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과 치안의 경계가 없는 전쟁, '시가전'
국방과 치안의 경계가 없는 전쟁, '시가전'
“내일 재건할 걸 오늘 파괴해서는 안돼”
오늘날 군대가 풀어야 할 최대의 난제
필립 레이마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과거의 적군 주둔지에서 훈련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습니다. 베를린장벽은 확실히 무너졌더군요”라고 피에르 에스노 대령은 웃으면서 말했다. 대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로 사용되고
이후에는 소련군의 주둔지였던 베를린 남쪽 60km 지점에 위치한 알텐그라보우에서 수색연대의 훈련을 지휘하고 있었다. 잡초로 뒤덮인 이곳은 소련군의 베를린 입성을 기념하는 기념물들이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현재 독일군이 관리하는 8㎢ 면적의 이곳은 대규모 시가전 훈련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럽에서 유일한 시설이 되었다. 프랑스군 병력은 1500명의 보병, 100여 대의 장갑차와 전차, 10여 대의 헬리콥터와 군용기, 특수부대 요원 정도다. 이들 병력은 군견까지 포함해 3주 동안 실전 훈련에 투입되었다.
프랑스에서도 시가전 실전 훈련의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2008년 4월, 부상자 처리와 군수차량 보호 및 민간인 소개에 목적을 두고 스당에서 실시된 훈련에는 800명의 보병과 200대의 장갑차량이 동원되었다. 이 훈련은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코트디부아르, 레바논과 같은 분쟁국에 대한 실제 군사 개입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국방부는 강조했다.
2005년부터 ‘도시 지역 전투 능력 강화’를 위해 두 개의 프랑스 육군 보병 여단에 시가전 전담 임무가 부여되었으며 지난해부터는 모든 전투부대에 ‘거주지 내 전투’에 익숙해지기 위한 지침이 하달되었다.
이러한 조처는 우선 인구학적 변동에 따른 것이다. 20세기 초 이래로 도시 인구는 5배 늘어났다. 전세계에서 인구 100만 명을 넘는 도시가 280여 개에 이르며 700만 명이 넘는 도시도 26개에 이른다. 2025년에는 지구 인구의 3분의 2가 도시에 거주할 것이며 2050년에는 도시 인구의 비율이 85%에 이른다는 추측도 있다. 전통적으로 거대 도시들은 모든 권력(정치·경제·사회·문화)이 집중해 있고 교통과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다.
인구학적 변동에 기인한 시가전 개념 부각
20세기의 양차 대전과 ‘동서’ 갈등 기간에 군대는 개활지 전투에 맞춰 양성돼왔다. “우리 군대는 2차 대전 이후 45년 동안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북대서양조약기구 사이의 전면전을 준비해왔으며 시가전 대비는 거의 없었다. 보병 규범에서도 시가전은 단순히 ‘국지전’의 한 형태에 불과했다”1)고 보병학교 교장 출신의 이브 자콥은 강조했다.
1944년 베를린과 최근 체첸 지역의 그로즈니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전쟁의 주 무대가 도시 지역이 되면 군대 간 충돌은 사회 전체를 파괴한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다시 반복할 수는 없다. 1944년과 같이 도시 전체를 쓸어버리는 것은 더는 용납될 수 없다”고 참모본부의 시가전 교범 비디오에 출연한 가상의 장군은 강조한다.
“민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군의 새로운 행동 양식입니다. 군대는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일차적으로 개입해야 하지만 경찰과 민간 조직에 가능한 한 빨리 업무를 넘겨야 합니다. 다음날 아침 재건해야 할 것을 오늘 부수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요”라고 다른 장교가 설명했다.
“2차 대전 중에는 도시 전체(런던, 드레스덴)를 폭격했다. 베트남전에서는 한 동네를 조준할 수 있었다. 현재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건물 단위, 심지어 건물의 한 층에 있는 창문 단위로 타격할 수 있다”2)고 한 전략연구재단3)의 보고서가 요약하고 있다.
광활한 전쟁터와 달리 도시 지역은 다차원적인 미로와 같다. 지하 시설(지하실·하수도·주차장·지하철·지하도), 골목길, 광장, 막다른 골목, 유적지, 상업 지역, 주택 지역, 고층 아파트 단지, 대형 할인매장, 고층 빌딩과 같은 모든 양식의 다층 건물들…. 이러한 조건에서 만약 한쪽이 주민들의 지원을 받게 되면 ‘비대칭적’ 갈등의 전형적인 상황, 즉 전력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쪽이 전술적으로는 유리한 상황을 확보하게 된다.
민간인, 피해자와 분쟁 당사자의 양면성
전장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에서 민간인의 존재는 핵심적인 불변 요소가 된다. 민간인은 대부분 희생자지만 간혹 분쟁의 행위자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위협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모든 길목과 동네가 초소형 작전 지역이 될 수 있다. 부대는 분산 고립된다. 어떤 종류의 무기를 갖고 있더라도 병사들은 지속적으로 ‘결투’ 상황에 처한다. 전투에 개입된 위험한 민간인과 그렇지 않은 민간인을 구분하는 일은 어렵다. 그리고 언론의 시선에 항상 노출된 상태에서 행동해야 한다”고 니콜 대령은 설명한다.
2008년 3월 코소보 미트로비차4)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 이후 코소보 주둔 프랑스군 대대장 파스칼 랑가르 대령은 “민간인 거주 지역 전투가 가장 힘들다. 우리의 목표가 적을 괴멸하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다른 많은 군 장교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폭력을 통제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위 군중 속에서도 각자의 동기, 실제 행동 및 행동 수단들은 차이가 난다. 상황은 신속히 변화한다. 이러한 국면은 “부하 병사들에게 극도의 냉정함과 완벽한 일관성, 강고한 자신감”을 요구한다.
“신속하게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최소 부대 단위에도 통합군 편제를 실시해야 하며 전투원은 기갑차량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제27산악보병 연대장인 벵상 폰즈는 강조했다. 2007년부터 프랑스 육군의 훈련 조율을 담당하는 디디에 러흐 대령은 “시가전 준비는 모든 상황과 탐지 장치를 통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시가전은 예고 없이 단시간에 이뤄지며 개활지 전투보다 10배나 많은 탄약이 필요하다. 또한 지원과 보호를 위한 충분한 수의 기갑차량이 요구되며 특히 끊임없는 부대 훈련이 요구된다. “6개월 후면 전투원들은 상황 대처 능력과 전투 수칙을 잊고 전투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참모본부에서는 미군의 이라크 바그다드와 팔루자 개입, 영국군의 바스라 개입, 1990년대 러시아군의 그로즈니 개입, 유럽 군대의 코소보 프리슈티나와 미트로비차 개입,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저항에 대한 대처 등의 사례를 기초로 새로운 전투교범을 만들려고 한다. 또한 1960년대 알제 전투 당시 마르셀 비게르 장군 휘하의 프랑스 공수부대가 카스바흐에서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의 무자헤딘에 포위되었던 기억도 되살리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북아일랜드 소요 진압 군사작전, 1990년대 발칸 지역 평화유지 작전의 경험은 최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개입한 영국군에는 유용하게 작용했다. 프랑스에서는 보병 중대 인원수가 보강되었다. 이제 작전은 ‘통합군’ 방식으로 운영된다. 전차와 공병의 지원을 받으며 모든 보병은 기갑차량으로 이동하고 각자는 무전기와 야간 투시경을 휴대한다. 과거에는 특수부대에만 지급되었던 새로운 화기들이 보병 부대원에게도 지급된다. ‘미래형 보병’이라 불리는 ‘펠린’이라는 개인 전투복도 시가전에 더욱 적합하게 고안되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민병의 일상적 무기가 된 휴대용 로켓 화기와 ‘사제 폭탄’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회피 동작 교범이 만들어졌고 탐지 장치가 강화되었다. 올해부터 전면장갑 차량과 경장갑 차량 일부는 차량 상부에 전투원이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고 파노라마 비전, 추가 장갑 보호 및 원격 조종 무기를 장착했다. 냉전 당시 고안된 일부 장비(예를 들면 56의 르클레르 타입 중전차)도 도시 환경에 맞게 개선되었다. 또한 헬기와 무인 항공기의 사용 빈도가 더욱 늘어났다.
지난 30년간 20여 차례에 걸쳐 도시 혹은 준도시 지역에서 작전을 펼쳤던 미국 육군은 1993년 소말리아의 모가디슈 작전 실패 이후에야 시가전에 대한 전략적인 재검토를 시작했다. 미 육군은 신기술(산개 전투 그룹, 전투원 간의 상호 교신, 위치 추적, 무장한 무인 항공기 등)을 개발하고 이를 2002년 캘리포니아의 ‘밀레니엄 드래건’ 훈련에서, 그리고 이라크와 아프간 전장에서 실험했다. 미 해병대는 이러한 신전술을 적용해 전투원 희생을 획기적으로 줄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가전 대비한 훈련센터까지 등장
1993년부터 운영 중인 루이지애나주 포트폴크 연합훈련센터(JRTC)는 56㎢에 해당하는 넓은 공간에 도시 지역을 건설해놓고 통합군 훈련을 전담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 훈련 시설도 “실제 상황에 비해 매우 작다”고 판단한다. JRTC가 훈련 과정에 비전투원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는 복잡한 미래의 시가전 상황을 단지 흉내만 낼 뿐”이라고 한 예비역 중령은 말했다.
“미래의 전술적 목표는 언덕의 정상이 아니라 민간인들에 둘러싸인 건물 한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그는 결론 맺었다.
프랑스 육군참모본부는 2006년 시손에 건설된 시가전 훈련센터(Cenzub)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확장 공사가 완료되는 2011년에는 이곳에서 연대 단위의 실전 훈련이 가능할 것이다. 이 시가전 훈련센터는 “다국적·통합군적이며 장기적으로는 관계부처,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와의 협력”이라는 관점에서 유럽 최초의 시설이 될 것이라고 디디에 러흐 대령은 판단하고 있다.
시가전 훈련 프로그램 담당자는 위협을 재구성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위험 시나리오와 그럴듯한 환경을 구성하는 것뿐 아니라 군인, 민병 혹은 일반 주민과 같은 상대역을 맡는 인원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플레이어’를 배치하려면 시뮬레이션은 모든 가능한 행위자를 포함해야 한다. 실제 혹은 가상의 ‘기자들’도 상황 속에 들어올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언론 앞에서 행동하는 방식, 취재단을 동행하는 방식, 질문에 대답하는(혹은 거부하는) 방식에 익숙해진다. 또한 병사들에게 기본적인 법규 사항, 특히 개입 규범에 대한 미묘한 해석의 차이를 가르친다. 즉, 동일한 도시 공간 내에서도 상황에 따라 병사는 어느 모퉁이에서는 응사를 할 수 있고 다른 모퉁이에서는 이를 자제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을 키우게 한다.
이부아르 호텔 총격전 이후, 프랑스군은 ‘군중 통제·치안 유지의 군사적 방식’에 대한 훈련을 받은 보병중대를 해외 작전지역(Opex)에 보내고 있다고 ‘시크릿디펜스’ 사이트는 밝힌다. 군중에 대한 무력적 개입이 최대의 임무인 진압 경찰부대와는 달리, 군대는 폭력의 확대를 막으려 ‘최소한도’로 치안 유지 임무를 수행한다. 또 필요한 경우 더욱 군사적인 수단(기갑차량·불도저·저격수·군견 등)이 동원된 고강도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키운다.
군사 잡지 <판타생>(보병)은 특집 기사에서 “군의 군중 통제 또는 치안 유지 방식으로 인해 자칫 비무장 민간인이 테러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5)고 문제를 제기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임무의 혼동이 가져올 위험을 언급하며 군대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문하지만 국방과 치안의 경계는 점점 불분명해지는 추세다. 미국의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범의 공격을 받은 2001년 9월 11일, 우연하게도 이 상징적인 날짜에 프랑스 육군에서는 최초의 통합군 부대가 시가전 훈련을 개시했다.
번역•김태수
1) <판타생, 보병 잡지> 20권, 몽펠리에, 2007년 6월호. Fantassins, magazine d’information de l’infanterie, n° 20, Montpellier, juin 2007.
2) 미셀 아센시오, ‘전략연구재단’(FRS) 보고서, 파리, 2006년 6월 2일.
3) 2009년 1월에 전개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세 당시 목표물은 그다지 제대로 겨냥되지 않았다는 점을 밝힌다.
4) 이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동 당시 유엔이 관할하던 2개 재판소를 점령한 세르비아인들을 해산하려고 군이 경찰 작전에 투입되었다. 나토 소식통에 따르면 유엔 소속 경찰 25명, 나토군(Kfor) 소속 병사 8명 및 세르비아인 24명이 부상당했다.
5) <판타생>, 2008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