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킹, 평가 수단인가 파괴 무기인가

2013-05-13     이자벨 브뤼노 외

과도한 직업 스트레스로 인해 노동자가 소진 상태로 치닫는 현상은 문명의 병폐로 묘사되기도 했다. 특히 열성적인 직장 노동자에게서 빈번히 발생한다. 이런 현상은 경영관리 기술이 노동자에게 항구적인 스트레스의 원인일 뿐 아니라, 업무 자체를 왜곡시키고 노동자에게 업무의 가치를 상실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품질 향상’ 수단으로 알려진 벤치마킹은 그렇게 민간부문뿐 아니라 공공부문까지 잠식해버렸다.

2008년 로랑스 파리조 프랑스경제인연합회장은 같은 해 유럽연합(EU) 의회에서 열린 프랑스경제인연합회총회 슬로건 '벤치마커야말로 건강의 척도!'를 다시금 외쳤다. 벤치마킹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 급여, 이념, 국가에까지 벤치마킹을 적용해야 한다는 이 주장은 아연실색할 만하다.

벤치마킹이 과연 무엇이기에? '개선을 목적으로 한 경쟁적 관점에서의 평가'를 일컫는 경영기술의 한 종류에 대한 예찬이다. 파리조 회장의 시각에서 '국가에 대한 벤치마크'란 '가장 우수한 정책을 찾기 위한 다른 국가들과의 비교'를 뜻한다. 즉 기업에 가장 유리한 세제정책, 개입이 가장 적은 행정제도, 가장 우수한 대학(1) 등을 의미할 것이다. 또한 경쟁력에 대한 근심에서 발상을 얻는 것을 말한다.(2) 1990년대부터 파리조 회장이 전세계 지도자들에게 전파하려 애쓴 초보적 발상이다. 1996년 유럽기업인라운드테이블(ERT)이 유럽집행위와 공동으로 세미나를 열어, 정책 결정자를 대상으로 '불가피하고 힘든 선택을 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 정당화를 도우려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3) 물론 그 선택이 누구에게 힘들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교묘한 술책'으로 변질된 '좋은 뜻'

벤치마킹에는 벤치마크라는 기준점이 따라오는데, 이는 절대적인 달성 목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경영자가 얼마나 까다롭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세계 최고가 비교 대상의 기준점이 된다. 벤치마크의 강점은 고위직에 있는 사람의 영향이나 비율상의 과학성이 성과의 객관화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데 있다. 벤치마크에 부정적인 사람들 앞에, 벤치마크는 다른 곳에서 달성한 더 훌륭한 성과를 증거로 제시해버린다. 그렇기에 '경쟁'이라는 이름하에 정리해고, 구조조정, 예산의 합리화를 수용케 하고 현실적이지 못한 반대론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 훨씬 용이하다.

제록스 같은 기업들이 민간부문에서 개발한 벤치마킹이 미국 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1980년대였다. '쇄도하는 일본'에 밀려 잃어버린 시장을 되찾을 수 있는 무기로 소개되며, 명성 높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미국 산업의 성과 부진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권장됐다.(4) 벤치마킹은 재화 및 서비스, 교육 및 보건, 비영리부문 등 분야를 불문하고 '전사적 품질경영'(TQM)을 가장 열성적으로 추진하는 조직을 선정하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만든 '말콤볼드리지'상의 선정 기준이기도 했다.

벤치마킹은 그 주체가 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성과 향상을 추진하고, 항상 '최고의 관행'을 찾아헤매며, 늘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상대적 이상향이라 할 수 있는 '품질'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만든다. 경쟁력 향상 노력에 모두가 동참하는 것은, 물리적이거나 법적 강제력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보다는 참가자들의 자발적 의지에서 비롯된다. 자발적이고, 앞서나가고, '종합성과'의 증거를 제시하거나,(5)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인데, 그야말로 '견디기 힘든 대안'일 것이다.(6) 이는 집단 소속원들을 통치하는 교묘한 술책이 아닐 수 없다.

강제력이 없는 상황에서 무엇이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될까? 물론 보너스와 보상이 존재하지만, 보상제도 때문에 이런 관리 방식에 필요한 자원이 고갈되지는 않는다. 자발적 주도와 스스로에 대한 평가, 개인의 결의, 책임소재화 및 자발성을 바탕으로 실행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벤치마킹을 '임금노동자의 주관적 결의에 대한 통제'(7) 혹은 '임금노동자층의 힘을 징집'(8)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이 표현들은 자유와 창의성, 피지배자의 주체성을 소모하는 지배 방식의 양면성을 부각시켜준다.

이런 개념이 변화해가는 기업 내 노동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기는 하지만 현대의 공공행정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공공예산 기근과 과도한 공공행정 체제에 대한 비난이 일반화된 오늘날, 정부가 개입을 확대하거나 자원투자를 확충하는 것은 어불성설로 들린다. 그보다는 조직을 효율화해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전형적인 자유주의 슬로건인 '작은 국가'를 신자유주의 슬로건인 '더 효율적인 국가'가 대체하게 된다. 하지만 '더 효율적'이라는 의미에 대한 정의는 각양각색의 기관에는 당연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기업이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한다면 국가와 그 행정부의 목표는 무엇일까? 민주주의하에서는 원칙적으로 국민이 목표를 결정하지만, 이 문제는 정치권 내에서 근본적 의견 충돌을 불러온다. 이렇게 보면 벤치마킹 방식은 당연한 것도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게 된다.

국가가 수치를 활용하는 것 자체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18세기에 통계가 개발될 때부터 통계는 '국가의 학문'으로 소개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권력이 특권적 도구로 고안해낸 통계 수치가 오늘날에는 '신개념 경영'으로 포장돼 공권력을 산산조각 내는 도구가 되었다. 벤치마킹은 통계 수치를 동원해 개혁적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통계가 지닌 힘을 얻고자 한다. 국가의 형성과 동일한 외연을 갖는 통계 체제와 벤치마킹의 산물인 계량 수치 간의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신(新)공공부문 계량화'라고 하거나, 일각에서 지칭하듯 '신공공경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신공공부문 계량화는 10여 년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수없이 반복돼온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업무효율성을 증명하기 위해 조직 소속원이 스스로 습득해야 하는 계량적 요소, 즉 성과지표가 그중 하나다. 이뿐만 아니라 계량화된 목표도 있다. 상급기관들은 계량적 목표를 조직 소속원에게 부과하고 이를 통해 '성과 문화'를 심어주려 한다. 또한 한눈에 수많은 수치 데이터를 이해하기 위한 성과관리표, 포상과 제재를 분배하기 위해 '훌륭한 모범생'과 부진 학생을 가리는 등급 매기기 등도 그런 요소에 속한다. 이런 관리 기술은 재정조직법(LOLF), 신정부가 공공정책현대화(MAP)라고 개칭한 공공정책검토(RGPP)라는 일련의 조치를 통해 프랑스 공공행정 체제 내에 제도화됐다.

제각각 '좋은 의도'에 바탕을 두었다고는 하나 이런 조치는 자유롭게 알아서 굴러가는 것이 아닐뿐더러, 폐쇄적인 엘리트층에 의한 경영지배 아래 놓인다. 또한 어느 분야에나 적용 가능하다며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벤치마킹을 강요하고 있지만, 이들이 스스로에게 벤치마킹을 적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단적인 예가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가 설정한 정부 부처들의 목표수치 달성 정도에 따른 평가 및 등급 매기기일 것이다. 주간지 <르푸앵>에 2008년 1월 평가 결과와 등급이 발표되면서 큰 파장이 일었으나 이 방식은 곧 폐지됐다.

벤치마킹의 사회 전반에 걸친 적용은 의사, 법조인, 경찰, 대학교수 등 특정 집단의 반대에도 부딪혔다. 이들은 벤치마킹의 경영상 비교평가 방식이 기존 동료평가 방식을 대체하면서 직종이 갖던 종래의 권위를 크게 약화시킨다고 보았다. 통상 집단행동에는 관심이 없던 이들 '지배층'은 벤치마킹의 첫 목표가 된 하급 직원들이 반대해 규합하자 그에 동참했다.

벤치마킹이 갖은 반대를 무릅쓰고 공공부문에 적용될 수 있던 것은 고위층 관료와 '아웃사이더'에 속하는 일부 중간계층 집단의 결속이 있었기 때문이다.(9)

하지만 벤치마킹 지지자들이 내세운 공정성과 객관성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 대신 수많은 역효과가 불거졌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렸고, 특히 경찰처럼 '수치에 따른 정책'으로 유명한 계통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자살하기까지 이르렀다. 경찰에서 운영하는 심리상담 서비스에 걸려오는 전화 수는 10년간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조직화된 벤치마킹 거부운동

일관성 없이 수시로 바뀌는 목표의 달성을 강요받는 사람들은 불안정하고 불분명한 상황으로 인해 업무 이행에 피해를 본다. 이들은 종종 '본질적 의의 상실'이라고 말한다. 공공서비스 이용자들은 자칭 '더 나은 국가'가 실제론 공공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야기했음을 깨달았다. 한 예로, 그전까지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던 구류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환자의 신속한 치료를 위해서라던 병원응급실 입구 환자 분류 시스템은 재진료를 위해 되돌아오는 환자 수만 증가시켰는데, 이는 곧 환자에 대한 병원의 책임 정도가 부족함을 의미한다.

수치 지표에 따라 평가되는 사람들은 '매상 늘리기'를 배우거나, 자신의 성과를 최대한 미화시키는 방법을 습득해야 했다. 경찰에서는 범죄율에 대한 실질적 효과는 없이 안이한 검거 늘리기에만 고심했고, 의사들은 복잡한 병리의 치료보다는 가벼운 증상의 환자 치료를 우선시하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일관성 있는 논문 1편보다 단편적인 논문 3편 발표에 치중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이들을 어찌 비난할 수 있을까? 이렇게 보면 경찰·의사·연구자 등 일정한 직업 종사자들의 주도적인 면모나 반응성을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치에 근거한 현실은 경영기술이 만든 현실이 되어버린다. 현실은 더 이상 국가 정책을 차분히 검토할 수 있는 최종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그 자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벤치마킹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특히 프랑스에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리옹대법원은 2012년 9월 4일 봉급생활자에 대한 경쟁 강요가 이들의 건강에 치명적 해를 끼치는 만성 스트레스의 요인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남부론알프스저축은행이 벤치마킹 방식에 따라 내부 조직화를 추진하는 것을 금지했다. 2007년부터 이 은행은 직원들의 일일 성과 비교와 등급발표제에 따른 인사관리제도를 시행했다. 이런 경영 방식이 가져온 공포를 규탄하는 남부노조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사법 소송은 벤치마킹 같은 조치에 대한 거부운동의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전례 없는 판결은 벤치마킹 시행이 관련된 수많은 소송 사례에 길을 열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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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자벨 브뤼노 & 에마뉘엘 디디에 Isabelle Bruno & Emmanuel Didier 경제학자. 공동 저서로 <Benchmarking: L'Etatsous pression statistique>(벤치마킹: 통계수치의 압박에 놓인 국가·La Découverte·파리·2013)가 있다.

번역 / 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 졸.

(1) ‘Benchmarker, c’est la santé’(벤치마킹은 건강이다), Mouvement des entreprises de France(MEDEF·프랑스경제인연합회), 2008년 2월 8일.
(2) Gilles Ardinat, ‘La compétitivité, un mythe en vogue’(경쟁력이라는 허구의 인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0월호.
(3) ERT, ‘Benchmarking for policy-makers: the way to competitiveness, growth and job creation’, 세미나 보고서, 1996년 10월.
(4) <The MIT Commission on Industrial Productivity Made in America: Regaining the Productivity Edge >, MIT Press, 케임브리지, 1989.
(5) Florence Jany-Catrice, <La Performance totale: nouvele sprit du capitalisme?>(전사적 성과: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인가?), Presse suniversitairesdu Septentrion, 빌뇌브다스크, 2012.
(6) Philipe Pignarre, Isabelle Stengers, <LaSorcelleriecapitaliste: Pratiquesdedésenvoûtement>(자본주의의 요술, 요술에서 벗어나기), La Découverte, 파리, 2007.
(7) Philippe Zarifian, ‘Contrȏle des engagements et productivité sociale’(임금노동자의 결의 통제와 사회생산성), Multitudes, n°17, 파리, 2004년 여름호.
(8) Frédéric Lordon, <Capitalisme, désiretservitude: Marx et Spinoza>(자본주의, 욕구, 예속: 마르크스와 스피노자), La Fabrique, 파리, 2010.
(9) Nicolas Belorgey, <L’Hȏpitalsouspression: Enquêtesurle ‘nouveau management public’>(압박 속에 놓인 병원: ‘신공공경영관리’에 관한 연구 ), La Découverte, 파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