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통합의 꿈을 독점한 브라질
남미 12개국을 통합함으로써 이들 나라를 미국의 지배력에서 해방시킨다는 지역 통합 프로젝트가 브라질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사용자와 노동자, 사회운동가와 고위 관료를 단결시키는 한편 새로운 헤게모니, 즉 지역 헤게모니의 등장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주앙 파울루 로드리게스는 젊은 시절부터 브라질 무토지 농민운동(MST)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고, 후벵스 바르보사는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영국 런던과 미국 워싱턴에서 브라질 대사를 역임한 전직 외교관으로 현재는 이 경력을 활용해 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다. 로드리게스를 만난 것은 브라질 상파울루의 어느 주거단지에 위치한 작고 소박한 주택에서다. 현수막도 붉은 깃발도 없이, 이름조차 쓰이지 않은 채 초인종만 방문객을 맞았다. 반면 바르보사의 사무실은 시간에 쫓기는 기업가들을 이 빌딩에서 저 빌딩으로 수송하는 헬리콥터 굉음이 요란한, 화려한 브리가데이로 파리아 리마 거리에 있었다. 우리가 로드리게스 무토지 농민운동 대표를 만났을 때 그는 운동원 교육을 막 마친 참이었다. 그리고 바르보사는 고객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다가 "겨우 짬을 냈다"며 하소연했다. 정부 발주 사업의 입찰 절차를 남들보다 먼저 알고자 하는 업체들이 연락을 해오는 모양이었다.
분명 두 사람 사이에는 닮은 점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둘의 목소리는 서로 호응하곤 한다. 로드리게스는 "신자유주의를 전복시키고 더 단결된 경제체제를 이룩하는 것이 무토지 농민운동의 정치적 목표다. 이를 위해 지역 통합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바르보사는 "브라질이 지정학적 상황을 정치적 현실로 변화"시키기를 바란다. 그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는 브라질의 뒤뜰이며, 브라질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팽창할 수 있는 공간"(1)이다. 썰매를 끄는 한 무리의 개 그림 위로 '일등이 아닌 자의 시야는 단조롭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소규모 회사를 능수능란하게 운영하는 바르보사에게도 우선과제가 있다. 바로 "우리 스스로의 이익을 지키는 것", 그리고 지역 통합 프로세스를 강화하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자'로 불리는 시몬 볼리바르(1783~1830)가 남미의 통일을 꿈꿔온 이래, 지역 국가들의 협력을 도모하고 더 광범위한 조직으로 통합을 추구하는 시도는 수없이 많았다. 19세기 독립투쟁, 제2차 세계대전 뒤 지역 산업화, 1990년대 신자유주의 연대 등 목적에 따라 추구하는 조직의 형태도 다양했다.
오늘날 로드리게스와 바르보사도 같은 맥락의 야심을 품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로 정치적 연대는 생각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캄피나스주립대 정치학 교수 아르만두 보이투 후니오르는 "그게 오늘날 브라질이 추구하는 지역 통합 프로세스의 특징이다. 모순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상반되는 정치세력들이 이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들의 우선과제가 양립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 반향으로 수렴되고 있다"고 말한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자유무역주의에 반대한 기업가들
이들의 첫 번째 합일점은 미국의 위성지역으로 편입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브라질 엘리트들은 미국 세력권으로 들어간다는 구상에 찬성했다.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대통령(1995~2002)은 알래스카에서 티에라델푸에고섬에 이르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창설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브라질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광적 신념은 브라질 중산층의 산업 기반을 뒤흔들었고, 그가 추진한 브라질 시장 개방 정책은 급격한 수입 증가와 더불어 기업 수백 곳의 도산(또는 매각) 사태를 촉발했다.
이처럼 대담한 탈국유화 과정 앞에서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시사주간지 <베자>까지 놀라움을 표했다.(2) "자본주의 역사상 이처럼 맹렬한 기세로 단시간에 통제권이 이전된 상황은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3)
이로써 금융 분야는 호황을 누리게 됐지만 막강한 힘을 행사하던 상파울루주(州) 산업연맹(Fiesp)은 긴장했다. 2002년 연맹은 미주자유무역지대가 브라질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많은 기업가들이 우려하던 바"를 확인시켜줬다. "미주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브라질 경제에 이점보다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4) 결국 같은 해에 실시된 대선에서 기업가들은 철물공 출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에게 지지를 보냈다. 룰라 대통령은 집권 즉시 미국 정부와의 협상을 부결시키기 위해 애썼다.
그 뒤 자유무역주의는 브라질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했다. 지난해 6월 칠레, 페루, 콜롬비아, 멕시코가 체결한 태평양 동맹이 대표적 사례다. 브라질 노동당의 분파 '좌파 결합'의 대표 발테르 포마르는 "여기에 미국 정부의 입김이 들어갔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단언한다. 이 동맹에 가입한 모든 국가가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브라질리아의 지도층이나 상파울루 증권가에서는 이른바 '2008년 위기'로 신자유주의 열기가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 이제는 선망의 눈빛으로 멕시코 정부와 미국 정부의 결속을 칭송하는 시장 찬미자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과시하는 카르도주 전 대통령의 측근이나 HSBC 같은 대형 은행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미국은 태양이고 멕시코는 그 주위를 도는 행성이다." 멕시코는 2009년 국내총생산(GDP)의 6.7%에 해당하는 금액을 이런 관계의 대가로 지급해야 했다. 카르도주 전 대통령의 소속 정당 브라질 사회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사실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로드리게스는 "다른 방식의 지역 통합 구상도 가능하다"면서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동맹'(ALBA)도 무토지 농민운동이 지지하는 통합 형태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ALBA는 베네수엘라가 주축이 되어 탄생한 조직으로 브라질은 가입하지 않았다. 이 동맹은 경쟁이 아니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한 통합을 추구하며 '21세기형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하지만 로드리게스는 "이런 시각에 공감하는 이들은 브라질에서 극소수"라고 시인한다. "노동당이 '배반'만 하지 않아도 사회주의의 도래는 시간문제라고 투덜대는 몇몇 광적인 극좌파도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사회 변혁을 위한 브라질의 투쟁 기반은 비교적 협소하다"고 말한다. 로드리게스와의 인터뷰 전날, 칠레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산티아고 시내에서 벌어진 시위에는 60만 명이 운집했다. "브라질에서도 그 정도 인파가 모인 적은 있어요. 카니발 축제 때였죠!"
브라질리아나 베를린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이러하니 무토지 농민운동은 조직의 자체적 계획과 브라질의 헤게모니적 통합 모델 사이를 연결할 정치적 가교를 하루속히 마련해야 한다. 브라질 내부의 상반된 이해관계도 잘 이용하면서 말이다. "상반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로드리게스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는 "정부와 동맹조직, 일부 산업 분야, 다국적기업, 고위 관료, 그리고 대형 노조에 가입된 상당수 농민층의 입장이 상충된다. 이처럼 다양한 구성 요소를 통합할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요컨대 지정학적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포드주의적' 합의를 현대적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다양한 요소를 통합하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는 자율성 보장이다. 룰라 대통령 재임기(2003~2010)에 외교부 부장관과 전략부 장관을 지낸 사무엘 피네이로 기마라에스는 브라질의 저명한 지식인이다. 그에게 2009년 브라질 정부가 브라질 독립 200주년을 맞는 2022년까지 달성할 국가전략 목표 수립 임무를 맡긴 것은 당연하다.
75살의 외교관은 더 이상 입에 발린 소리는 하지 않는다. "프랑스나 독일이 몰타공화국 같은 나라와 통합한다면 어떤 장점이 있겠는가?" 지난 4월 9일 "지역 통합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베네수엘라 대선 투표를 지켜보러 카라카스로 떠나기 직전 그가 던진 질문이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아무 장점도 없다! 다만 주권국가로 몰타가 국제기구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세계적으로 블록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브라질도 이제 다른 국가들처럼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독자적인 지역을 구축할 때가 된 것이다. 그 지역은 '라틴아메리카'가 아닌 '남미'가 될 것이다. 멕시코와 중미는 '미국 편'이기 때문이다. 남미는 "미국의 이익에 순응하는 태도를 버리겠다는 브라질 전략의 중심축"이 될 것이다.
브라질 고위 관료들 중 진보적 인사들의 반(反)제국주의는 발테르 포마르의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포마르는 반미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의 정치적 신념이 어떻든 간에 이를 이용한 원동력이 사회 변혁에 밑받침이 돼줄 수 있다고 본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사회주의 진영을 구축하려는 모든 프로세스는 두 가지 장애물에 부딪힌다. 하나는 국내 중산층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백악관의 힘이다. 물론 브라질이 추구하는 지역 통합이라고 외세의 개입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영향은 줄일 수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각국은 국가의 역동성을 더 자율적으로 발전시켜 나아갈 수 있다." 2008년 설립된 남미국가연합(UNASUR)의 강경한 태도도 2008년과 2010년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시위대들의 야심을 저지하는 데 일조했다.(5) 또한 우고 차베스가 후계자로 지목한 니콜라스 마두로의 대통령 당선에 베네수엘라 야권과 미국 정부가 의혹을 제기했을 때 남미국가연합은 마두로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기마라에스 전 외교부 부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이런 문제가 미주기구(OAS)에서 해결됐다. 이는 백악관이 해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남미의 태도에 언짢았는지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은 최근 라틴아메리카를 '미국의 뒤뜰'이라고 표현했다.(6)
"태평양으로 진출하라"
미국이 두 번이나 연달아 밀린 상황에서 포마르의 전략에 따르면 이제 남은 장애물은 하나, 바로 브라질 중산층 세력이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은 훗날로 미루기로 포마르도 입장을 정한 듯하다.
풍부한 지하자원의 혜택을 누리는데다 천연자원 통제권까지 되찾은 남미 각국은 경제 다변화와 생산설비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선거운동 때 "베네수엘라에는 제대로 된 중산층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경제활동에 기여하는 산업 분야는 이자 수익을 기반으로 하며 미국 자본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가 생산성 있는 경제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모든 세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7) 표면적으로는 '나라를 생각하는 민간 부문'에 호소했지만 내심 브라질 쪽에서 메아리가 들려오기를 바랐을 것이다. 베네수엘라보다 브라질의 기업인들이 더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룰라 대통령이 집권한 뒤에도 브라질에서는 노동당·노조·사용자 간의 연대가 와해되기는커녕 오히려 브라질 정부의 '발전 지향적' 전통을 되살리며 견고해졌다.
자유주의의 위기에 대응해 지도자들이 내놓은 해결책이라고는 자유주의 개혁의 심화뿐인 세계적 상황에서 완전고용, 임금 인상, 사회복지 프로그램, (투기 대신) 생산 활성화 등을 통해 국내 시장을 발전시키겠다는 정책의 등장은 현시점에서는 지구상 가장 혁신적인 해법으로 보인다.
많은 좌파 운동가들이 여기에 100% 만족하지는 않지만 대안으로는 인정한다.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브라질 중앙단일노조(CUT) 전 위원장이자 신(新)발전주의 연대운동의 주창자인 아르투르 엔히크의 말이다. "나는 사회주의가 가령 오는 일요일, 저녁 미사를 마칠 무렵 뚝딱하고 이뤄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이 어떠한지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지역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의 탈피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가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국가가 아닌 지역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를 추구한다. 즉, 다른 남미 국가들의 필요성까지 고려한 형태의 자본주의 말이다."
카라카스에 지하철을 건설해야 한다면? 브라질 건설회사 오데브레히트의 지원과 브라질 정부의 금융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베네수엘라가 식량난을 겪는다면? 브라질 기업들이 식량을 공급해줄 것이다. 이미 이들은 베네수엘라의 닭고기 소비량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1998년 차베스가 집권한 이래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의 교역이 8배 늘어났다.
상파울루주 산업연맹의 카를로스 카발칸티는 "브라질에 남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남미 시장에서 브라질 제품은 중국 제품보다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또한 브라질은 공산품의 대부분을 남미 시장으로 수출하고 있다." 브라질 제품은 라틴아메리카가 수입하는 물품의 83%, 중국으로 유입되는 물품의 5%를 차지한다. 또한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상황에서 인근 국가들에 대한 브라질의 수출액은 2002년 75억 달러에서 2010년 350억 달러로 껑충 뛰었다. 카발칸티는 손으로 머리를 가다듬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남미 국가들은 국민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브라질 입장에서는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거다." 반(反)제국주의와 사업은 따지고 보면 양립 가능한 셈이다. 상파울루주 산업연맹은 2012년 발행한 한 보고서에서 남미 통합 프로세스를 "세계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국가 이익을 종속시켜온 5세기 역사와의 단절"이라고 표현했다.(8)
그런데 남미 지역의 산업발전과 지정학적 자율성 강화, 브라질의 자본 확대 요구가 가장 조화롭게 구현되는 것은 인프라 부문이다.
지난해 10월 30일 남미국가연합은 "남미의 천연자원이 회원국들의 통합 전략과 단결을 위한 역동적 주축"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이보다 앞서 출범한 남미인프라통합구상(IIRSA)의 활동 추진도 이런 논리에 따라 정당성을 인정받았다.(9) 남미인프라활동구상은 남미를 동서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철도·해상수송로 건설 프로젝트를 말한다. 이 계획은 2000년 브라질의 카르도주 대통령이 대규모 미주 자유시장 창설을 위한 중간 과정으로 제안했지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여기에 찬성하지 않았다. 2006년 남미 각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차베스는 "이 계획의 기저에 신식민주의 논리가 깔려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근간이 된 남미인프라통합구상이 출범할 때와 전도유망한 남미국가연합이 탄생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콜롬비아 출신 마리아 엠마 베히아 남미국가연합 신임 사무총장은 "지금의 목표는 과거처럼 '남미 단일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역내 발전'과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도모하는 것, 즉 인프라를 '사회 편입의 도구'로서 고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10)
남미의 인프라 수요는 엄청나다.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볼리비아 부통령은 환경주의자들의 비난을 잠재울 요량으로 "천연자원 개발이 국가의 산업화를 가능케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국가 기술력의 취약으로 이는 실현되지 못할 우려가 있다. 페루나 베네수엘라는 새로운 항만·도로 시설을 구축해야 하고, 1992∼2012년 곡물 생산이 약 220%나 증가한 브라질에서 도로·철도망은 같은 기간에 전혀 확충되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 4월에는 브라질의 항구도시 산투스 인근 기차역으로 향하는 도로 BR364에 극심한 정체가 발생해 거북이걸음을 하는 화물차 행렬이 100km에 달했고, 생산품 수출이 60일이나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바르보사는 "태평양 방면으로도 루트가 있다면 농산물 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이 오늘날 브라질 제1의 교역상대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이해되는 이야기다. 아울러 브라질 기업들의 이웃 나라 시장 공략도 수월해질 테니 말이다.
자유주의가 숭배되는 분위기에서 탄생한 남미인프라통합구상은 자금 조달의 상당 부분을 시장과 미주개발은행(BID)에 의존했다. 아르헨티나의 갑부 에두아르도 에우른키안은 이런 방식이 실패했음을 순순히 인정한다. "기업가들이 각국을 연결해주는 사업을 맡아주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단계에서 공사를 완수할 책임은 민간 부문이 아닌 정부에 있다는 이야기다.(11)
지역 연대가 탈지역화를 가져올 것인가?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됐다. 이제 지역의 물리적 통합을 위해 각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브라질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개발은행, 바로 국영 경제사회개발은행(BNDES)을 두고 있다. 2010년 이 은행의 대출액은 1천억 달러로 미주개발은행의 150억 달러, 세계은행의 400억 달러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주목할 점은, 이 은행이 규정상 브라질 기업들에만 자금을 조달한다는 사실이다. 브라질이 키워주는 '국가대표 기업'인 오데브레히트, 카마르고 코레이아 등의 업체들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대형 건설사 사무실에서는 2011년 11월 남미국가연합이 첫 '우선투자 어젠다'를 채택했을 때도 분명 갈채를 보냈을 것이다. 이 어젠다는 가스수송관 1500km, 운하 3490km, 도로 5142km, 철로 9739km를 건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우선사업에 필요한 투자액만 210억 달러이고 531개에 달하는 프로젝트 전체에는 1160억 달러가 소요된다.
반면 이웃 국가들은 그다지 즐거워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지난 4월 22일 '초국적기업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가' 기구의 첫 회의에 참가한 볼리비아, 쿠바, 에콰도르, 니카라과, 도미니카공화국,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베네수엘라는 '일부 국가들'의 주권을 위협하는 '일부 기업들'의 경제권력을 비난했다. 비록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들의 시선은 한 방향으로 집중됐다.
우루과이 지식인 라울 지베치는 브라질 정부가 약속하는 통합이란 결국 '북반구'에서 제공된 자본이 '남반구'에 있는 또 다른 자본에 자리를 내주는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영국이 광물 수출을 위해 첫 철로를 건설했고 미국은 '서진'(西進) 정책의 일환으로 코차밤바와 산타크루스를 잇는 도로를 건설했다. 이제는 그 뒤를 이어 브라질이 자체적으로 통합 통로를 구축하고 있다."(12)
기마라에스 부장관은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본다. 그는 지리적 문제를 부각시키며 브라질이 남미의 땅, 인구,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2011년 브라질의 GDP는 남미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국가인 아르헨티나의 5배였고 볼리비아와 비교하면 100배에 달했다. "게다가 일부 남미 국가들은 최근에야 소득세를 도입했다. 따라서 개발을 추진할 만한 자체적 재원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브라질이 이들 국가를 '지원'하는 게 옳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착취일까, 아니면 연대의식의 발로일까? 일단은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 차원에서도 그렇고, 노사 '화해'를 꿈꾸는 브라질 정부 차원에서도 그렇다. 과연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지난 4월 1일 기마라에스 부장관은 지역적 연대의식을 설명하며 하나의 예를 들었다. "룰라 정권 때 한 가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브라질 정부의 보조금으로 파라과이의 수력발전소 이타이푸와 수도 아순시온 사이에 송전설비를 구축한 것이다."(13) 덕분에 아순시온의 고질적인 단전 문제도 해결됐다.
그런데 이틀 뒤 상파울루 기업가들은 이와는 다른 결론을 도출했다. 이들은 "섬유·제조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생산설비 일부를 파라과이로 이전함으로써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파라과이의 임금 수준이 브라질에 비해 35%가량 낮다"고 강조했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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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 2>(2010(공역) 등이 있다.
(1) 2000년 1월 21일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브라질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후벵스 바르보사 소장 자료).
(2) Carla Luciana Silva, ‘<베자>, 브라질 신자유주의의 선봉’,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2월호 참조.
(3) Geisa Maria Rocha, ‘Neo-dependency in Brazil’, <New Left Review>, 제16호, 런던, 2002년 7∼8월호에서 재인용.
(4) ‘Estudo da Fiesp mostra que Alca é mais risco que oportunidade’, <Valor Economico>, 상파울루, 2002년 7월 26일.
(5) Hernando Calvo Ospina, ‘볼리비아 자치운동, 좌파 노린 미국의 원격조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6월호 및 Maurice Lemoine, ‘Etat d’exception en Equateur’, <La valise diplomatique>, www.monde-diplomatique.fr, 2010년 10월 1일 참조.
(6) ‘US protests against Bolivia’s decision to expel USAID’, <BBC News>, 런던, 2013년 5월 1일.
(7) ‘Maduro no volante’, 일간 <Folha de S. Paulo>, 2013년 4월 7일.
(8) ‘8 eixos de Integraçao da Infraestrutura da América do Sul’, 상파울루주(州) 산업연맹(Fiesp), 2012년 4월 24일.
(9) 남미국가연합 남미인프라계획위원회 2012년 활동계획.
(10) ‘8 eixos de Integraçao da Infraestrutura da América do Sul’, op. cit.
(11) ‘Integraçao depende de governos, afirma bilionnrio’, <Valor Economico>, 2013년 4월 19~21일.
(12) Raul Zibechi, <Brasil potencia>, Desde abajo, 보고타, 2012.
(13) 2013년 4월 1일 발레리아 나데르, 가브리엘 브리토와 한 인터뷰, www.correiocidadania.com.br.
(14) ‘Fiesp Mostra vantagens de se levar industrias ao Paraguai’, <Valor Economico>, 2013년 4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