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비용의 무거운 굴레에서 벗어나야

2013-07-08     로랑 코르도니에

언론과 정부는 모든 종류의 개혁을 정당화하기 위해 몇몇 ‘터부’를 없애고 그들의 용기를 뽐내는 조치를 앞세운다. 이는 항상 궁극적으로 급여와 사회복지 혜택을 줄이는 일이다. 그런데 일자리를 만들고 투자하기 바라는 모든 이들을 제재하는 터부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은 터무니없이 과도한 자본비용이다.

구불구불한 술주정뱅이의 여정을 다시 한 번 시도해보는 것도 분명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갈 지(之) 자로 걸어서 유럽을 종주한 뒤 모든 악재를 결국 경쟁 문제로, 그러고 나서 점진적으로 노동 비용 문제로 귀결시킨 여정을 말이다. 서브 프라임 위기, 은행의 유동성 위기, 주가 가치 폭락, 신용 경색, 수요 위축, 민간 부채의 공공 부채로의 전환, 긴축정책 등은 망각됐다. 2010년부터 당시 독일 정부의 대변인 울리히 빌헬름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유로존의 ‘경제’ 불균형을 바로잡고 공공 재정을 안정화하기 위해선 유럽 전체의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1)

빌헬름의 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할 말이 있을 때는, 산술적 엄정함을 포함한 그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하고 싶은 말은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내부 불균형은 유럽 27개국 간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벌이는 동족상잔, 즉 제로섬 게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아마 잘 알고 있을 터이니,  이제 우리 프로젝트는 (유로존을 제외한) 전 세계를 상대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런 노력 끝에, 유럽 전체는 외부 파트너(유로존 이외 국가)의 무역 흑자에 맞서 유럽 회원국의 무역 균형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화성인(유로존 이외의 국가들)을 상대로 지구의 무역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무역기구(WTO)로부터 세계 전체의 경쟁력을 키우라는 명령이 전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막다른 골목의 끝에 도달한 유럽 지도자, 주요 경제기구의 간부, 진지하게 지켜보던 경제전문가, 심각한 논조의 평론가 등 오래전부터 단순한 대칭적 사고가 몸에 밴 이들은, 자신의 강박관념인 노동비용에 대한 언급을 뒤로하고 또 다른 강박관념을 찾아나섰다. 예컨대 이들은 경제 몽상가들이 우글거리는 비용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자본비용과 비용 증대를 시험 삼아 파악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자본 상황의 파악에 나선 것은 새로운 비용을 들여 경쟁정책을 강화할 게 있어서가 아니다.(2)

문제가 없는데도 대책을 세워 한몫 챙긴 적이 있는 이들에게, 이젠 대책도 없는데 문제를 만들어 한몫 더 챙기려는 색다른 취향이 발동했을 수도 있다. 이는 프랑스노동총동맹(CGT)과 경제사회연구소(IRES)의 요청에 따라, 릴의 사회학 및 경제학 연구소 소속 경제학자들이 작성한 논문의 요지가 풍기는 뉘앙스이기도 하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무엇보다 자본비용의 증가,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 추가 자본용의 증가가 경제금융화의 여파 속에서 지난 30년 동안 일궈온 딱한 ‘경제 성과’를 크게 알렸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자본 축적의 숨 가쁜 리듬 속에서 경제는 불평등 상승, 금융 소득 폭발, 대대적인 불완전 고용의 지속성을 경험했다. 저자들은 또한 표준 재무 지표의 교리에 의해 대중화된, 그 유명한 ‘가중평균자본비용’(WACC·Weighted Average Cost of Capital)(3)보다 더 못한 지표를 제공하며 추가 자본비용의 상승 곡선을 보여줬다.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선 자본비용에 대한 두 개념, 즉 경제비용과 금융비용을 구분해야 한다. 경제적 비용은 도구를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생산적 노력이며, 더 넓게는 기계, 건물, 공장, 운송 장비, 인프라, 특허, 소프트웨어 등과 같은 전반적인 생산 수단을 갖추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이런 생산적인 노력은 일종의 ‘실제’ 자본비용, 이른바 여기서 ‘생산자본’이라 일컫는 ‘자본’을 만들기 위한 노동에 필연적으로 들어가는 자본을 뜻한다. 사람들은 이런 노력(예를 들면 1년간의 노력)의 범주를 흔히 ‘투자비용’이라 부르고, 공인회계사는 ‘총고정자본형성’(GFCF·Gross Fixed Capital Formation)이라 일컫는다. 이 비용이 프랑스 기업의 연간 생산 비용의 20%를 차지한다.
그러나 구매 가격에 따라 측정되는 생산자본의 생산비용만 기업에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 수단을 구입해 활용하기 원하는 기업은 자사에 돈(‘자본’이라 일컫는 돈)을 제공한 사람이나 기관에 보답해야 한다. 하지만 이 자본은 금융비용에 해당한다. 따라서 채권자에게 지불하는 이자와 주주에게 지불하는 배당금(자본이 증가할 때나 주주들이 이익 배당금의 일부를 기업에 재투자할 때 이들에게 지불하는 배당금)이 ‘실제’ 자본비용에 추가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금융비용(이자와 배당금)은 그 경제 서비스가 기업에 제공되든지 또는 사회 전반에 제공되든지 간에 그 어떤 것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따라서 불로소득 현상을 유발하는 완전히 비생산적인 금융비용 부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예를 들면 가능한 한 최저 금리로 은행에서만 대출받는 시스템을 고안해 기업에 금융을 지원한다면 이런 불로소득 지불은 분명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부적절한 불로소득(이자와 배당금) 규모를 알고 싶다면, 불로소득에서 그럴듯한 경제적 이유를 통해 정당화될 수 있는 비용을 공제하면 된다. 사실, 이자와 배당금 일부는 채권자와 주주가 기업의 모든 프로젝트에 내재한 파산 가능성 때문에 투자한 자금을 영원히 회수하지 못할 위험을 대비해 지불하는 보상이다. 사람들은 이를 ‘기업위험비용’이라 할 수 있다. 불로소득의 다른 부문은 금융 활동, 즉 기업을 위해 자본을 유동성 예금으로 전환하거나 유동성 예금 규모를 조정하는 관리 비용으로 쓰일 수도 있다.
총 불로소득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두 요소 기업위험비용과 관리비용을 공제하면, 부적절한 불로소득 규모가 산출된다. 우리는 불로소득을 ‘추가 자본비용’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기업 내 이해 관계자들이 불필요하게 ‘실제’ 자본비용에 추가로 부담시킨 자금이기 때문이다.

릴에 소재한 사회학 및 경제학 연구소(Clersé)의 한 논문은 막대한 추가 자본비용의 규모를 보여준다. 그 예로 2011년 프랑스의 비금융 법인의 총 자본비용 규모는 947억 유로에 달했다. 이 자본비용에 ‘실제’ 자본비용, 즉 같은 해에 생산자본에 투자한 자본(GFCF)을 더하면 2023억 유로에 달해, 50% 이상의 추가 자본비용이 산출된다. 하지만 만약 추가 자본비용에 많은 경제학자가 ‘실제’ 자본비용으로 보는 자본의 감가상각비에 해당하는 순수 투자 부문만 더한다면 추가 자본비용 규모는 70%에 달해, 한층 놀라운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이는 프랑스 노동자들이 자신의 기계, 공장, 건물, 인프라 등을 갖추기 위해 연간 100유로(이자 포함)를 쓴다면, 생산자본을 이용하는 기업은 연간 150~170유로를 쓴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기업은- 경제 논리로 정당화될 순 없지만- 출자자들에게 불로소득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가 자본비용은 필연적인 것도 아니고 숙명적인 것도 아니다. 글로벌 금융의 ‘빅뱅’이 발생한 1961~81년, 평균 13.8%의 추가 자본비용이 발생했다. 심지어 ‘30년간의 호황기’ 끝 무렵(1973~74)엔 인플레이션의 부활로 추가 자본비용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우선 ‘통화주의 혁명’의 산물인 규제 정책이 실질 이자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불로소득을 상승시켰다. 1990년대 이자율이 감소하자, 이번엔 배당금 지급이 가속화됐다. 기관 투자자들(상호 연금펀드, 보험회사 등)의 눈부신 성장으로 이전 권위를 되찾은 주총은 다른 사람들 손에 불로소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시장 규율과 주주의 적극적인 행동, 그리고 새로운 기업 관리에 의존했다.

결국 지난 30년 동안 추가 자본비용의 폭발은 기업가의 도움으로 기업에 부과된 금융 기준 상승이 바로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업가들은 주주들과 동일한 수준의 이득을 챙겼다. 자본의 연간 추가 비용을 자기 자본의 15% 선으로 회귀시키고 싶은 욕구를 관철시키려면 법안을 조금 손보면 된다.

이 조치는 실제로 모든 투자 프로젝트에서 50~70%를 차지하는 추가 비용에 필요하다.
금융 기준의 상승 효과(챙긴 이득)는- 상상이긴 하지만- 헤아리기 힘들다. 왜냐하면 금융 부문에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채권자와 주주에게 흘러 들어가는 부(富)는 분명 불로소득이나 다름없다. 이 불로소득은 끊임없이 상승했다(1980년, 생산 가치의 3%던 불로소득은 현재 9%로 상승했다). 그리고 불로소득은 진취적인 사람들(적어도 자신이 기업의 소유주가 아니라면)의 호주머니나 월급쟁이 호주머니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우선 강화된 노동자 착취를 개탄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게 있다. 생산한 적도 없는 막대한 부의 낭비와, 창출한 적도 없는 일자리, 그리고 임계점인 연간 15%의 수익률을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시도도 못 해본 협동·사회·환경 프로젝트에 대해 누가 입을 열 수 있단 말인가? 공공이건 민간이건 모든 기업이 힘들 때면 실제 비용을 50%에서 70%로 인상시켜, 금융의 멍에 속에서 허덕이게 되는 우리 경제의 나약한 역동성에 놀라야 할까? 오직 당나귀만 자기 몸무게의 70%에 해당하는 짐을 짊어질 수 있다.

투자에 꼭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과중한 금융 부담이 생긴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채권자와 주주에게 분배되는 돈은 기업들이 (투자에) 더 이상 필요 없는 수익금을 갚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이 최고의 수익률을 낼 가능성이 있는 투자 프로젝트엔 자기 경영인만 투자하도록 제한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올바른 질문은 다음과 같다. 개인적인 활동이든 단체 활동이든 간에 연간 15~30%의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활동만 원하는 세상에서 0~15%의 수익밖에 내지 못할 것 같아 빛도 못 본 채, 좋건 나쁘건 간에, 통탄할 만한 아이디어가 묻힌 무덤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우리 경제의 생태적·사회적 변화를 꾀해야 할 시점에서, 우리는 진정한 사회민주주의 정치 프로젝트를 도모함으로써 봉급자를 비롯해 사회적·경제적 발전을 꿈꾸는 모든 사람을 적어도 소유와 불로소득 (이자와 배당금)의 멍에로부터 해방시켜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일자리와 기업을 청산하기보다는 불로소득을 없애야 한다.
 

글•로랑 코르도니에 Laurent Cordonnier
<토암바 섬의 경제>(L’Economie des Toambapiks Raisonsd’ agir·파리·2010) 저자.

번역•조은섭  chosub@hanmail.net
 

(1) <Financial Times>, 런던, 2010년 3월 22일.
(2) 2012년 10월, 코페르니쿠스 재단이 ‘경쟁력과의 전쟁 중지’ 보고서에서 자본과 경쟁력의 관계를 잘 보여줬다. 프랑스 기업들이 경쟁력을 상실하면 자사의 마진을 줄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들은 지속적으로 주주들에게 두둑한 배당금을 지불했다. 이는 연구와 개발비를 축내는 것이었다.
(3)  <Wikipédia>에 게재된 ‘가중평균자본비용’ 기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