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 아프리카에는 미래가 있다

2013-06-10     알랭 비키

공상과학(SF) 장르는 현재에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고 미래가 취하게 될 형태를 결정한다. 그리고 집단적 공포와 희망을 보여주기 때문에 정치적 장르일 수밖에 없다. 영국과 미국은 공상과학을 버리고 판타지를 선택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예술가들은 공상과학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미디어의 레이더가 미치지 않는 먼 곳 아프리카에서 일군의 젊은 예술가들이 지금까지 서구적 상상력의 세계로 여긴 공상과학 장르를 통해 문화혁명을 꿈꾸고 있다. 독립의 후예인 아프리카의 젊은 흑인과 백인 예술가들은 몇 안 되는 블로그와 잡지를 통해 바깥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세네갈의 철학자 술레이만 바시르 디아뉴는 "미래가 위기에 처한 곳에서 미래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공동창작 집단인 3D 픽션의 '얼굴 없는 예술가들'이 모색하는 '다카르의 미래에 대한 공동 집필의 가능성' 작업과 일맥상통한다. 이들은 "공상과학 소설에서 지향하는 미래는 지금의 현재에 문제를 제기하는 새로운 현재를 만든다"고 단언한다.(1)

200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에는 디스토피아가 필요하지 않았다. 모두 두려워하는 세계이며 공상과학 장르의 중요한 주제인 디스토피아는 바로 아프리카의 현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이 현재를 흔들어대고 있다. 지난 1월 20일자 <르몽드>에는 "말리 북부에서 모진 세월을 견뎌낸 무장한 남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7세기적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지만 21세기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또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만난 세 젊은이에 대한 내용도 있다. 이 청년들은 쇼핑센터를 나오면서 휴대전화 선불카드 충전할 돈이 없다며 "'디지털 노예제도'를 폐지하라"고 소란을 피웠다.

"아프리카는 예술 혁명 중"

가나 출신의 조나단 도체는 자신의 블로그 아프로사이버펑크(www.afrocyberpunk.com)에 "제3세계의 젊은이들이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테크놀로지에 접근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현상이 50년쯤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바로 공상과학 작가들이다!"라고 썼다. 언젠가 지금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움직임에 대한 선언문이 될 '발전하는 세계: 공상과학의 경계를 넘어'(Developing Worlds: Beyond the frontiers of science fiction)라는 제목의 글에서 도체는 자신이 어떻게 공상과학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낡은 VHS TV에서 나오는 거친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프리카 꼬마가 있다. 이 아이는 난생처음으로 살고 있는 곳 밖의 낯설지만 황홀한 모습과 소리에 완전히 넋을 빼앗겼다. 그 아이가 바로 나였다. 나는 1990년대 중반, 수도 아크라 외곽에 있는 악명 높은 빈민촌 마모비에서 자랐다. 당시 TV 채널은 국영방송을 포함해 3개밖에 없었는데 우리 가족은 돈이 없어 위성 TV를 신청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끔 세계 여러 나라의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이 세 채널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내가 공상과학을 접하게 된 것은 위대한 작가들의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한번 거른 그들의 위대한 비전을 통해서였다."

2000년대 중반부터 아프리카 창작 무대에 외계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카메룬 영화감독 장피에르 베콜로는 2025년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를 배경으로 영화 <피 흘리는 여자> (2007)를 만들었다. 지부티 출신 프랑스 작가 아브우라만 A. 와베리는 공상과학 소설 <아프리카 합중국>을 썼다. 2033년 세계 경제·문화의 중심지는 아프리카이고, 가난한 땅 유라메리카에는 저주받은 사람들이 사는 뒤바뀐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책에서 작가는 아프리카인을 비난한다. "이들은 빠르게 자신감을 되찾았다. 자신들을 우월한 존재로 여겼고 다른 민족이나 인종과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해 절대 평등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치 사다리'라는 것을 만들어 자신들은 꼭대기에 앉아서 원주민, 야만인, 원시인, 이방인 등 백인들을 천민처럼 대했다."

2009년 발간한 공상과학 소설 <열대 바로크>에서 앙골라의 작가 호세 에두아르도 아구알루사는 공격받고 있는 미래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루안다는 석유 덕택에 사방으로 빛을 발하는 유리빌딩으로 덮혀 있는 앙골라의 수도다. 그런데 "어느 날 석유값이 끝없이 하락하자 환하게 빛나던 신세계도 그 빛을 잃기 시작했다. (중략) 고층 빌딩 꼭대기까지 물을 올려주던 펌프가 고장이 나고 발전기 역시 작동되지 않는다. 많은 외국인들은 도시를 떠나고 그 자리는 빈민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는 이제 컬트가 된 잡지 <치무렝가>의 공상과학 특별호 '닥터 사탄의 에코챔버'가 나왔다. 특별호에는 와베리가 지적한 것처럼 "아프리카에 새로운 미학적 영토가 만들어지는 중이고 그곳에서 젊은 아프리카 예술가들이 땀 흘리며 작업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진정한 예술혁명이 일어나는 중이다."

아프리카 예술혁명은 영어권 아프리카 국가,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영국과 미국의 대중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 나라이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공연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시각예술 분야 큐레이터로 일하는 울리마타 게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어나는 예술혁명을 이렇게 설명했다. "디지털 예술의 천재라고 평가받는 닐 블롬캄프 감독은 <반지의 제왕> 3부작을 감독한 피터 잭슨을 든든한 후원자로 두고 있다. 2009년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소웨토에서도 가장 빈곤한 지역 치아웰로에서 자신의 첫 장편 영화를 찍기도 했다. 전쟁 르포, 다큐멘터리, 공상과학의 미학이 솜씨 있게 어우러진 <디스트릭트 9>은 이렇게 만들어졌다.(2) 이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통해 아프리카가 공상과학 세계에 공식적으로 입문한 것을 세상에 알렸다."

프랑스에서 100만 관객이 든 <디스트릭트 9>은 지금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겪고 있는 문제, 특히 외국인혐오증을 영화에 정교하게 배치했다. 영화 중에 어느 다국적기업이 비밀 기술을 빼내기 위해 외계인 망명자들을 수용소에 격리해서 감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디스트릭트 9>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설가이며 기자인 로렌 뷰커스가 쓴 공상과학 소설 <동물원 도시>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비상한 예지력을 가진 사립탐정 진지 셉템버의 이야기로, 먼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자카나 미디어에서 출간된 후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2011년 영국에서 출간된 공상과학 소설 중 가장 우수한 작품에 수여하는 아서 C 클라크 상을 받았다.

봄은 멀지 만 미래는 오고 있다

전자책 <아프로 SF>(3)가 출간된 곳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아프로 SF>는 아프리카 작가들의 첫 SF 단편소설 선집으로 짐바브웨 출신이며, 현재는 요하네스버그에 거주하는 이보르 하트만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나이지리아, 가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가들이 쓴 시간여행, 폭도들로 인해 황폐해진 대도시, 전세계를 휩쓴 전염병, 아프리카인에게 정복당한 행성,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로봇에 점령당한 행정부 등의 이야기가 담긴 20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하트만은 서문에서 "SF는 아프리카 작가들이 자신들의 시각으로 미래를 쓸 수 있는 유일한 문학 장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를 우리가 제시하고 전달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이, 그것도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 쓸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발전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데 SF만큼 중요한 장르는 없다"라고 썼다.

<아프로 SF> 단편집에도 작품이 실린 나이지리아 출신 미국 작가 은데디 오코라포의 처녀작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랴>(4)는 우주 생성 이론과 자신의 조상인 이보족의 주술적 사상을 다룬 공상과학 소설로 '아프리카판 반지의 제왕'이라 평가받으며 2011년 세계판타지 상을 받았다. <동물원 도시>처럼 현재 영화로 제작 중이다. 케냐의 단편영화 감독인 와누리 카히우도 지구온난화로 황폐해진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품지>(Pumzi·숨결)로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뷰커스의 <동물원 도시>에서 요하네스버그 스타일 음악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소설은 음악 프로듀서가 사라진 가수를 찾아달라고 사립탐정인 주인공에게 부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음반사 아프리칸 도프는 <동물원 도시>를 읽을 때 같이 들을 수 있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했다. 힙합, 일렉트로닉, 크와이토(남아프리카공화국 하우스 음악), 덥스텝 일렉트로닉 등의 여러 장르로 구성된, 편집증적이고 혼란스러운 사운드트랙으로 채워진 음반이다. 뷰커스가 소설에서 인용한 스포크 마담보는 실존하는 음악가로, 최근 아프리카에서 배출한 음악가 중 가장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2012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공상과학 장르를 중심으로 일종의 아프리카적 사유의 계보가 만들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윌리엄 깁슨과 필립 K. 딕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마담보는 2010년 <음시니 왐>, 2012년 <파더 크리퍼>라는 두 장의 CD로 서구와 아프리카 록뮤직 비평가들에게서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의 아프리카인 후계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아프로퓨처리즘 음악은 신화와 테크놀로지, 전통음악과 일렉트로닉이 혼합된 것으로 '그레이트 블랙 뮤직'(Great Black Music) 장르에 속한다. 음악평론가 마크 데리가 1975년 <뉴욕타임스>에 소개해 이론을 정립했고, 1980년대 중반 디트로이트 테크노 무대에서 다시 부활했다.

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다. 마담보의 설명을 들어보자. "아프로퓨처리즘은 아프리카인에게 문화적 계보를 만들어준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예술가는 재즈 피아니스트 선라(Sun Ra)다. 그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그는 목성에서 온 사람으로(자신이 목성에서 왔다고 주장함), 그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불합리한 교육 시스템 때문에 아프리카인들은 아프리카의 문화와 역사를 잘 배우지 못했다. 우리들도 더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프로퓨처리즘은 우리에게 대안의 역사를 제시하고 있다. 백인들이 우리가 정글에서 왔고, 자신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우리 역사에 바탕을 둔 그리고 우리에게 적합한 자랑스러운 계보를 만들 것이다.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계보를 스스로 세울 것이다."

아프리카에 정치적 봄은 여전히 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래는 벌써 곁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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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알랭 비키 Alain Vicky 언론인

번역•임명주 myjooim@gmail.com

(1) www.dakardeadropfiction.wordpress.com.
(2) Oulimata Gueye, ‘아프리카와 SF 장르: 팽창하는 세계’(Afrique & science-fiction: Un univers en pleine expansion), www.gaite-lyrique.net, 2012년 9월 18일.
(3) http://ivorhartmann.blogspot.fr, Facebook <Afro SF>.
(4) Spoek Mathambo on afro-futurism and finally taking South Africa’, www.afripopmag.com, 2012년 3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