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널리스트의 예고된 막장극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글로벌 성추행' 사건은 한 언론인이 개인적 욕망 앞에서 어떻게 철저히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한 편의 막장 드라마였다. 우리 시대 '철새 언론인'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자, 힘깨나 쓴다는 고위 공직자들의 '갑질'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사건이었다. 또 우리 사회 보수 인사들의 천박한 수준을 백일하에 드러냈는가 하면,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난 박근혜 정부의 한심한 실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사실 윤창중 전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대변인에 발탁되고나서부터 왠지 그를 보고 있으면 불안했다. 언론에 노출된 그의 기자회견 장면 등에선 뭐랄까, 어렵사리 부여잡은 권력의 끈을 어떻게든 유지하고픈 '폴리널리스트'의 초조함 같은 게 느껴졌다. 인수위 시절 밀봉된 봉투를 가져와서 즉석에서 개봉해 발표하는 이른바 '밀봉 인사' 퍼포먼스나, '1인 기자'를 자처하며 '본인 입에서 나온 것만 팩트'라고 주장하는 궤변 등은 그 초조함의 발로였는지도 모른다. 기자회견을 시작하고 끝낼 때 안 해도 될 것 같은 형식적인 오프닝·클로징 멘트를 굳이 해가며 자신이 대변인임을 확인하려는 행위도 부질없는 과시욕으로 보였다.
대통령 방미 수행단 인사의 현지 성추행이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적 탈선은 윤 전 대변인의 엽기적 폴리널리스트 행각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폴리널리스트는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이 결합된 용어로, 언론인의 직분을 망각하고 정치권에 진출하기 위해 언론인 경력을 팔아먹는 철새 언론인을 지칭한다. 알려진 대로 윤 전 대변인의 궤적은 정상적인 언론인이라고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다. 언론사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중간중간에 정치권 드나들기를 밥 먹듯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청와대의 행정관,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언론 담당 보좌역에 이어, 이번 박 대통령 청와대의 대변인까지 모두 세 차례 정치권을 기웃거렸다. 이 정도면 정치권을 오가는 사이에 언론사에 몸을 담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한번 정치권에 몸담으면 다시 복귀하지 않는 게 관례인 언론계 풍토로 보면 윤 전 대변인의 정·언 갈아타기는 감탄스러울 정도다. 능력이라면 능력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면 폴리널리스트로서 유례가 없는 막장에 해당한다.
그가 지난해 대선 직전인 10월에 발간한 <국민이 정치를 망친다>란 책의 글을 보면 그의 노골적인 줄서기 능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를 밟고 지나가라', '왜 박근혜인가', '박근혜의 추석 대공세', '박근혜, 재벌 버르장머리 고쳐놓을 대선 공약 내놔라', '이젠 남북 관통할 박근혜 독트린', '박근혜의 안정적 이륙', '박근혜의 한방', '박근혜에게 미래를 묻다' 등 목차만 보아도 너무 노골적이다.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에게 힘을 보태려는 의도겠지만 저널리스트로서의 객관성이나 엄정함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한마디로 권력에 '들이대기'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윤 전 대변인도 자신이 박 대통령에게 발탁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박 대통령이 그를 대변인으로 발탁한 것은 모든 불행의 씨앗이었다. 박 대통령이나 윤 전 대변인에게 모두 치명적인 만남이었다. 조·중·동을 포함해 대부분의 보수 진영에서도 탐탁지 않게 생각한 윤 전 대변인을 끝까지 감싸안은 것은 박 대통령 특유의 용인술이라고 봐야 한다. 어느 조직이든 보스는 부하의 제일 덕목으로 충성심을 꼽는다. 부하의 충성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스는 턱없이 모자란 사람을 파격적으로 발탁하기도 한다. 윤 전 대변인이 인수위 시절 이런저런 잡음을 일으키면서 청와대행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무성했지만, 박 대통령은 거듭 윤 전 대변인을 발탁했다. 절대 충성을 요구한 것이다. 윤 전 대변인은 박 대통령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절대 충성했는지 모르지만, 박 대통령 이외의 다른 사람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음이 틀림없다. 청와대 홍보수석도, 같이 역할을 나눠 맡는 다른 청와대 대변인도 윗선이나 동료라기보다 경쟁자였다.
부끄러운 '갑질' 행태의 일각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생활이란 게 누구나 격무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새벽부터 일하다보니 저녁에 술 한잔 편히 마시기도 힘들다. 그래서 청와대 고위직 중에는 아예 청와대 인근에 오피스텔 등을 얻어 숙식하는 경우도 있다. 참여정부에서 대형 스캔들로 비화한 변양균·신정아 사건의 당사자인 변양균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도 청와대 인근에 임시 거처를 두고 있었다. 윤 전 대변인도 청와대 인근에 임시 거처로 사용하는 오피스텔이 있었다.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리며 극심한 스트레스가 쌓이다보면 사적 욕망의 분출구랄까, 힐링이 필요할 법하다. 고위 공직자 생활을 오래하다보면 나름의 건강관리, 스트레스 해소법을 갖기 마련이다. 하긴 고위 공직자라서 건전한 탈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젊은 인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이나,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어느 마사지 업소에서 여성에게 부적절한 관계를 요구했다 고소당한 것 등이 그 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전 총재가 뉴욕의 한 호텔 방에서 벌거벗은 채 있다가 객실 청소 하러 들어온 여종업원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를 받은 것도 같은 예에 속한다. 권력자들이라고 사적 욕망의 탈출구가 없으란 법은 없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범죄로 연결되어선 곤란하다. 우연찮게 주어진 권력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느라 분투를 거듭한 윤 전 대변인도 어떻게든 욕망의 탈출구를 찾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의 일탈은 단순히 부도덕성을 떠나 범죄의 영역과 연결되고 만다.
우리나라 남성들 중에는 멀쩡한 사람도 예비군 훈련 가면 망나니가 되고, 외국 나가면 뭔가 성적 탈출구를 찾으려는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하긴 10여 년 전만 해도 고위 공직자들이 외유하고 온 뒤 사적 자리에서 외국의 풍속업소 경험을 자랑스레 내뱉던 시절도 있었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 강고한 전근대적인 마초 문화 탓이다. 박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으로 건너간 윤 전 대변인도 이국 땅에서 이런 마초적 취향이 발동한 것일까. 청와대의 팍팍한 생활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던 것일까. 단순히 그런 마초적 취향의 발동으로만 보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했다.
사건 진상이야 미국 경찰의 수사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밝혀지겠지만 우리나라 나이로 58살인 윤 전 대변인이 그날 밤 딸보다 더 어릴 나이의 여성 인턴에게서 무언가 성적 만족을 도모하려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건 당일 밤과 새벽으로 이어지는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윤 전 대변인의 문제행동이 1, 2차로 나뉘어 계속됐다면 그저 술에 취해 나온 우발적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윤 전 대변인이 귀국 뒤 기자회견에서 강변했듯 "허리를 툭 친" 정도는 아니라는 정황은 많다. 단정하긴 어렵지만 장시간에 걸친 고의적인 일련의 성추행 시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언론을 통해 사건의 디테일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일종의 황색 저널리즘에 속하지만, 대체로 드러난 사건의 윤곽만으로도 상대방 여성으로 하여금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게 하는 성적 도발이 이뤄진 것이 분명하다. 부랴부랴 사건 무마를 위해 관계자들이 쫓아갔을 때 호텔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하염없이 울음을 터뜨린 피해 여성의 행동을 보면 짐작하고도 남는다. 물론 윤 전 대변인의 행위가 어느 정도 심각했는지, 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하는지 등은 미국 경찰의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스트로스칸 전 IMF 총재의 경우는 미국 경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그를 기소하지 않았다. 다만, 스트로스칸의 과거 행적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도덕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다. 최근 스트로스칸은 문제의 호텔 여종업원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거액을 주고 합의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은 범죄뿐만 아니라 공직 문화, 사생활 등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뇌물 수수 등으로 형사처벌당하는 고위 공직자 등을 보면 대부분은 열 번, 스무 번 부정한 일을 저지르다가 결국 법망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는 게 베테랑 수사관들의 말이다. 한번 죄를 지어서 곧바로 검찰에 불려 들어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윤창중 전 대변인이 또 다른 성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윤 전 대변인의 행동은 우리 언론계나 공직사회의 일상적인 범죄적 마초 문화, 구역질 나는 갑질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란 말이다. 필봉을 휘두르는 것을 무기로 취재원들에게 갑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은 언론계에도 부적절한 접대 관행이 적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론과의 전쟁을 하면서 언론에 대한 접대 문화, 촌지 문화는 크게 개선된 측면이 있다. 비록 이번 사건은 윤 전 대변인 개인적 일탈에 가까운 것이지만, 아직도 끈질기게 남아 있는 언론계의 부끄러운 마초 문화, 갑질의 행태를 드러낸 것이라고 봐야 한다.
대통령의 눈은 국격의 압축
윤 전 대변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적 행각은 귀국 뒤 기자회견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윤 전 대변인은 사건 진상에 대한 자기 주장을 펼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거꾸로 기자회견을 통해 그를 둘러싼 여러 문제의 심각성을 온천하에 스스로 까발린 꼴이 돼버렸다. 성추행 사건의 진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기 위해 이런저런 궤변을 늘어놓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피해 여성의 인격을 또다시 짓밟는 수준 이하의 면모를 드러냈다. 대통령의 해외 방문을 돕기 위해 선발된 인턴 직원을 자신에게 서비스해야 할 가이드로 간주했는가 하면, 일이 서툴러 질책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 등은 평소 그가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 잘 보여준다. 교포 여성을 술자리에 불러 '허리를 툭 건드렸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한·미의 문화적 차이로 강변한 것도 문제다. 성희롱 사건의 기본인 상대방 여성의 성적 모멸감이나 수치심 여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을 수행한 고위 공직자로서 밤새 음주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대통령의 4강 정상외교 정도면 수행하는 공직자건 언론인이건 눈코 뜰 새 없다. 윤 전 대변인은 체력이 좋은 것인지, 쌓인 게 많았던 것인지 대통령의 의회 합동연설을 하루 앞두고 밤새 술판을 벌였다. 윤리의식이나 책임의식 면에서도 낙제점이다. 기자회견에서 윗선인 홍보수석에게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면하려는 태도 역시 최소한의 정치적 도의마저 저버린 행태다.
윤 전 대변인의 평소 행태로 보면 기자회견이 그의 엽기적 행각의 마지막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미국 경찰의 조사 등 사건 진전 정도에 따라서는 윤 전 대변인이 또 다른 예기치 못한 행동을 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가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더 불리해질 뿐이다.
윤 전 대변인의 막장 행태를 보면서 같은 언론인으로서 자괴감을 감출 수 없다. 윤 전 대변인이 보통 언론인의 상식과 동떨어진 행적을 보여왔다고 해도 크게 보면 언론계와 정치권의 비정상적·몰상식적 토양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윤 전 대변인의 행태는 우리나라 언론인, 고위 공직자, 지식인의 초라한 자화상임이 틀림없다.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여도 시원치 않을 언론인, 공직자, 지식인들이 겉으로는 고상한 척 도덕적인 체하면서 뒤로는 온갖 추잡하고 부도덕한 일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박근혜 정부하에서 윤 전 대변인 같은 이들이 활보하고 다니게 된 것 자체가 비극이다. 심하게 말하면, 윤 전 대변인이 수준 이하이면 그를 발탁한 대통령 역시 수준 이하다. 박 대통령이 언론사 정치부장단과 만나 "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한탄했다는 데 옳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의 인사는 여기저기서 중복 체크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신중히 해야 하는 것이다. 평소 듣기 좋은 글줄 좀 썼다고 수첩에 적어놓고 언론이 아무리 반대해도 막무가내로 임명하는 오불관언 행태라면 이런 막장 인사가 또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윤 전 대변인이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말을 단순히 옮기는 입이 아니라 대통령의, 정권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이고 분신"이라고 했다지만, 한 나라 대통령의 인사 방식과 사람 보는 눈은 그 나라의 국격과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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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백기철 <한겨레> 논설위원. 연세대 졸, <한겨레> 정치부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