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재봉틀 방글라데시

“기성복 제조업자들은 살인자”

2013-06-07     올리비에 시랑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라나플라자 공장이 무너져 1천여 명의 희생자를 내기 전에, 이미 다른 끔찍한 사건들을 통해 방글라데시 제조업 공장들의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방글라데시는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가?

하티르힐 호수 기슭에 우뚝 서 있는 반짝이는 유리 타워는 거대한 달동네의 중심부에 시티오브런던(영국 런던의 중심지)을 옮겨놓은 듯하다. 이 타워는 기성복 경영자 조합 '방글라데시 의류 제조업자 및 수출업자 협회'(BGMEA)의 본거지다. 라나플라자 건물이 지난 4월 24일 붕괴돼 최소 1127명이 사망했는데, 사망자 대부분이 의류노동자였다. 이 건물과 달리 BGMEA 타워는 전혀 무너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이 타워는 법원 소송에 걸려 있다. 지난 3월 19일 내려진 판결에서 방글라데시 고등법원은 3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경영자 타워의 해체를 지시했다. 그 이유는 경영자 조합이 권한이나 자격도 없으면서 통상부와 결탁해 공공토지 위에 불법적으로 타워를 세웠기 때문이다. BGMEA는 상고를 했다. 그 절차의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하티르힐의 암덩어리'라고 불리는 그 타워가 이른 시일 안에 해체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타워 입구에서 보안요원들은 방문객에게 군대식 경례를 한다. 다카에는 관광객이 드물기 때문에, 백인은 기성복 구매자로, 즉 망고(영국 의류판매업체), 베네통(이탈리아 의류판매업체) 혹은 H&M(스웨덴 의류판매업체)의 도매업자로 간주된다. 경비원과 도어맨은 이 기성복 구매업자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 관계자들은 이런 대우를 기꺼이 즐길 것이다. 호화 호텔 고객에게 제공되는 '다카 방문'이라는 소책자에는 거리의 사람들에 대해 주의해야 할 사항이 적혀 있다.

오늘은 4월 9일이다. BGMEA 타워에서 20km 떨어진 라나플라자는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서 있다. 방글라데시 산업사의 가장 끔찍한 살육이 앞으로 2주 뒤에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의류산업에서의 안전과 노동조건 문제는 이미 제기되고 있었다. 지난 1월 7일 '스마트 가먼트 수출'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8명이 사망했다. 이 조그만 공장은 다카의 중심부에 있으며, 직원 수는 300명이다. "희생자는 모두 16살 이하였다"고 여성 인류학자 사이디아 굴루크가 확인해준다. 그녀는 의류산업 희생자들과 더불어 연대조직을 만들었다. 이보다 한 달 전인 2012년 11월 24일 또 다른 화재가 발생해 방글라데시 수도 북쪽 교외의 아슐리아에 소재한 '타즈린 패션' 공장이 큰 피해를 입었다.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이로 인해 112명이 죽고 1천 명이 다쳤다.

타즈린 공장의 9개 층에는 노동자 3천 명이 운집해 일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빈곤한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여성이다. 이 여성들은 하루에 10시간 일주일에 6일을 일해, 매달 30유로에 해당하는 3천 타카를 벌기 위해 유명 의류 유통업체들에 납품할 의류를 만들었다. 유명 의류 유통업체들에는 디즈니, 월마트, 프랑스 그룹 테디스미스도 포함된다. 화염에 취약한 제품이, 가장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무시한 채 1층 계단 옆에 비축됐다. 비상구는 상품 도난을 막기 위해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화염에 휩싸인 희생자들은 불에 타 죽거나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이들의 사장 돌워 호세인은 법정 문제로 걱정한 적이 결코 없고, 지금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그가 BGMEA의 일원이기 때문에 처벌 면책을 보장받은 것은 아닐까? 이 의문을 조사하기 위해 BGMEA의 회장 아티쿨 이슬람과 면담 약속을 했다.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 수는 400만∼500만 명에 달하고 의류산업은 수출의 80%를 차지한다. 그래서 방글라데시는 중국 다음의 전세계 제2의 기성복 수출국이다. BGMEA의 회장은 방글라데시 경제계의 거물 인사인데, 그가 회장에 취임한 지는 이제 겨우 한 달밖에 안 됐다. 업계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젊은 경영자의 회장 취임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는 두드러지지도 않고 경험도 없는 중소기업가다. 그가 갑자기 회장으로 발탁된 것은, 그가 온순해서 배후의 거물들이 앞에 나서지 않고도 뒤에서 그를 조정하기 쉽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의 말이다.

경영주가 방글라데시의 조정간을 잡고 있다

지난해 12월 BGMEA가 급조한 조사단이 건축법을 위반해 건설됐다는 이유로 4개 공장에 대해 위험 판정을 내렸다. BGMEA의 이런 주도적 행동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드문 일이었다. 위험 판정을 받은 공장 중에는 '로즈 드레시스 리미티드'라는 이슬람이 아슐리아에 소유한 공장도 포함됐다. 석 달 뒤 이슬람이 BGMEA의 수장으로 선출됐다. 5천 개 제조공장의 대부분이 공개적으로 법률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조사단의 유일한 목적은 미래의 회장을 궁지에 몰아넣고 회장이 후견인들의 압력을 어느 정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경영자협회 회장과의 면담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방글라데시의 경제사를 되돌아본다. 자한기르나가르(다카의 옛 이름)대학의 경제학 교수 아누 모하메드는 방글라데시 경제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방글라데시가 기성복 덕택에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방글라데시의 가장 풍부한 자원은 황마였다. 그 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들어왔다. 이 기구들의 후원하에 민영화와 공공비용 감축 계획이 시행되자, 실업이 급속히 증가했고, 수입의존도가 엄청나게 심화됐으며, 지역산업이 몰락했다. 거대 정당의 관료, 군대 장교, 경찰의 중간간부, 좋은 가정의 자녀들은 뜻밖의 횡재를 좇아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값싼 노동력, 공기업의 민영화에 따른 노동조합 약화, 수출산업용 기계 수입에 대한 관세 철폐 같은 여러 요인들이 의류산업에 투자할 것을 독려했다. 나머지 일은 부패에 의해 저절로 이루어진다.

마음을 사로잡힌 유럽과 미국은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 의류에 문호를 활짝 개방함으로써 방글라데시의 정책에 대해 보상을 해준다. 당시 유럽 통상관 파스칼 라미는 2001년 11월 21일 다카에서 '나는 여러분을 이해했다'는 입장을 발표한다. "유럽연합(EU)은 새로운 통상 가능성을 개방하고 시장으로 가장 빨리 진입하게 도와줌으로써, 세계 무역 시스템에 가장 훌륭하게 통합될 수 있도록 방글라데시를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 2010∼2012년,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의 매상고는 48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로 4배 이상 늘어났다. 골드만삭스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이 뉴욕은행은 2012년 6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를, 브릭스(BRICS) 같은 신흥 강대국에 합류할 수 있는 '차세대 11개국' 리스트의 맨 선두국가에 지명한다.

황금알을 낳는 닭 때문에 새로운 엘리트가 탄생하고, 새로운 엘리트는 4륜 구동차를 타고, 피자헛에서 저녁을 먹으며(다카에서는 속물주의의 극치 모습임), 골프를 치고, 자식을 미국에 유학 보낸다. "기성복은 쉽게 돈 버는 방편이며, 다른 분야에 투자하거나 의회에서 한 자리 얻기 위한 영리 수단이다. 공식적으로 의원 300명 중 29명이 의류공장을 소유하고 있다. 명의 대여인 뒤에 숨은 의원들을 고려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많다. 방글라데시에서 의류산업에 연관돼 있지 않은 권력자는 거의 없다. BGMEA가 방글라데시의 조정간을 잡고 있는 것이다." 아누 모하메드가 계속해서 말한다.

경영자협회의 본부로 돌아가보자. 이슬람 회장을 기다리는 동안, 측근 중 한 명이 우리를 회장 사무실에 부속된 응접실로 안내한다. 하산 샤흐리아르 쇼우드후리는 미국에서 막 돌아왔다. 미국에서 '대테러 업무'에 대해 여러 명의 위원들과 협력 사항을 논의했다고 한다. '앙겔라 메르켈의 팬'인 이 공군장교는 의류공장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가 확인해준 말이다. 그러면 그는 BGMEA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회피하면서도 프랑스 기자와 잡담하는 것을 즐긴다. "당신이 기자여서 그러는데 여성부 장관인 내 사촌을 만나고 싶은가? 나는 방글라데시 주요 신문의 경영자들도 소개해줄 수 있다. 모두 내 친구다."

이슬람이 나타나자 그와의 고무적인 대화는 끊겼다. 자문관 5명을 주변에 동반한 경영자협회 회장은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다시 말해 대담이 취소됐다고 말해준다. "당신은 내무부에서 취재권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처럼 민감한 주제에 대해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보호 유리판 뒤에서 바쁘게 일하는 매니저와 비서들의 모습을 본다. 우리는 유리판 위에 붙어 있는 경고문에 주의를 기울인다. "더 적게 말하고 더 많이 일하시오."

타즈린의 생존자들이 이야기하는 평가 요소가 BGMEA의 강력한 파워를 증명해줄 것이다. 공산당 계열의 노동조합 '전국의류노동자연맹'(NGWF)의 주동 인물 셰린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아슐리아로 출발한다. 다카의 기괴하고 혼란스러운 도시 모습이 조금씩 검은 연기를 품어내는 굴뚝으로 뒤덮인 황량한 풍경으로 대체된다. 검은 연기 속에서 누더기 옷을 걸친 청소년들이 점토덩이를 화덕에 넣고 있다. 화덕에서 나온 벽돌들은 저 멀리 보이는 중산층 전용 고급 주택을 건설하는 데 사용될 뿐만 아니라, 계속 북쪽으로 확장되는 공장들을 건설하는 데도 사용될 것이다. 도로를 벗어나 우리는 조그만 비포장도로로 접어든다. 끝에 이르자 대나무 비계로 덮어진 검게 그을린 콘크리트 입방체 구조물이 나타난다. 최근까지 디즈니 셔츠를 납품했던 '타즈린 패션' 공장이다.

나스렌은 25살이지만 40살처럼 늙어 보인다. 자기 마을로 서둘러 돌아간 다른 생존자들과 달리 그녀는 기숙사 구역인 니시신타푸르를 떠나지 않았다. 기숙사 구역은 완만하고 조용한 골목길에 있는데, 골목길이 공장까지 이어진다. 11월 24일 18시 50분, 비상벨 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2층에서 재봉틀로 옷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가 활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작업반장은 우리에게 화재 예방 연습이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비상벨이 두 번째로 울렸다. 그때 우리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타는 냄새를 느끼기 시작했다. 작업반장은 여전히 우리가 움직이지 않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달렸다. 출구 2개가 있었다. 하나는 열려 있었고, 다른 하나는 닫혀 있었다. 열린 문을 통해 나간 계단은 이미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불길에 휩싸이지 않은 다른 계단을 이용할 수 있었다면 모두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상당수의 창문이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소수의 동료들과 더불어 나스렌은 창문 하나를 간신히 열고 허공에 몸을 던졌다. 그녀는 다리 한쪽이 부러진 채, 평생 그녀를 괴롭힐 악몽과 더불어, 그리고 언젠가 다시 공장에 발을 들여놓아야만 하는 공포를 느끼며 그곳을 탈출했다.

그녀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날 그녀는 유일한 지원품으로 '쌀 25kg, 양파 23kg, 기름 1ℓ'를 받았다. 남편의 몇 푼 안 되는 월급으로는 가족을 먹여살리기에 충분하지 않기에, 그녀는 몰려드는 졸음을 쫓으며 다시 재봉틀 앞에 앉을 것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공장이 불에 타거나 붕괴될 때 BGMEA가 희생자에게 보상을 한다. 보상비는 미미하다. 부상자 1명당 의료보조비 명목으로 10만 타카(약 1천 유로), 사망자 1명당 60만 타카(약 6천 유로)를 지급받는다. 고용주나 법원은 개입하지 않는다. 운 좋은 사람들만 BGMEA가 나눠주는 미미한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BGMEA가 희생자 리스트를 작성하기 때문이다.

타즈린 화재의 경우, 너무 많이 손상되거나 재로 변해버려 주검의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정은 더욱 곤란했다. 버려진 가족을 돌보는 굴루크에 따르면, 화재로 행방불명된 여성노동자가 최소 27명인데 이들은 희생자 명단에서 제외됐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행방불명자 수가 이보다 5∼10배 더 많다. 또 다른 생존자 실페가 항의한다. "공식 보고서는 실재로 벌어진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 각자는 화재 현장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동료가 다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BGMEA는 동료들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핑계로 그 사실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당신이 죽고, 마을의 당신 가족조차 그 사실을 모를 때, 당신이 무슨 흔적을 남길 수 있겠는가?"

타즈린이 여전히 연기를 품어내고 있을 때, 정부는 총리의 입을 통해 '태업 행위'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즉각 이 발표가 이슬람주의자들을 의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 사실을 지지해주는 아무런 증거가 없음에도 그런 엄청난 비난을 하는 것은 공장 주인과 BGMEA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아누 모하메드는 이 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외국 고객들도 돌워 호세인의 이름을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지난 4월 15일 국제산업노동조합과 비정부기구들이 앞장서서 보상펀드를 만들기 위한 모임을 결성하기 위해, 타즈린에서 제품을 공급받는 유명 업체들을 스위스 제네바에 초청했다. 디즈니는 그 초청을 거부했다. '도널드의 친구들'은 자신의 노동력이 불타버린 뒤, 공급처를 방글라데시 대신 캄보디아나 베트남으로 바꾸면서 짐을 싸 떠나버렸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손을 떼버린 것이다. 월마트 역시 단호하게 초청을 거부했다. 월마트는, 그 공장이 규정을 잘 지키고 있다고 보장해준 감사팀에 책임을 전가조차 하지 않으면서, 태도를 확 바꿔 타즈린과 아무런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테디스미스의 총괄사장 필리프 불루는 프랑스 파리 오페라가(街) 상점에서 163유로짜리 '록큰롤 룩'을 판매하느라 여념이 없는지, 전화나 전자우편에 대해 무응답이었다. 끈질기게 요구해 그의 협찬사 중 한 곳과 접촉해 다음과 같은 진술을 얻어냈다. "우리는 아주 작은 기업이라서 제네바에 갈 여력조차 없다…."

"안전 수칙을 준수한다"고 떠드는 카르푸

카르푸그룹은 우리가 그쪽에 설명을 요구하자, 어리둥절하는 체한다. 다카에 '방글라데시 카르푸 글로벌 소싱'이라는 명칭하에 자사 사무실을 여러 개 둔 프랑스 1위의 유통업체 카르푸는 호세인의 회사 투바그룹의 고객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결코 타즈린 공장에는 주문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방글라데시 공급업자가 적어도 10개의 공장을 소유했고, 카르푸에서 판매되는 티셔츠가 그날 가장 치명적인 죽음을 가져온 공장에서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의류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그런 주장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고객이 주문할 때는, 그 주문을 지정된 어떤 공장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명의 공급자에게 한다. 바로 그 공급자가 계약서에 사인하고, 사회적·도덕적·환경적 관련 서류에 사인한다. 카르푸 같은 대형 유통업체는 대량주문을 하는데, 그 경우 공급자는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공장에 생산량을 할당하게 된다. 투바그룹의 모든 공장이 돌아가도 주문 물량을 대기 벅찰 때, 타즈린 공장이 부담을 경감시켜주기 위해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카르푸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게다가 타즈린 공장이 다른 공장들과 특별히 구별되지도 않는 데, 무슨 이유로 그들이 타즈린 공장을 리스트에서 제외하겠는가."

그러나 프랑스의 거대 기업은 끈질기게 주장한다. "우리의 기준과 감사보고서를 갖고 있다. 그 규정에 의거해 타즈린 공장을 공급 장소에서 단호히 제외했다. 우리는 그런 사항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지속가능발전 중역인 베르트랑 스위데르스키는 이렇게 항의한다. 그처럼 말 많은 보고서를 우리가 볼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애석하게도 그 보고서는 '비밀'이었다.

그 대신 스위데르스키는 자신의 그룹이 외국 공급업체들에 서명하게 하는, 그룹이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사회헌장'을 우리에게 기꺼이 보내주기로 했다. 그 서류는 방글라데시 여성 재봉사들의 주검 안치소 위에 놓인 포장종이처럼 광택이 난다. '결사 자유의 존중'이라는 항목에서 카르푸 헌장은 "노동자는, 경영진의 사전 동의 없이, 자신들이 선택한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단체협상을 진행할 권리를 갖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호세인이 이런 선의의 권고 사항에 진심 어린 마음으로 사인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호세인 그룹의 공장들 내에서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 전체에서 모든 형태의 노조 활동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그 증거를 얻기 위해 파이줄(가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타즈린 공장의 전직 노동자 파이줄은 양철 지붕으로 덮인 가구 없는 방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그 방은 왕래 많은 골목길 쪽으로 향해 있다. 그곳은 '전국의류노동자연맹'(NGWF)의 지역 본부다. 파이줄은 아슐리아 지역을 담당하는 노조 지부장이다. 그는 당연히 자신의 지부장 신분을 비밀로 유지한다. 카르푸의 지속가능발전 부서의 머리에서 나온 동화 같은 이야기에 대해, 파이줄은 훨씬 간결한 설명을 내놓는다. "만약 당신이 공장 내에서 '노동조합'이라는 단어를 발설하면, 당신은 그 자리에서 해고되고 다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 타즈린에서 노동조합원 수가 100여 명이었지만 그것은 비밀이었다. 우리는 일터에서 노동조합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전단지를 뿌리자마자 경찰이 달려들었죠"

화재가 발생한 뒤, 곧바로 노조지부는 투쟁하기로 결심한 생존자들의 자발적 모임으로 넘쳐났다. 하지만 절망적일 정도로 무기력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우리를 아는 모든 노동자가 애도와 분노를 공유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동료 53명이 화재로 사망했다. 우리는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장에 대해, 사장을 보호해주는 정부와 BGMEA에 대해 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전단지를 뿌리고 미팅을 조직하는 것은 어떤가요? 다른 공장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호소하면 어떤가요? 이렇게 순진한 질문을 하는 프랑스인 방문객에게 불편함을 느낀 파이줄은 고통스러운 눈빛을 띠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서는 그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다. 전단지를 뿌리자마자 경찰에게 체포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일자리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화재가 발생한 뒤 노조가 주로 한 활동이 무엇이었는지를 질문하자, 그는 "고용주가 약속한 것처럼, 출입문과 비상구가 열려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과 접촉했다"고 말했다. 만약 출입문과 비상구가 열려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그때에는 동료들이 문자메시지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곳의 모든 사람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서로 소통한다." 파이줄이 좀더 진지한 행동 방식을 채택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알기 어려웠다. 그는 다카에서 온 노조 간부가 곁에서 통제하는 상황에서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파이줄이 제공한 인삼차를 다 마셨다. 우리를 배웅하기 전에 파이줄은 아내의 증명사진을 우리에게 건네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타즈린 공장의 노동자였던 아내는 화재를 피해 3층에서 투신했으나 사망했다.

외국의 유명 업체들과 지역 공급자들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해주는 전략적인 장소를 '구매 하우스'라고 부른다. 방글라데시에는 구매 하우스가 약 200개 있다. 공장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모든 고객이(대부분 유럽인임) 방글라데시를 방문하는데, 니잠 우딘의 구매 하우스가 이 일을 명예롭게 맡고 있다. "우리가 고객을 맞이해 정성껏 대접하고, 세심하게 보살핀다." 2층에서는 10여 명의 전화교환수들이 약간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주문 오더를 처리하고 있다. 지하실에서는 재단사 3명이 세세한 기술적 요구 사항을 준수하면서 제조업자에게 보낼 모델들을 말없이 만들고 있다. "우리의 주요 고객이 주문량을 방금 줄였다. 어쩔 수 없이 새 구매자를 찾아야 한다. 이런 일은 13년 만에 처음이다." 니잠 우딘이 이렇게 말하며 한숨짓는다. 세련된 사장은 사무실 구석에 있는 상품 진열대 위에 자신의 '열정'인 골프대회에서 획득한 우승컵과 메달을 전시해놓고 있다.

우리는 우딘이 온 힘을 다해 자기 회사를 힘들게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반면 이슬람주의 야당 '자마트에 이슬라미'는 오늘 아침, 파업을 하루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파업을 하면 길거리에 사람들의 자취가 사라지고 경제활동이 봉쇄될 것이다. 우딘은 어깨를 들썩거렸다. "우리는 파업 결정에 불안해하지 않는다. 시위 참가자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든,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때때로 자동차나 가게를 불태운다. 그러나 공장에는 손대지 않는다. 당신도 알다시피 BGMEA 회원에는 주요 정당의 의원들이 포함돼 있다. 오늘 BGMEA는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이끄는 '아와미 연맹'당을 지지할 것이다. 그런데 BGMEA는 BNP(방글라데시민족주의정당)의 민족주의자들과도, 심지어 자마트당의 이슬람주의자들과도 사이가 좋다."

골프 챔피언은 자신의 동업자 중 한 명인 조르주 파케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67살인 그는 국외로 추방된 프랑스 사람인데 두바이에서 가져온 지단 담배를 피운다. 그는 1년의 반을 두바이에서 생활한다. 1994년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그는 '직업생활 말년'에 접어들고 있다면서 시원스럽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우리는 여기서 프랑스 대형 슈퍼에서 팔리는 요실금 환자용 속바지를 포함해 모든 것을 만들고 있다. 문제는 우리 고객들이 점점 더 단가를 후려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객들은 무엇을 바랄까? 사람들이 공짜로 일하기를 바랄까? 유럽의 유명 업체들이 적어도 7배의 마진을, 다시 말해 10배는 아니지만 구매 가격보다 7배 높은 가격으로 우리 제품을 판매한다. 이익을 보려는 그들의 욕망에는 끝이 없다. 오랜 고객들이 갑자기 우리를 버리고 떠나는데, 그 이유는 경쟁자가 고객에게 물건 하나에 10센트 더 싼 가격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위선이 판치고 있다. H&M 경영진들이 방글라데시 공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하기 위해 셰이크 하시나 총리를 면담하는 순간에도, 그들의 부하 직원들은 제품 공급업자들에게 판매 가격을 15% 내리려고 협상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이해하겠는가? '알아서 하십시오. 우리는 그 외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의 철학이다."

타즈린의 화재에 대해 질문하자, 파케는 눈을 크게 치켜뜨면서 숨결을 다시 가다듬는다. "나는 돌워 호세인을 10년 전부터 알고 있다. 그는 착하고 독실한 사람이다. 그의 집 근처에 모스크 사원이 있는데 바로 그가 사비를 부담해서 지은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그의 고객들 중 두 번째로 컸다. 그런데 그가 성공에 도취됐다. 그는 공장을 하나둘 사들여 전부 12개를 사들였고, 그 뒤 6500만 달러의 매상고를 올리는 나이트클럽의 주인이 되었다. 그는 통제 감각을 상실했다. 타즈린이 화재로 연소됐을 때, 그는 이미 1년 전부터 거기에 발조차 들이지 않았다." 자기 친구가 처벌받지 않은 사실은 흡수성 내의를 파는 노련한 베테랑에게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멋진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타즈린이 그에게서 손과 발을 빼앗아가버렸다. 돌워는 빚투성이다. 그에게는 더 이상 한 명의 고객도 없다. 모든 사람이, 심지어 BGMEA의 친구들도 그에게 등을 돌린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가 감옥에 가기를 원하는가?" 이런 합당한 질문이 레한나 문제를 검토할 때 제기되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 그녀의 이미지가 그 순간 머리에 스쳤다. 자기 동료들을 불태워버린 화마를 피하느라 간신히 4층의 환기통 속으로 들어가 거기서 밑으로 투신한 뒤 타즈린의 이 젊은 여성노동자는 팔과 다리를 잃어버렸다. 그 뒤 그녀는 휠체어 대용으로 외바퀴 손수레를 사용하며 살고 있다.

"지금 시스템으론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아슐리아의 거대한 산업재해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주변 공장에서 근무하는 그들의 동료에게 밝은 미래를 예고해주지 않는다. "또 다른 재앙이 닥칠 것이다. 그것은 아슐리아의 재앙보다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더러운 셔츠를 팔에 둘둘 감은 젊은 생존자는 두려워한다. 굴루크는 이 진단에 동의한다. "타즈린 화재는, 노동자의 운명에 대한 엘리트들의 무관심 때문에, 의류노동자들의 비참한 상황을 전혀 바꾸지 못했다. 그러므로 또 다른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BGMEA가 자신의 외국 고객들을 안심시키고, 외국 고객들이 또 그들의 소비자를 안심시킬 수 있도록 피상적인 조치만 취해질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이 파괴되고 해체돼 새로운 철학적 기반 위에 다시 세워지지 않은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2주 뒤, 라나플라자의 대량 참살은 타즈린의 화재보다 10배 많은 사망자를 냈다. 이 사건에 대해 방글라데시 재무부 장관 아불 말 압둘 무히트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나는 이 사고가 그렇게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우연히 발생한 사고일 뿐이다."

*

글•올리비에 시랑 Olivier Cyra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