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그날의 진실

Spécial·차베스 없는 베네수엘라

2013-04-10     모리스 르무안

2002년 4월 베네수엘라의 반정부 세력은 우고 차베스를 축출하기 위해 쿠데타를 시도한다. 이들은 볼리바리안 활동가들이 반(反)차베스 시위자들을 살해했다는 조작된 사실을 유포한다.

2002년 4월 11일, 30만 명이 넘는 반정부 시위대가 수도 카라카스 동쪽에 위치한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DA) 본부를 향해 침묵 행진을 벌였다. 사전에 계획된 음모가 모습을 드러낸 건 시위대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을 때다. 시민사회가 독재정권에 대항해 들고일어났다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희생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오후 1시, 카라카스 서쪽에 위치한 대통령궁. 대통령 직속 장관 라파엘 바르가스가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다른 지역은 조용하다. 하지만 카를로스 오르테가(친자본 성향의 베네수엘라 노총(CTV) 위원장)가 텔레비전에 출연해 미라플로레스(대통령궁)를 향해 행진할 것을 촉구했다. 이건 음모다." 1시 40분. 중간급 관리들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태 전개의 추이를 예상한다. "그들은 고속도로를 따라 행진하고 있다. …그들이 시위를 계속하도록 내버려두었다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볼리바리안 서클(1)이 나서게 되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혼란 속에 가려진 의문의 저격수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쉽게 마키아벨리적이 된다. 국가 경비대 최고 사령관은 불가피한 사태를 막기 위해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그사이 반정부 시위대는 미라플로레스궁 100m 전방까지 밀어닥쳤고, 차베스 지지자 수만 명이 각목과 돌로 무장한 채 대통령궁 앞에 버티고 섰다. 양쪽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그 사이를 막아선 국가 경비대원 수는 달랑 15명뿐이었다. 그때 참으로 믿기 힘든 광경이 벌어졌다. 그중 가장 고참으로 보이는 군인이 불안에 떨며 사진기자들을 향해 부탁했다. "누가 휴대전화 좀 빌려줄 수 있나요? 지원군을 요청해야 합니다." 결국 이들은 최루탄으로 상황을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날 총 15명의 사망자와 350명의 부상자(그중 157명은 총상)가 발생했다. 볼리바리안 서클 중 몇몇이 평화로운 시위대에 악랄하게 총을 쏘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태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10여 층 높이의 주변 건물 3곳에 은닉한 정체불명의 저격수들이 총을 발사해 희생자 4명이 생겨났다. 삽시간에 현장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고, 그들은 반정부 시위대 중 한 명을 정조준 저격해 살해했다. 혼란이 극도에 달하고 사람들이 뒤엉켰다.

엘실렌시오 전철역 근처에서는 국가 경비대가 돌을 던지는 시위대에 연신 최루탄을 쏘다가 수평사격으로 총탄을 발사하기도 했다. 반정부 성향의 시장 알프레도 페냐가 장악하고 있던 시경찰국 병력 중 일부 부대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그러나 다른 경찰관들은 수칙을 준수했다).

<엘 나시오날> 2002년 4월 13일자는 대통령 경호부대가 "3명의 저격수를 체포했다. 2명은 (카라카스 동쪽 지역) 경찰, 1명은 시경찰국 소속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현장에 있던 한 젊은이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멍한 얼굴로 말했다. "2명이 눈에 띄었다. 둘 다 제복 차림이었다." 다음날, 쿠데타 주모자 비센테 라미레스 페레스 해군 중장이 방송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대 지휘관에 대한 대통령의 모든 전화 통화가 통제하에 있었다. 우리는 오전 10시에 회의를 열어 작전을 계획했다." 무슨 작전을 말하는 것일까? 10시라면 반정부 시위대가 미라플로레스궁으로 아직 방향을 틀지 않았을 시간이다.

서둘러 쿠데타를 지지한 미국과 스페인

4월 12일 대통령에 취임한 경영인들의 우두머리 페드로 카르모나는 국회와 모든 행정, 사법 기구를 해산하고 민선 주지사와 시장들을 해임했다. 모든 권력을 장악한 그는 애리 플레셔 백악관 대변인에게서 축하 인사까지 받았다. 그는 베네수엘라 경찰과 군대가 "평화로운 시위대를 향한 발포를 거절한 것"을 치하한 뒤 간단히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차베스 지지자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탄을 발사했고, 결국 차베스가 하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주기구가 쿠데타를 비난하는 성명을 준비하고 있을 때, 카라카스 주재 미국 대사와 스페인 대사는 새 대통령에게 서둘러 축하 인사를 보냈다.

그 뒤의 일들은 알려진 대로다. 차베스는 더 큰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항복했지만 대통령직을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4월 13일, 수십만 명에 이르는 차베스 지지자들이 전국의 거리와 광장으로 쏟아져나왔다. 오후에는 대통령 경호부대가 미라플로레스궁을 탈환했고 일부 장관들이 사무실로 복귀했다. 헌법 수호를 결의한 마라카이 주둔 공수부대 42여단 사령관 라울 바두엘과 몇몇 지휘관들이 군 통제권을 되찾았다. 대중의 걷잡을 수 없는 반발과 군부 내 무력 충돌을 염려한 군 수뇌부는 분열된 채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날 밤, 결국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의 합법적 대통령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반정부 세력은 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채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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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스 르무안 Maurice Lemoin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

(1) 차베스를 지지하는 대중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