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리코,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것인가

2013-05-13     제임스 코언

1967년, 1993년, 1998년 세 번의 국민투표에서 미국 편입을 거부했던 푸에르토리코 국민이 마침내 마음을 돌린 듯하다. 그러나 미국 편입을 찬성한 국민투표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유권자의 실질적 의중이 무엇인지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푸에르토리코는 과연 미국의 51번째 주에 편입되기로 한 것일까? 2012년 11월 6일 국가 지위에 대한 국민투표 때 신진보당을 이끌던 루이스 포르투뇨 총독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다. 그는 "투표자의 61% 이상이 미국 편입에 찬성했다며 수많은 언론 앞에서 국민이 현 국가 지위에 명백한 거부를 표시했고, 푸에르토리코의 연합국가 편입에 찬성했다"고 설명했다.(1)

그러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국민투표의 결과가 그렇게 간단명료하지만은 않다. 국민투표의 첫 번째 질문은 '현 국가 지위를 유지하느냐'였고, 179만8987표 중 53.97%가 이에 반대를 표시했다. 미국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가 이같은 모욕을 당한 것은 1952년 국가 건립 이후 처음이다. 첫 번째 질문보다 더 모호한 두 번째 질문은 '미국에 편입, 완전한 국가독립, 주권을 가진 국가이되 일종의 연합 관계에 있는 국가라는 세 가지 국가 지위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였다. 현재의 자치령 지위는 선택 사안 중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현 지위 유지를 지지하는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이에 대한 불만으로 기권표를 던졌고, 이들 49만8천 표는 유효표에서 제외됐다. 기권표가 개표 결과에 포함됐다면 전체 표의 26.5%를 차지했을 것이고, 미국 편입 찬성표 비율은 61%가 아니라 44%였을 것이다. 이는 1993년과 1998년의 국민투표 결과인 미국 편입 지지 46%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2) '느슨한 연합 형태의 주권국가' 안은 24.2%의 지지를 받았고, 완전한 국가독립은 3.98%의 표밖에 얻지 못했다.

비록 국민투표 결과에서는 부진했지만, 푸에르토리코의 완전독립 지지자들은 자치령 지위 유지에 대한 거부 의사가 확실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미국의 푸에르토리코 점령에서 115년이 지난 지금에야 '탈식민지화' 과정이 시작된 것이라고 풀이하기 때문이다. 법조인이자 푸에르토리코독립당(PIP)을 이끄는 페르난도 마르틴 가르시아는 국민투표 실시를 막후에서 이끈 당사자 중 한 명으로 현 자치령 지위 유지 거부 결과에 만족했다. 그는 향후 몇 개월 이내에 입장표명을 해야 하는 미국 국회가 푸에르토리코의 편입을 반대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푸에르토리코의 미국 편입 의사가 큰 난관이 아니라고 본다. 우파가 득세하는 미국 국회가, 국민의 45%가 최빈층에 속하고 민주당의 기반 세력이 될 스페인어권인 푸에르토리코 국민을 미국 내에 편입시키고 싶어 할 리 없다는 계산이다.

자치령 지위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전통적으로 신진보당(PNP)에 맞서온 인민민주당(PPD)은 국민투표에서의 참패를 같은 날 치른 총선에서의 짧은 승리로 위로받을 수 있었다. 총독에 인민민주당의 젋은 당수 알레한드로 가르시아 파디야가 당선됐을 뿐 아니라, 국회 양원에서도 우위를 회복했던 것이다. 신진보당 출신이 아직 남아 있는 자리는 워싱턴에 미국 하원 대표로 파견된 페드로 피에르루이시가 유일하다. 친(親) 미국 편입 세력의 영향에 맞서는 데 인민민주당은 공화당과 가까운 로비그룹인 프라임폴리시그룹(Prime Policy Group)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는데, 인민민주당은 얼마 전부터 월 5만 달러라는 적은 금액으로 이 그룹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신진보당의 선거 패배는 푸에르토리코의 국가 지위 논의에도 묻히지 않고 경제위기 초기부터 불거졌던 정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숭배자인 포르투뇨 총독은 2009년 3월 '국가재정 비상사태'에 관한 '제7법'을 채택했고, 그 결과 전체 공무원의 14%인 3만 명이 해고됐다. 그리고 총파업이 촉발되면서 국민의 분노가 결집되기에 이르렀다. 포르토리코대학 내 충돌 사태도 신진보당의 이미지 실추에 한몫했다. 등록금 800달러 인상을 위해 정부는 2010년 말 리오피에드라스 캠퍼스에 경찰을 투입했고, 많은 잔혹 행위가 자행됐다.(3)

알레한드로 가르시아 파디야 신임총독은 2013년 1월 2일 취임과 동시에 전임자와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자 했다. 취임사에서 파디야 신임총독은 교육과 보건, 사회복지에 대한 애착을 강조했고 "실업, 공공부채, …전례 없는 신용 하락, 심히 우려되는 범죄율과 사회분열"(4)에 맞서 푸에르토리코 국민의 용기에 호소했다. 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독일의 메르켈 방식보다 프랑스의 올랑드 방식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이같은 입장은 지극히 말뿐이며, 1930년대 뉴딜정책 당시 창립된 인민민주당의 진보주의적 야심은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 부채 심화'라는 변명을 대며 공무원의 퇴직 연령을 지적하는 파디야 총독도 전임자의 정책을 따라가고 있다.

2013년 초, 푸에르토리코의 부채는 670억 달러에 달했고 연간 이자만 40억달러였다. 2012년 말 70억 달러에 달한 버락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법이 끝나면서 푸에르토리코 자치령은 공무원 월급 지급불능 사태를 최후의 순간에 모면했다.(5) 신용평가회사들은 곧바로 푸에르토리코 국채 등급을 하향 조정했고, '부실 채권'으로 분류되는 것을 간신히 모면했다.

그러나 푸에르토리코의 사회적 여건은 대대적인 공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실업률은 경기침체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16.5%에 달한 것이 2013년 초에는 13.8%였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경제활동인구 비율이 미국이 63%인 것에 비해 푸에르토리코는 40%도 안 된다는 것이다. 가구당 소득 중앙값(6) 수준은 미국이 5만8526달러인 데 비해 2만425달러에 지나지 않는데, 카리브해 인접국들과 비교하면 훨씬 부유한 국가로 남겠지만, 미국 편입시 미국 내에서 가장 빈곤한 주가 될 것이다. 푸에르토리코의 자국 경제보다는 미국 정부의 재정 지원 덕에 2010년 설립된 172억 달러 규모의 '연방기금'은 푸에르토리코 국민이 더 극심한 빈곤 상황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주고 있는데, 이로써 양국의 의존 관계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경제적 궁핍을 피하기 위해 많은 푸에르토리코인들이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푸에르토리코 국민 수는 2000년 380만 명에서 2010년 372만 명으로 감소했는데,(7) 실질적으로는 이보다 적을 수도 있다. 인구통계조사 담당기관은 수치상에 오류 가능성이 있고 실질적으로 이민을 떠난 국민 수는 이보다 3∼4배 많을 수 있다고 했다.(8) 2009년 처음으로 미국 내 거주 중인 푸에르토리코 국민 수가 본토 내 거주 인구를 넘어선 뒤 이 상황이 유지되고 있다.

이렇듯 미국 경제에 대한 푸에르토리코의 역사적 의존성을 드러내는 현상은 아주 많다. 1950년 도입돼 미국 기업들에 대한 세제 혜택을 골자로 한 산업화 모델은 급격히 침체돼 1996∼2006년에 폐지됐다. 이 모델에 기반해 창출된 일자리와 산업조직은 푸에르토리코 국민의 본토 이탈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기업들이 국가경제 순환 경로 밖으로 이윤을 빼돌릴 수 있는 시스템에서 국가 발전을 위한 자율적 역동성은 생겨날 수 없었다. 1975년 당시 경제학자 토빈은 푸에르토리코의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생산(GNP) 간의 급격한 차이, 즉 본토 내에서 창출한 소득과 국민이 창출한 전체 소득 간의 격차를 지적했고 이는 여전히 현실 문제로 남아 있다.(9)

이 격차가 향후 몇 년 내에 해결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적 대립은 늘 국가 지위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사회·경제적 쟁점은 혼란 속에 남아 있다. 따라서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푸에르토리코 민주당인 신진보당의 피에르루이시가 친공화당 티파티 성향의 포르투뇨의 후임자가 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둘은 모두 미국 편입에 호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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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코언 James Cohen 파리3대학(소르본대학) 교수. 주요 저서로 <불법이민자를 찾아: 미국 내 반이민자운동 및 정치>(A la poursuite des illégaux: Politiques et mouvements anti-immigrés aux Etats-Unis·르크로캉·테라(Terra) 전집·벨콩브앙보즈·2012)가 있다.

번역 / 김윤형

(1) El Nuevo Dia, 산후안, 2012년 11월 14일.
(2) James Cohen, ‘Porto Rico toujours en quête d’un statut’(푸에르토리코, 국가로 남을 것인가)와 ’Consensus introuvable à Porto Rico’(교착상태에 빠진 푸에르토리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각각 1992년 3월호와 1999년 4월호.
(3) Victor M. Rodriguez Dominguez, ‘Partisan politics, neo-liberalism, and struggle for democracy and public education in Puerto Rico’, www.dissidentvoice.org, 2011년 4월 4일.
(4) ‘Discurso integro del gobernador Alejandro Garcia Padilla’, www.primerahora.com, 2013년 1월 2일.
(5) ‘Enero luce complicado’(새해 상황 밝지 않아), El Nuevo Dia, 2012년 12월 30일.
(6) 국민을 소득분포에서 상·하위 50%로 나누는 점. 이 중앙치를 기준으로 전체 사례의 반이 이 점의 상위에, 나머지 반이 하위에 있게 된다.
(7) ‘Poblacion de una década perdida’(잃어버린 10년의 세대), El Nuevo Dia, 2011년 1월 3일.
(8) ‘Somos menos’(점점 줄어드는 푸에르토리코 인구수), El Nuevo Dia, 2012년 8월 24일.
(9) César J. Ayala, Rafael Bernabe, <Puerto Rico en el siglo americano: su historia desde 1898>(미국 지배하의 푸에르토리코, 1898년 이후 역사), Callejon, 산후안, 2011.


자치령 푸에르토리코
 
1952년 자치령 지위를 획득한 푸에르토리코 국민은 미국시민권을 갖게 되었는데, 미국시민권 부여는 이미 1917년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푸에르토리코 국민은 미국 연방정부에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고, 미 연방 양원 국회 내 대표권이 없으나, ‘Comisionado Residente’라는 지위의 의결권 없는 대표를 1명 파견할 수 있다. 만일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에 편입되면 미 국회 내 상원의석 2개, 하원의석 5~6개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미국 대선에 투표권을 갖게 되고,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대규모 재정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연방정부의 사회복지제도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진보당이 미국 편입을 지지하는 반면, 인민민주당은 푸에르토리코 고유의 언어·문화 수호를 이유로 현 자치령 지위 유지를 지지하며 편입에 반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