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머런 영국 총리의 냉소적 유럽관

2013-05-13     장클로드 세르장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애꿎은 섬나라 근성을 들먹이며 유럽의 은행 개혁에 반대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탈퇴 주장이 존중받게 되었다!" 지난 1월 23일 영국독립당(UKIP) 당수 나이절 패러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영국 '엘리트'의 유럽 통합 지지 경향의 희생자를 자처하는 패러지는 같은 날 오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발언을 환영했다. 보수당의 캐머런 총리는 "EU 내 영국의 지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EU에서 탈퇴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패러지는 이 발언을 결정적 전환점으로 해석했다.

캐머런 총리의 발언이 주목을 끈 것은 내용 때문만이 아니라 연설이 행해진 시간적·공간적 맥락 때문이다. 한때 홍보회사 칼튼커뮤니케이션스에 몸담은 인물답게 캐머런 총리는 결코 사소한 것도 소홀히 하는 성격이 아니다. EU를 (소비자 50억 명의 시장을 보유한) 세계화와 무역 자유화를 위한 매개로만 인식하는 그는, 미국 경제뉴스 채널 <블룸버그> 런던지사를 연설 장소로 선택했다. 올해는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사실상 EU도 세계화와 자유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EU의 금융 규제안과 은행동맹(Banking Union) 창설안을 못마땅해한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존 그래퍼는 "지난 50년간 꾸준히 성장해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우뚝 선 런던의 시티(영국 금융시장)가 다른 유럽국 자본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1) 또한 보수당은 EU가 보장하는 노동권이 영국 기업에 큰 부담이 된다고 비판하면서, 주당 최대 노동시간 등과 관련된 규정을 완화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캐머런의 논리는 1963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영국의 EEC 가입에 반대한 이유(2)와 일맥상통한다. 캐머런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섬나라 영국은 독립심이 강하다. 우리는 단도직입적인 표현을 좋아하고, 국가주권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중략) 우리에게 EU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번영과 안정, 자유와 민주주의 확립이다."

EU 탈퇴 카드가 먹히긴 할까?

그 뒤 노동유연성이 강화됐고, 이른바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EU 고유 권한 밖의 문제에 대해서는 각 회원국에 더 큰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1992년 12월 에든버러 EU 정상회의)이 도입됐다. 캐머런 총리는 유로존 통합이 강화되면 영국이 소외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대다수 영국인의 마음을 이해한다면서도, 영국인이 EU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1975년 국민투표 이후 거의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한번 국민투표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게 그의 논리다.(3)

EU 반대 성향의 언론사들이 수차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이들은 영국 국민 70%가 국민투표를 원한다고 주장한다), 정작 영국 국민의 걱정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예산 적자 감축을 구실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가혹한 긴축정책을 강요한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그럼에도 경제 상황이 악화됐음을 인정해야 했다.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오히려 2011년 60%에서 2012년 71%로 올랐고, 적자도 증가했다. 경제성장률은 2012년 기준 고작 0.1%에 머물렀다. 국가신용등급도 지난 2월 AAA에서 AA+로 강등됐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 국민이 유럽 대륙의 위협에 시달리는 시티의 운명보다 잇따른 스캔들로 신뢰를 잃고 있는 정치 엘리트들의 행보(4)에 더 관심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그러니 2015년 총선에서 EU 탈퇴 문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경제정책 실패를 가릴 수 있으리라 믿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과연 그런 전략이 먹힐까?

캐머런 총리는 EU 국가들과 소원해지는 대신 독일을 위시한 몇몇 국가와 손잡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지난 2월 EU 정상회의 직후 2월 9일자 <르피가로>는 '캐머런과 메르켈 EU 체중 감량에 나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 전날,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EU 외무장관 회의에서 "영국 총리의 발언은 EU에서 영국이 손을 빼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베를린-런던 협력축 구성을 촉구하는 독일 일간지 <디펠트>의 1월 24일자 기사를 인용했다.

유럽 재정 긴축의 엄격한 감시자로서의 이미지를 굳혀 오는 9월 총선에서 승리를 얻으려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캐머런 총리와 일시적인 동맹관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큰 기대는 금물이다. 메르켈 총리는 영국 쪽에 어느 정도 양보할 의사가 있는 데 비해, 기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은 EU는 입맛대로 골라먹는 메뉴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캐머런 승리의 상징적 의미

영국 보수당 내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속한 이들은 예전부터 EU에 적대적이었다. 2011년 7월 추가적 권한이양과 관련된 유럽 헌법 개정안이 채택되려면 의무적으로 국민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는 내용의 법이 도입되고, 그로부터 1년 뒤 회원국별 EU 가입 평가 계획이 발표됐지만 이들의 적대감은 변함이 없었다. 국민투표 계획이 그나마 이들을 진정시킬 것으로 보인다. 2011년 10월 24일 헤이그 외무장관은 하원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이미 힘든 상황에서, 영국에 대한 해외투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영국 수출품의 절반을 흡수하는 EU를 탈퇴할지 여부를 묻겠다는 것은 무책임한 결정이다." 영국의 기업주들 대부분도 그런 생각을 공유한다. 그중에는 경영자 모임인 영국산업연맹(CBI)의 로저 카 대표도 포함된다. 그는 "EU 탈퇴는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영국의 국제적 지위를 약화시키고, 국가경제에도 손실을 초래할 것"(<옵서버> 2013년 1월 13일자)이라며 우려감을 나타냈다. 캐머런 총리의 전략 때문에 자유민주당과의 연정 가능성도 불확실해졌다. 자민당은 캐머런 총리의 국민투표 실시 계획이 1974년 EU를 둘러싼 노동당 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헤럴드 윌슨이 국민투표로 EEC 잔류 여부를 결정한 전략과 별다를 게 없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캐머런 총리의 목적은 다른 데 있다. EU 탈퇴를 주장하는 영국독립당(UKIP)에서 주도권을 빼앗는 것이다. 캐머런 총리는 그런 측면에서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가령 마르타 앤드리슨 의원은 영국독립당을 탈당해 보수당으로 적을 옮겼다.

노동당은 편치 않은 입장이다. 2012년 10월 31일, 에드워드 밀리밴드 당수를 위시한 노동당 의원들은 보수당 의원 50여 명과 함께 영국 정부로 하여금 11월 22일 유럽이사회에서 EU 예산 증액안에 반대하도록 하는 법안에 표를 던졌다. 307표 대 294표로 통과된 이 법안으로 EU 내에서 영국의 운신 폭이 커진 것은 아니지만, EU 문제와 관련해 보수당 내 '반항아들'이 결집된 힘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기회주의적이고 위선적이라며 욕을 먹은 노동당 지도자들은 지난 1월 23일 캐머런 총리의 발언이 나간 뒤 그의 모험주의를 설득력 있게 비판하지 못했다. 대신 이번 일을 2015년 총선 때 써먹기 위한 비장의 카드로 아껴두는 눈치다. 그러나 2월 11일 하원에 참석한 소수의 노동당 의원들은 보수당원들이 브뤼셀에서 캐머런이 쟁취한 승리를 치하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봐야 했다.

캐머런의 이번 승리는 상대적이긴 해도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토니 블레어가 2005년, 마거릿 대처가 1984년에 획득한 '할인'된 분담금(5)의 일부를 토해낸 것과 달리 캐머런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영국의 EU 재정 환급금은 향후 7년간 매년 약 40억 유로로 고정될 것이다. 그럼에도 영국은 EU 재정 분담금으로 80억 유로라는 적잖은 금액을 제공해야 한다. 반면 캐머런은 EU 공무원 급여로 들어가는 비용의 10억 유로를 감축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 보수 언론들이 줄기차게 주장한 일이 현실화된 것이다.

"영국은 영향력의 한계에 부닥칠 것"

그러나 캐머런 총리는 EU 예산 증액을 막아내는 데 공을 세웠다고 자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유럽 은행동맹 창설 저지를 포함한 여타 목표들은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2012년 12월 유럽 경제재무이사회(ECOFIN)에서 설립을 승인한 단일은행감독체제(SSM·은행동맹의 초보 단계)의 감독 권한이 유럽중앙은행(ECB)에 주어질 경우 영국 금융 시스템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회원국 간 이전투구 속에서, 유로존에 속하지 않으면서 EU 내에 잔류하는 것에 만족할 경우 영국은 보수당원들이 원하는 만큼의 영향력을 결코 행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보수당이 해결해야 할 1차적 문제다. 나머지는 부수적 문제에 불과하다. 가령 유로존 통합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캐머런 총리도 희망을 피력했듯이, 필연적으로 재정과 은행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단일시장을 포함한 다양한 기구들의 탄력적 운영이 가능할지 고민해야 한다. 오랫동안 영국의 대유럽 정책을 연구해온 앤드루 게즈는 유로존 강화가 더욱 심화된 역내 경제 통합을 가져오고, 옵서버 위치로 밀려난 영국은 "자신이 원하는 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는 데 주변적 방식으로밖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6)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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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클로드 세르장 Jean-Claude Sergeant 파리3대학(소르본누벨대학) 명예교수. 다비드 페와 함께 <영국의 윤리, 정치, 부패>(Ethique, politique et corruption au Royaume-Uni·PUF·액상프로방스·2013)를 펴냈다.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

(1) John Gapper, ‘Europe takes its bite from the City’, <Financial Times>, 런던, 2013년 2월 20일.
(2) 1963년 1월 14일 기자회견에서 샤를 드골 대통령은 영국의 ECC 가입에 반대하면서 “영국의 고유한 성격, 구조, 상황은 유럽 대륙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3)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할 경우 2017년 전에 국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이다.
(4) ‘영국 언론을 난처하게 만든 보고서’(Ce rapport qui accable les médias britanniqu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월호.
(5) 1984년 퐁텐블로 정상회의에서 마거릿 대처는 영국의 EU 분담금과 상환금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60% 분담금 할인 획득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5년 토니 블레어는 유럽 재정의 구조적 개혁을 조건으로 2007~2013년에 할인받은 분담액 중 105억 파운드를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6) Andrew Geddes, <Britain and the European Union>, Palgrave-Macmillan, 베이싱스토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