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벽, 한반도 DMZ

경계란 무엇인가

2013-06-07     필리프 펠르티에

남북한 국경지대는 모든 면에서 역설적 경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다. 양쪽에 배치된 군사만 수십만 명인 초무장 지대인 이곳은 전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 공간을 할리우드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미장센을 통해 평화·자유·희망의 상징을 구현한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가르는 비무장지대(DMZ)는 지리학자 미셀 푸셰가 명명한 '메타 경계'(Metaborder)(1)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비무장지대는 한반도에서 두 개의 체제, 또 두 개의 진영(한쪽은 소련과 중국, 다른 쪽은 미국과 서방) 간의 전쟁으로 생겨났다. 냉전이라고 하지만 한국전쟁(1950~53)으로 400만 명이 죽거나 실종될 정도로 이곳은 격전지였다.

비무장지대는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양 체제 간에 체결된 휴전협정으로 생겨났다. 비무장지대는 1945년 일본군의 철수 이후 미군과 소련군이 나눠 진주한 북위 38도 분계선과 대략 맞아떨어진다. 이곳은 남한의 수도인 서울에서 북서쪽으로 40여km 떨어져 있고 시간이 흐르며 많이 변했다.

1970∼80년대 북한은 테러를 실행했다(1983년 버마 랑군 테러, 1987년 대한항공 격추, 간첩으로 이용하기 위해 벌인 일본인 납치 등). 이제는 핵무기를 내세운 협박 뒤로 숨어 있다. 남한의 1990년대 민주화 과정은 북을 향해 손을 내미는 정책(1998년 햇볕정책, 2000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나타났다. 평양은 이에 화답했고 북한의 경제, 특히 식량난 같은 일부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줄다리기 끝에 금세 상황은 급변한다. 이는 북쪽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2003년), 세 차례의 핵실험(2006·2009·2013년), 군사 무력 시위(장거리 미사일 발사 1998·2006·2009·2012년) 같은 결과로 나타난다. 남쪽은 2008년부터 2013년 2월까지 집권한 이명박 정부가 모든 남북관계를 동결시킨다. 두 나라의 접경 부근에서 마찰도 증가한다(가장 심각했던 것은 1999·2002·2009·2010년의 서해 해군 관련 사건, 또 2000년 연평도 포격 사건).

경쟁하듯 마주 선 거대한 선전탑들

결국 남북 간 인적·정치적·외교적 관계가 모두 얼어붙는다. 그러나 (북한 쪽의 폐쇄 조치가 있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북한이 합의해 서울에서 가까운 북한 영토 안에 세운 대규모 산업단지인 개성공단은 계속 가동됐다. 2005년 문을 연 개성공단은 남한과 도로·철도가 연결되고 전기와 전화망을 공급받았다. 개성공단에선 북한 노동자 5만여 명이 일해왔다. 공단에 자리잡은 수백 개의 남한 기업(정밀기계·전기·섬유 등)에서 일하던 인력 대부분은 여성이다. 월급은 남한의 최소임금 5분의 1 수준이었다. 2008년과 2009년 남북 양쪽의 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의 활동과 생산은 2012년 비약적으로 증가했다.(2).

이에 반해 남한 관광객은 2008년 이후 두 장소, 금강산과 개성 구시가지(성수기 때는 매일 버스 20대가 운행) 방문이 금지됐다. 그렇지만 2002년 이후 통일을 전제로, 아니면 양쪽 인적 교류 확대를 전제로 건립된 장소는 여전히 개방됐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진입하려면 신원을 보장하는 출입증을 보여주고 두 개의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름 800m 둘레의 이 구역에는 예전과 달리 높이 올린 새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 계단을 내려오면 그 유명한 푸른색 지붕 가건물에 도달한다. 건물 안에는 남북 양쪽 파견부대와 군인들이 기거한다. 군인들은 태권도 부동자세로 줄지어 있다. 그 줄은 땅 위에 분계선을 나타내고 경계 블록은 양쪽 경계 보초 사이에 있던 사건들을 상기시킨다. 이보다 좀더 멀리 가면 '제3의 땅굴'이 있다. 북한은 테러를 저지르던 시기에 간첩, 특수부대, 보기에 따라서는 부대를 남파하기 위해 휴전선 아래 여러 개의 땅굴을 팠다. 남한은 그중 4개의 땅굴을 발견했고(1974·1975·1978·1990년), 대대적인 침략을 위한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땅굴은 방문이 가능하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땅굴은 제3땅굴로 인기가 많다. 자동차 통행만 허용되기 때문에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여행사들에는 좋은 수익원이다. 보초대와 철조망은 이미 분계선임을 나타내고 있다. 수km를 흘러가는 강의 다리 부근의 검문소를 하나 통과하면 관광객들은 아스팔트 보도 위로 내린다. 주차장 주위에는 박물관, 기념관, 땅굴로 향하는 갤러리가 있다. 사복 차림을 한 감시원들이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어디든 있다는 사실이 감히 어떤 모험도 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어쨌든 관광객들은 가이드가 인솔하는데, 경우에 따라 통일부에서 파견한 안내인이 인솔하기도 한다.

갤러리 아래층에서 관광객들은 잠재적으로 유엔 분위기가 느껴지는 푸른색 헬멧을 쓴 뒤, 놀이동산에서처럼 작은 기차를 탄다. 기차는 다소 급한 경사를 따라 하강한다. 스피커에서는 지정학적 안보와 안전 수칙을 외쳐댄다. 몸을 굽히지 말 것, 북한 쪽으로 전진하지 말 것이다. 수십m 하강 뒤 도착하면 방문객들은 기차에서 내려 또 다른 좁은 굴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그 끝에는 북한 쪽 굴로 향하는 돌문이 있다. 조명으로 밝힌 표지판에는 땅굴을 발견하게 된 상세한 경위가 설명돼 있다. 북한 당국에서는 지질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탄광이라고 말한다. 사진 촬영은 금지돼 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북한 병사의 평균 신장) 약 1.65m 높이의 지하에서 다소 혼란스러운 느낌의 공연이 끝난 뒤, 관광객 무리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자유의 공기를 마신다.

관광객들은 기념관을 방문할 수 있다. 기념관에는 공간적으로 지역색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세부 묘사로 가득하지만, 시간적으로는 진정한 역사적 맥락이 없다. 어찌 보면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과정 이후 원자폭탄 대량살상 간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은 채, 그래서 그 맥락이 보이지 않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같다. 한국전쟁은 중요한 날짜들로 기억된다.

기념품 판매점에는 자잘한 장식품과 K팝 관련 소품뿐 아니라 북한산 술과 'DMZ'를 새긴 티셔츠('Made in Korea'인데 남한인지 북한인지는 알 수 없었다)를 판다. 티셔츠에는 '비무장지대는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통일의 염원을 알리는 장소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민간통제구역' 내 '자유의 마을'이라 명명된 대성마을의 농민들이 재배한 쌀도 판다. 민간통제구역은 남북 분계선에서 10~15km 길게 펼쳐진 곳이다. 대성마을 주민들은 이 지역을 떠나길 거부했다. 대신 상당한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농사일에까지 끊임없는 군사 감시 또는 관찰이 이뤄진다. 약혼자뿐 아니라 외부에서 손님을 초대하기도 어렵다. 대성마을에 놓인 100m 높이의 탑 위에 남한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경계선 너머 저쪽에서는 160m 높이의 탑에 거대한 북한 인공기가 휘날린다.

10여 개 기념지 중에서 제3땅굴 주변, 냉전의 중심지를 디즈니랜드처럼 만들어놓은 것은 비무장지대가 지닌 역설을 하나 더 보여줄 뿐이다. 비무장지대에는 평화와 통일을 상기시키는 수많은 표지판이 있는 동시에 철조망, 검문소, 무장 군인이 공존한다. 동포애를 말하면서 적대적이거나 호전적인 메시지가 공존한다. 양곤 사태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물처럼 비무장지대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여러 비극에 대한 기념물이 여기저기 조성돼 있다.

새로운 땅굴 발견의 가능성은 완전히 뒤로 미뤄진 채, 이제 비무장지대의 전경은 흡사 최소한의 나무나 사물, 장소로도 위협이 될 것만 같다. 생태적으로 영구 보존지가 된 것이다. 기념관과 책자에서는 비무장지대가 자연의 다양한 생물종의 피난처이며 '생태계의 보고'라고 강조하며, 그 때문에 '국제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많은 동식물종의 보호구역이 되었다'(3)고 강조한다. 그렇게 '메타 경계'는 완벽한 복원을 하고 있다.

극장이면서 현실인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15km 아래, 새로 건설된 멋진 고속도로 밑에는 오두산통일전망대가 우뚝 서 있다.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과 북한 경계를 따라 흐르는 임진강의 줄기가 합류하는 지점에 솟은 오두산에 지어졌다. 유리와 시멘트로 지은 솥 모양의 건물은 1992년 9월에 개관했다.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망원경으로 그리 멀지 않은 북한을 볼 수 있다. 맨 위층은 일본인과 서구인을 위한 층으로, 한국인과 중국인 전용 층 바로 아래다. 큰 통유리를 통해 볼 수 있는 북한에 대해 묘사하고 설명하는 영화도 상영된다.

아무리 잘 꾸며놓았다지만 360도 전체 조망이 가능한 높은 테라스에서 보는 북한의 선전용 전원 풍경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남한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북쪽은 전체가 고요해 보인다. 땔감용으로 쓰기 위한 벌채로 산은 헐벗고, 녹색으로 펼쳐진 논에는 철탑도 광고판도 하나 없다. 남쪽은 자동차 소음으로 가득하고, 가운데는 푸른 산림으로 덮인 산이 있고 그를 둘러싼 서울 외곽은 도시화돼 있다. 밭이나 논 중간중간 작업실이나 산업단지, 고압선, 거주지가 눈에 띈다. 경기도 파주 신도시의 토산이 등장하고, 이어서 또 다른 '신도시'의 도로에는 차단용 시설(북한 군대가 진격할 때 이들의 진입을 늦추기 위한 장애물)이 보인다. 그리고 좀더 멀리 손에 잡힐 듯 남한 수도 서울의 도심에 자리한 마천루가 지평선과 함께 펼쳐진다.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북한 주민의 모습을 발견한 관광객들 사이에 탄성이 터져나온다. 남쪽은 이 북한 마을들이 꾸며낸 마을이고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위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며, 북한은 이런 선동 작업을 완벽하게 해낸다고 설명한다. 설명을 들으며 관광객은 자연스레 아마추어 동물인류학자가 된다. "저기 있다, 저기 북한 사람들이 움직인다,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이미 남한에는 수많은 탈북 난민이 살고 있다(2010년 2만 명으로 추산됨). 그러나 이들은 탈북자로서 더 이상 이들이 처한 상황과 연결시켜 봐주질 않는다. 탈북자들조차 새로운 사회에서 북한의 흔적을 잊으려 노력한다. 남북 간 간극이 크고 이들이 받는 보조와 지원을 시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스러울 것이다.

극장이면서 동시에 현실이라는, 비무장지대를 둘러보며 드는 느낌은- 수km² 안에 엄청난 수의 군인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절대 완곡하게 표현하면- 트라우마(역사·전쟁·죽음·이산가족)와 희망(미래에 언젠가)을 오간다. 비무장지대에서 느껴지는 위협은 장난 같은 전율을 동반한 다소 환상 같은 공포(실제 어찌될지 모르지만)로 울린다.

최근 북한과 남한의 정치 변화 이후 한국의 '메타 경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수도 있다. 남쪽은 지난해 12월 19일 이전보다 자유주의 기조가 덜한 국가자본주의의 보수 진영에서 박근혜가 새 대통령으로 뽑혔고, 북에 대한 '얼음 정책'을 끊겠다는 의지를 확인시켰다. 1년 전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을 계승해 새로운 북의 지도자가 된 김정은은 이 기회를 포착하려는 것 같다. 2013년 신년사에서 그는 "남북 대결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난 남북관계는 민족 간의 대결은 전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 것"(4)이라고 했다. 북한 체제는 늘 관습적으로 통일이나 평화에 대해 호소하지만, 이번 연설에서는 여러 면에서 정책 변화를 보여준다.

금강산과 개성을 관광객에게 다시 개방하느냐 여부가 지정학적 지배를 받는 남북 경계상에서 실제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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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필리프 펠르티에 Philippe Pelletier 지질학자, 리옹2대학

번역•박지현

(1) Michel Foucher, <L’Obsession des frontiéres>, Paris, Perrin, 2007년판. ‘메타 경계’란 두 국가 간 경계를 초월하는 것으로 실제 경계보다 더 광범위한 체계를 만들어낸다. Valérie Gélézeau가 쓴 ‘The Inter-Korean border region ‘Meta-border’ of the cold war and metamorphic frontier of the peninsula’, Border Studies, Doris Wastl-Walter, Ashgate, 2011년 참조.
(2) ‘상반기 개성공단 생산액 전년비 23% 상승’, <연합뉴스>, www.yonhapnews.co.kr/politics/2012/08/20/0511000000AKR20120820140800043.HTML, 2012년 8월 21일.
(3) 유정순, 박정후(저자가 명확지 않음), ‘Peaceful Area DMZ‘, 서울 2008년 이후.
(4) ‘Kim Jong-un calls for end to confrontation with South Korea’, <The Guardian>, 런던 2013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