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만능주의, 종말론적 사이비 종교와 닮은꼴
커버스토리 : 새로운 유토피아를 찾아서
시장만능주의,
종말론적 사이비종교와 닮은꼴
알랭 가리구 정치학자
1950년대 9월의 어느 날, 솔트레이크시티의 <데일리헤럴드>는 마리아 키츠의 예언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이 도시를 비롯해 미 대륙에 엄청난 해일이 몰려올 것이고 자신을 따르는 신자들만 클래론 별에서 비행접시를 타고 온 외계인들이 구해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세상의 종말은 그해 12월 21일로 예견되었다. 이러한 천년왕국설은 미국의 한 사회심리학자 팀의 지속적인 연구 대상이 되었으며, 연구팀은 당시 사이비 종교집단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기독교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예언과 관련한 보편적 메커니즘을 찾아내려 했다.
기다림은 허무하게 끝났고 신자들은 예언의 실패에 대해 그럴듯한 이유를 찾았다. 연구팀은 이들에게서 과거의 천년왕국설 신자한테서 발견되는 것과 동일한 태도를 발견했다.
1843년에도 성경의 예언이 실현될 것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뉴잉글랜드의 농부 윌리엄 밀러의 제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다. “말세의 해 마지막 날이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지나갔다. 그러나 밀러교는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 신념이 약한 자들은 떠났으나 많은 이들은 자신의 신앙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예언이 틀린 것은 단순한 계산 착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광신의 불꽃은 더욱 타올랐다. …신도들의 충성 표현은 예언의 실패로 위축되기는커녕 최후 심판의 날이 도래한다는 기다림 속에 더욱 단호해졌다.”1)
여기에서 <예언의 실패>를 저술한 레온 페스팅거와 그의 동료들은 종말론적 예수 재림설이 지배했던 초기 가톨릭교회의 일화를 분명히 연상하고 있었다.
예언이 틀려도 신자들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단념은 너무 비싼 대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히려 자신의 신념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심판의 날짜에 대해서는 ‘계산 착오’와 같은 온갖 종류의 핑계를 만들면서 상대방을 더욱 설득하고 스스로를 확신하며 열정을 배가시킨다. 페스팅거는 이러한 비이성적, 아니 역설적인 행위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로 설명한다.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현실이 오히려 맹목적 신념 앞에 굴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확신은 사이비 종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도 존재한다. <예언의 실패> 프랑스어 번역본의 서문을 쓴 세르주 모스코비치는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수세대에 걸쳐 몰두한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예언과 이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2)를 지적한다. ‘인지 부조화’에 대한 페스팅거의 책이 프랑스에서 출간될 무렵, 모스코비치는 ‘세속 종교’에 대한 레몽 아롱의 테제를 소비에트 혁명 발발일과 연관지어 생각했다. 서문에서 모스코비치는 아롱이 <지식인의 아편>에서 강조한 대로, 공산주의가 과학의 외양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구원을 갈망하는 종교적 신념으로서 정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을 그대로 따랐다. 이를 통해 그는 공산주의 신자들이 스탈린주의의 적나라한 독재적 본성이나 소비에트 사회의 빈곤과 같은 명백한 진실을 한사코 거부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회학자인 아롱은 <지식인의 아편>을 통해 냉전 당시 프랑스 공산당을 지지하던 자신의 옛 동료들을 비판하고 자신의 반공주의적 견해를 명확히 드러냈다. 그러나 환상은 과연 공산주의자들만의 전유물일까? “정치적 혁명 없이 사회적 진보를 이루어줄 무계급 사회에 대한 이들의 열망은 사이비교 신자들이 꿈꾸는 천년왕국설과 진배없다”3)고 아롱이 주장할 때 종교적 비유는 공산주의 이외의 다른 이데올로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을까? 어쨌든, 그는 이러한 가능성을 단호히 배제한다. 그는 자유주의자로서 자신의 입장은 매사를 의심하고 아무런 도그마도 품지 않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세속 종교에 대한 그의 분석이 보편성을 가지려면 그가 옹호하는 진영에도 적용되어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자기 조절적 시장의 실패가 1929년의 경제위기와 1930년대의 대공황으로 입증된 사실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반응은 어떠한 것이었던가? 당시 경제 대재앙의 한복판에서 “번영이 바로 우리 코앞에 와 있다”고 선언한 미국의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예처럼 이들은 현실을 부정하는 사이비 교인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또한 1936년 <라주르네 앵뒤스트리엘> 사장 클로드 기뉴는 “자본주의의 대혼란은 지난 20년 동안 국가의 무체계적인 시장 개입에 의한 수익성 약화에 기인한다”4)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실이 엄연히 부정하고 있음에도, 자유주의의 천년왕국적 집착은 오히려 복음주의로 강화되면서 뉴딜과 모든 사회·분배 정책이 이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경제위기가 원인으로 작용한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삼아 그들은 나치즘과 공산주의를 동일화하면서 국가의 시장 개입을 공격하는 또 다른 명분을 찾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일찍이 복지국가 비판에 전념했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눈에는 복지국가란 공산주의의 망령에 지나지 않았다. 1946년, 그는 자유주의자들을 규합하려고 몽페를랭협회(Mont Pelerin Society)를 설립했다. 당시에는 지배적인 케인스주의에 대항하려고 그가 조직한 소수 경제학자들의 비밀 클럽을 누가 신경이나 썼을까?
이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자유주의 신앙은 다시 승리를 쟁취했다. 이 과정에서 1968년에 만들어진 노벨 경제학상의 역할은 지대했다. 이 상은 1974년을 기점으로 시장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게 왕관을 씌워주었다. “우리가 이겼다.”5) 하이에크의 후예들은 승승장구하며 기고만장해졌다.
이들의 승리 이전에는 자유주의 찬양자들이 마르크스주의자와 비견할 정도로 얼마나 광적인 신앙심을 품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시장의 섭리에 대한 이들의 신념은 지상낙원, 아니 천당을 대신하는 칙칙한 대체물이었을 것이다. 이를 믿기 위해서는 이성을 포기하고 예언적 광기에 기대면 되었다. 부시 대통령 재임 말기까지 유지된 기독교 근본주의와 시장복음주의의 이상한 보수 연맹이 프랑스에서는 사르코지 대통령을 중심으로 가톨릭 전통주의자들과 시장자유주의자 간에 맺어진 연맹의 한 모델이 되었다는 점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영리의 숭배자가 구원의 숭배자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이유가 서로의 왕국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좋은 취향까지 갖춘 ‘믿는 자’들끼리 무언가 통하는 구석이 있어서는 아닐까?
글•알랭 가리구
파리10-낭테르대학 정치학 교수. <공화국에 해악을 끼치는 엘리트들: 시앙스포와 국립행정학교>(2001)의 저자.
번역•김태수
asticot@ilemonde.com,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1) Leon Festinger, Hank Riecken, Stanley Schachter, <L’Echec d’une prophétie>, PUF, Paris, 1993(1956),16쪽(원제: When Prophecy Fails).
2) 앞의 책 10쪽.
3) Raymond Aron, L’Opium des intellectuels, HachettePluriel, Paris, 2002(1955), 276쪽(레몽 아롱, <지식인의 아편>, 안병욱 역, 삼육출판사, 1986).
4) F. Kuisel, Le capitalisme et l’Etat en France. Modernisation et dirigisme au XXe siècle, Gallimard, Paris,1984, 174쪽에서 재인용.
5) Jean-Claude Casanova, Le Point, Paris, 26 juin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