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이 또다시 쇠퇴한 까닭은?

자아비판의 미덕

2013-07-09     로랑 코르도니에

18세기에 이르러 경제는 도덕·종교·정치에서 해방되어 하나의 학문 담론으로 자리매김했다. 경제는 공익을 위해 굳이 종교적 협박이나 정치적 법령을 동원할 필요가 없음을 전적으로 이론적 방식에 의지해 증명하려 했다.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 메커니즘의 중추에서 공익을 보장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하나의 학문으로 독립하면서 인류의 정신세계는 바야흐로 현대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런 경제학의 등장은 인류학자 루이 뒤몽이 지적하듯 두 개의 ‘의미소’(Ideologem)가 생성되고 전파된 데 근거했다.

먼저 두 의미소 가운데 하나는, 다른 인간 활동과는 별개로 경제라는 체계적이고 일관적인 독립된 영역이 존재한다는 믿음이었다. 요컨대 부의 생산·분배·활용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 더 나아가 개별적인 세계를 이룬다는 신념이었다. 두 번째 의미소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바로 경제가 ‘인간의 이익으로 향하는’ 내적 정합성을 지닌다는 가설이었다. 이 가설은 경제라는 영역에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구실을 했다.

“사실상 경제가 지닌 내적 정합성이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경우,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에게 또다시 시장에 개입할 빌미를 주게 되는 셈이었다.” 한편 이런 가설은 종교의 힘이 약화된 시대에 인류에게 꼭 필요한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장점도 있었다.

일단 ‘보이지 않는 손’이 두 가지 원칙에 기초한다는 점을 먼저 상기해보자. 첫 번째는 개인이나 기업이 경제적인 면이나 논리적인 면에서 집요하게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경제적 합리성이라는 원칙)는 원칙이다. 두 번째는 이 경제주체들이 경쟁이라는 환경에 깊이 매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경쟁이란 흔히 우리를 쉽게 탐욕으로 몰아넣는 자본주의라는 세계에서 탐욕을 제어하는 규율 수단으로 여긴다. 가령 경쟁이야말로 수익 창출을 추구하는 각 기업이 재화나 서비스 시장은 물론 더 나아가 금융시장에서도 부당한 수익을 줄이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최적의 방식으로 자원을 활용하도록 만드는 촉진제 구실을 한다.

20세기에 이르면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위의 논리를 출발점으로 삼아 ‘보이지 않는 손’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가령 경쟁이 본연의 역할을 하지 않거나 시장이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비판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시장의 오류를 인정한 덕에 그들은 공공정책 전문가로 신분이 상승했으며, 또한 ‘보이지 않는 손’을- 적당한 선에서-  반박한 덕에 모든 정부 부처(보건, 문화, 교육, 산업, 재정, 환경 등)를 장악하고 경쟁이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 곳에 경쟁이 계속 존속하게끔 하는 임무를 정부에 부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경쟁의 절대적 효율성을 공격한 첫 번째 단계일 뿐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아마 현재 한창 진행 중인 과정이리라. 만일 주류경제학자들이 이 새로운 전환점을 교묘하게 잘 넘긴다면 앞으로 훨씬 더 위세가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한 자신들의 경제적 지식을 동원해가며, 어떻게든 ‘보이지 않는 손’이 또다시 쇠퇴하는 것을 막으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이지 않는 손’이 다시 쇠퇴하게 된 것은 경제주체의 비합리적 태도에서 기인한다.

개인이 합리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결국 각 개인의 행동이 조화를 이뤄 공익에 이르는 것 역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도는, 인공두뇌학(Cybernetic) 전문가들의 ‘보이지 않는 손’에 호모에코노미쿠스를 길들이고 그들의 비합리적 태도를 바로잡는 길뿐이다.

아마 우리는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놀라운 수완을 발휘한 덕에 결국 개개인의 행동(아무리 그것이 광적이고 무절제한 행동일지라도)이 모여 다시금 공공의 이익에 이르도록 충분히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서는 굳이 정치·제도적 구조를 개선할 필요 없다는 점이다. 물론 민주주의를 활성화할 필요 없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글·로랑 코르도니에 Laurent Cordonnier
주요 저서로 <해피스톤은 왜 토암바 섬에 갔을까>(L’économie des Toambapiks. Une fable qui n’a rien d’une fiction·레종다지르출판사·파리·2010) 등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Louis Dumont, <호모아이콸리스>(Homo Aequalis), 갈리마르출판사,   파리,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