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환상과 실재의 경계는 어디에
이 책은 장점이 많다. 예를 들어 저자가 티베트를 바라보는 관점과 안목이 허무맹랑한 감성주의가 아닌 방대한 자료 수집과 체계적인 정리에 기초한다. 신뢰를 주는 부분이다. 책은 티베트에 대한 환상을 조장하는 기존 티베트 저서들과 분위기에 공격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것도 오랜 세월 서구가 주도하고 만들어온 '환상 속의 티베트'를 서구인인 자신이 해부하는 것이다. 부제('우리가 티베트라고 믿었던 것들의 진실')는 책 제목을 더욱 부각시켜준다. 저자는 다양한 자료와 해설의 꼼꼼함으로 티베트에 관한 환상과 오해를 7가지 키워드로 해부하고 있다. 책 구성과 내용은 그동안 티베트를 신성시하고 때 묻지 않은 지구상의 마지막 생태 공간이라고 여기는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만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2장 '책: 샹그릴라의 비밀교리' 부분에서는 티베트를 세상에 알린 가장 중요한 경전 중의 하나인 <티베트 사자의 서>, 즉 '바르도 퇴돌'에 관한 이야기이다. 로페즈 교수는 <티베트 사자의 서>에 대한 경거망동한 자의적 해석을 경계한다. 8세기경에 쓰인 이 귀중한 문헌은 당대인들조차 심오한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숨겨둔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미심장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 단락은 계속되는 <티베트 사자의 서> 탄생과 출판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에 가까운 별 의미 없는 자료의 나열 수준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3장 '눈: 사기꾼 눈에 비친 티베트' 이야기는 화신과 빙의에 대한 이야기를 라마승 T. 롭상람파의 티베트에 관한 세 권의 책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장의 이야기는 롭상람파를 소개하면서 티베트 책에 관한 환상을 깨는 작업을 함으로써 티베트에 대한 객관적 시각이 자리를 잡게 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한편 '권위'에 관한 견해, 즉 권위가 사실상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의 문제에 관한 주장은 매우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212쪽). 하지만 전체 흐름을 살펴보면 저자는 어느 날, 책 몇 권으로 공중부양의 삶을 살아가게 된 롭상람파를 혹시나 부러운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즉 저자는 학문적으로 권위를 수여한 사람이므로 자신의 책을 경제적 가치로 만들어서 개인적 이득을 얻는 것을 포기하고 물질적 이익과 관련되지 않은 더 높고 고귀한 가치를 추구해야 했다. 즉 경제 자본을 상장 자본과 맞바꾼 셈이다(207쪽)라고 주장하는데 이 책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저자는 19세기 서방의 학자, 여행가들의 입을 빌려 롭상람파 책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4장은 '진언: 세상에서 가장 편한 기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에는 불교문화권에서 '진언'을 읊는 것은 불교 수행과 교화의 한 방편임에도, 티베트만의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티베트에 대한 환상에 갇힌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보충 설명되어야 할 것 같다. 사실상 진언은 티베트인 삶의 '생활의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진언은 문화적·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간 행위로서 종교성과 합리성, 그리고 문화적 결정주의에 나타나는 다양한 스타일과 정도의 차이를 구분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주는 키워드이다. 이 부분을 간과하면 곤란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관점과 관심이 현장 연구를 통해 형성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19세기 저자가 보고 싶은 티베트 자료의 모음집만으로는 티베트가 단 한 차례의 침략전쟁도 일으키지 않은 평화의 나라, 추악한 권력 투쟁 없이 부처의 화신이 다스리는 전설의 땅, 인류 문명의 오랜 기원을 간직한 마지막 생태공원이라고 한 것은 과장된 환상일 수 있다. 티베트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티베트라는 공간은 발품과 체험을 통해 누적된 내면적 통찰력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티베트는 종교 사회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종교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로 인한 긍정적 후유증, 즉 불교 교단의 재정립, 사원의 발달, 정교 합일의 정치 시스템, 활불제도의 탄생 등 티베트 스타일의 인문학적 유산이 탄생되고 확립되었다. 따라서 티베트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불교, 건축, 미술, 언어, 사원, 경전, 진언 등의 유산은 사회적·문화적 환경을 재생산하고 재형성하는 창조적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티베트에서 상술의 것들은 실제적 정황에서 분석되어야 하고, 공간과 정황 속에서 창출되는 그것들을 통해 어떠한 권력관계가 편성되는지 주목해야 한다. 요컨대 티베트의 전통적 키워드는 특별한 방식으로 특별한 유형의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는 실천적 행위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티베트가 왜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의 삶을 지향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데도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티베트의 전통적 유산과 정체성을 얕잡아보고 그들의 행동과 유물을 지적 호기심이나 관망자적 자세로만 보려 한다면 결코 티베트를 조화롭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티베트의 종교와 그로부터 파생된 여러 형태의 의례와 관습은 그저 인간의 머리로 생각하거나 믿는 것으로 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지 규정하고, 어떤 책이 참된 신의 계시인지 결정하며, 누구의 경전 해석이 가장 옳은 것인지 따지는 식으로 티베트를 이해하려는 전통적 서구인의 태도는 이미 학계에서 지양된 지 오래다.
마지막으로 학술서와 대중서의 성격을 함께 지닌 책일수록 이른바 티베트라는 권역을 인문학적·지리학적으로 현장답사, 즉 관광과 여행의 수준이 아닌 장기적이고도 실증적인 체험의 성격을 가지는 현장학습을 통해 내면적 통찰력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티베트는 불교 이론과 타인이 경험한 여행기와 문장을 보고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편집해서 일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삶의 공간과 역사가 아니다. 티베트는 종교 사회이고, 그로부터 파생된 특수한 역사와 규율의 흔적이 오늘날에도 간직되고 있다. 따라서 최대한 현장에 발품을 팔고 눈을 직시해 인문학적 성찰과 통찰을 전제로 티베트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간신히 허구와 실재의 경계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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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심혁주 티베트학 연구가. 대만국립정치대학에서 '티베트의 천장(天葬)의식 연구'(2005)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티베트 천장, 하늘로 가는 길> <티베트의 활불제도: 신을 만드는 사람들> <아시아의 죽음문화> <티베트 해부사의 하루>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