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위기의 노동자 vs 무대책의 경영진
‘부적응자’ 양산하는 프랑스 우체국
이전에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던 직장 내 자살 문제, 특히 대기업 내 자살 문제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자살 원인으로는 직원을 경쟁구도로 밀어내면서 생기는 업무 스트레스와 따돌림이 주로 꼽힌다. 프랑스 우체국에서도 일련의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있지만, 우체국 경영진은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2009년 5월 ~ 2013년 5월, 프랑스 우체국 직원 중 최소 97명이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한 가지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2010년 3월 1일 우체국의 지위가 주식회사로 변경되면서 구조조정 강행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와 이런 일련의 자살 사건이 발생한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1992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시행한 지침서(1997, 2002, 2008)에서 EU 회원국에 우편 서비스 시장 내 경쟁구도 형성을 요구해왔다. 이는 프랑스 정치권과 경제계 ‘엘리트’ 인사들의 계획과 같은 맥락이었다. 1960년대 이미 모더니스트들은 공무원 지위에 대해 “작은 발걸음 정책으로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갈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1)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 그 작은 발걸음들이 이제는 ‘연쇄자살’로 바통을 넘기게 되었다.
2009~2011년, 우체국 직원 약 2만5600명이 해고당했다.(2) 이는 프랑스텔레콤-오랑주의 디디에 롱바르 회장이 발표한 2006~2009년 감원 계획 대상 2만2천 명을 웃도는 수이다. 당시 프랑스 텔레콤 내에서는 연쇄자살 사건이 일어났고, 롱바르 회장은 2012년 7월 이와 관련해 당국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우체국의 경우 2002년 임명된 장 폴 베일리 회장이 서비스·업무·노동조건 전반을 재편하며 민영화를 추진해왔다.(3) 또한 같은 맥락으로 퇴직자 수만큼 신규 인력을 충당하지 않는 일명 ‘비대체’ 방법을 통해 대규모 직원 감축을 계획한 바 있다.
그러나 우체국의 주된 업무인 우편물 배달은 인력을 요하는 부분이다. 우체국은 우편물 하청 정책으로 우체국 지점 약 1만 개를 ‘상점형 우체국 사업소’와 ‘지역 우체국 사업소’로 변경하며 지점 수를 줄여나갔다. 또한 오는 2015년까지 자산 매각을 통해 10억 유로를 확충할 계획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동분류기 등 우편물 취급 기기의 현대화를 통해 배달 준비 작업 시간은 줄이고 실제 배달 시간은 늘려 집배원을 감원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성 향상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과소 고용 상태는 여전한 실정이다.
압박감에 다른 직장 찾는 직원들
우체국 직원에게는 그들의 실제 업무 환경과 육체·정신적 고통 등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개편 요구만 지속되고 있다. 불투명한 승진 제도, 연수 교육 부족, 좌천과 사직의 압박 등 근로자의 고충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베일리 회장이 설치하고 장 카스파르 전 프랑스 민주노동연맹(CFDT) 회장이 의장직을 맡은 이른바 ‘대토론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약 1800명의 직원이 ‘다른 직장을 구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중 대부분이 직위를 잃은 간부와 임원급 인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베일리 회장이 우체국 직원의 급여에 대해 “결코 많지 않다. 그들은 다른 수익 없이 우체국에만 의존한다”고 고백했음에도 추가 수당 없는 초과근무가 버젓이 계속되고 있다.(4)
어떤 직업군에든 직업병이 있긴 하지만, 특히 우편물 및 소포 배달 등에 종사하는 직원 대부분이 특정한 동작이나 자세와 관련된 질병을 앓고 있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서 있거나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는 등의 자세가 해당된다.
휴식 시간과 업무 교대의 부재, 과도한 업무 시간 등으로 인해 그 결과는 더욱 심각해진다. 또한 건강 진단 결과 대부분이 불안·우울증과 수면장애, 정신적 고통, 소진증후군 등을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질환으로 인해 기업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크다. 결근, 산업 재해, 역량 제한 더 나아가 직원의 사기 저하, 서비스 품질의 필연적 악화로까지 이어진다. 경제적 대가는 사회보험을 통해 채울 수 있지만, 사회적 여파는 직원 스스로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기 마련이다.
CEO, 경영지표 안정적이라며 딴청
우체국 경영진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대토론위원회에서 펴낸 ‘카스파르 보고서’는 이런 노동조건의 악화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균형 잡힌’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적법’하다고 평가되는 생산성 본위의 정책과 노동조건 악화 간 관계에 대해서는 명백히 밝히고 있지 않다. 피해 직원의 증언은 고려되지 않고, 노조의 주장은 반영되지도 않았다.
카스파르 보고서는 8단계의 협상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는 이미 프랑스텔레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례다. 잠깐의 휴식 이후에 이뤄진 구조 재편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다. 이 보고서에서 대대적으로 공표한 결론 중 가장 분명한 내용은, 향후 3년간 채용 인원을 1만 명에서 1만5천 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두 배에 달하는 퇴직자 수를 고려한다면 이는 빈 자리를 충원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이다.
2009년 이래로 질병 위험 수준과 신체적·정신적 건강(스트레스, 신체 내외의 폭력)을 규명하고 진단하기 위해 ‘직장 스트레스의 진단 및 검사를 위한 장치’와 질문지가 배포되고 있다. 이 방안은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예방 차원에서 볼 때 효율성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끝없는 개편과 변화 등의 직장 구조와 관련된 사회 심리적 재해는 규명도, 치료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디디에 롱바르 프랑스텔레콤 회장에 대한 수사 결과에서도 이런 상황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5) 그 결과, 이런 자살 사건의 원인이 개인적 동기 또는 직장 부적응 등에 있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베일리 회장은 “노조의 시위 방법은 한낱 ‘사건 사고’에 지나지 않으며 ‘여론 조성과 기사화’를 노린 것일 뿐”이라고 멸시하듯 평가했다. 그는 “직장 내 관계, 만족도, 소속감 등 모든 지표가 안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상반된 주장을 했다.(6)
글•노엘 뷔르기 Noëlle Burgi
유럽사회정치과학센터(CESSP),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소속 연구원.
글•앙투안 포스티에 Antoine Postier
프랑스 우체국 고위급 간부(가명).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Elie Cohen, ‘Le Colbertisme high tech: Ec’nomie des Télécom et du grand projet’, Hachette, 파리, 1992. Jean-Luc Metzger, ‘Entre utopie et résignation. La réforme permanente d'un service public’.
(2) 채용 및 퇴직 모두 누적한 수치임.
(3) Gilles Balbastre, ‘A La Poste aussi, les agents doivent penser en termes de march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2년 10월호.
(4) Hervé Hamon, ‘Ceux d'en haut: Une saison chez les décideurs’, Seuil, 파리, 2013.
(5) Anomie néolibérale et sucidie au travail’ , <Interrogations> 14호, 파리, 2013년 6월.
(6) (4)와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