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철조망, 장벽의 정치사

경계란 무엇인가

2013-06-07     올리비에 라자크

"이것은 세상에서 최고의 담장. 공기처럼 가볍고, 위스키보다 독합니다. 먼지보다 싸지요. 수km에 달하는 공간을 철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축은 태생적으로 이를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자, 여러분, 와서 시험해보시오. 소를 데려와보시오." -존 웜 게이츠, 철조망 판매업자, 1870년 텍사스.

가시철사는 이제 시위자들을 밀어내고, 점유지를 둘러싸고, 국경선을 방어하기 위해 쓰인다. 1874년 대평원 농장에 담장을 치기 위해 조지프 글리든이 발명한 가시철사는 금세 권력과 지배의 도구로 탈바꿈됐다.

발명된 지 한 세기도 더 된 가시철사는 절대 단순한 농업도구가 아니다. 이는 즉각 중요한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우선 공간 획정 기술을 바꾼 도구로서 그 뛰어난 효과 덕에 근대사의 3대 비극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 대륙에서는 서부 초원의 식민지화 과정에서 인디언 학살에 사용됐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수백만 명이 죽어나갈 참호를 장식했다. 마지막으로 유대인 수용소와 나치 전범 몰살지를 기세등등하게 에워싼 담장이었다. 그러나 가시철사의 역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거의 모든 것에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시골에서는 밭과 초지 주위에, 도시에서는 공장이나 병영, 감옥, 신경증 환자 수용소 등의 담벼락에 설치됐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늘 국경선을 따라 길게 철조망이 이어져 있다. 가시철사는 사람들을 가두어 살리기도, 추방하기도, 또 죽이기도 한다.

조악한 하나의 물체가 이렇게 성공적이고 오래 존속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최근의 사양세에도 불구하고 가시철사는 기술적으로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찬란한 기술 발전이 이루어진 지난 1세기 동안 시대에 뒤떨어진 많은 물건들이 근대성을 따라가지 못한 데 비해, 가시철사는 시대의 요구에 어느 정도 확연히 효과적이었다. 공간의 경계를 정하고 땅 위에 분리선을 긋는 기능에서 철조망은 탁월했다. 가벼워서 상당히 먼 거리에도 설치할 수 있고, 보호하고 방어하고 가두고 전멸시키는 등 필요에 따라 응용이 자유롭다. 더불어 위협적이기 때문에 일반 담장과 달리 동물이 근처에 얼씬하지도 않는다. 그 외형을 통해 가시철사는 수백만 사람들의 마음에 모호하면서도 강렬하고 은밀한 난폭성을 각인시켰고, 그 때문에 감히 가시철조망에 다가설 수 없게 만들었다. 날카로운 작은 가시가 박힌 철사 하나가 말이다.

철조망은 왜 비영구적일까

사물 자체는 단순한데 그 효과는 아주 큰 간극, 바로 이것이 가시철사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점이다. 가시철사는, 권력 행사의 도구가 얼마나 완벽한지는 기술적 완성도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 그 도구의 힘이 꼭 에너지의 출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 가장 큰 폭력이라고 해서 반드시 가장 놀라운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 효율성의 이유는 오히려 간결함을 추구하는 데 있다. 최상의 권력 도구는 최선의 통제 효과와 최대한의 지배를 위해 되도록 가장 적은 에너지를 (물질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다. 이런 효율성은 가시철사같이 단순하고 소박한 사물에서 가능하다. 기술적 결핍 덕분에 유연하고, 눈에 띄지 않으며, 모든 종류의 장치에 적용 가능한 적확한 경제적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가시철사는 발명 이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확산됐다. 국경 방어를 강화하고, 사람들을 가두고, 생산지를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철조망이 영속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놀랍기까지 하다. 즉, 가시철사가 최근 기술적으로 크게 진화했다는 의미다. 핵심적으로 '글리덴' 형태의 가시철사(기본형)는 농업 용도로밖에 쓰이지 않는다. 사람들을 물리치려는 용도일 때의 가시철사는 '칼날' 가시철사로 대체됐는데 수많은 종류가 있다. "칼날은 보안상 필요한 모든 경우에 따라 직경이나 소재 등 그 종류가 매우 많다"고 제조사는 설명한다. 가장 많이 쓰이는 형태는 철가시 대신 미세한 날을 철사에 박은 것으로 침입자를 베거나 찌를 수 있다. 날의 형태는 앞서 본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단순한 억제에서 치사에 이를 정도의 상처를 낼 수 있는 종류까지 있다. 또 일정하게 홈을 판 날도 있는데 사람들의 옷이나 살이 걸리게 할 수 있다. 축출하려는 정도에 따라 날의 길이와 직경을 달리한다. 또 날카로운 원형 날이 박힌 철조망도 있는데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데 특히 효과적이다. 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페인트로 칠하거나 때로는 야광색을 입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주변과 비슷한 색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더 고전적 기능으로는 철조망에 충격파 수준부터 감전사에 이를 정도의 다양한 전압 전류를 흐르게 하는 것이다. 철조망 제조사들은 뛰어넘지 못하게 하는 용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용도,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는 용도 등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핵심 설비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일회용으로 신속하게 철조망을 쫙 펼쳐서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설치해 군중의 이동을 통제하는 장비도 있다. 이처럼 가시철사의 진화에서 기본 원칙은 변한 게 없다. 그런 점에서 가시철사의 영속성, 전세계 곳곳에 장벽이 세워지면서 가시철사가 활성되는 것이 낯설지 않다.

가시철사는 계속해서 전세계에 수많은 경계를 수놓고 있다. 다른 소재(벽·울타리·창살) 및 기술 장치(폭발물·전기)와 결합돼 광범위하게 쓰이면서 가시철사는 잠재적이든 실제든 전쟁 중인 나라들이나 세력을 분리시킨다. 전세계에서 방어 태세가 강한 국경 중 하나는 1953년 이후 남한과 북한을 가르는 철책선일 것이다. 둥글게 엮은 가시철사로 2중 또는 3중으로 쳐진 240km에 달하는 철책은 남쪽에서 본 4km 폭 비무장지대의 시작점이다. 또한 교착 상태인 분쟁 중에 최전방을 안정화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설정한 경계선을 방어하는 경우도 있다(처음에 남한과 북한 간 충돌도 이러했다). 따라서 '국경선이 될 장벽'인 것이다.(1) 분계선은 인정되지 않지만, 상징적이고 효과적인 분리 작업을 통해 상대방과 전세계에 영역 분리를 알리려는 목적이다.

사하라사막 서부에서는 모로코가 폴리사리오 전선 살라위족과의 전쟁 중에 1980∼87년 2400km에 달하는 장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레이더와 전자 정찰 장치, 지뢰밭과 철조망을 포진한 뒤로 16만명의 모로코 군인과 공무원을 배치"했다.(2) 인도는 카슈미르에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150km의 '잠입 방어 장벽'를 건설했다. 이 장벽은 전류가 흐르는 쇠기둥에 3중 철조망을 고정했다.

이 모든 사례를 보면 '경계'를 방어하는 형태는 분명 역설적이다. 우선 공식적 경계선이 될 선을 고정하는 것이라면 왜 '영구적' 소재로 하지 않는가? 왜 쉽게 옮기고 철거할 수 있는 가벼운 소재를 쓰는가? 설치할 거리가 상당해서 경제적·실용적이라는 자명한 이유 빼고 이런 방어가 한시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요점은 경계선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목적이 있을 뿐 벽을 쌓아 보루화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철조망 경계선은 지체 없이 그 고유한 필요성을 만들어낸다. 경계를 고정하는 것뿐 아니라 물 샐 틈 없는 철벽을 만들어 점차 상호 인정되는 분리는 불가능해진다. 어떤 경계선을 방어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일시적이면서도 고정적으로 되는 장벽이라는 역설적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가시철사는 양자 또는 일방적 방식으로 더 이상 함께 살기 원치 않는 사람들이나 단체를 분리하는 기능을 한다. 키프로스에서 1974년 이후 터키군이 점령한 북쪽에는 터키계 키프로스인이 살고 남쪽에는 그리스계가 점령하고 있다. 이 둘은 '유럽 내 마지막 벽'으로 분리됐다. 180km의 철책이 아틸라(당시 일반적인 터키 이름) 경계선을 이룬다. 여기도 분리를 통해 그 고유한 필요성을 만들어냈다. 양 민족 사이에 더 이상 증오도 분쟁의 위험도 없다. 그러나 화합할 이유도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의 '부드러운 분리'와 달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들의 땅에서 소외와 탄압, 박탈의 기제 안에 유폐돼 있었다. 오래전부터 가자지구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폐쇄된 땅이었다. 한 팔레스타인 주민은 증언한다. "돌아오는 길에 에레즈 검문소에 도착한다. 이스라엘로 가기 위해 의무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가자 회랑의 북쪽, 폐허가 된 공장과 집들로 둘러싸인 시멘트와 가시철사로 이루어진 장벽이다."(3)

2002년 이후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수백km의 분리장벽을 짓고 있다. 그 형태는 여러 가지다. 도심 지역은 주로 9m 높이에 맨 위에는 철조망으로 덮인 시멘트 벽이다. 그 중간에 수십m 너비의 간격으로 이중의 안보 장벽을 친다. 안보 장벽은 가운데 도랑을 파고 둥글게 엮은 가시철조망과 전류가 흐르는 2m 높이의 쇠 철책으로 무장돼 있다. "살짝 닿기만 해도 경보가 작동되고 50m 간격으로 설치된 감시카메라가 침입자의 위치를 확인하고 촬영한다. 감시 망루에 있는 군인들은 정찰대를 보낼지 말지 결정한다."(4) 한편에서는 '안보 장벽', 다른 쪽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의 벽'이다. 결국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철사 고리 안에 묶어두고 이미 삶이 가능하지 않은 고립된 공간에 가둬두는 것이다. 칼킬리야 지역을 지나면서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세 단계로 나눠 장악하는 방식의 진화였다. 그것은 고립시키고 가두고 비워버리는 것이다".(5)

철조망은 우리 삶의 비인간적 일부

이는 단순히 방어가 아니라 공간 구획을 통한 점진적인 식민지화다. 여기에 다양한 면적의 식민지령과 이를 지키기 위한 철조망 장벽, 검문소, 검문 구역이 갉아먹는 땅까지 합치면 그 구획은 조각조각 파편화된 땅이 된다. 그러나 이 모두가 '한시적'이다. 시멘트 벽조차 사전 제작된 소재로 급속으로 지어졌다. 이는 이중의 효과를 갖는다. 하나는 이 땅이 점령된 것이 아니라 '한시적으로 징집'된 것임을 공표할 수 있다. 분할 형태가 이를 입증한다. 다른 한편으로, 분할선을 가령 신식민지 건립 같은 역학 관계의 변화에 따라 바꿀 수 있다.

'경계 없는 장벽'이 확산되는 동시에 전세계 최부유국들은 이민을 막기 위한 장벽을 세우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틀 안에서 미국은 캐나다와 인접한 국경은 느슨하게 방치하는 반면, 남쪽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삼엄한 경계를 끊임없이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3200km의 경계선 중 1200km는 이미 쇠말뚝, 골함석, 철조망 같은 잡다한 수단으로 경계가 강화됐다. 여기에 미국 국경 경비대의 수많은 정찰병과 총동원시 9천 명 가까이 되는 '미니트맨'(Minutemen) 같은 민병대까지 있다. 특히 일부 취약한 구역에 대해서는 감시 신기술을 동원한다.

이 효과적인 장벽(2003년 국경선에서 체포된 이민자 수가 100만 명이 넘는다)은 이목을 끌지 않고 은밀하게 존재한다. 함석판으로 울타리를 쳐서 경계선의 빈 땅이나 공사 현장을 가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평범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이 장벽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함의하는 정치적 폭력성이 무엇인지를 장벽에 나타낼 필요가 생긴다. 마치 고통과 분노, 죽음이 투사된 화면이 되는 것이다. 가시철사도 국경과 관련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한 인디언 예술가는 뉴멕시코대학에 미국으로 온 3명의 아즈텍 인디언을 나타내는 조각상을 제안했다. 작품의 맨 위에는 가시철사가 얹혀 있다. 예술가는 "이 작업에서 모든 것이 상징적"이라며 그의 조각상과 미국과 멕시코 간의 국경을 따라 나 있는 가시철사는 "우리 삶의 비인간적 일부"라고 말한다. 뉴멕시코대학은 가시철사 때문에 이 조각상을 거절했다.

유럽도 남쪽 국경을 강화하고 있다. 모로코 내 스페인령인 멜리야와 세우타만큼 심한 곳은 없다. 해안가에 자리한 사방 수km 너비의 이 도시는 바다와 가시철책으로 막혀 있다. 이민자들의 국경을 넘으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2005년 가을, 수백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멜리야를 폐쇄한 3m 높이의 철조망을 넘으려 했다. 그 한 달 전에는 세우타가 그랬다. "공포의 도가니였어요. 사람들이 서로 떠밀고 떠밀리는 속에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철조망에 매달린 사람들, 여기저기 피가 흘렀지요. …우리 뒤로 메하니(국경 수비를 맡고 있는 모로코 군대)들이 우리를 때리고 다리를 잡아당겼어요. 한 여자는 넘어가다가 아기를 놓쳤어요. 철책 아래 모로코 땅으로 아기가 떨어졌어요."(6)

안과 밖을 가르는 야수의 정치

가시철조망의 첫 번째 효과는 뚫고 들어오는 이들을 짐승 떼로 만들어버리는 데 있다. 이들을 묘사할 때 쓰이는 단어를 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스페인 국경 수비대는 이 '인간 사태'의 '무리'를 향해 총을 쏜다. 이 '인간 떼'는 체포하거나 '쫓아내고', '다시 몰고' 또는 '놔주는' 몸뚱아리들에 불과하다. 그렇게 국경지대를 '청소'해야만 한다. "모로코 국경 수비대와의 우호적 관계 덕분에 (한 민병군이) 적외선 카메라로 탐지된 불법이민자들을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7) 이 인간 떼들은 야만스러워 실제 기회만 있으면 무더기로 '공격'을 한다. 따라서 로마식 요새와 동물원 우리를 본뜬 식으로 국경선을 '군사무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철조망 국경은 안과 밖 사이의 양극화를 강화한다. 그래서 그것이 내포하는 환상과 환멸을 통해 안은 전부이고 밖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어쩌면 이런 국경 방어가 부의 차이를 가리키는 것일 뿐이고 기존 불법이민자들의 비극적인 이동을 관리하는 방식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모로코 사막은 이미 거기에 있고 이민자의 물결로부터 유럽의 보루를 방어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경계면인 가시철조망은 안을 삶의 정치가 있는 장소로, 바깥을 죽음의 정치 사막으로 만들어내는 장치의 핵심이다. 사막은 죽음을 면할 수 없으니 경계에서 보면 나쁜 쪽이 되고, 좋은 쪽은 더없이 갈망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자신의 담장이 공격받을 때 양 떼는 포식자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한 무리의 짐승들은 철조망 위에 걸려 피식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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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올리비에 라자크 Olivier Razac 철학자. 저서로 <가시철사의 정치사>(Histoire politique du barbel?·Flammarion, coll. 'Champs'· Paris·2009)가 있다.

번역•박지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위원.

(1) Yves-Charles Zarka, ‘장벽 없는 경계와 경계 없는 장벽’(Frontière sans murs et murs sans frontière), Cités, Paris, 31호, 2007년 3월.
(2) Jean Ziegler, ‘Et pourquoi pas un Maghreb à six’,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89년 3월호.
(3) ‘Association France-Palestine Solidarit?’ 사이트에 올라온 증언.
(4) Alexandra Novosseloff와 Franck Neisse 공저, <사람 간의 벽>(Des murs entre les hommes), La Documentation française, Paris, 2007.
(5) Eric Hazan, <Notes sur l’occupation: Naplouse, Kalkilyia, Hébron>, La Fabrique, Parks, 2006.


'경계에 대하여'

'경계'는 하나인 것을 떨어뜨려 분할하는 것으로, 두려운 동시에 끌리는 것이다. 경계는 우선 국가 사이를, 공동체 사이를 분리시키는 곳이고 우리와 그들을 구분한다. 그래서 이는 정체성과 집단의 구성 요소가 된다. 게오르크 지멜은 "경계는 사회학적 결과를 낳는 공간적 사실이 아니라 공간 형태를 띠는 사회학적 사실이다"(1)라고 말하며,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위치한 경계에 대한 개념을 확산시킨다. 경계는 '우리'를 정의하는 것과 경계 너머에 있는 타자를 정의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항구적 질문을 내포한다.

우리의 사회학적 현실은 다원적이며 그만큼 우리는 다중적 경계에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이 점을 의식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일차원적 현실로 축소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경계는 하나가 아닌 다수다. 또한 경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를 하나의 깃발, 하나의 소속에 따라 스스로 단일적으로 규정하도록 압박한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민족적 또는 국가적 '우리'와 타자들로 가르기 때문이다.

경계는 대치의 장이자 '지배와 공포가 지배하는 음산한 지대'(2)다. 경계 충돌은 대부분 정체성을 지키고 자치권을 지키기 위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확대의 욕구를 표출하고 건너편에 있는 자들의 자치를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영어 프런티어(Frontier)는 '한계'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정복될 준비가 돼 있는 열린 공간을 의미한다.

경계가 영토를 분할하지만 국가, 민족 또는 종교의 경계선에 따라 사람들을 분리시키기도 한다. 그런 경계는 충돌과 무관심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연대·교류·협력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과 이를 둘러싼 아랍계 간 국경은 50년 전부터 증오와 전쟁의 경계였다. 여기서 경계란 '양쪽의 혐오감을 행사하는 물리력'(3)으로 작용한다. 1990년대 초반 평화의 전망이 그려졌을 때도 협력의 장이 아닌 분리장벽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경계는 단지 차이가 드러나는 분리의 장이 아니다. 경계는 다양한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는 교류와 풍요의 장이 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다른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만남이 가능하다. 편안하고 익숙한 같은 마을이나 종족 내에서는 나와 똑같은 복제들만 마주치게 될 뿐이고,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같은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의 확신을 통해 안도감만 느낄 뿐이기 때문이다.

경계의 이중성은 타자의 주권과 자유, 독립을 존중하면서 경계를 지키도록 하는 동시에, 경계가 갈라놓은 인간의 다양한 현실을 수용하고 교류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경계를 국가나 어떤 국가 공동체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믿는 것은 오산이다. 경계는 우리 사회 안에 다양한 인종·문화 공동체 사이에, 또 기득권을 가진 주류와 소외된 비주류 사이에도 존재한다. 사회 속에 존재하는 경계가 가져오는 결과는 국경 못지않게 비틀리고 그것이 야기하는 증오도 못지않게 강하다.

-미셀 바르샤브스키, <생각의 순서>, Stock.coll., Paris, 2002

*16살에 예루살렘에 온 미셀 바르샤브스키는 1967년 이후 쉼없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

(1) Georg Simmel, <Sociologie: Etude sur les formes de la socialisation>,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PUF), Paris, 1999.
(2) Ulf Hannes, ‘경계’(Frontière), <Revue internationale des sciences sociales>, Erès, Toulouse, 2001년 봄.
(3) George Simmel, <Sociologie>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