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단일화를 반대한다

세계의 창(窓)

2013-06-07     세르주 알리미

단일 시장, 단일 화폐에 이어 이제 단일 언어를 도입할 차례인가? 유로화 지폐를 장식하는 문과 다리들은 이미 근거지도 역사도 없는 상인들 사이의 원활한 교역을 상징하고 있다. 유럽의 여행자들이 더 이상 여행자수표 따위를 챙길 필요가 없듯이 학생들도 사전 없이 유학길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공항 영어'(Broken English) 하나면 만사형통인가? 이 언어는 이미 프랑스 대학 곳곳에서 통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대학 교육이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너무 뒤처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당에 대학 수업에서 프랑스어만 고수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준비에브 피오라조 고등교육·연구부 장관은 "프랑스로 유학 오는 한국·인도·브라질 등 신흥국 출신 학생들의 사기를 꺾는 언어 장벽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전히 전세계 29개국에서 '몰리에르의 언어'(프랑스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한다('셰익스피어의 언어'(영어)는 56개국의 공식 언어). 프랑스어 사용 인구는 전체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이 대표적이다.(1) 하지만 프랑스는 내전의 소용돌이를 뚫고 건너온 이 검은 대륙의 학생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너무 가난해서 비즈니스스쿨이나 공학 에콜의 비싼 등록금을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들은 프랑스에 비해 외국인 학생 비율이 현저하게 낮지만(프랑스 13%, 미국 3.7%),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중국어나 포르투갈어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나서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피오라조 장관은 "영어 강의를 허가하지 않으면 학생 5명 정도만 남아서 테이블에 둘러앉아 프루스트에 대해 토론하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며 비꼬았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역시 "비즈니스나 법을 공부하는 대신 <클레브 공작 부인> 따위나 읽어야 하는 학생들이 불쌍하다"며 고전문학에 대한 경멸감을 드러냈다.

1994년 발효된 투봉법(프랑스어 보호법)은 "공립·사립 교육기관에서 교육, 시험, 콩쿠르, 석·박사 논문 작성에 사용되는 언어는 프랑스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 세기'에 만든 이 법에 적대적인 프랑스의 일부 명문대학 교수들은 다언어주의(21세기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국제기구들에서 문제없이 실현되고 있다)를 수호하려는 노력이 영어 사용자들의 프랑스 유학을 가로막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한 언어의 '매력'을 신흥국 출신 유학생 수로 가늠할 수는 없다. 그 언어 속에 반영된 타자와의 교류 방식, 현재의 세계와 앞으로 도래할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프랑스는 자국의 영화와 샹송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다. 마찬가지로, 현재 초강대국의 언어에 의해 천대받고 있는 지역어로 학문과 연구의 결과를 표현하도록 하는 원칙을 위해 싸울 수는 없을까?

언어학자 클로드 아제주는 "오늘날 역설적이게도, 미국인이 아닌 타 지역 사람들이 미국화와 영어의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프랑스 이외의 지역(아프리카, 퀘벡 등) 사람들이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소수 강단 엘리트들의 속 편한 숙명론이 아니라 이들의 고집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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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1) 'Facultés: les cours en anglais sont une chance et une réalité'(대학: 영어 강의는 기회이자 현실이다), <르몽드>, 2013년 5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