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 그 달콤한 비극

[특집] '보호무역주의'의 새로운 가치

2009-03-17     자크 사피르 |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경제학과 교수

자유무역으로, 각국 임금·사회보장·조세구조·내수시장 파탄

세계적 빈곤극복 위한 대안으로 보호무역주의 다시 떠올라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확산되고 깊어지면서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우상처럼 변해버린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저질러놓은 만행을 감안하면 시의적절한 논의가 아닐 수 없다.무지한 까닭에, 또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시켰다는 증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호무역주의는 누구도 언급해서는 안 될 금기로 여겨왔다.

이번 위기는 겉으로는 은행과 은행가의 무분별한 행동, 무책임한 중개인들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장 투명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없었던 것도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이번 위기는 엄연한 현실이다. 가계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가계의 변제능력도 급전직하로 떨어진 현상은 물론이고, 임금 디플레이션, 즉 부의 분배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몫의 하락도 수입품이나 생산의 해외 이전 가능성 등 자유무역의 압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유무역은 자주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임금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조세경쟁을 통한 간접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자유무역 하에서는 기업이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등한시하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서, 사회적 부담을 임금 노동자에게 이전함으로써 국내 기업에게 일정한 수준의 이익을 보장해주려 하기 마련이다. 이는 생산 시설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한 필연적 조치다. 

미국의 경우, 국민소득에서 노동 임금이 차지하는 몫은 2000년에는 54.9%였지만 2006년에는 51.6%로 떨어졌다. 1929년 이후로 가장 낮은 수치이다.1) 2000~2007년의 기간에 실질 평균임금은 01.%밖에 증가하지 않았고,2) 가계 평균소득은 실질적으로 0.3%나 하락했다. 가난한 가계의 경우에 하락폭이 훨씬 컸다. 같은 기간에 하위 20%의 소득은 매년 0.7%씩 하락했다.3) 2000년 이후로 시간당 임금의 증가폭도 생산성의 증가에 미치지 못했다.

GDP의 노동임금 비중 날로 줄어

자유무역의 압력에 각국 정부는 사회적 부담금을 기업에서 임금 노동자에게 떠넘겨야 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경우, 건강보험비(+68%)와 교육비(+46%)는 크게 증가했지만,4) 사회적 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주민의 수는 13.9%에서 15.6%로 늘어났다.5)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세계화가 죄인은 아니다"고 일찍이 주장했지만, 자유무역을 통한 임금 디플레이션이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6)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 미국의 가계 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가계 부채는 1998년에 국내총생산의 63%에 불과했지만 2007년에는 100%로 증가했다.

 

유럽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로 존에서 자유무역에 유럽중앙은행의 정책이 더해진 결과다. 미국의 모델을 따른 스페인, 아일랜드, 영국 등과 같은 국가에서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수치에서 국민의 빈곤이 심화됐다.7) 임금 디플레이션으로 유럽에서도 가계 부채가 급증해, 2007년에 국내총생산의 100%를 초과했고, 그로 인해 미국과 유사하게 채무변제능력의 상실이란 현상이 초래됐다.

 

미국 모델과 상대적으로 거리를 둔 국가에서도 임금 디플레이션 현상은 뚜렷하다. 독일은 하청의 형태로 공장의 대대적인 해외이전 정책을 추진해왔다. 게다가 유럽연합이 중앙유럽과 동유럽의 국가들까지 포용하면서 '독일에서 생산된 제품'(Made in Germany)은 자연스레 '독일에 의해 생산된 제품'(Made by Germany)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독일 정부는 기업에게 부담시키던 비용의 일부를 가계에 이전시켰다(부가세가 대표적인 예). 이런 전략에 힘입어, 독일은 임금 디플레이션의 일부를 유로존의 상대국들에게 재수출해 떠넘기며 막대한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계 부채의 걱정스런 증가(국내총생산의 68%)에도 불구하고 국내 수요는 침체돼 성장률은 무척 낮았다.

프랑스의 경우, 최근의 정권들은 이른바 '구조개혁' 정책으로 세계화에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총노동시간이 길어지고 사회적 부담금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면서, 자유무역에 따른 임금 디플레이션 효과를 피할 수 없었다. 프랑스 생활환경연구소(Credoc)가 확인해주듯이, "중산계급의 상황은 고소득층의 상황보다 저소득층의 상황과 비슷"하게 됐다.8)
 
구조개혁과 가계 파산

이런 정책은 주로  임금이 낮고 사회적 규제나 환경 규제가 거의 없는 국가로 공장을 이전시키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고용을 위협당하면서 사회적 기득권과 임금 인상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 특징이다.

기업의 경영진은 공장을 해외에 이전시키겠다고 협박하면서 과거에 체결된 협상과 사회적 약속을 무산시킨다. 이런 협박은 임금 노동자의 건강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노동에 따른 스트레스가 병적인 수준으로 상승한 것도 이런 압력에서 비롯된 것이다.9) 세계 각국의 질병 연구 보고서에 확인되듯이 이런 질병에 따른 의료비가 국내총생산의 3%를 차지한다면,10)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주요 국가에서 임금 디플레이션과 사회 재정의 악화 간에 논리적 관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프랑수아 피용 내각을 비롯한 과거의 프랑스 정부들은 사회 재정의 악화를 이유로, 노동자에게 많은 권리를 빼앗는 핑계거리로 활용하며 그 비용을 임금 노동자들에게 이전시켰다.

따라서 '구조개혁'은 많은 가계를 채무변제불능 상태로 전락시키는 데 직간접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미국과 영국과 스페인의 경우는 가계의 채무변제능력 상실이 주택금융위기의 주된 원인이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가족의 해체 위기와 구매력의 상실로 나타났다. 타국의 은행에 비해 은행이 무척 보수적으로 운영된 프랑스의 경우도 2000년까지는 가계 부채가 국내총생산의 34%로 안정세를 유지했지만. 2007년에는 47.6%로 급증했다. 10여 년 전부터 라인 강의 양안 모두에서 '가난한 노동자'가 출현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정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임금 디플레이션의 뿌리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추진한 자유무역의 세계화를 근거로 극동의 국가들이 국제무역에서 1998~2000년부터 취한 약탈적 정책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극동 국가들의 이런 정책은 1997~1999년의 금융위기에 따른 충격의 반발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무능과 태만 때문에 중국은 자국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무역과 금융으로 벌어들인 흑자를 바탕으로 아시아 위기의 상당 부분을 흡수하면서 이웃 국가들이 재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극동 국가들 공격적 무역정책

중국과 이웃 국가들은 비슷한 위기가 닥칠 경우에 대비해 상당한 외환을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극동 국가들은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대적인 평가절하와 디플레이션 정책을 취하는 동시에 국내 소비를 억제해, 국제 무역에서 공격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이런 조치로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임금이 하락했고, 극동의 신생국가들이 엄청난 액수의 외환을 보유하게 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조치는 무척 효과적이었다(중국의 외환보유고만 1조 8840억 달러).11)

중국 경제는 30년 전부터 신속히 선진국의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이제 직간접적인 임금비용은 거의 변하지 않는 추세다. 수출의 질적 향상으로 전체 산업고용인원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국가들을 기준으로 한 국가의 수출품을 측정하는 유사성 지수가 중국에서는 물론이고 다른 신생국가에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12) 개발도상국은 단순한 상품의 생산에 집중하고, 선진국은 정교한 상품을 생산한다는 국제 분업의 신화가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유럽연합이 문호를 개방해 신규 가입국을 받아들이고, 그 국가들의 전략과 맞물리면서 임금 디플레이션은 유럽연합에서도 어렵지 않게 자리 잡았다. 체코 공화국, 슬로바키아, 루마니아와 같은 국가들은 재정 덤핑(fiscal dumping)과 환율 우대, 사회적 비용의 면제나 할인, 환경규제에서의 특례 적용 등과 같은 정책을 추진해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앞장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헝가리와 폴란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국가들의 규모를 감안할 때 투자자들이 이런 국가에 투자한 이유는 해당 국가의 국내 시장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그 국가들은 유럽연합의 전통적인 중심 국가들에 재수출을 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13)
 

 


자유무역, 국제교역 왜곡

이런 임금 디플레이션이 다른 국가의 발전을 위해 감수해야 할 대가라는 지적이 틀리지는 않다. 세계무역기구가 가난한 국가들에게 가용한 자유무역의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2003년에 처음 발표된 결과는 약 8000억 달러의 교역 증가가 예상된다며 환호했지만, 수정이 거듭되면서 이런 추정은 여지없이 무너졌다.14) 그런데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때 실제로 사용된 모델은 자유무역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고안된 것이었다. 예컨대 관세 장벽을 없앨 때 예상되는 소득의 감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15) 소득의 감소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세계은행과 세계무역기구가 중국을 '가난한 국가'에 포함시킨 것도 논란의 여지가 많았다. 중국을 가난한 국가에서 제외하면 어떤 식으로 분석하더라도 결과는 부정적이었다.16)

선진국 노동자의 소득 감소가 신생 국가의 노동자에게 이전되지는 않았다. 소수의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따라서 부자들의 재산은 지난 10년 동안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미국의 경우, 상위 0.1% 부자가 1985년에는 국민소득의 2.9%, 1995년에는 5%, 2005년에는 7.5%를 차지했다. 2005년의 수준은 1929년의 수준(7.6%)과 엇비슷했다.

원인이 같으면 결과도 같기 마련이다. 해외에서 이전된 투자로 혜택을 누린 국가들이 처음에 빠른 성장을 구가하겠지만, 유럽과 미국의 대기업에게 도움을 받아 안착한 부분을 언젠가는 포기해야 한다. 예컨대 선진국 노동자들의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빈곤으로 소비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현재의 위기가 초래됐다. 이런 결과는 수출국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자유무역, 기업의 해외이전, 임금 디플레이션 등으로 이익을 거둔 쪽이 손해 본 쪽에 이익을 분배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보호무역주의를 배척할 때 흔히 언급되는 또 하나의 신화가 있다. 1929년의 위기를 맞아 취해진 대책들이 국제무역을 붕괴시키면서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주장이다.17) 그러나 위기의 주된 요인들은 통화의 불안정, 운송비의 상승, 국제 유동성의 위축이었다(박스 기사 참조). 자유무역 옹호자들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변심을 의도적으로 입에 담지 않는다. 케인스는 1920년대 초 만해도 자유무역의 열렬한 옹호자였지만 1933년부터 보호무역의 대변자로 변신했다.18) 케인스는 그후  194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통화제도와 국제무역을 재편하려던 그의 입장은 보호무역주의에 근간을 두긴 했지만 자급자족 경제를 두둔하지는 않았다.
 
보호무역 회귀로 국제경제 정상화

외국과의 교역 자체를 거부하는 자급자족 경제와 달리, 외국과의 교역을 조절할 수 있는 보호무역적 조치들이 현재의 상황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가계의 채무변제능력을 회복시키고, 수요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임금의 임상 정책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자유무역을 손대지 않고 임금을 인상시킨다면 위선에 불과하고, 우매한 짓이기도 하다. 게다가 보호무역주의만이 오늘날 유럽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사회보장제도와 조세구조의 악화를 멈출 수 있다.

물론,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한다고 자동으로 기업의 행태까지 변할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확실하게 보호받게 되더라도 경영자는 자신이 유리한 입장을 계속 유지하려 노력하겠지만, 노동자를 위협하던 결정적인 무기를 잃게 된다.

예컨대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산업국가에선 경영자가 비용을 최대한 줄여 생산해야 한다는 압력 때문에 직간접적인 임금 디플레이션(사회적 부담을 임금 노동자에게 이전)이나 공장의 해외이전과 실업,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게 현실이다. 보호무역주의는 경영자에게 그런 무기를 빼앗는 동시에, 임금 노동자는 생산된 부의 유리한 분배를 강요하는 투쟁을 재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되돌려주는 효과를 갖는다. 물론 보호무역주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사실 경제에 만병통치약이 있을 순 없지만 보호무역주의가 필요조건이란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이 쯤에서 보호무역주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익을 증대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기득권을 보존하고 확대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저임금정책을 시행하는 국가에게 불이익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이 선진국의 수준에 이르렀으면서도 그에 걸맞는 사회 정책이나 환경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국가에 불이익을 주자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국제무역이 전 세계를 빈곤에 몰아넣는 결과를 조금이라도 막아보자는 것이다.
 

유럽연합과 '보호무역주의'의 관계

유럽연합의 상황은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유럽공동체 간에 관세를 다시 부활시킨다면, 유럽의 경제 공간에서 지역 간의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조세, 사회적 부담금, 환경 등에서 덤핑 정책이 난무할 가능성이 무척 크다.

따라서 공동체 간의 관세 이외에, 1960년대에 시행하던 '통화보상총액제'의 부활을 생각해봄직하다.19) 즉 환율의 차이를 보상하고, 유로존과 그 밖의 유럽연합 회원국들 간의 사회적이고 환경적 기준 간의 차이를 상쇄하기 위한 세금을 잠정적으로 책정하는 것이다. 이는 유럽연합 내에 갈등을 초래할 염려가 있긴 하다. 그래도 모두 합의한 대책의 시행이 궁극적으로 최선의 해결책이라면, 프랑스가 일방적으로 내놓은 대책이라도 논쟁을 시작하는 불씨가 될 수 있다.

유럽 공동체 간에 새로 부활시킨 관세로 얻은 총액은 유럽사회기금을 조성하고, 유럽연합과 중기적 관점에서 의견을 함께 하며 사회복지와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외국을 원조하는 데 사용돼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사회정책과 환경정책을 일치시키기 위한 기금이 충분히 조성될 때 유럽연합의 회원국들은 두 기준을 맞추려는 노력을 조금씩 실천해 나아갈 것이다.20)

보호무역주의와 보상총액제에 대한 대안은 간단하다. 사회정책과 환경정책에서 남의 기준을 강요받거나, 아니면 우리 자신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이에 비해 자유무역은 사회·경제적 체제에서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제도이다.

사회주의자와 환경론자의 원대한 꿈인 하나의 '유럽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온갖 시도, 쉽게 말해서 조세제도를 일치시키려는 온갖 시도가 실패한 데서 증명되듯이, 사회정책과 조세제도 및 환경정책의 덤핑 전략에 불이익을 주는 대책이 없다면 '특례법'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기업가의 시각에서 보면, 자유무역에 유로화의 경직성이 더해지면서 불법 이민을 재촉했다. 불법 노동자를 현재의 사회관련법으로는 다룰 수 없다. 따라서 불법 이민자는 외국과의 경쟁이란 압력에 직면해 사회적 권리의 실질적인 하락과 해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각국의 정부가 뭐라 주장하든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는 피할 수 없게 됐다. 보호무역주의는 부정적 요인이 되기는커녕 안정된 기반 위에서 내수 시장을 재건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 또한 가계와 기업의 채무상환력을 크게 개선하는 효과도 가질 것이다. 따라서 보호무역주의는 현재의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우상도 없고 터부도 없는 공개 토론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편견과 음해
30년대 국제무역 위축 '통화 불안정, 운송비 상승' 탓

 자유무역의 옹호자들은 반대론자들의 반론을 꺾기 위해 역사까지 왜곡하며, 1929년 대공황 이후에 취해진 보호무역주의적 조치로 위기가 심화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무역은 보호무역주의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들로 위축됐다.
 첫째로는 주요 산업국가들의 국내 생산이 국제무역의 위축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생산의 감소가 해당 국가들이 겪고 있던 불황의 원인이었다면, 거꾸로 국제무역의 위축 속도가 더 빨랐어야 했다. 둘째로는 국내총생산에서 상품 수출이 차지하는 몫이 서구의 주요 산업국가에서 1929년부터 1938년까지 9.8%에서 6.2%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공황이 닥치기 직전에 최고 정점, 예컨대 1913년의 12.9%에 달했던 것도 아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1) 끝으로는 역사적 사실의 연대적 기록이 자유무역론자들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무역이 1930년 1월부터 1932년 7월 사이에 위축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기는 보호무역주의적 조치가 시행되기 전이었다. 게다가 일부 국가에서 자급자족적 정책을 추진하기 전이기도 했다. 물론 미국이 1930년 여름부터 보호무역주의적 조치를 시행하기는 했지만 그 효과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엄격히 말해서, 국제무역이 위축된 주된 원인은 국제 유동성이었다. 국제 유동성이 1930년(-35.7%)과 1931년(-26.7%)에 붕괴됐다. 그런데 사용되지 않은 선복량의 비율이 1932년 1/4분기까지 급속히 증가했지만 곧 떨어져 안정세를 유지했다.
 유동성이 국제무역에 직접적으로(지불능력), 혹은 간접적으로(운송수단을 용선하는 상인의 능력)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위의 표에서 특이한 점은 없다.
 신용 위축도 국제무역을 위축시킨 주된 원인이었다. 따라서 유동성 문제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다.2) 미국 경제조사국이 최근에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30년대 국제무역을 위축시킨 주된 원인은 통화의 불안정과 운송비의 급격한 상승이었고, 통화의 불안정이 결국 국제 유동성을 위기에 빠뜨렸다.3)
 독일과 이탈리아의 자급자족적 대책과 구분돼야 마땅한 보호무역주의적 조치가 없었더라면,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 시행되지 못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위기는 더 심화됐을 것이다. 또한 보호무역주의적 조치 덕분에, 자칫하면 자급자족 경제로 전락할 위험이 있던 일부 국가도 국제수지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보호무역주의는 국가의 변제능력을 보장해주고, 1993~1934년 겨울 독일의 경우처럼 외국과 담을 쌓고 완전한 관리 경제에 몰입하는 폐해를 예방해준다는 점에서 자급자족 경제의 충분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보호무역주의가 2차대전의 원인이었다는 주장은 독일의 국가사회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몰이해이거나 진실의 철저한 기만이다.

 

 


 

1) Paul Bairoch et Richard Kozul-Wright, <Globalization Myths: Some Historical Reflections on Integration, Industrialization and Growth in the World Economy>, Document de travail de la CNUCED n°113, UNCTAD/CNUCED, 제네바, 1996년 3월.
2) James Foreman-Peck, A History of the Worlld Economy: International Economic Relations Since 1850, Harvester Wheatsheaf, New York, NY, 1995, p. 197.
3) Antony Estevadeordal, Brian Frants et Alan M. Taylor, <The Rise and Fall of World Trade, 1870-1939>, NBER Working Papers Series, 미국 경제조사국, 연구 보고서 9318, 케임브리지, 2002년 11월.

 

 


 

*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교수부장 겸 산업화양식 비교연구센터(CEMI-EHESS)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제국은 무너졌다 - 미국과 함께 몰락한 신자유주의, 딜레마에 빠진 세계> 등이 있다.

1) 미국 상무부, Aviva  Aaron-Dine와 Isaac Shapiro, <Share of National Income Going to Wages and Salaries at Record Low in 2006>, 예산 및 정책 우선순위 센터(Center for Budget and Policy Priorities), Washington DC, 2007년 3월 29일.
2)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임금 노동자의 절반이 그 이상을 벌고, 절반이 그 이하를 번다. 합동경제위원회, 미국 상원, 워싱턴, 2008년 8월 26일.
3) 인구조사국, 미국 상무부.
4) 미국 의회, '합동경제위원회 보고', 2008년 6월.
5) 미국 의회, '합동경제위원회: 보험에 들지 않은 미국인의 수가 부시 대통령의 취임 이후로 720만 명이 증가했다',
2008년 8월 26일.
www.jec.senate.gov
6) 폴 크루그먼, <무역과 불평등에 대한 재고>,
복스(Vox), 2007년 6월 15일, voxeu.org
7) 마이크 브루어, 앨리사 굿먼, 조너선 쇼, 루크  시비에타, <2006년 영국의 빈곤과 불평등)>, 재정연구소, 런던, 2005.
8) 레지스 비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및 중산계급: 지난 25년 동안 프랑스 생활환경의 변화에 대한 연구>, 전략분석연구소 학술 심포지엄, 파리, 2007년 12월 10일.
9) 프랑스 노동부 산하 조사연구통계지원국, <Efforts, risques et charge mentale au travail. Rㅤㅁㅐㄼsultats des enquㅤㅁㅐㄼtes Conditions de travail 1984, 1991, et 1998>, Les Dossiers de la DARES, 특별호 99권, 프랑스 출판공사, 파리, 2000. 파트릭 르제롱, <노동 스트레스>, 오딜 자곱 출판사, 파리, 2001.
10) 스웨덴과 스위스의 자료로는 이사벨 니드해머와 마르셀 골드버그 외, <Psychosocial factors at work and subsequent depressive symptoms in the Gazel cohort>, Scandinavian Journal of Environmental Health, vol. 24, n° 3, lieu de publication ? 1998을 참조할 것. 프랑스의 경우는 소피 브장, 엘렌 쉴탕 타이엡, 크리스티앙 트롱탱, <Conditions de travail et coㅤㅁㅏㄼt du stress: une ㅤㅁㅐㄼvaluati-on ㅤㅁㅐㄼconomique>, Revue franㅤㅁㅒㅀaise des affaires sociales, 제2권, 파리, 2004.
11) IMF가 2008년 8월 31일에 발표한 액수. 일본은 1조 2000억 달러, 유로존은 5550억 유로를 보유하고 있다.
12) OECD와의 수출품 유사성 지수는 중국의 경우에 1972년 0.05에서 2005년에 0.21로 증가했다. 한국의 경우는 0.011에서 0.33, 멕시코는 0.18에서 0.33, 브라질은 0.15에서 0.20으로 증가했다. Peter K. Schott, <The relative sophis-tication of Chinese exports>, Economic Policy, n° 55, 런던, 2008년 1월, pp. 7-40, p. 26을 참조할 것.
13) 러시아에 투자한 기업들은 러시아의 국내 시장을 목표로 삼기는 했다. 러시아 정부가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고 책정한 관세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14) 프랭크 애커먼, <The Shrinking Gains from Trade: A Critical Assessment of DOHA Round Projections>, Global Development and Environment Institute, Working Paper n° 05-01, Tufts University, Medford, Ma., Octobre 2005.
15) D.K. Brown, A.V. Deardorff et R.M. Stern, <Computational Analysis of Multilateral Trade Liberalization in the Uruguay Round and Doha Development Round>, RSIE Discussion paper n° 489, 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 MI, 2002. <Doha Rounds Development Impacts>, RIS Policy Briefs n°19, New-Delhi, Novembre 2005, p. 3.
16) <Libre-ㅤㅁㅐㄼchange, croissance et dㅤㅁㅐㄼveloppement. Quelques mythes de lㅤㅁㅐㄼconomie vulgaire>,  Revue du Mauss 제 30권, (2ㅤㅁㅏㅊme semestre 2007), 라 데쿠베르트, 파리,
17) Charles P. Kindleberger, <Commercial Policiy Between the Wars>, Peter  Mathias & Sidney Pollard, The Cambridge Economic History of Europe, vol. 8,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 de Harold James, The End of Globalization : Lessons from the Great Depression,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Mass, 2001.
18) John Maynard Keynes, <National Self-Sufficiency>, Yale Review, 1933.
19) 1960년대에 각국의 국내 가격을 일치시키기 위해 유럽 내에서 세금 혜택을 주거나 보조금이 지급됐다.
20) Bernard Cassen, <Inventer ensemble un protectionnisme altruiste>, Le Monde diplomatique, 2000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