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권리 되찾기 위해 점검할 일들

세계의 창(窓)

2013-05-13     세르주 알리미

그런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서 /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다. -폴 엘뤼아르, <그치지 않는 시>(1946) 중에서

언론에서 이뤄지는 일부 폭로 기사들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정치인들이 돈을 너무 좋아해 돈 가진 자들과 자주 교류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이 때로는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 계급인 것처럼 위세를 떨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납세제도가 최고의 부자들을 납세자로 귀하게 대우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들이 자본의 자유로운 유통에 힘입어 조세피난처에 많은 재산을 도피시킬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개별적 위법 사항에 대한 폭로는 그런 범죄를 잉태한 시스템에 대한 면밀한 조사로 이어진다(3면 '탐사저널리즘과 정파투쟁' 참조).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베를린장벽 붕괴,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등장, 기술적 진보, 금융위기, 아랍권의 봉기, 유럽의 쇠퇴 등 너무 신속하게 이뤄진 세계의 변화는 우리의 분석 능력을 넘어섰다. 매번 전문가들은 역사의 종언이나 새로운 세계질서의 탄생이라며 말을 바꾼다.

이런 설익은 사망 선고나 불확실한 탄생 선언을 넘어서서, 초기의 면밀한 조사를 거쳐 어느 정도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주요한 흐름이 나타났다. 사회적 불평등 확대, 정치적 민주주의 해체, 그리고 국가주권의 쇠퇴가 그것이다. 병든 몸에 솟아나는 고름물집처럼, 매번 터지는 추문은 이 세 흐름이 따로따로 또는 맞물려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과 같이 그 전반적인 상황을 요약해볼 수 있다. 각국 정부들은 일차적으로 특혜받는 소수(투자와 투기를 하고, 고용과 해고를 할 수 있고, 대출도 해주는 자들)의 중재에 의존하기 때문에 정치체제가 과두제로 흘러가는 것을 용인한다. 이 정부들이 국민이 맡긴 위임 권한을 포기하는 데 난색을 표하려 한다면, 국제 금융이익의 조직적 압력이 이 정부들을 전복하기 위해 동원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고, 그 존엄과 권리에서 평등하다. 사회적 차별은 공동 이익에 기초한 경우에 한해 행해질 수 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1조(프랑스 대혁명 이후 1789년 프랑스 국민의회가 채택하고 1958년 프랑스 헌법이 재확인한 권리선언)가 엄격히 지켜지지 못했다는 점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언제든지 공동이익 이외의 다른 것이 차별의 원인이 돼왔다. 즉 태어날 때 좋은(또는 나쁜) 운이나 부모의 조건, 그리고 교육과 의료 혜택에 대한 접근 등이 그런 차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적 이동을 통해 태생의 불평등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믿음이 때로는 이런 차이들이 지닌 무게를 줄여준다. 알렉시 드 토크빌(1805~59)에게 이런 식의 희망은 구대륙보다는 미국에서 더 널리 퍼져 있었다. 미국인들이 어느 지역보다 큰 소득 격차를 감수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 것도 이런 희망이다. 클리블랜드 출신의 초짜 회계사나 대학 졸업장이 없는 캘리포니아 젊은이가 자신의 재능과 억척스러움만으로 존 록펠러나 스티브 잡스가 앉았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꿈을 꾸기도 한다.

보수적 지식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결과의 평등보다는 오히려 기회의 균등을 강조하는 미국 정치문화에서는 불평등 그 자체가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지금도 얘기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자신들과 자기 자식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믿는 한, 그리고 게임의 규칙을 지키면 합당한 결과가 따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좋은 이유가 있는 한, 시스템은 여전히 정당한 것이다"(1)라고 그는 덧붙였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몽롱하게 마취를 시켜주는 이런 세속적인 오랜 믿음이 전세계적으로 사라지고 있다. 2012년 대통령 선거가 있기 6개월 전에,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는 '도덕성 회복'에 대한 자신의 공약을 실현할 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 '프랑스의 꿈'을 상기시켰다. "프랑스의 꿈은 전쟁이나 위기, 분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전을 이룰 수 있었던 우리 공화국의 이야기다. 지난 몇 년 전까지 우리는 자식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그런 믿음은 이제 사라져버렸다"(2)고 덧붙였다.

억만장자 클럽

사회적 이동의 신화가 사회적 지위 상실의 두려움으로 대체되고 있다. 노동자가 기업주나 언론인, 은행가, 대학교수, 정치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더는 가질 수 없게 됐다. 프랑스의 엘리트 고등교육기관인 그랑제콜은 1964년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가 <후계자들(Les Héritiers): 학생과 문화>를 출간한 때보다 노동계급 출신의 학생들에게 훨씬 더 좁은 문이 됐다. 세계의 최고 대학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대학들의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3) 필리핀 마닐라의 한 여대생은 등록금을 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그리고 2년 전 미국의 한 대학생은 이렇게 털어놨다. "등록금 대출로 인한 빚이 현재 7만5천 달러다. 조만간 파산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가 보증을 섰는데, 아버지가 내 빚을 갚아야 한다. 아버지도 곧 파산하게 될 것이다. 내가 계급을 뛰어넘어 올라서려고 하다가 내 가족까지 알거지로 만들게 됐다."(4) 그는 '가난뱅이에서 부자로'라는 아메리칸드림을 실현시키려 했다. 그 때문에 그의 가족은 정반대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승자독식'(5)이 이뤄질 때, 소득 불평등은 종종 사회적 병리 현상의 징표가 된다. 거대 유통업체인 월마트의 소유주인 월턴 집안은 30년 전엔 미국 중산층 평균 수입의 6만1992배의 재산을 보유했다.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오늘날엔 115만7827배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6) 월턴 집안은 미국 내 소득 하층 4880만 가구의 수입을 합한 액수만큼이나 재산을 축적했다. 이탈리아 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집안은 미국 억만장자들보다 약간 적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이탈리아 중앙은행은 "이탈리아 최고 갑부 10명이 이탈리아의 소득 하층 300만 명의 재산을 합한 액수만큼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7)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 인도, 러시아 그리고 걸프 연안국들이 억만장자 클럽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수입의 집중과 노동자 착취에 관한 한, 그들은 서방국가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 실제로 그들은 야만적 신자유주의에서 서방국들에 몇 개의 교훈을 던져줄 정도다.(8) 인도의 억만장자들은 2003년 국부의 1.8%만을 보유했지만, 5년 뒤에는 22%의 국부를 보유하게 됐다.(9) 그동안 억만장자 수도 조금 더 늘었다. 하지만 인구 10억 명의 나라에서 61명의 갑부가 국부의 22%를 보유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인도의 최대 갑부 무케시 암바니는 주민의 절반 이상이 슬럼가에서 살고 있는 뭄바이에서 불쑥 솟아오른 29층짜리 붉은 집의 거실에 앉아 스스로 이 문제를 제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은 국제통화기금(IMF)도 우려하고 있다. 오랫동안 IMF는 '소득 격차'가 모방과 효율성, 그리고 활력의 요인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 IMF가 미국에서 경제회복이 시작된 첫해에 이뤄진 소득 증가의 93%가 미국 내 1%의 최고 부자들에게만 이득을 안겨줬다는 점을 파악하게 됐다. IMF에도 이는 너무한 것 같았다. 결국 모든 도덕적 고려를 차치하고서라도,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기에 더 이상 많은 것을 구입하지 않는 소수의 집단이 한 국가의 성장으로 점점 더 많은 이득을 가져간다면, 그 국가의 발전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그들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자금을 축적하거나 투기를 하면서 이미 기생적인 금융경제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그래서 2년 전 IMF는 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과거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경제성장을 장려하는 것과 불평등을 줄이는 것은 '동전의 양면'(10)임을 인정했다. 게다가 긴축정책으로 숨통을 죄지 않는 한 세계의 수요가 사치품이나 초저가품을 선호하는 세상에서 중산층에 의존하는 사업부문은 판로를 잃어가기 시작했다는 점을 경제학자들은 알고 있다.

세계화 찬성론자들에 따르면, 사회적 불균형의 확대는 일차적으로 신속하고 비약적인 기술 발전에서 파생됐고, 이는 사회에서 교육과 기동성, 유연성과 민첩성에서 뒤떨어진 이들을 벌주는 식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뒤처진 이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다. 지난 2월 '국제적 엘리트'들의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가 정치와 부패에 대한 얘기가 없는 정통적인 콩트를 실었다. "세계 하이테크 경제가 머리 좋은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프리미엄 때문에 1%의 최고 부자들은 소득이 급상승했다. '와인과 여자, 음악'에 돈을 걸었던 귀족들은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한 엘리트들로 대체됐다. 이 엘리트들은 서로 통혼하고, 자기 돈을 자식들의 중국어 교습과 <이코노미스트> 구독에 현명하게 쓰고 있다."(11)

자녀가 더 잘되게 하기 위해 (유일한) 정기간행물을 읽도록 훈련하는 세심한 부모의 절제와 조심성, 그리고 현명함이 이런 비약적인 재산 증식의 배경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다른 가정을 제시해보자. 예를 들어 노동보다 덜 과세되는 자본은 유리한 결정으로 얻은 금융적 이득의 일부를 정치적 지지를 더 확고히 하는 데 투자한다. 즉 과세제도를 조정하고, 소액 예금주들을 볼모로 삼아 대형 은행에 구제금융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 또 채권자들이 변제받을 수 있도록 전체 국민이 압력을 행사하도록 만들고, 부자들의 추가적인 투자 기회(또는 압력 수단)가 될 수 있는 공공부채를 늘리도록 하는 것 등이다. 부자들과 정치의 이런 공범 관계가 자본이 노동보다 덜 세금을 내도록 보장해준다. 2009년, 미국의 최고 갑부 400명 가운데 6명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27명은 10%도 안 되는 세금을 냈고, 35% 이상 낸 부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한마디로, 부자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자기 재산을 사용하고, 재산을 늘리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엘리트들은 정치체제를 조종하고, 과세를 피하기 위해 해외로 돈을 빼돌리고, 엘리트 교육기관의 특혜 입학 덕분에 자녀에게 유리한 조건을 대물림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보호할 수 있다"(12)고 후쿠야마는 요약 정리했다. 그래서 궁극적 처방을 마련하기 위해선 헌법 수정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승자독식이 세계화된 경제에선 전국적인 노동조합 조직은 만신창이가 되고, 최고의 소득에는 가벼운 세금이 부과되는 등 불평등의 메커니즘이 전 지구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아시아 1만8천 명, 미국 1만7천 명, 유럽 1만4천 명 등 1억 달러 이상을 보유한 6만3천여 명이 모두 합해 39조9천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13)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내도록 하는 것이 더 이상 상징적인 일만은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소수를 만족시키는 경제정책이 다수에 의한 정부의 민주적 형태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우선, 여기엔 분명한 모순이 존재한다. 미국 대법원 역사에서 유명한 대법관인 루이스 브랜디스(1856~1941)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가질 수도 있다. 경제적인 부가 몇 사람의 수중에 집중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는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그렇다고 해서 형태(다수투표제, 기표소, 투표함 등)의 존중만으로 요약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투표에 참여하는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즉 강렬한 열정과 유권자 교육, 정치문화, 회계 책임을 요구할 권리, 자신의 위임 사항을 저버린 선량을 소환할 권리 등을 포함한다. 집단적 낙관주의와 국제적 연대, 사회적 유토피아가 혼재된 정치적 소요의 시기인 1975년에, 보수적 지식인 새뮤얼 헌팅턴이 자신의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던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삼각위원회(Trilateral Commission)가 간행한 유명한 보고서에서 헌팅턴은 "민주주의 체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일반적으로 일부 개인과 집단의 무관심과 불참이 요구된다"(14)는 생각을 밝혔다.

"한 마리 맹금류의 두 날개"

그 임무는 이미 완수됐다. 다른 한편으로, 삼각위원회는 올해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면서 참석자의 범위를 유럽의 전 사회주의 장관들(영국의 피터 만델슨과 데이비드 밀리밴드, 프랑스의 엘리자베트 기구)과 중국과 인도의 참가자들로 확대했다. 삼각위원회가 그동안 거쳐온 길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없다. 회원 가운데 2명, 은행가 출신인 마리오 몬티와 루카스 파파데모스가 2011년 비선출기관인 IMF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 등의 트로이카에 의해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정부 수반으로 추대됐다. 그러나 '무관심의 수준'이 불충분했던 양국 국민들로부터 약간의 방해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몬티는 트로이카에 의한 제한선거 결과를 국민의 보통선거 결과로 전환하려고 했다가 반향이 상당했던 실패를 겪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뤼크 페리는 이에 대한 자신의 서글픈 심정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마음속으로부터 민주주의자인 나를 슬프게 한 것은 국민이 위기의 시기에 최악의 인물만 아니라면 진실을 아주 교묘하고도 여유 있게 숨기는 차악의 인물을 선택하는 인내를 틀림없이 보인다는 점이다."(15)

이런 종류의 실망에 대응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유권자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전세계에 민주주의의 교훈을 던져준 EU에 이런 부정은 하나의 특징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난 30년간 미국과 구대륙에서 이데올로기적 광풍을 선도한 초(Ultra)자유주의학파는 미국의 경제학자 제임스 뷰캐넌(198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공공선택이론'에서 영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 학파는 민주주의란 다수에 의한 참주정이라며 근본적으로 의심을 품고 있다. 이 학파는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고객을 만족시키거나 재선을 보장받기 위해 (기업 총수의 이니셔티브와 분리해낼 수 없는) 일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가설을 내세운다. 무책임한 국민의 주권은 결과적으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 EU의 건설(중앙은행의 독립, 국내총생산 3% 이내의 재정 적자 억제 조치, 안정성장 협약)이나 미국에서 공공부채의 자동예산삭감(시퀘스터)에 영감을 주는 강제적 메커니즘의 역할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정부를 여전히 두려워한다는 점에 의문을 갖게 된다. 정부가 시행하는 경제적·사회적 개혁이 업계와 금융시장의 요구 사항와 계속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계층 가운데 최고 부유층이 과도하게 대표를 많이 배출하고, 이들이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을 쉽게 넘나들면서 국가의 상층부에선 이런 이익의 수렴이 더욱 강화된다. 연간 평균소득이 2500달러를 조금 넘는 중국 같은 국가에서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회의에 83명의 억만장자가 인민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중국의 부자들이 정부 고위층에 자신의 대변자를 두고 있지 못하다고 볼 수 없다. 선거가 없는 중국에서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선거에 승리한 대통령 쪽의 최고 기부자들에게 탐나는 대사 자리를 나눠주지는 않지만, 미국 모델은 적어도 이 점에서 반면교사를 만난 셈이다.

현재 정부와 억만장자들 간 이익의 충돌이 국경을 넘나들며 벌어지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대통령 재직 시절 조세협약을 통해 부동산 양도차액에 대한 비과세 등 카타르에 대해 특혜를 예약해뒀고, 지금은 카타르의 지원을 받아 투기자본 사업을 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르코지 밑에서 내무장관을 지낸 클로드 게앙은 "전직 대통령이었다고 해서 (근검과 묵언을 서약한)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수사처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16)며 사르코지 편을 들었다. 빈곤의 서약이 더 이상 전직 국가수반들에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JP모건은행의 자문을 하고 있고, 장뤼크 드하네 전 벨기에 총리는 덱시아 은행의 회장이 됐다. 줄리아노 아마토 전 이탈리아 총리는 도이체방크의 상임고문이다. 미래의 고용주가 될 수도 있는 외국의 봉건체제나 금융기관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동시에 공공의 선을 수호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점점 더 많은 국가에서 이해타산적인 도박이 양대 주요 정당들과 관계돼 이뤄지고 있다. 이 정당들은 국민이 보기에 소설가 업턴 싱클레어가 명명했던 "한 마리 맹금류의 두 날개"일 뿐이다.

미국의 공공정책연구기관인 데모스(demos.org)는 정부 관리들과 경제적 과두지배세력(올리가르키) 간의 밀착 관계가 미치는 영향을 측정해보려고 했다. 두 달 전 데모스는 "부자들과 업계가 정치를 지배하면서 미국 내 사회적 이동에 얼마나 제약을 가져오는지"(17)를 상세하게 보여주는 보고서를 출간했다. 경제사회 정책과 노동법과 관련해, 최고로 부유한 시민들은 다수의 시민들과는 대체로 다른 우선순위를 가졌고, 그들은 자신의 열망을 성취하기 위해 특별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미국인의 78%는 최저임금이 생활비에 연동돼 최저임금 수령인이 빈곤선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고액 납세자는 40%만이 이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고액 납세자들은 노동조합이나 노조활동에 유리한 법에 대해서도 다수의 미국인들보다 덜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본도 노동과 같은 세율로 과세돼야 하고, 재정 적자(15%)보다 실업(33%)과의 전쟁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의견 차이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최저임금은 1968년 이래 30%의 가치가 떨어졌다. 후보 시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약했음에도, 기업 내에서 노조를 설립하는 고난의 길을 용이하게 해주는 법은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자본 쪽은 노동 쪽에 비해 여전히 절반만 과세되고 있다(20% 대 39.6%). 결국 의회와 백악관은 현재 실제 취업인구 비율이 역사상 거의 최저 수준인 국가에서 예산 삭감을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다.

부자들이 국가와 정치체제에 강하게 남겨놓은 자국을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부자들은 누구보다 자주 투표에 참여하고, 누구보다 선거자금을 많이 후원하고, 특히 선량들과 정부에 대해 계속적인 압력을 행사한다. 미국에서 불평등이 확대되는 이유는 자본에 대한 과세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의회에 대한 끊임없는 로비의 대상을 만들어내고, 전체 납세자가 내는 비용의 71%가 미국 내 1% 최고 부자들에게만 이득을 안겨주고 있다.

적극적인 고용정책이 거부되는 것은 똑같은 계급 선택의 표현이며, 이는 마찬가지로 과두적 시스템에 의해 그대로 전달된다. 지난 1월 적어도 대학 졸업장 정도는 가진 미국인, 즉 중산층(부르주아) 미국인의 실업률은 3.7%에 불과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학 졸업장이 없는 훨씬 가난한 이들의 실업률은 12%에 달했다. 이들의 의견은 업계의 의견보다 워싱턴에서 덜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또는 지난해 선거에서 미국 내 12개 주 전체 주민들이 낸 것보다 많은 선거자금을 기부한 억만장자 공화당원 부부인 셀던 아델슨과 미리암 아델슨보다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데모스의 연구보고서는 "대부분의 경우에, 미국민의 압도적 다수의 선호는 정책 선택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중앙정부의 무능

"내가 사임하길 원하시나요? 그럼, 나한테 얘기하세요!"

키프로스 대통령 아나스 타시아데스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키프로스 내 최대 일자리와 최대 국가 수입원인 자국 내 최대 은행 중 하나를 폐쇄할 것을 요구하자 이렇게 분명하게 말했다.(18) 프랑스의 사회연대장관 베누아 아몽도 프랑스 정부의 주권(또는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 같다. 그는 "독일 우파의 압력으로 유럽 전역에서 실업의 증가로 이어지는 긴축정책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19)이라고 말했다.

각국 정부는 자본과 이자소득자의 독점적 권력을 강화하는 조처를 시행하면서 '비거주 유권자들'의 거역할 수 없는 권력, 즉 트로이카(IMF, EU 집행위원회, ECB)와 신용평가회사, 금융시장 등의 압력을 항상 이용할 수 있었다. 한 국가의 선거 절차가 끝날 때마다, 트로이카는 새 정부가 이러저러한 선거 공약을 당장에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그들의 로드맵을 새 정부에 보낸다. 지난 2월 <월스트리트저널>조차 여기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3년 전 위기가 시작된 이래 프랑스, 스페인, 아일랜드, 네덜란드, 포르투갈, 그리스, 슬로베니아 그리고 키프로스 국민이 어떤 식으로든 유로존의 경제모델에 반대하는 표를 던졌다. 그러나 선거 패배 이후에도 경제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좌파 정부는 우파 정부로 대체됐고, 우파가 좌파를 몰아내기도 했다. 중도우파 정당이 공산당을 압도한 경우도 있었다(키프로스). 그러나 경제정책은 여전히 대체로 동일했다. 각국 정부는 계속 지출을 삭감하고 세금을 인상했다. …새 정부들이 직면한 문제는 유로존의 기관들이 설정한 테두리 안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각국 중앙정부는 유럽집행위원회가 설정한 거시경제 지침에 따라야 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선거의 소란 이후에도 각국 중앙정부가 경제정책에서 운신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20) 베누아 아몽도 "좌파 정책이든 우파 정책이든 똑같은 성분을 다르게 배합할 뿐이라는 인상을 받았다"(21)고 말해 이 점을 씁쓸하게 인정했다.

EU 집행위원회의 한 고위 관리가 집행위 상사와 재무부 장관 간의 회의에 배석한 뒤 이렇게 적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EU 관리들은 마치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뭘 하라고 얘기해주는 선생처럼 행동했다. 나는 프랑스 재무장관이 냉정을 잃지 않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22) 이 장면은 에티오피아와 인도네시아의 정치 지도자들이 IMF가 부과한 징벌의 집행자 수준으로 격하됐을 때 두 나라의 운명(23)을 상기시켜준다. 현재 유럽이 처한 상황이 그대로다. 2012년 1월 브뤼셀의 집행위원회는 그리스 정부에 대해 공공지출을 약 200억 유로 삭감하도록 경고했다. 5일 안에 이를 따르든가, 아니며 벌을 받으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나 몽골의 재무장관, 조지아 총리, 러시아 부총리의 부인, 전 콜롬비아 대통령의 아들 등은 어떤 제재 위협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부당 획득을 했든 순전히 훔쳤든 간에 자기 재산의 일부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나 케이맨군도 같은 조세천국에 숨겨두고 있었다. 버진아일랜드에는 주민보다 20배나 많은 회사가 등록돼 있고, 케이맨군도에는 미국만큼이나 많은 헤지펀드들이 활동하고 있다. 유럽의 중심에 위치한 스위스,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는 말할 것도 없다. 이 국가들 때문에 구대륙은 엄격한 긴축정책과 세금도피 산업 정책이 폭발적으로 뒤섞인 칵테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출구를 찾아나설 때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멍이 많은 국경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다국적 명품 브랜드의 소유자이자 세계 10위의 갑부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 회장은 민주정부의 영향력 쇠퇴에 대해 기쁨을 표시한 적이 있다. "기업들, 특히 국제적 기업들은 점점 더 막대한 수단을 보유하게 되고, 국가들 사이에서 경쟁하는 능력을 획득해왔다. …한 국가에서 경제활동에 대한 정치인들의 실질적 영향력은 점점 더 제한적이 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24)

이와는 대조적으로 국가가 받는 압력은 증대됐다. 채권국가들과 ECB, IMF, 신용평가회사, 금융시장 등이 동시에 압력을 행사한다. 2년 전 장피에르 주예 프랑스공공투자은행(BPI) 총재는 이들이 이탈리아에 가한 압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민주적 과정을 통해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세 번째 정부가 과도한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다 무너졌다. …이탈리아 부채의 이자율이 급등한 것은 시장의 투표용지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국민이 사실상의 독재에 대해 들고일어나게 될 것이다."(25)

그러나 '사실상의 독재'는 이런 집단적 저항을 지연시키고 탈선시킬 수 있는 일탈의 주제를 짜내기 위해, 그리고 가장 심한 추문을 개인화하기 위해, 즉 탈정치화하기 위해 주류 언론에 의존할 수도 있다. 음모가 벌어지는 실제 내막을 조명하고, 시장과 국가를 동시에 통제하는 소수집단에 의해 부와 권력을 장악하는 메커니즘을 까발리려면 계속 대중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 어느 정부가 사회적 불평등의 확대를 용인하거나, 정치적 민주주의의 붕괴를 인정하거나, 국가주권의 종속을 수용했을 때, 합법적인 정부이기를 포기한 것임을 국민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부도덕한 정부에 대한 대중적 거부를 보여주는 시위가 매일매일 투표소에서, 거리에서, 작업장에서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위기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이들 정부는 대안적 제안을 찾기 위해 더듬거리고 있다. 대안적 제안이 없거나 지나치게 큰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면서 말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절망적인 격분이 분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출구를 찾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다음호의 글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을 다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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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파리8대학 정치학 교수. 주요 저서로 <새로운 경비견>(Les Nouveaux Chiens de garde·2005) 등이 있다.

번역 / 류재훈 <한겨레> 온라인 국제판 에디터.

(1) Francis Fukuyama, <Le Début de l‘histoire: Des origines de la politique à nos jours>, Saint-Simon, Paris, 2012. 한국판 황규진 역, <정치질서의 기원>, 웅진 지식하우스, 2012.
(2) <Life>, 2011년 12월 15일.
(3) Christoher Newfield, ‘시한폭탄, 미국 대학생 부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9월호.
(4) Tim Mak, ‘Unpaid student loans Top + $ 1 trillion’, www.politico.com, 2011년 10월 19일.
(5) Robert Frank and Philip Cook, <The Winner-Take-All-Society>, Free Press, New York, 1995.
(6) ‘Inequality, exhibit A: Walmart and the wealth of American families’, Economic Policy Institute, www.epi.org, 2012년 7월 17일.
(7) William Delacroix, “몬티의 이탈리아, 아탈리 조처의 실험실‘, <Les Echos>, Paris, 2012년 4월 6일.
(8) 세르주 알리미, ‘반민중전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월호.
(9) ‘India’s billionaires club’, <파이낸셜타임스>, 2012년 11월 17일.
(10) ‘Income inequality May take toll on growth’, <뉴욕타임스>, 2012년 10월 16일.
(11) ‘Repairing the rungs on the ladder’, <이코노미스트>, 2013년 2월 9일.
(12) Francis Fukuyama, <Le Début de l’histoire>.
(13) 2011년 전세계 GDP는 약 70조 달러였다. Knight Frank and Citi Private Bank, ‘The Wealth Report 2012’, www.thewealthreport.net.
(14) Michel Crizier, Samuel Huntington & Joli Watanuki, <The Crisis of Democracy>, New York University Press, New York, 1975.
(15) <Le Figaro>, Paris, 2013년 3월 7일.
(16) Anne-Sylvaine Chassany and Camilla Hall, ‘Nicolas Sarkozy’s road from the Elysee to private equity’, <파이낸셜타임스>, 2013년 3월28일.
(17) David J. Callahan and Mijin Cha, ‘Stacked deck: How the dominance of politics by the tributary & business undermines economic mobility in America’, Demos, www.demos.org. 아래 정보는 이 연구 결과를 인용한 것이다.
(18) ‘키프로스는 자국의 은행을 희생함으로써 끝났다’, <르몽드>, 2013년 3월 26일.
(19) RMC, 2013년 4월 10일.
(20) Matthew Dalton, ‘Europe’s institutions pose counterweight to voters’ wishes’, <월스트리트저널>, 2013년 2월 28일.
(21) RTL, 2013년 4월 8일.
(22) ‘유로크라트들의 의기소침’, <리베라시옹>, 2013년 2월 7일.
(23) Joseph Stiglitz, ‘증거는 에티오피아에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2년 4월호.
(24) Bernard Arnault, <창조적 열정: 이브메사로비치와 인터뷰>, Plon, Paris, 2000.
(25) 장피에르 주예, ‘시장에 의한 사실상의 독재’, <Le Journal du dimanche>, 2011년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