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테러, 지하드의 세계화인가?

2013-06-07     무라드 바탈 알 시샤니

지난 4월 15일 보스턴 마라톤에 대한 테러는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전사들을 코카서스를 경유해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동시킨 세계적인 지하드의 공포를 미국에 다시 떠오르게 했다. 그러나 차르나예프 형제의 테러 동기는 완전독립을 위해 러시아에 대항한 전투가 있었던 그들의 원적지 체첸의 상황과 상관없다.

지난 4월 15일 미국에서 3명이 죽고 200명 이상이 다친 보스턴 테러가 발생하기 며칠 전, 나는 친구 모셰 가메르가 타계했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가메르는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의 사학과 교수다. 그와 몇 달 전에 사망한 마리 베닝센 브록스업은 북부 코카서스의 역사와 사회, 문화를 선도적으로 연구한 학자그룹에 속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가메르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담은 트윗을 보냈다. 영국인 저자 바노라 베닛만이 그걸 리트윗했다. 그녀는 <통곡하는 늑대>(1)란 제목의 흥미 있는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을 통해 저널리스트로서 1994년과 1999년 체첸전쟁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체첸 문제가 트위터 공간을 뒤덮었다. 작은 블로그까지 뜨겁게 달군 것은 보스턴 테러 사건의 용의자가 체첸 출신 형제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형 타메를란 차르나예프는 4월 18일 경찰의 총격으로 사살됐고, 동생 조하르는 부상당해 일주일 동안 입원한 뒤 구금 상태다.

가메르는 북부 코카서스와 체첸 문제에 관해 다양한 기사와 책을 썼다. 저서 <고독한 늑대와 곰: 체첸 저항의 3세기 역사>(2)는 체첸의 거대한 인접국인 러시아의 영토 확대에 대한 체첸인들의 저항 역사를 다루고 있다. 가메르는 저서에서 옛 소련 붕괴 이후 체첸 독립운동의 변화, 즉 체첸이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더 종교적인 구호를 부르짖기 시작한 상황의 변화를 다루었다. 이 책 제목은 타메를란 차르나예프의 아마존 구매서적 희망 리스트에서 발견됐다.

'고독한 늑대' 또는 '체첸 늑대'

이번 사건의 쟁점은 보스턴 폭탄테러 사건에 대한 대부분의 매체 보도에서 여전히 애매모호하지만 차르나예프 형제가 '고독한 늑대들'로 행동한 것처럼 보인다. '고독한 늑대'는 '체첸 늑대'(체첸어로 Borz)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체첸 늑대'는 체첸 독립기(旗) 문양에 들어가 있는 민족적 상징이며, 체첸 독립 국가(國歌)의 주요 표현이기도 하다.

테러리즘 연구에 따르면, '고독한 늑대'는 테러조직의 '나 홀로' 조직원을 추구하는 개인을 의미한다. 즉, 이데올로기적 조직의 일원이라는 개인적 신념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는다.(3) '고독한 늑대' 테러리즘의 유형은 이데올로기적 동기만큼이나 다양하다.

제프리 사이먼은 최근 이같은 현상에 관한 저서에서 미국 역사를 살펴볼 때 많은 사건이 '외로운 늑대'들에 의해 저질러졌는데 일부 사건은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지적했다.(4) 2011년 극우주의자 안데르스 브레이비크가 노르웨이에서 77명을 끔찍하게 살해한 것도 이런 테러리즘의 명백한 사례였다.

살라피-지하디즘(코란을 그대로 해석해 실행하는 성전주의) 또는 알카에다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고취된 '고독한 늑대'들은 서구 국가에서 자주 출현해왔다. 지하디스트는 젊은 이슬람교도들에게 알지하드 알파르디(개인 지하드)의 이름으로 공격을 하도록 촉구한다. 지하디스트는 알카에다의 사망한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미국인 죽이기에 대해 누구와도 협의하지 말라"고 말한 것을 따른다.

미국 관리들에 따르면, 빈라덴의 젊은 추종자인 조하르는 연방수사국(FBI) 요원에게 자신과 형 타메를란은 알아울라키의 인터넷 설교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5) 이 형제가 '고독한 늑대'이며 가메르와 베닛이 기술한 '체첸 늑대'는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더욱이 타메를란이 2012년 북부 코카서스 방문 기간에 그곳의 반군과 모임을 가졌다는 비확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급진성이 코카서스의 지하디즘 맥락에서 생겨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체첸에 지하디스트가 유입된 것은 1995년 1차 체첸전쟁 때였다. 이 기간에 아랍 전사들이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에서 체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하디스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종식된 뒤 새로운 지하드의 전쟁터를 찾아왔다. 사미르 살레 압둘라 알수왈렘이라고 알려진 유명한 사우디 카탑을 포함해, 이들 중 일부는 1992∼94년 타지키스탄 내전에서 이슬람교도를 지원했다.

그러나 1차 체첸전쟁 동안 지하디스트들은 별도의 운동조직은 만들지 않았다. 그 대신 지하디스트는 옛 소련 붕괴 이후 체첸의 초대 독립 지도자 조하르 두다예프의 통제 아래 민족주의 기치를 받아들였다. 러시아군이 1차 체첸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1997년 양쪽은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당시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은 이를 "러시아와 체첸 사이 400년 동안의 갈등 역사를 전면적으로 종식시키는 역사적 차원의 평화적인 거래"로 묘사했다.

그 뒤 두다예프가 체첸과 러시아 양국 사이에 중개 역할을 하던 모로코의 하산 2세 국왕과 위성전화 통화 중일 때 러시아는 주파수를 통해 위치를 알아낸 뒤, 레이저 유도 미사일을 이용해 그를 암살했다. 이후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국제적으로 지지받은 민주선거를 통해 체첸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러시아는 체첸의 재건 노력을 위한 기금 조성에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두다예프와 같은 육군 출신에 세속적 민족주의자였던 마스하도프는 체첸 갈등에 대한 정치적 해법을 신봉했다. 하지만 러시아 쪽이 그를 압박하면서 체첸 내부에서 지하디스트가 봉기할 기회가 조성됐다.

자금 지원에 충실하던 지하디스트는 체첸과 이웃 국가의 많은 청년들이 이 운동에 관심을 갖도록 함으로써 이슬람주의자들이 체첸에서 확대되는 것을 도왔다. 또한 이들은 마을 종교회의 사리아트와 이슬람 사회, 나아가 다양한 국가들로부터 새로운 아랍 전사들을 불러모아 훈련캠프를 개설했다. 1997∼99년 여러 아랍 국가 출신의 지하디스트 수가 늘어났고, 아랍 전사의 45%는 이 기간에 체첸으로 왔다. 아랍 전사의 30%만이 1차 체첸전쟁 때 온 것과 대조를 이루었다. 지하디스트와 유명한 전쟁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가 주도하는 체첸 강경노선 민족주의자들 사이에 맺어진 동맹은 상호이익 교환에 토대를 두었다. 러시아군이 이슬람 국가의 설립을 방해하려 했을 때 이 동맹은 인접한 다게스탄공화국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을 지원하려 했다. 이 시도는 그 뒤 러시아가 1999년 체첸을 재침공하는 단초가 되었다.

2차 체첸전쟁은 북부 코카서스 지역에서 지하디스트의 활동에 새 국면을 열었다. 지하디스트의 이슬람화 정책은 체첸에서 인기가 적었다. 2001년 9·11 테러 공격 이후 무장그룹의 자금 조달에도 고삐가 바짝 조여졌다. 전직 국가보안위원회(KGB) 관리였던 블라디미르 푸틴 아래 러시아가 체첸에서 펼친 잔혹한 군사작전은 테러에 대한 전쟁으로 비쳐 그곳에서의 인권유린이 국제사회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두 전쟁 동안 체첸인의 4분의 1이 살해되거나 집을 떠나야 했다. 2003년 이후 아랍 전사들은 체첸을 떠나기 시작했다. 일부는 새로운 지하드의 전쟁터가 조성된 이라크로 향했다. 러시아는 온건주의자 마스하도프를 2005년 3월 8일 암살하고 친러시아 정부를 세워 체첸의 민족운동을 약화시켰다.

체첸 저항운동이 2007년 인접 국가들에 퍼진 이후 '코카서스 이슬람 에미리트'(IEC)의 건립으로 다게스탄과 잉구셰티아, 카브르딘-발카르를 포함해 인접 국가들에서 활동 중인 북부 코카서스 무장그룹을 위한 이슬람 이데올로기가 명백해졌다. 북부 코카서스 거주민들 사이에 크렘린 정책을 향한 지역적인 불만은 코카서스 반군의 새로운 세대를 형성하는 주요 역할을 했다.

이것은 반군이 왜 세계적인 지하드에 관여하지 않고 모든 테러공격을 러시아를 상대로 했는지 설명해준다. IEC는 2010년 1월 도모데도포 공항 자살폭탄 테러와 2010년 3월 모스크바 지하철을 공격한 여성 자살폭탄 테러 등을 포함해 여러 공격을 자신들이 벌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IEC는 보스턴 폭탄 테러에 대한 관여는 부인했다.

글로벌화하는 지하드

북부 코카서스에서는 두 주요 지하디스트 조직의 발전이 있었다. 이전에 북부 코카서스 지하디스트가 외부에서 유입된 이데올로기에 의존한 반면 이 지역은 사이드 부리야츠키, 안조르 아스테미로프, 아부 두자나흐 등 자체 지역적인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 비체첸 지하디스트는 이 지역에서 인기를 얻었다. 세계적 지하디스트는 이 지역에 관심을 보였고, 세계적 지하디스트의 교재가 러시아어로 번역됐다. 러시아어는 많은 북부 코카서스 사람들의 주요 언어였다. 지하디스트의 웹포럼에 IEC에 헌신하는 글들이 게재됐다. 그러나 북부 코카서스 지하디스트는 적개심을 러시아에 한정했다.

차르나예프 형제는 아버지의 조국보다는 어머니의 조국 다게스탄을 더 좋아했다. 다게스탄은 북부 코카서스 지하디즘의 온상으로 최근 핵심적인 역할을 시작했다. 2010년에만 300건의 테러 사건이 목도됐다. 그러나 차르나예프 형제는 보스턴 폭탄 테러를 북부 코카서스의 어떤 대의와도 관련시키지 않았다. 체첸 역사가 마이르베크 바차가예프는 분명하게 질문한다. "타메를란은 왜 다게스탄에서 유혈 사태를 종식시키는 요구를 하지 않고 그 대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발생한 것에 관심을 두었는가?"(6) 그의 급진성이 북부 코카서스에 관련되지 않았다는 것이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북부 코카서스 지하디스트는 주로 지역적인 불만에 의해 동기가 유발됐다. 높은 빈곤율과 실업, 부패, 인권유린, 러시아 당국의 지배 등이 지역적 불만에 포함됐다. 그러므로 그들의 공격은 항상 러시아에 대한 것이었다. 이같은 요소와 북부 코카서스 지하디즘의 발전 맥락에서 차르나예프 형제의 행동은 이 지역 지하디즘을 위한 체계와 맞지 않는다. 그들은 고독한 늑대였지만 체첸의 늑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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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무라드 바탈 알 시샤니 Murad Batal Al Shishani 이슬람 그룹, 중동, 북부 코카서스 전문가.

번역•이종훈 고려대학교 영문과 졸.

(1) 바로나 베닛, <고독한 늑대: 전쟁의 체첸 귀환>, 런던 출판사, 1998.
(2) Moshe Gammer, <고독한 늑대와 곰: 체첸 저항의 3세기-역사>, 허스트&Co 출판사, 2005.
(3) Raffaello Pantucci, ‘고독한 늑대의 유형학: 고독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예비 분석’, 급진주의와 정치폭력 연구를 위한 국제센터(ICSR), 킹스칼리지(런던), 2011년 3월.
(4) Jeffrey Simon, <고독한 늑대 테러리즘: 위협 증대에 대한 이해>, 프로메테우스북스, 2013.
(5) Daniel Klaidman, ‘단독 보도: 알 아울라키/차르나예프 연계’, www.thedailybeast.com/articles/2013/04/26/the-awlaki-connection.html, 2013년 4월26일. 알 아울라키는 미국 태생의 설교가로, 2011년 9월 예멘에서 미국 무인정찰기 드론에 의해 폭사했다. 카리스마가 있는 성직자로 그의 유창한 설교는 지하드 웹사이트에 널리 게재돼 서구에서 많은 ‘고독한 늑대’ 지하디스트들을 매료시켰다.
(6) Mairbek Vatchagaev, 타메를란 차르나예프가 체첸 정신 외부에 있는 이유, <유라시아 데일리 모니터>(제임스타운 재단), 10권, 83호, 2013년 5월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