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주의의 기억

2013-06-10     에블린 피에예

13살짜리 하녀가 장보러 나간 후 실종되었다. 우울한 인상에 갈색 머리를 한 이 소녀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친어머니조차 딸아이가 푸른 눈인지 검은 눈인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어린 하녀의 실종사건은 그렇게 무관심 속에 묻힌다. 하지만 얼마 후 이 사건은 전세계의 관심을 끌게 된다. 마을에 사는 유대인들이 이 하녀를 목 졸라 살해해 부활절에 먹는 미사용 빵에 그녀의 피를 넣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1882년 헝가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 티스자에스즐라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저자 귤라 크루디는 이 엽기적인 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해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31년 헝가리는 미클로스 호티 장군이 이끌었고, 극심한 반유대주의 법이 발표된 때였다. 크루디(1878~1933)는 헝가리의 유명한 소설가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는 고향 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실종사건을 소설로 써서 헝가리가 겪고 있는 긴장과 정치적 문제를 알리고 싶어 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에 반대하는 1848년 혁명이 실패한 후, 1867년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 왕실이 손을 잡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되었지만 전후에는 트리아농 협정으로 제국의 영토가 축소되었다. 1882년에는 언론미디어, 의회, 대륙 간 열차 등이 등장하는 근대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슬로바키아 국경 근처의 지방에서 유대인 교회지기의 아들이 갑자기 '아버지, 그리고 유대교 신자들이 어느 소녀를 납치해 종교의식의 제물로 바쳤다'고 고발하고, 이 아들의 말을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된다. 소설의 줄거리는 흥미진진하다. 유대인, 집시, 슬라브 민족, 오스트리아에 의해 흔들리는 헝가리의 정체성 등을 메시지로 전하기 때문이다. 헝가리에서 국왕의 재무담당관이 사직한 뒤 자살하고, 이 사건은 1882년 첫 반유대주의 국제회의를 주최한 인물 중에 한 명인 게자 오노디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시해준다. 반유대주의 국제회의가 바로 티스자에스즐라 사건을 유대인 탓으로 돌리는 데 기여한다. 소녀를 납치해 종교의식에 희생시켰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게 된 관련 유대인들은 재판에서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유럽 전역에서는 이미 반유대주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티스자에스즐라 마을은 보수적인 요비크 당 위원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요비크는 '더 나은 헝가리를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고, 모든 소수민족에 대해 적대적인 제3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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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ier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못생긴 씨앗 하나>(201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