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페스티벌 시대, 희비극의 갈림길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시대다. 그렇게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만큼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 대중음악 페스티벌 전문기획자가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대중음악 페스티벌을 일일이 세어보니 무려 80여 개에 달했다. 이 정도면 어떤 예술 장르의 페스티벌보다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어느새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이렇게 많아진 것일까?
대중음악 페스티벌 붐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1999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트라이포트 페스티벌'이다. 비록 국내에서 최초로 열린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시도된 적 없는 대형 록 페스티벌이고, 딥 퍼플,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같은 최정상급 밴드들이 참가한다는 소식에 수많은 록 마니아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폭우로 인해 극적으로 중단돼버린 안타까운 사건은 그 후로 오랫동안 전설이 되었다. 그날의 아쉬움은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같은 국내 인디 뮤지션 중심의 페스티벌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06년부터 시작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한국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국내의 해외 팝 음반시장 규모는 획기적으로 성장하지 않았지만, 인터넷을 통해 해외 팝 음악을 빠르게 흡수한 대중음악 팬층은 내한공연이 잇따라 성공하며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이에 기반해 시도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한국에서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팬덤과 운영 시스템, 문화를 구축하며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시대를 새롭게 열어나갔다.
너무 많아진 음악축제·콘서트
그 후 레저문화와 결합되면서 더욱 대중화된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지난여름 무려 9개 페스티벌이 열릴 정도로 많아졌다. 올해 상반기에도 10개의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예정되어 있고, 그중 같은 기간에 열리는 페스티벌이 4개나 된다. 10년 전 불과 한 개의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아쉬웠던 것을 돌이켜보면 실로 상전벽해 같은 변화이다. 이제는 봄·여름·가을·겨울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열리고, 장르도 록·월드뮤직·인디·일렉트로니카·팝·재즈로 세분될 정도로 다양해졌다. 대부분의 페스티벌이 수도권에서 열리지만 광주·울산·부산 등지에서도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열릴 만큼 전국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 비해 해외 팝 음악 시장의 규모가 작은 현실에서 이렇게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많아진 것은 그만큼 대중음악 공연 수요가 많아지고 시장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음악 산업에 대한 분석을 살펴보면 2008~2010년에 이르기까지 음악 공연 시장은 계속 성장하는 추세다. 이런 흐름은 뮤지컬, 클래식, 오페라 등 다른 음악 장르인 경우에도 동일하다. 물론 대중음악 공연 시장 가운데 큰 규모를 차지하는 것은 뮤지컬 시장이고 그 규모는 2010년 기준으로 콘서트 시장의 2배 이상이지만, 2008년에 비해 2010년 콘서트 시장 규모가 약 2배 성장한 것은 명확하게 성장세라는 증거다.
콘서트 시장이 성장한 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장르가 다양해지고 실력 있는 뮤지션 역시 늘어났음에도, 기존 방송매체로는 쉽게 대중과 만날 수 없는 상황과 관계 있을 것이다. 또한 공연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꾸준히 늘어난 것도 관계 있을 것이다. 콘서트 시장이 성장하면서 국내 뮤지션들은 주류와 비주류를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공연을 일상적으로 펼치고 있다. 서울 홍익대 앞의 라이브 클럽과 카페, 중·대형 공연장, 초대형 체육시설 등에 구축된 하드웨어와 인터넷, TV,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신속한 정보 확산 시스템은 장르와 성별, 세대, 취향에 따라 다양한 공연을 소비하게 만들었다. 해외의 주류·비주류 뮤지션 역시 각각의 시장에서 유례없이 활발한 내한공연을 펼치게 했다. 아시아의 변방이던 한국 시장은 연이은 내한공연의 성공과 팬들의 열띤 반응으로 인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감히 상상도 못한 해외의 스타급 뮤지션과 인디 뮤지션의 내한공연이 일상 다반사가 되었고, 이제는 음악 마니아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최근 가창력과 라이브를 중시하면서 뮤지션의 위계를 부여하는 TV 프로그램의 방향 역시 라이브 시장을 활성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공연시장의 성장 추세는 레저문화의 성장과 맞물려 대중음악 페스티벌 시장으로 연결되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문화적 소비와 취향의 소비 추세를 보이고 있는 대중의 소비 패턴은 대중음악 페스티벌을 단지 음악적 욕구를 해소하는 방편이 아니라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의 증표로 사용하게 만들었다. 단지 음악만 즐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자연과 쉼이 있는 여가문화로 대중음악 페스티벌을 소비하게 된 것이다. 이에 발맞춰 쾌적한 환경과 세련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세운 대중음악 페스티벌- 특히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과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의 성공사례는 페스티벌 시장에 대한 관심을 더욱 북돋고 있다.
그렇다면 이대로 충분한 것일까? 전무했던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사시사철, 곳곳에서 다양하게 열리고 있으니 이대로만 가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일단 대폭 증가한 페스티벌의 수는 과연 현재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규모로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인지 되묻게 한다. 비록 공연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상반기 10개의 대중음악 페스티벌과 여름에 유사한 수의 대형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열릴 때 과연 이 페스티벌이 모두 지속 가능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한국의 대중음악 페스티벌 가운데 티켓 판매와 후원, 협찬 등의 수익을 합쳐 적자 이상의 수익을 거두고 있는 페스티벌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지 않고 일반 기업체나 공연기획사가 주최하는 대중음악 페스티벌이라면 자본력이 뒷받침되는 소수 경우를 제외하고 누적되는 적자의 부담을 떠안고 페스티벌을 진행하거나 그 때문에 페스티벌을 중단하게 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라디오헤드 같은 초대형 록 스타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라디오헤드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거두기 어려운 상황은 페스티벌 시장의 거품을 냉정하게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붐을 이루며 새로운 페스티벌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페스티벌이 늘어나는 현상은 당연히 페스티벌 간 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페스티벌 간 경쟁이 콘셉트와 프로그램을 통한 차별화로 이어지지 않고 라인업 경쟁으로만 이어지는 것이다. 누가 더 유명한 뮤지션을 데려오는지에 따라 시장의 반응이 달라지기 때문에 라인업에 대한 과도한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뮤지션의 몸값이 오르게 된다. 당연히 티켓 가격도 오르고, 각종 프로모션 업체의 후원 역시 많아질 수밖에 없다. 지나친 라인업 싸움은 페스티벌 진행 비용을 늘리는 주범이 될 뿐 아니라 페스티벌의 상업화를 부추기고 있다.
홍콩영화를 쇠퇴시킨 건…
그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차별적 콘셉트를 구축해가면서 장기적으로 차근차근 규모를 늘려가는 것이 아니라 유행에 편승해 단번에 이익을 얻으려 하면서 더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무엇보다 잘되는 일부 페스티벌의 콘셉트를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페스티벌 콘셉트가 비슷해지고 라인업도 대동소이해지고 있다. 여기 나오는 뮤지션이 저기도 나오고, 또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페스티벌의 장점은 평소 몰랐던 뮤지션의 음악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음악이 선사하는 다양한 매력을 호흡하는 것임에도 졸속으로 준비된 유사 공연 프로그램만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페스티벌이 재미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 처지에서는 서로 다른 페스티벌에 흥미를 느낄 수 없다. 여기 가나 저기 가나 똑같으니 한 번만 가면 될 뿐, 더 이상 가고 싶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페스티벌을 통해 장르적 불균형이 완화되지도 못한다.
또한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뮤지션 라인업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님에도 축제적 측면보다 수익성에만 집중하면서 축제로서의 일탈과 해방, 참여와 교류, 배려와 존중이라는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부분의 대중음악 페스티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공연을 보거나, 각종 부스에서 판매하는 음식과 상품을 구입하면서 광고를 계속 접하는 것뿐이다. 일상을 벗어난 공간에서 삶의 기존 방식을 버리고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호흡하고, 자신이 직접 참여해 페스티벌의 주체적 즐거움을 만끽하거나 함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지 못하고 주어진 틀 안의 소비만 반복하게 된다.
페스티벌 공간에서 행해지는 행동을 주도면밀하게 고려해 불편함 없이 타인과 자연을 존중하며 배려하지 않고, 기본적인 운영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거나 안하무인·막무가내식 유흥을 즐기려는 것도 문제이다. 축제는 일탈과 해방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은 타자에 대한 배려와 약속에서 출발한다. 강제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배려하고 존중하도록 만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축제라는 이름의 방종일 뿐이다.
지금은 공연시장과 페스티벌 시장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장밋빛 환상만 넘쳐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중의 마음은 순식간에 달라진다. 1980~90년대 홍콩영화의 영화(榮華)를 멈추게 한 것은 홍콩영화 그 자체였다. 역사는 자주 반복된다.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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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대중음악웹진 <가슴> 편집인, 대중음악웹진 <보다> 기획위원 지냄. 'Red Siren', '권해효와 몽당연필' 콘서트 등 공연 기획 및 연출. 네이버·다음, <보다> <백비트> <재즈피플> <고래가 그랬어> 등에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