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혹은 유럽의 미래

2013-04-10     안젤로 마스트란드레아

몇 년 전부터 이탈리아의 나폴리는 과거 공산주의와 노동자가 우세하던 문화수도이자, 카모라(범죄조직)·임시직·짝퉁의 도시라는 두 가지 모습을 보인다. 경제위기로 실업률이 증가하고 생산직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나폴리 주민은 점점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들며 각개전투의 자세로 삶을 이끌게 됐다. 나폴리의 모습은 조만간 다른 유럽 국가의 도시에서도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의 전조가 아닐까?

전설에 따르면 스페인의 라 가르두냐 프리메이슨에 속해 있던 톨레도의 기사 오소, 마스트로소, 카르카뇨소가 1400년 이탈리아의 에가디제도로 피신하면서 시칠리아의 '코사 노스트라', 칼라브리아의 '은드란게타(또는 드란게타)', 나폴리의 '카모라' 등 세 마피아의 시초가 됐다고 한다.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그 뒤로 연일 복수전이 이어지고 있다.

남아프리카 출신 조각가 윌리엄 켄트리지가 제작한 것으로, 도심의 톨레도 지하철역 출구에 설치된 말을 탄 남자상이 '톨레도의 기사', 다시 말해 카모라를 설립한 카르카뇨소라는 사실을 알고서 나폴리의 인텔리겐치아는 얼마나 경악했을까. 카모라는 법조인 출신 나폴리 시장 루이지 드 마지스트리스가 이끄는 로소아란치오네(1) 시의회가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반국가단체이다.

이 사건이 경솔함과 무지, 아니면 의도적 선택의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나폴리의 모순을 고스란히 드러낸 점은 분명하다. 나폴리는 공공과 문화 분야에 투자하면서 귀족적인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부각시키는 중이다. 유럽에서 가장 폭력적이라는 교외와 도심을 연결하는 지하철이 아니라 예술작품으로 가득한 신축 지하철역사 겸 미술관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 한편 나폴리는 끊임없이 재등장하는 뿌리 깊은 과거의 망령으로 고통받고 있다. 지난여름 해변에서 한 대부가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마약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범죄조직 간 전쟁이 일어났다. 마약은 나폴리 북부의 스캄피아에서 매일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키는데, 이들 대부분이 어린아이다. 또한 국립통계원(Istat) 자료에 따르면 젊은층의 실업률이 47%에 달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자본주의 중세가 시작됐다"

유럽 위기를 평가하고 발전 방향을 예상하려는 사람들은, 월터 베냐민이 도시가 세워진 응회암에 빗대어 '다공성의 도시'라고 부른 나폴리를 방문해봐야 한다. 수백 곳의 불법제작소에서 해적판 CD부터 루이뷔통, 프라다 모조품까지 각종 위조품을 태연하게 생산한다. 새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네오멜로디 가수들은 각자의 생산 및 판매 라인을 갖추고 있는데, 카모라는 이를 이용해 돈세탁을 하거나 지령을 돌린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학 연구원 조지프 할레비는 나폴리에서 유럽의 미래를 읽을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일 마니페스토>의 유명 기고자이기도 한 그는 "유럽 전역에서 '자본주의 중세'가 시작됐다"고 한다. 그는 어떻게 반계몽주의의 새 시대를 상상했을까? "위대한 나폴리처럼 매일 아침 사람들은 옷을 걸치고 그날 먹을 양식을 벌기 위해 거리로 나섭니다." 영화 수십 편을 통해 각인된 전형적인 나폴리식 삶의 기술이 이제 유럽식 모델이 되는 것일까?

2007년 금융 경제위기는 공장 문을 닫게 만드는 대신 상부상조 조직, 지하경제, 사회적 관계에 암암리에 영향을 미쳤다. 적자에 시달리는 노인들은 이제 전통적으로 맡아 일하던 세차 자리를 두고 더욱 가난한 이민자들과 겨루게 됐다. 사회운동가 안드레아 모르니롤리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 시절 예산 삭감에 반대한 자신의 조직 데달루스를 비롯한 150여 개 단체와 협동조합이 연합한 조직인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사치가 아니다' 위원회에 참여했다.

그의 이야기는 전율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17년 전 나폴리에 도착했을 때 스페인지구에서 토리노의 산 살바리오 다문화지구에서 겪은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을 접했다. 그렇지만 모두 힘들고 어떻게든지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민자들과 분쟁과 상호 존중에 관한 암묵적 합의는 있었다. 수천 명이 다수의 임시직으로 먹고살던 '회색경제'는 오늘날 끝이 났다. 그러자 합의도 깨졌다. 없는 사람들끼리 경쟁하기 시작했다. 인종 차별로 인한 갈등도 전례 없이 급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부랑자가 되어 떠돌고 남녀 할 것 없이 매춘도 증가했다." 2008년 이래로 노숙자 쉼터에 묵는 이탈리아인의 수가 3배로 늘었다. 시는 여러 단체의 도움을 받아 부르봉 왕가가 18세기 중반 건설한 빈자를 위한 왕립구제원의 문을 다시 열려고 계획하고 있다. 이 구제원은 유럽 최대의 노숙자 숙소가 될 것이다.

사회학자와 경제학자가 '거리의 경제'라고 미화해 부르는 지하경제의 규모를 파악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리오네 사니타를 반드시 가봐야 한다. 여기는 스페인 왕 조제프 보나파르트(1768~1844)가 19세기 초 카포디몬테 왕궁이 있는 언덕으로 연결하는 다리를 세우게 한 후 도시 중의 도시가 된 곳으로, 꼬불꼬불 얽히고설킨 골목길에 현재 7만 명이 살고 있다.

대안세계화운동의 유명 인사인 알렉스 자노텔리 콜롬비아 선교사도 이곳에서 살고 있다. 그는 케냐 고로고초 빈민가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펼치다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 지역의 사회적 파탄이 상당 부분 미디어 공세로 가정과 의식을 파고드는 데 성공한 베를루스코니즘 때문이라고 평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경제위기말고도 환경위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문제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적긴 하지만 말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현상은 인류학적 위기"라고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여자아이들 대부분은 벨리나(3)를 꿈꾸고 남자아이들은 오토바이나 마약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이곳을 나가려는 아이들은 전혀 없고, 한 번도 바다를 본 적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여기 아이들은 고로고초에서 본 동년배 아이들보다 훨씬 폭력적이고 분노에 차 있다. 베를루스코니즘은 이 아이들에게 남아 있던 가족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마저 지워버렸다"고 애통해했다. 그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은 디에고 마라도나가 활동하던 시절부터 이어져온 도시 축구팀에 대한 열정뿐이다.

급진좌파가 지배하는 나폴리의 역설

환경문제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쓰레기와 시민의 분노로 가득한 도시 이미지는 2009년 전세계로 퍼졌다. 이제 이 문제는 해결된 것 같다. 모네차('쓰레기'를 일컫는 나폴리 방언)는 네덜란드로 보내 소각됐다. 그렇지만 도시의 관문인 줄리아노에는 과거의 만행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든 에코볼 800만 개를 쌓은 기념물이 남아 있다. 플라스틱이 유발할 독성물질 때문에 소각도 처리도 할 수 없는 이 기념물은, 작은 마을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며 피라미드나 콜로세움처럼 그 자리에 남아 뒤늦은 자본주의 문명화의 쇠퇴를 증명할 것이다.

1991년 바뇰리의 일바 제강소가 문을 닫으면서 산업화의 꿈도 접었다. 그래도 '거리의 경제'에서 팽배한 '각자 자기 앞가림만'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자의식을 갖춘 노동자계급을 형성했다는 소중한 결과물은 얻었다. 그 후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스텔람마레 디 스타비아의 조선소가 어려움을 겪었다. 나폴리 외곽 포밀리아노 다르코에 있는 피아트 공장의 공장장 세르지아 마르키온네는 노동자의 생활보장 내역을 축소하고, 사용자 쪽과의 협조를 거부한 노조를 해체시켜 사용자 중심의 노사관계를 구축했다. 법원이 노조탄압 혐의로 노동자 19명을 복직시키라고 명령했지만, 이탈리아노동총연맹(CGIL) 산하 최대의 금속노조(FIOM) 가입자들은 새로운 공장에 다시 출근하도록 선택받은 2091명에 끼지 못했다.

CGIL에 따르면, 나폴리에서 지난 3년간 7만5천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중 2만3천 개는 생산업, 3만 개는 서비스업, 8천 개는 농업, 약 1만 개는 건축업 분야라고 한다. 나폴리가 주도인 캄파니아주의 국민총생산(GNP)은 10%나 하락했다. 50살이 넘어 노동시장에서 소외당하지만 아직 연금은 받을 수 없는 노동자인 에소다티도 등장했다.(4) 이미 나폴리에서만 3만 명이 넘는다. 월급을 몇 달 뒤에야 받는 일이 표준이 된지라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상황이 낫지도 않다. 이런 분위기는 지속적인 불안감을 조성한다. 2012년 12월 19일 나폴리 대중교통 운수 종사자들은 13번째 임금이 지급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돌자, 동시 파업을 일으켜 도시 전체를 마비시켰다.

2011년 5월부터 급진좌파가 이런 패러다임의 도시 나폴리를 지배한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보인다. 이들은 우파뿐만 아니라 민주당도 적으로 돌렸다. 모순과 분쟁으로 점철된 이곳에서 강력한 사회적 반목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루이지 데 마지스트리스가 시장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뭔가 다른 생산 모델이 필요하다"

나폴리 프레데릭2세대학과 파리 제1대학에서 공법를 가르치는 알베르토 루카렐리 '공유재 및 참여민주주의 담당' 부시장은 "수도사업이 다시 공공서비스 분야로 편입됐고, 시민들의 모임이 창설되어 주민들이 토론 의제를 시에 요청할 수 있게 됐다"며 기세등등했다. 그는 현재 민간에 양도한 분야를 다시 시 관할에 두게 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검토 중이다.

열기가 넘치는 시의회 회의의 휴식 시간에 그는 "우리의 도전 과제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이론을 넘어서는 공유 민주주의를 설립하는 것"(5)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의 자주관리가 모델이다. 그러나 나폴리의 '극좌파' 행정부가 직면한 문제는 만연한 부패와 인기영합술, 적대적 지역 언론 등이 산적해 있다. 나폴리 행정부는 선거를 치르기 전에 민영화와 시 소유 재산의 처분으로 국채를 청산하려는 마리오 몬티 정부에 맞서야 했다. 민주당이 33%의 득표율을 보이며 중도좌파정당이 승리했음에도 지난 2월 급진좌파(시민혁명당)의 처참한 총선 패배는 시의회가 채택한 급진적 민주주의 개혁안 추진이 험난함을 예고한다.

루이지 데 마지스트리스 시장을 지지하는 작가 에르만노 레아(6)도 최근 약간의 실망감을 내비쳤다. 그는 "나폴리는 지역의 잠재력을 활용하고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다른 생산 모델이 필요하다"면서 나폴리 주민이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어야만 이 난국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했다. 인식을 전환시키고 뿌리 깊이 남아 있는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며, 레아가 '불가능에 대한 열정'이라고 정의한 것을 일깨울 수 있는 유토피아, 유럽 전역으로 퍼질 수 있는 유토피아 말이다. 관건은 이 열정을 위협하는 '자본주의 중세'의 극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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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젤로 마스트란드레아 Angelo Mastrandrea <일 마니페스토> 부편집장. 작가 겸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며, 최근 출간된 소설로 <Il trombettiere di Custer>(에디에세·로마·2011)가 있다.

번역 / 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있다.

(1) 공산주의 재건, 노동·공동재·환경을 위한 동맹(Alleanza per il lavoro, i , l’ambiente, ALBA), 가치의 이탈리아(parti du juge Antonio Di Pietro)와 시장이 활동하던 모피멘토 아란치오네(오렌지운동)가 모인 연합.
(2) ‘Naples shows the world how to hop aboard the style train with Art Station’, <데일리 텔레그래프>, 런던, 2012년 11월 6일.
(3) 베를루스코니 방송사의 신인 여배우들을 지칭하는 말.
(4) 몬티 정부의 연금 개혁은, 연금 개시 연령을 남자는 2012년 1월 1일부터 66.3살, 여자는 2014년부터 65살로 연장했다.
(5) 이탈리아 극좌파운동인 ‘노동자의 힘’(Potere Operaio)을 이끌던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미국인 마이클 하트와 <Empire, Multitude and Commonwealth>를 공동저술했다. 이 저서에서 그들은 재산이 개인의 것도, 공공의 것도 아닌 공동의 소유라는 ‘공유’를 바탕으로 한 사회를 제시했다.
(6) 최신작 <La Comunista. Due storie napoletane>, 준티 에디토레, 플로렌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