 '식세포작용'(병원체나 이물(異物)이 피부나 점막의 장벽을 넘어 체내로 침입하면 식세포에 의해 받아들여 처리하는 현상- 보다 긍정적 영향(영향력 증대)을 더 많이 누리기 위해서는, 프랑스가 나토 내에서(물론 유럽연합(EU) 내에서도 마찬가지야. 둘을 반대되는 성격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네) 자유롭게 자국 고유의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명확하고 과감한 정책을 수립할 수 있어야만 한다네. 자네는 프랑스가 그런 능력이 있다는 데 의문을 갖고 있더군(하지만 자네 말대로라면 '나토 밖'에서도 프랑스는 그런 능력을 갖추기는 어려울걸세). 나는 충분히 프랑스가 그럴 능력이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네. 만일 프랑스가 지금 같은 최악의 시기에 납득할 만한 분명한 사유도 없이 나토를 재탈퇴한다고 나온다면, 미국은 물론 독일 등의 다른 유럽국과도 비생산적인 첨예한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을걸세. 대체 프랑스가 나토를 재탈퇴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극히 일부 나라의 찬사만 받을 수 있을 뿐이라네. 하지만 대체 2013년의 프랑스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나 브라질의 찬사를 받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는가?

내가 보기에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이 1966년 드골 장군이 나토를 탈퇴(탈퇴할 만도 했지)할 때와는 사정이 여러모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야. 그때는 미 국무부가 프랑스에 대해 방해공작을 펼치고, 린든 존슨 대통령이 프랑스의 영향력 확대를 고집스럽게 반대하는 한편, 베트남전쟁, 유연반응전략(주로 핵무기에 의존하는 대량보복전략과 달리 전면 핵전쟁을 하지 않고 전쟁 목적을 최대한 달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도발 형태에 따라 차등적으로 대응하는 전략) 등의 격변이 이어졌지. 요컨대 2013년 프랑스의 나토 탈퇴는 그리 적절한 선택이 아니라고 볼 수 있네. 자네는 북대서양동맹이 예전보다 더 '번영'했다고 했지. 하지만 나는 북대서양동맹의 미래가 오히려 위태롭다고 생각하네. 자네는 2013년 나토 재탈퇴 이후 프랑스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더군. 신흥국을 견제하는 것 외에는 말이야. 물론 신흥국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해. 독일도 대외정책을 재편할 정도지.

나도 자네 못지않게 드골을 경애하고 존경한다네. 하지만 드골을 마치 대성당 유리창에 새겨진 성인으로 미화하지는 말게. 지난한 변화 과정 속에 어느 순간 드러난 모습만으로 그를 재단하지 말자고. 1966~67년(11년 가운데 2년) 드골이 펼친 대외정책은 향수에 젖은 이들에게 숭배를 받고 있지. 물론 나도 그런 감정을 존중하네. 하지만 드골이 진정 뛰어났던 이유는 그가 현실성과 유연성, 실용성을 모두 겸비했기 때문이야. 드골이 유럽과 독일에 대해 취했던 역대 정책만 봐도 금세 알 수 있지. 심지어 드골이 초기 나토 정책으로 표방한 것도 실은 프랑스를 포함한 3강 지휘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지, 결코 나토를 탈퇴하자는 것이 아니었네. 그가 나토 통합지휘 체제(그나마 동맹 자체를 탈퇴하는 것도 아니었네)를 탈퇴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정계에 복귀한 지 8년이 지난 뒤였다네.

그러니 1966년 드골이 내린 나토 탈퇴 결정을 지나치게 신화화하지 않았으면 하네. 드골의 모든 대규모 대외정책을 오로지 한 시기에 국한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야. 더욱이 그때는 냉전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이 작용하지 않았나. 드골은 동서 양 진영이 위기로 치달을 때마다 '우리 동맹들'과 진정성을 다해 결속했다네. 아마 리처드 닉슨이나 헨리 키신저가 대화 상대자였다면 드골은 통합지휘 체계를 탈퇴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네. 프랑스 탈퇴에 따른 연쇄 효과는 어땠을까? 40년이 넘는 동안 1996~2010년 프랑스가 취했던 독특한 입지를 따르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다네(기구 내뿐 아니라 동맹 안에서도). 심지어 프랑스와 독일이 긴밀히 협력하던 시기의 독일조차 말일세. 우리는 나토 안에서도 충분히 진정한 대외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네. 반대로 나토 밖이라고 해서 무조건 진정한 대외정책 수립이 가능한 것도 아니야(과거 중립국을 예로 들 수 있어).

자네는 프랑스가 '서서히 무대 중심에서 퇴장'하는 것을 개탄하더군.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일이라네. 프랑스가 나토 통합지휘 체계 밖에 있을 때부터 말이야. 그러니 나토 밖에 머무는 일이 무조건 프랑스가 큰 야심을 품고 이를 실현하는 것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지. 나토에 잔류하느냐 탈퇴하느냐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는 더욱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네. 지금 우리가 한낱 눈속임에 불과할 뿐인 과거의 당당한 지위를 복원하거나 안락한 정신적 울타리를 되찾는다고 해서, 프랑스와 유럽이 역사 감각을 회복하고 전략의 중요성을 각성하게 되는 것은 아니야. 또한 우리가 왜 의지와 능력을 되찾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 채 나토를 탈퇴하는 경우에도 프랑스와 유럽의 각성은 힘들 거야. 사실상 오늘날 나토를 대신할 '프랑스어권' 동맹은 존재하지 않아!

미국의 '아시아 정책' 파장

프랑스의 독자적 위상이 모든 프랑스 지도층의 동의를 이끌어낼 만큼 정치적으로 편리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수단이라는 점은 인정하네. 나 역시 과거 사르코지 대통령이 내린 나토 복귀 결정에 찬성하지 않았지. 하지만 내가 사르코지의 결정을 반대한 것은 그것이 조지 부시 대통령의 환심을 얻기 위한 선택이었기 때문이야. 또한 복귀의 논리가 상당히 의심스러웠지(대체 '서구라는 가족'이라니. 신보수주의자 외에 심지어 미국인조차 '서구라는 가족'을 운운하는 일은 없는데 말이야). 게다가 그의 논리는 망상에 가까웠어. 나토 복귀가 유럽 국방 체제를 가로막는 걸림돌을 제거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마치 유럽 국방 체제가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하는 것이 프랑스의 특수한 입장으로 인해 다른 유럽국이 불신을 품고 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야. 반대로 유럽국이 국방 통합을 원치 않는다고는 생각지 못했지.

어쨌든 2009년 프랑스는 나토 복귀를 결정한 결과 오늘날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네. 우리가 일단 나토 복귀를 결정한 이상, 그리고 계속 잔류할 생각이라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소극적 태도를 일관하는 것이라네. 바로 그것이 내가 나토 내에서 나토에 대한 야심찬 정책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이유라네. 그래야 우리가 나토 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나토의 전략을 펼쳐야 할지 명확히 알 수 있지 않겠나. 또한 잠재적인 '유럽 국방 통합'의 파트너들에 대해서도 좀더 명철하고 엄격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네(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해 11월에 나는 사헬이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요지의 글을 쓴 적이 있어).

나는 이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이것이 자네와 나의 생각이 가장 다른 부분이야. 나토를 무슨 무서운 망령 취급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네. 모든 상황이 나토가 프랑스의 영향력을 강화할 토대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어. 역사를 잠시 되돌아봐도 그래. 전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사생결단으로 미국이 유럽에 남기 원한 것은 오히려 서유럽이었어. 1948년 미 상원이 마침내 구속력 있는 조약을 체결하기로 하고, '마셜 플랜'(유럽의 모태)을 실시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아직까지 나토는 군사적 성격의 기구가 아니었네(NATO에 O가 붙은 것은 훗날의 일이라네). 나토가 군사동맹 기구로 발전한 것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난 뒤였어. 이후 유럽에 다시 주둔해야 할 때가 오자 미국은 당연히 나토 기구 전체의 통합지휘권을 누리기 바랐지(유럽 때문에 두 번이나 세계전쟁이 일어났으니 이유는 충분하지 않나). 바로 이같은 장벽에 드골이 부딪힌 것이야. 그리고 자네가 인용한 드골의 신랄한 비판도 모두 여기서 비롯된 것이고.

오늘날 여전히 유럽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중심축'이 아시아 쪽으로 이동하는,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변화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네. 그것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하는 거지! 유럽은 1949~51년 이후로 자신의 안보를 미국에 일임했다네. 그 순간 모든 전략적 사고가 멈춰버렸지(어느 정도 프랑스와 영국은 예외로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일세). 그러니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바로 유럽이네. 오늘날 나토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자 징후라고 할 수 있지.

더욱이 1949년 체결된 조약이 앞으로 아무리 지속되더라도, 아프가니스탄 이후 나토가 쇠퇴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아. 그렇다면 나토는 왜 필요한 것일까? 사실 폴란드나 발트해 연안 국가들에 나토는 여전히 러시아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생명줄 같은 존재라네. 앞으로는 점점 나토가 합법적으로 원정 개입에 나서는 일이 드물어질 거야. 만일 이란 문제가 사라진다면 그때는 대체 무슨 수로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의 명분을 유지한단 말인가? 더욱이 현재 미 국방부도 나토를 활용하는 것이 복잡하고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네. 물론 사이버테러라는 새로운 위협이 등장하기는 했어. 하지만 이것이 영구적으로 거대한 군사기구를 유지할 사유는 돼주지 못한다네.

자네는 몇 년 전 가브리엘 로뱅 대사의 말을 인용하며 '나토가 사라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더군(그러니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붙인 헤드라인처럼 프랑스가 나토를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닌 셈이지). 하지만 만일 모두가 나토의 존속을 원한다면 어찌되는 것인가? 사실 나토가 사라지는 경우 가장 곤란을 겪는 것은 미국이 아니야. 미국은 지속적으로 군사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어느 정도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나토의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네. 로버트 게이츠도 국방장관을 그만두기 전 '유럽이 국방 부문에 더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 한 유럽과 특별한 군사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다지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차세대 지도자들이 등장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예언했지. 사실상 정책적으로 국방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유럽으로서는 미국이 유럽을 떠나는 것은 공포가 아닐 수 없다네. 그러니 만일 나토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면, 규모를 축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토를 존속시키자며 미국에 매달리는 쪽은 오히려 유럽일걸세. 유럽이 위험에 처할 경우 미국이 무조건 유럽의 방위를 지원해주기를, 유럽이 벌이는 군사작전에 필요한 물자를 미국이 계속 제공해주기를 바라니까.

문제는 나토가 아니라 프랑스 자신

오바마 2기 정부가 자국의 재건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사건이 보여주듯,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나는 나토 내에서 나토에 관한 프랑스의 구상을 더욱 명확히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네. 가령 전쟁억지력이나 국방, 유럽 산업, 국외 개입 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그러니 나토 잔류냐 탈퇴냐를 놓고 더 이상 우리의 에너지를 허비하지 마세(EU의 잔류와 탈퇴를 저울질 중인 영국의 경우처럼 말일세). 오늘날 수많은 신흥국가가 부상하는 가운데 세계가 불안정하고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어. 이런 시점에서는 차라리 우리가 나토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또 어떤 식으로 나토를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보고서에서 미국 문제(프랑스-미국의 관계)나 나토 문제를 그다지 집요하게 파고들거나 집중하지 않은 것이라네. 그것은 너무 안이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분석일 테니까. 물론 미국은 1990년대에 걸친 10여 년을 끝으로 초강대국 지위를 잃게 될지 몰라. 하지만 나는 초강대국 미국보다 더 위험한 것이 근대 유럽인의 평화에 대한 믿음이나 망상이라고 생각하네. 오히려 미국은 유럽이 국방 투자를 감축(이것이 곧장 유럽의 군비 축소를 초래했네)하는 것을 줄곧 만류해왔지. 더욱이 미국은 프랑스나 영국이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충분히 돼 있다네. 가령 오바마 1기 정부의 경우 리비아에서 나토를 통해 프랑스와 영국을, 오바마 2기 정부 때는 말리에서 미국이 직접 프랑스를 지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제 유럽은 방위 문제를 등한시하며 빠졌던 깊은 전략적 혼수상태에서 깨어날 것인가? 아니면 자네는 거론하지 않았지만, 오바마 2기 정부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기회를 눈앞에서 그냥 놓쳐버리고 말 것인가? 나토의 탈퇴 여부는 논외로, 이런 의문 앞에 진정한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바로 우리라고 할 수 있네. 물론 프랑스를 보호하려는 자네의 측은지심은 이해해. '불만에 찬 보통 국가'로 전락한 프랑스는 현재와 미래에 엄청난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지. 하지만 나는 우리에게 다른 선택은 없다고 생각하네. 약하기 그지없는 관념의 울타리는 이미 산산조각이 났다네. 이제 우리는 나토 내에서뿐만 아니라 EU, 주요 7개국(G7), G8, G20 등의 차원에서도 투쟁해나가야만 할걸세.

어쨌든 우리 미래는 상당 부분 전략적인 부문과는 다른 곳에서 판가름이 날 것이네. 이제 우리는 전략적 게임을 다른 부문과 따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지. 가령 글로벌 시장경제 속에서는 얼마나 자국이 경제·기술·산업적 경쟁력(국방 포함)과 상업적 경쟁력(미국과 유럽 사이의 자유무역협정 계획), 심지어 이제는 환경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한 나라의 운명이 좌우될 테니까. 시장경제는 어느 정도 규제를 회복해나가고 있지만, 앞으로도 각 나라들 간 경쟁 체제는 계속 치열해질 것일세. 만일 프랑스가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면 프랑스의 영향력은 더욱 급격히 쇠퇴할 것이네. 하지만 나는 프랑스가 아직까지는 재기할 힘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그럼 변치 않는 우정을 전하며 이만 줄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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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베르 베드린 Hubert Vederine 전 프랑스 외무장관. 대표적 저서로 <2009~2012년, 세계적 갈등 속에서>(파야르 출판·파리·2012)가 있다.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