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핵전략이 있는가?

2013-06-07     뱅상 데포르트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게 제출된 ‘국가안보방위백서’는 드골 장군이 정의한 기존 방침을 따르고 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상황과 위협물의 변화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미래에 아무런 위험이 없을까?

정부가 핵무기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경우가 흔치 않을뿐더러, 그나마도 상당수는 핵억제가 보장하는 '보험' 논리의 과도한 반복에 그친다. 한때 전략상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한 핵전략은 터부시되며, '전략적 사고'는 잊힌 존재가 되었다. 지난 4월 29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게 제출된 '국가안보방위백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극심한 긴축재정 분위기에서 '국가안보방위백서'는 핵과 관련한 프랑스의 군사력 및 입장에 대한 어떤 논의도 없이 기존 방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연간 35억∼45억 유로의 예산이 소요되는데 이는 범주와 산정 방식에 따라 군비의 10∼20%를 차지한다).

우수한 전문가들과 유수의 기구들이 핵문제를 다루지만 정작 이들의 논점은 수단으로서의 핵이나, 기술적 접근 방식, 핵확산의 관점에만 한정돼 있다. 즉 '무엇'과 '어떻게'라는 측면에만 논의가 집중되고, '왜'와 '누구에 대항하여'라는 측면은 외면된다. 냉전시대 전략상의 기본 개념은 냉전 종식 뒤 재정의되지 않았다. 핵억제는 평화를 보장하지 않을뿐더러 모든 위협을 억제하지 못한다. 전 국방장관과 두 전직 총리가 자주 사용했던 표현을 인용하면, "억제전략 당위성의 '사각지대'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핵억제 전략 방법은 명백하게 필요불가결하다고 볼 수 없거니와, 그 자체로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이중의 오류를 내포한다. 프랑스에 대한 직접적 위협 부재, 핵위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공격의 지속, 테러에 맞선 핵무기의 부적합성, 무차별적 파괴력 사용이 대부분의 경우 도덕적으로 불가능한 점 때문이다. 프랑스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당성은 핵무기 보유만큼이나, 말리에서와 같은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가 나아가는 '군대와 무기'에 기반한 방위 모델은 효과가 없다. 안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핵과 관련한 군비 감축이다.

방위 모델의 규모를 재정의할 때 중요한 것은 억제 이론에 필요한 일반적 역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파트리샤 아담 국회 국방위원장도 최근 "신빙성 있는 억제력은 재래형 방위 역량을 포함하는 폭넓은 군사력에 바탕을 둔다"며 이 점을 인정하지 않았던가? 재래형 방위 역량과 핵무기 간의 긴밀한 전략적 연관성은 무력 행위의 진행성, 위협의 현실성, 억제력의 무력화를 방지하는 역량에 따라 좌우된다.

과장된 듯 보이겠지만 무력 행위의 진행성은 실질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전면 전쟁이냐, 전쟁 없이 가느냐'의 딜레마는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 무위(無爲)의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종말로 치닫는 법은 없다. 단계적 행위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과 프랑스가 냉전 동안 대규모 일반 무기를 유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때와 달라진 것은 없다. 선제공격에 앞서 적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명백한 일반적인 적대 행위가 없었다면, 역사 앞에 정당화할 수 있는 '선제공격'이란 없다.

정치적 의지 표명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위협이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느냐는 무력 행위의 증거들에 달려 있다. 미국과 소련도 이를 사용했다. 실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이 신빙성을 얻으려면 억제력 전략은 견고한 재래형 무력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억제 전략이 무효화되는 사태도 방지해야 하는데, 특히 '무력 행위의 증거'를 신속히 쌓기 위해 제한적 공격을 해오는 경우에 맞서서 말이다. 적이 추진할 수 있는 군사행위를 무위로 돌리기에 적합한 재래형 무력 체계를 갖추는 게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국방예산도 균형을 찾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충분히 가능하다. 현실적인 지출 절감의 쟁점에서 봤을 때 진지하게 검토해볼 만하다.

항공력의 필요성도 검토해봐야 한다. '무력 시위의 역량과 유연성'이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답변에 맞서, 공수(空輸) 부문을 통해 억제하려는 적의 유형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분석해봐야 한다. 물론 발사대와 무기가 이미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런 시스템의 유지와 현대화 비용은 향후 몇 년에 걸쳐 그간 시스템 획득에 소요된 비용에 견줄 만한 지출을 필요로 한다. 영국이 이미 오래전 항공력 부문을 포기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수 있다.

신성불가침의 문제였던 '해양의 영구적 확보'(핵탄두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들이 대양 내 영구 주둔하는 것을 일컬음)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예산이 풍부하던 시절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해양력을 유지하기 위한 지출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최소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한 대의 유지와 현대화, 교체에 필요한 비용과 장비 및 무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따져볼 때 말이다. 특히 국제 긴장 상태의 진행 상황에 따라 잠수 기간을 크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유용성과 관련한 논란의 여지가 상당하니 더욱 그러하다. 관련 예산 규모가 막대한 만큼 무기의 개선과 발사대 교체 문제도 피해갈 수 없다. 고작 15년 정도의 기간에 무슨 이유로 네 차례에 걸쳐 핵탄두를 교체했어야 하는지, 1997∼2020년 M45에서 M51.1, M51.2를 거쳐 M51.3으로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 중국을 초토화할 만한 전쟁 역량을 갖춘다는 게 현실적으로 전략적 이득이 될까? 현재 프랑스가 보유한 300개 이하로 핵탄두 보유 수준이 떨어진다고 해도 최소한의 억제 역량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중국은 240개, 영국은 225개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나마도 2020년까지 180개로 보유 수량을 낮추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핵억제력의 신빙성 문제도 검토해봐야 한다. 고속도로에 설치된 무선 레이더의 신빙성 정도가 75%든 100%든 그 차이와 무관하게 운전자들은 레이더 앞에서 속도를 늦춘다.

전략적 논의가 열려야 한다. 국제 무대의 현실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무력 수단의 범주를 재정의할 진실된 고찰이 필요하다. 핵무기가 보장하는 전략적 요소는 유지하되, 현 경제 여건에서 국가의 핵무기고를 어떤 비용을 치러서라도 유지하겠다는 태도는 핵무기가 가진 타당성에 타격을 줄 뿐 아니라 프랑스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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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뱅상 데포르트 Vincent Desportes 시앙스포파리 객원교수, 전 군사학교장

번역•김윤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