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부드러운 햇살의 나라

2013-06-07     호세 루이스 페이쇼

주당 근로시간을 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늘리고 정년을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긴축정책 법안이 지난 5월 12일 통과된 포르투갈의 역경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 남든 이민을 선택하든, 포르투갈 국민은 미래에 대한 꿈을 접어야 할 처지가 됐다.

리스본. 햇살이 내 뒤에 있는 창문으로 들어온다. 햇살은 방을 가득 채우고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에도 내려앉는다. 밝은 빛을 받으며 글자가 하나씩 창백한 화면에 더해진다. 마치 창백함을 침식시키기라도 하듯이.

일상 대화에서 포르투갈의 태양은 이 나라가 지닌 주요 장점 중 하나로 언급되곤 한다. 이야기는 통상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사람들은 사물의 부정적 측면만 생각하고 당연하게 누리는 것은 소중한 줄 모르고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게 따지고 보면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일 때가 많다. 이를 테면 태양이 그렇다.'

이런 식의 날씨 이야기로 뉴스에 대한 반응을 갈음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태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의 회피이자 방어이다. 포르투갈인은 뉴스에 트라우마를 종종 느낀다. 우리는 어떤 독특한 형태의 향수(鄕愁)를 표현하기 위해 '사우다지'(Saudade)라는 단어도 만들어냈다. 마찬가지로 TV 뉴스를 보고 난 뒤 느끼는 '불편한 심기'를 지칭하는 표현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태양은 위로가 된다. 포르투갈인 중 누군가 영국이나 스위스로 이민 갔다고 하면 흔히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장담하는데 거기는 여기 같은 태양이 없을 거야." 이같은 반응은 잠깐의 경쾌함과 일말의 휴식을 가져다준다.

조국을 떠나는 사람들

적어도 현재로서는 정부가 태양까지 민영화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페이스북을 보면 눈 내리는 나라에서 처음으로 겨울을 보내면서 불평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리우데자네이루로 이민 간 이들이 30℃가 넘는 숨 막히는 여름에 불만을 토로하는 댓글을 달기도 한다. 여기에 루안다의 기온은 그 이상이라고 옛 동료 교수가 덧붙이면서 세계화로 인한 상투적 대화가 완성된다.(1)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바로 2년 전 포르투갈 총리의 조언에 따라 브라질이나 앙골라로 이민 간 교수들이다. 그러나 추운 나라로 갔든 더운 나라로 갔든 분명한 것은, 이들은 모두 현 의회부 장관의 자랑거리라는 사실이다. 그는 각종 방송에 출연해 해외 이민 가는 포르투갈인이 다시금 증가하는 추세에 흐뭇해하며, 특히 이민 희망자들의 높은 교육 수준에 감탄했다.

이 장관의 발언은 국민적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변화를 시사한다. 지금까지 포르투갈에서 '이민'은 여러 가지 상징이 깃들어 있었다. 이 단어를 내뱉을 때면 1960~70년대 다른 나라로 떠난 수십만 명의 포르투갈인을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독재시대의 참담한 현실과 식민전쟁에 떠밀려 많은 이들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었고, 마치 화성에 착륙하는 기분으로 프랑스 땅에 발을 내디뎠다. 교육 수준이 매우 낮은 이들은 남자는 건설현장에서, 여자는 가사도우미나 건물관리인으로 일했다.

이민이 포르투갈 이미지에서 분리되기 시작한 시점을 고르라면 1986년 유럽연합 가입 때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연합 활동으로 돈을 지출하면서, 그리고 이민자들이 벌어주는 외화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과거의 포르투갈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러면서 국내에 남아 있던 포르투갈인이 해외로 나간 동포에게 느끼는 감정이 강화되었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부러움과 수치심이 결합된 감정이다. 여름휴가 때면 귀국해서 과시하는 이민자들의 자동차와 화려한 물건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그들의 낮은 교육 수준을 부끄러워하고, 또 그것이 결국 자기 이야기라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한마디로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이다. 많은 포르투갈인들은 이런 감정을 지속·확대시키고 있다.

배척과 평가절하로 점철된 20년의 세월 후에 나온 의회부 장관의 이민 칭송은, 최근의 이민이 과거의 그것과 다른 성질임을 보여준다. 불편한 과거와 혼동해서는 안 되며, 최근의 이민 물결은 자랑거리로 삼아야 마땅하다.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금의 현실은 1960~70년대와 다르다. 장관의 발언과 이에 대한 들끓는 비난이 신문, 라디오, TV로 보도되었다. 언론사에서는 해당 정보의 상당 부분을 인턴들이 작성했다. 아마 인턴 근무가 두 번째 혹은 세 번째쯤인 고학력 젊은이들이었을 것이다. 다른 많은 분야가 그렇듯 언론계도 30세 이하 근로자 대부분이 인턴들이다. 이들은 보수도 받지 못한 채 정규직으로 채용될 희망으로 일한다. 게다가 언론사 인턴은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거나 다국적 패스트푸드 회사 유니폼을 입고 손님을 상대하는 일과는 다르다. 학사·석사 학위를 딴 후, 실력 있는 전문가들이 꺼리는 일을 무보수로 한다는 게 행운이자 고결한 운명처럼 여기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햇살과 같은 사소한 것은 뉴스를 보고 난 뒤의 '불편한 심기'를 극복하도록 도와주기는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안 좋은 소식의 폭풍우가 수시로 몰아친다. 날씨에 비유하면 수년 동안 추운 겨울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꼴이다. 뉴스를 보면 보도 중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몇 가지 경제 개념을 설명하기도 한다. 컬러 그래픽을 이용해 부채 현황을 상세히 보여주고 정부가 은행 구제를 위해 지출한 수십억 유로에 이름을 환기시킨다.

어떤 시청자들은 이를 주의 깊게 듣고는 금세 분노가 무력감으로 변하는 걸 느낀다. 이 수십억 유로는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이들의 어깨 위를 무거운 짐처럼 짓누른다. 그런가 하면 이미 내용을 듣지 않기 시작한 시청자들도 있다. '위기', '긴축재정' 등의 단어는 이들에게 그저 배경 소음에 불과하다.

매일 새로운 수치가 '위기', '긴축재정' 같은 표현을 동반해 등장한다. 그러더니 지난주에는 이민과 관련된 수치가 공개됐다. 반박할 수 없는 공식 자료로 국립통계청의 인증까지 받은 것이다. 그런데 통계청 같은 기관은 늘 한 박자 늦곤 한다. 그런고로 이번에 발표된 수치도 2011년 자료이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던 것을 이제야 통계학을 빌려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해외 이민이 전년 대비 85% 증가했고, 이민자 대부분은 25~ 29살인데 어린이와 청소년도 다수다. 대학 졸업자는 2009~2011년에 49.5% 늘어났다. 상품 가격을 조금이라도 비싸 보이지 않게 하려고 99.5유로로 책정하듯 증가율도 49.5%에 그쳤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수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사람 대부분이 차지할 자리가 포르투갈에 없다는 것을 모두 안다. 직업 현장의 일상과 무관할 가능성이 높은 주제에 대해 시험을 보고 점수를 따는 대학생들부터 이를 모르지 않는다. 문학을 좋아하는 학생이면 기껏 운이 좋아봤자 어느 서점 체인점에서 책을 정리할 것이다. 패션을 좋아하는 이는 운이 좋아야 옷가게 탈의실에서 번호표 나눠주는 일을 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이 상황을 세대 간 갈등으로 변모시키려 할 때도 있다. 젊은이들을 '버릇없는 아이들'로 취급하고, 지난 세대가 겪은 어려움을 늘어놓고, 마주한 장애물을 서로 비교했다. 나이 든 세대는 자신이 젊을 때가 더했다고 말하며, 젊은이들은 지금이 단연코 더 힘들다고 담벼락에 쓴다. 그러다보면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다. 이 논쟁 가운데, 자녀와 손자들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가까이서 지켜본 가장 나이 많은 노인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부모와 조부모들의 무거운 짐을 떠올리는 것도 괴로운 가장 나이 어린 이들도 침묵을 지켰다.

"나도 파리 이민자의 아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지난해 9월, 수천 명의 사람들이 포르투갈 주요 도시의 거리에 운집했다. 지난 3월에도 1984년 혁명 이래 최대 인파가 모여 시위를 벌였다. 군중은 말했고, 마치 말하지 못하면 질식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였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말해야만 했다. 페이스북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각자 집에서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나왔다. 욕설도 이따금 눈에 띄었다. 말장난 앞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최대한 표현한 것이다. 체계적으로 거침없이 쏟아지는 온갖 논증에 응수하는 간결한 욕설은 바로 '도둑놈들'이었다.

이 비난은 지난 수년 동안 쌓이고 쌓인 깊은 분노에서 비롯되었다. 지겨운 뉴스, 그리고 갈수록 무서운 기세로 우리를 엄습하는 '불편한 심기', 즉 이 상황이 앞으로 악화될 수 있고 아마 그러하리라는 느낌이 원인이 된 것이다.

이쯤 되면 뭐라도 해야 한다. 가령 영국 런던에 가서 친구와 방을 같이 쓰고 바에서 일한다든지, 룩셈부르크로 떠나서 약혼녀의 삼촌들과 함께 잠시 숙식하며 1960년대 이민자들처럼 공장이나 공사현장에서 일한다든지 말이다. 요즘 이민자들 가운데 다수가 고급 인력이라고 떠들어봤자 실제로는 가방끈 짧은 이도 상당수를 차지하며, 자신의 스펙에 한참 못 미치는 일자리를 해외에서 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포르투갈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도전과제는 결코 쉽지 않다. 그 어려움의 주된 원인은 그런 젊은이가 많은데다 각자 자신의 야망을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반복적 업무에 동기부여도 되지 않으며, 보수도 적은 임시직을 꿈꿔온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날 30살 미만 청년에게 6개월짜리 고용계약도 안정적 일자리로 통한다. 이마저도 따내지 못한 이들은 전부 실업자이거나 '녹색영수증' 제도로 근근이 살아가는 신세이다.(2)

정확한 수치는 제시하지 않겠다.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도 수치라면 신물이 난다. 나는 지금 30살 미만 젊은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전 세대의 경우도 이야기하자면 얼마든 할 수 있다. 고용 불안정성은 어느 세대나 똑같다.

간혹 이런 말을 하는 이도 있다. 차라리 또 다른 미래를 생각할 가능성조차 없었더라면, 언젠가 디자이너나 철학교수가 되리라고 오랫동안 확신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상황을 견디기가 수월했을 거라고 말이다. 참으로 슬픈 추론이다. 꿈, 욕망, 야심도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걸 '인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장관이 간접적으로나마 옳은 이야기를 하나 했다. 나라 밖에서 더 나은 삶을 찾으려 애쓰는 포르투갈인들을 동포로서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포르투갈 민족을 돋보이게 하는 장점과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1960~70년대에 다른 나라로 떠난 이들도 동일하게 존경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이민을 통해 이들도 마찬가지의 장점을 증명해 보였다. 나야말로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나도 실은 파리 근교에서 벽돌공과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포르투갈은 젊은이들이 떠나도록 지원하는 '늙은 나라'다. 햇살이 내 뒤에 있는 창문으로 들어온다. 밝은 빛을 받으며 단어들이 마치 이 나라의 모습처럼 소진되고 있다. 그럴 때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무언가에게 패배한 듯한 기분이 든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을 토대로 상상한 얼굴을 그 무언가에게 부여한다. 이 나라에서 뭐라도 해야 한다. 햇살의 손길은 위로가 된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모자란 것을 채워주기에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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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호세 루이스 페이쇼투 José Luis Peixoto 포르투갈  작가.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 2>(공역·2010) 등이 있다.

(1) Augusta Conchiglia, ‘식민 모국 포르투갈의 새 희망 앙골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5월.
(2) ‘녹색영수증’(Recibos Verdes)은 정규직에게 주어지는 사회보장보험, 휴가 등의 권리를 전혀 누릴 수 없는 일종의 비정규직 근로계약제도로 상당수 근로자가 해당된다. 그웨나엘 르누아르 & 마리린 다르시, ‘고용불안의 실험쥐, 포르투갈 녹색영수증’,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1월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