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라 트라비아타'를 연주한다면

2013-06-07     피에르 랭베르

효율적인 서비스를 위해 지출을 줄이는 것이 공익 서비스의 핵심 요소로 여겨지다 못해 이제는 하나의 세계적인 신조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간의 인적 관계가 중요한 분야에서는 지출 축소가 오히려 서비스의 질적 악화를 초래한다. 인적 서비스의 무조건적 기계화가 생산성에 대한 집착을 진정으로 해소해줄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선진국 국민은 일상생활 속에서 정반대의 두 갈래 길이 교차한다는 느낌을 쉽게 지울 수 없다. 한쪽에서는 저렴하고 실용적인 고성능 기기를 통한 개인 서비스가 늘어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조직 내를 오고 가는 사람과 사람 간의 직접적인 공공서비스가 줄어들고 또한 그 가치는 높아져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재정 조정, 지적 흐름, 투자의 이동에 따라 더욱 가속되는 듯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혹은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50년 전쯤 밝혀진 한 구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치 지도층이 애써 모른 체하는 이것은 바로 '비용질병'(Cost Disease)이라는 개념이다.

1960년대 중반,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젊은 경제학자인 윌리엄 보멀과 윌리엄 보웬은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브로드웨이의 연극 티켓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연 티켓값이 계속해서 인상되는 것은 예술 분야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같은 모차르트 현악 사중주를 연주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량은 1785년 빈 요제프 2세의 궁전에서든, 두 세기가 지난 뉴욕 카네기홀에서든 동일하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 그동안 실내악의 생산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제조업 분야의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에 따라 공연예술의 상대적 비용은 상승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교육, 의료 등 다른 분야에서도 비용질병의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멀은 비용질병의 현상에 대해 다룬 최근의 저서에서 "이런 분야의 경우 서비스 생산을 위한 노동량은 줄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1) 그는 크게 두 가지 분야를 나누어 논한다. 첫 번째는 생산 자동화가 용이한 재화와 용역을 다루는 분야로,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대체함에 따라 추가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이 줄어드는 경우다. 예를 들어 미국 포드사가 모델 T를 선보인 이후로 조립 공정 시스템의 생산성은 크게 증가했으며, 자동차값은 유지하면서 근로자의 임금은 빠르게 인상될 수 있었다.

두 번째 분야는 의료, 교육 등과 같이 생산의 상당 부분이 사람의 노동에 의존적인 경우다. 의료·교육 분야의 생산성에는 변화가 없지만 병원 종사자나 교사의 임금은 자동차산업 근로자와 함께 계속해서 인상되었고, 그 결과 해당 분야의 생산 비용은 조금씩 높아졌다. 이에 대해 보멀은 "수십 년 후에는 이 비용 상승의 격차가 점점 누적되어 인적 서비스가 공산품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은 1978~2008년, 20년간 의료비 인상률이 300%(물가상승률 제외)에 달해 전체 경제 대비 3배에 달하는 상승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고등교육비도 250%의 인상률을 기록했다. 이는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선진국의 대부분에서 유사한 추세가 나타났으며, 오늘날 많은 신흥국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자동화에 대한 저항

비용질병은 교육, 공연예술, 의료계 외에 도서관, 법률 서비스, 사회복지, 우편, 치안, 환경미화, 요식업, 사법권, 맞춤 제작, 지역 경찰, 이·미용, 장의업, 수리·수선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분야의 공통점은 자동화와 거리가 멀고, 인간의 손을 필요로 하며, 매번 주어진 업무에 따라 각기 다른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서비스의 질은 생산에 쏟는 노동량에 달려 있다. 보멀은 "노동시간을 줄이려면 해당 서비스의 질적 악화를 고려해야 한다. 의사, 교사, 음악가에게서 업무 속도만 높이려 한다면 날림 수술, 대충 배운 학생, 엉망인 연주라는 결과물을 얻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정치 지도층이 이해하기를 거부하고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는 내용이다. 물론 정부가 공연예술 비용의 상승에 따라, 경제진화론적 관점에서 실패할 수도 있는 예술 활동을 지원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직접적인 서비스의 비용 상승을 해당 분야의 천성적 특징에 기인한 것이 아닌, 경영 실패 또는 생산성 부족으로 인한 것으로 그 책임을 돌리면서 정부 지원책은 약화되었다. 또한 최근 재정 긴축이 절대적 필요로 떠오르면서 인원 감축과 소요 시간 단축, 임금의 상대적 삭감 등의 조치로 학교와 병원, 공공서비스 분야가 우선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이 세 분야는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의 긴축정책에서도 최우선적으로 희생양이 되었다.

재정 균형을 위해서는 세금 인상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생산성 증대의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을 제외할 수 없는 서비스 분야의 생산성을 무리해서 끌어올릴 경우 곧 질적 악화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가 아는 한 현악 사중주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바이올린 한 파트를 아예 없애버린 사례는 전무한데, 정부는 이 기막힌 방책을 각종 분야에 적용한다. 결과는 뻔하다. 영국·캐나다에선 긴급한 수술이 아니면 수개월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고, 우체부의 일일 순회 횟수가 줄어들며, 학교에선 강의가 폐강되고, 산부인과는 통·폐합되며, 공공기관에는 대기자 줄이 끝없이 늘어서게 되었다. 보멀은 "일련의 상황에서 염려되는 것은 비용질병에 가장 취약한 분야가 선진 사회의 핵심적 특징이라는 사실"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다시 말해 이 분야는 공공서비스 분야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공익 관련 활동이라는 것이다. 반면 생산성이 성장하고 있는 분야는 주로 민간 기업에서 나타나며, 이 분야에서 자본가는 신중하게 선택한 투자 대상에서 이득을 얻게 된다. 미국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말한 "민간의 풍요와 공공의 빈곤"이 나타난다.

비용 상승을 이유로 공공 부문의 핵심 분야에 변화를 주면서, 정치 지도층은 계층적 선택을 해야 했다. 부유층이 공공서비스를 이용할수록 빈곤층은 그에 따른 서비스 악화를 더 많이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인류학적 선택이기도 했다. 재정 감축에 따라 우체국, 은행, 관공서, 교통기관 등의 창구 직원이 대폭 사라지고 기계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런데 기계화 흐름 속에서도 가장 단순하고 획일된 분야, 다시 말해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분야가 로봇에게 맡겨졌다. 창구에서 인간의 손을 빌리는 경우는 문제가 발생하거나 잠재적 분쟁이 있는 경우로 제한되었다. 이는 직접적 서비스 분야에서 인간관계의 희소화뿐만 아니라 관계 해체의 느낌마저 준다.(2)

재정적 압박으로 인해, 또한 첨단 기술을 통한 놀라운 생산성 혁신으로 인해 정부는 갈림길에 놓였다. 서비스의 질적 악화를 이어가면서 비용질병을 계속 치료할 것인지, 아니면 비용 상승이 더 이상 경제적 불행이 아닌 이익에 따른 합당한 대가라고 여기며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만약 세계경제가 지금 같은 흐름을 계속 이어간다면, 인적 서비스 비용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만큼 기계화된 서비스 비용은 줄어들 것이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좋은 예로 수행 속도가 1MIPS(초당 100만 개의 명령어 수행)에 해당하는 컴퓨터값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보멀은 "1997년 기준 1MIPS 컴퓨터 한 대 값은 27분간 노동한 데 따른 소득에 해당한다. 1984년에는 52시간 노동한 소득, 1970년에는 1.24명의 평생 소득에 해당한다. 1944년에는 믿기 어렵겠지만 73만1천 명의 평생 소득에 달하는 수준일 것"이라고 계산한다. 게다가 수행 속도도 1MIPS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렇게 저렴한데다 천문학적 양의 데이터를 수집·저장·처리할 수 있는 성능까지 갖추면서, 더욱 복잡한 일도 자동화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 공장에서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생산하는 대만 기업 폭스콘의 궈타이밍 회장이 "사람은 동물과 같아서, 매일 100만 명의 동물을 관리하는 것은 골치가 아프다"고 말하며, 생산 라인에 로봇 100만 대를 들이려 한 바 있다. 이처럼 19세기에 시작된 기계화가 오늘날 최첨단 산업 분야에까지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3) 이제는 근로자의 표준화된 일손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을 넘어서서 지적노동의 기계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적노동의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다. 정교한 로봇 팔로 수술할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작성된 신문 기사, 자동 논문 교정, 컴퓨터를 통해 수천 건의 판례를 분석해 수립한 재판 전략, 데이터베이스 연계 프로그램이 내놓는 의료 진단 및 투약 등이 이미 실제로 행해지고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 에릭 브린졸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공저 <기계와의 경쟁>을 통해 "기계가 인적 분야에 빠르고 깊게 잠식해 들어온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는 다분히 경제적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고 말하며, "기술은 고학력 인재와 미숙련 노동력 간, 유명인과 일반인 간, 자본과 노동 간의 수익 분배 구조를 바꾸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4)

그뿐만 아니라 기술은 지성의 요람인 대학 사회 또한 흔들어놓을 것이다. 최근 온라인 대학 강의 시스템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2012년 4월 처음 문을 연 미국 온라인 강좌 업체 코세라(Coursera) 회원 수가 1년 만에 300만 명을 넘어섰다. 등록 회원에겐 협력 대학에서 녹화한 강의 영상을 제공하며, 과제와 시험은 컴퓨터로 채점한다. 강의를 이수한 회원에게는 수료증이 발급되며 (유료), 수료증은 관련 지식 습득을 증명하기보다는 효력이 있는 역량 인증의 역할을 하게 된다. 해당 시스템 설립자는 이제 좀더 높은 가격대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학생 관련 데이터를 제휴사에 판매하는 등 시스템의 수익성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또한 '승자 독식'(선두에 선 소수의 주체가 해당 분야 대부분의 부를 차지하는 현상)의 논리로 볼 때, 명문 대학 유명 교수의 강의가 각 전공 분야의 경쟁력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5)

그러나 이런 복잡한 업무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도 기계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것이 총체적 자동화의 전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일반 고객이 기계와 씨름하는 동안에도 프리미엄 고객에게는 전문가의 친절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고, 5년간 강사의 훌륭한 가르침을 받은 하버드 졸업생은 온라인 대학의 발전에도 마음 편히 박수를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갈 길은 명백하다

카를 마르크스는 1856년 4월 한 연설을 통해 "우리 시대에는 모든 것이 각각 정반대의 것을 그 안에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노동을 단축시키고 동시에 더 많은 결실을 내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기계가 오히려 인간의 노동을 쇠약하게 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중략) 우리의 모든 발명과 진보는 물질적 힘에 지적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생명에서 지성을 빼앗아 그것을 물질적인 힘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귀결하는 듯하다"고 말한 바 있다.

비용질병 또한 그 안에 정반대의 것을 품고 있어서, 생존 기준을 넘어선 경제정책으로 자체적인 치료법을 이끌어낼 것이다. 보멀이 제시한 예측에서도 대안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의 국민의료비 지출 수준은 1960년 GDP 대비 5%에서 2012년 18%로 늘어났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오는 2105년에는 GDP 대비 62%에 달하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은 극단적 예임을 감안하고 성급한 일반화 오류도 경계해야겠지만, 비용질병을 앓는 다른 분야도 함께 고려해볼 때 한 가지 분명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생산성 향상으로 재화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이 감소함에 따라 인적 생산 가치는 사람의 노동에 의존적인 서비스, 특히 주로 공공·공익 분야의 서비스를 점점 더 많이 끌어내게 되었다.

여기에 바로 핵심이 있다. 가치의 무게중심을 공공서비스에 둔다면 이를 둘러싼 소유권 경쟁이 커질 것이다. 기업과 정부는 이미 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자 힘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공공서비스를 바로 세우고 기술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사회적 힘을 이룩하려 한다면, 나아가야 할 길은 이미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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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윌리엄 보멀, <비용질병: 왜 컴퓨터는 저렴해지는데 의료비는 그렇지 않은가>, Yale University Press, 뉴헤이븐, 2012.
(2) Laurent Cordonnier, ‘소비하는 지금, 당신은 노동자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6월호.
(3) John Makoff, ‘Skilled work, without the workers’, <The New York Times>, 2012년 8월 18일자.
(4) Erik Brynjolfsson & Andrew McAfee, <기계와의 경쟁>, Digital Frontier Press, 렉싱턴, 2011.
(5) Robert Frank & Philip Cook, <승자 독식 사회>, Free Press, 뉴욕,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