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새로운 원자력 블록 탄생

기득권을 잃고 싶지 않은 러시아의 은밀한 지원

2013-07-09     엘렌 비앵브뉘, 세바스티앙 고베르

“원자력발전소는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경사입니다.” 가지런하게 수염을 기른, 헝가리 퍽시 시장 야노시 허이두는 시선을 고정한 채 진심으로 만족스러운 기색을 내비친다. 그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시(市)를 상징하는 공식 깃발이 꽂혀 있다. 원자를 나타내는 은색 상징물이 보란 듯이 휘날리고 있었다.

“퍽시는 인구 1만9500명의 작은 도시지만, 이곳의 급여 수준은 전국 평균보다 높습니다. 시의 인프라 시설은 좀더 나은 질적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발전소를 견학하러 각지에서 모여들며, 원전은 우리 시의 자랑입니다.” 다뉴브강 유역, 헝가리 중부 지방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는 논란의 대상이 아닌 듯했다. 열렬한 원전 지지자 허이두 시장이 2010년 3회 연속 재선에 성공한 게 그 증거다. “정부는 이제 원전 부지 확대를 논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애타게 기다리는 바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고, 도시는 활력을 띠게 될 것입니다.”

옛소련 때 시작된 협력관계가 계기

이곳에서 5km쯤 떨어진 곳에는 길가에 나무가 들어선 작은 길 끝으로 퍽시 원자력발전 단지 ‘MVM Paksi Atomerőëmű’(퍽시 어토메뢰뮈)의 두 원전 설비가 빛바랜 녹색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원전 단지의 홍보를 담당하는 처버 도호츠키는 “단지 내 안전 상태가 최적화되어 있다”며 우리를 안심시킨다. “이곳에서는 2400명 이상이 일하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여기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그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1, 2호기 구역의 구불구불한 길로 방문객을 안내했다. 2003년 4월 사고가 난 곳이다. 당시 사고 규모는

국제 원자력 사고등급(INES) 기준 3등급에 해당했다.(1) 원자로 2호기의 연료를 연례적으로 재충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로, 2호기는 18개월 가까이 가동이 중단됐다. “시설 재가동을 위해 우리는 헝가리 및 국제 안전 당국의 확인을 받았으며, 2012년 초에는 EU집행위원회의 스트레스 테스트(위기 상황 분석)도 거쳤습니다. 그해 말 1호기의 운행 기간이 2032년까지 연장됐습니다. 이는 곧 우리가 매우 높은 신뢰 수준을 누리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우리는 최대한 투명하게 운영하는 데 승부수를 걸고 있습니다. 주변 국가뿐만 아니라 국민 대부분의 지지를 확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헝가리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이미 얻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정부는 퍽시에 2개의 원자로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며, 이로써 향후 2025년까지 국내 전력 생산량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60%로 끌어올릴 전망이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충격 이후, EU가 원전의 이점에 대해 점점 더 유보적 입장을 보이는 상황에서, 헝가리 정부의 이런 발상이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헝가리의 원전 정책은 역내 분위기에 부합한다.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폴란드 등 이른바 ‘비셰그라드 4국’(V4국)은 원자력이 에너지 정책의 핵심 요소이며, 화석 연료 수입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수단이다.

이들의 협력은 이미 옛 소비에트 연방 체제하에서부터 시작됐다. 1958년부터 옛 체코슬로바키아는 야슬로프스키 보후니체 지역에 최초의 실험형 원자로(KS150/A-1)를 건설하기 시작했다.(2) 소련의 영향에 따라 러시아형 가압 경수로 타입으로 만들어진 14개 원자로는 대부분 1980년대에 가동을 시작했다. 이 원자로들은 오늘날 다섯 군데 원전 부지에서 가동 중인데, 헝가리 퍽시 원전, 슬로바키아 야슬로프스키 보후니체 및 모흐브체 원전(4개 원자로를 보유하고, 국내 전력량의 54%를 생산), 체코공화국의 두코바니와 테멜린 원전(6개 원자로를 보유하고, 국내 전력량 33% 생산) 등이 이에 속한다. 퍽시 원전의 1호기와 마찬가지로, 당국은이 원자로들 대부분의 가동 기간을 대거 연장할 계획이다.

폴란드는 발트해 연안의 자르노비에츠에 처음으로 원전 기지를 구축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자로 4호기의 폭발에 따른 여파도 있었고, 1980년대 말 정치·경제의 정세도 달라지면서 원전 구축 계획이 좌초됐다. 1990년 12월, 원전사업이 공식 중단됐으며, 부지 구축에 쓰이려던 장비들도 모두 매각됐다. 도호츠키는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저렴한 가격에 원자로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된 퍽시로서는 뜻밖의 횡재였다”고 한다. 수년 전부터 전력 생산 방식의 다각화에 고심하던 폴란드 정부는 향후 2025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2곳 건립할 계획이었다. 현재 폴란드의 석탄의존도는 86.5%이다.

V4국은 전통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다. 2010년 3월, EU 설문조사 기관 유로 바로미터가 ‘유럽인과 핵 안전성’이라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체코 응답자의 86%, 슬로바키아 및 헝가리 응답자의 76%, 폴란드 응답자의 70%가 “전체 에너지원 가운데 원자력의 비중을 유지 혹은 증가해야 한다”고 답했다. 체코 녹색당(스트라나 젤레니흐)의 야쿠프 파토츠카 전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그 어떤 대대적인 비교 연구도 시행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모순이 드러날까봐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후로 2년 가까이 이렇다 할 반대운동은 없었다”며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인정했다.

원전 건설에 반대 운동 없어

V4국 가운데 녹색당은 국회에서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으며, 헝가리 대안 정당 LMP(Lehet Más a Politika)만 의석 8개를 유지할 뿐이다.(3) 체코의 파토츠카 전 대표는 “이런 상황 때문에 주변국과의 관계가 흔들린다”고 지적한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1978년부터 국민투표를 통해 원자력에너지 이용을 거부해왔으며, 특히 독일은 ‘에네르기에 벤데’(Energie Wende)라는 정책으로 에너지를 전환하고 있다.” 2011년 6월, 앙겔라 메르켈 정부는 독일 내 17개 원자로 가운데 8개 원자로의 즉각 폐쇄를 공표했으며, 향후 2022년까지 원전 운영을 점진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이같은 역사적인 결정은 (적어도 그럴싸한 말로나마) 원자력에 관한 EU의 기존 관점에 문제제기한다. 아울러 리투아니아와 불가리아 유권자들이 자국 내 추가 원전 설치 계획을 거부하고 나선 것과 부분적으로 같은 맥락이다.(4)

유럽이 원자력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가운데, 그 변방에서 비셰그라드 4국은 새로운 ‘원전 블록’을 결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국이 추구하는 방향을 존중해주기를 촉구한다. 슬로바키아의 재무부 장관 특별자문위원인 크리스티안 타카츠에 따르면, “슬로바키아는 야슬로프스키 보후니체에 있는 원자로 2개에 폐쇄 결정을 내려야 했다. EU 가입 조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쪽 전문가들은 원전 폐쇄의 필요성에 의구심을 가졌다. 원자로 2개의 가동을 중지함으로써, 슬로바키아는 명백한 전력 수입국이 됐다.” 체코공화국과 마찬가지로, 슬로바키아의 원전 확대 계획은 에너지 자립성 확보와 주변국으로의 전력 수출 가능성이라는 논리에 따른다. 독일 베를린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인 타카츠는 “원자력을 이용한 전력 생산을 포기한 독일에서는 곧 전력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독일에 전력을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독일 반원전 분위기 부담

더욱이 독일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역내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체코의 테멜린 원전 확대를 위해 체코 정부 대변인 바클라프 바르투스카는 “독일의 배전망은 북부의 대규모 풍력 단지와 서부의 공업 지대 사이를 통과할 때 나타나는 막대한 출력 변화에 맞춰지지 않은 상태다.(5) 이 전류 교란은 심히 우려할 만한 상황으로, 폴란드와 체코의 배전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비난한다.
“유럽 에너지 시장을 보강하기 위해서 라고 하지만 독일의 선택은 더할 나위 없이 이기적이며,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체코가 주변국과 마찰을 빚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말 테멜린 원전 건설 계획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극심한 반대를 불러왔다. 2000년 9월 오스트리아와 체코공화국 사이의 통과 지점 26개를 막고 나선 반핵 조직의 행동처럼 오스트리아의 핵문제 관련 정부 대변인 안드레아스 몰린은 테멜린의 안전성 기준을 비판하고, 이를 독일 원전의 안전성 기준에 연동시킬 것을 촉구했다. 독일의 기준은 유럽에서 제일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팔 빈체 국제원자력기구 공학부장은 “이 ‘신흥국’ 들의 원전 건립을 둘러싸고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다”(6)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말이 많았다. 이 국가들의 안전성 조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럽 내 다른 국가의 안전성 기준보다 훨씬 잘 마련되었다”며 개탄한다.

어찌됐든 서로 이웃한 나라들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반목하는 상황이다. 빈의 환경부 복도에는 각각의 문마다 ‘Atromfrei’(원자력 반대)라는 문구가 찍혀 있다. 몰린은 집무실에서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에서 가동되는 원전의 안전성이 걱정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웃 국가에 지침을 내린 건 아니다”라며 훈계조 말투로 같은 입장을 고수한다. 하지만 그는 최근의 정부 방침 발표에 대해 서슴없이 화색을 표했다. 이에 따라 오스트리아는 수입 전력에 대해 ‘원산지 증명서’를 발급해 오스트리아로 들어오는 전기가 원자로에서 생산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장한다. 이 복잡한 시스템에 대해 주변국에서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자국의 에너지 정책에 개입하는 새로운 형태”라며 반발하는 분위기이다. 이에 대해 몰린은 다음과 같이 변론한다. “소비자로서 우리는, 다만 구입하는 전기에 대한 품질 보증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성공 기세를 계속 유지하려 하며, 이런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전기를 수출하는 국가로 하여금 ‘깨끗한’ 에너지를 개발하도록 장려한다면, 그건 더욱 잘된 일”이라는 입장이다.

체코는 재생에너지라면 치를 떤다.(박스 기사 참고) 체코 전력공사(CEZ) 소속으로, 테멜린 원전에 설치될 3, 4호기의 품질 및 안전성 책임자인 이바 쿠바노바는 “우리에겐 오스트리아의 수력발전기도, 독일의 풍력발전기도 없을 뿐 아니라,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심지어 독일에서는 원전 가동 중단으로 부족해진 전력량을 메우기 위해 석탄발전소까지 다시 열고 있다. 이는 ‘녹색’ 개발의 바람직한 예로 보이지 않는다. 체코공화국에서 원자력은 저렴하고 믿을 수 있으며 깨끗한 에너지이다.” 헝가리 전력공사(MVM), 슬로바키아 전기공사(SE-ENEL)와 마찬가지로(7) 체코 기업 또한 자신의 논거에 힘을 실어줄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중심부에서 3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마을 테멜린에서는 축구장이든 음식점 건물이든 체코 전력공사의 주황색 로고가 곳곳에 있다. 2011년 이 그룹은 기업 메세나 활동으로 4억3270만 코루나(약 1680만 유로)를 지출했으며, 특히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에 대거 투자했다. 쿠바노바는 “우리가 좋은 이웃으로 여겨지길 바란다. 현지의 생활 발전에 기여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얀 하베르캄프의 생각은 좀 다르다. 비정부기구 그린피스에서 수차례 원자력 반대운동을 해 현지 에너지 기업에 혐오 대상인 그는, 체코 전력공사의 메세나 활동은 ‘기업의 선전’일 뿐이라고 한다. “저들이 말하는 홍보활동은 그저 원자력이 절대적으로 안전하며, 원자력만큼 믿을 만한 대안이 없다는 점을 단순 논리로 증명하려는 데 지나지 않는다. 저들은 관대한 기부 활동을 통해 여론을 돈 주고 사들인다.” 이런 논리가 저 멀리 북쪽에서 어느 정도 반향을 울리는 가운데, 폴란드 정부와 폴란드 최대 전력 생산업체 PGE사는 2011년 1월 채택된 원자력에너지 개발사업의 시행에 관한 의견 조사를 벌였다. 폴란드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소 두 곳을 건설하는 데 400억 즐로티(약 96억 유로)가 소요되며, 두 발전소에서는 6천 메가와트 정도 전력을 생산할 것이다. 원전 개발에 대한 전권을 가진 한나 트로야노프스카 재무차관은 “2023~2024년 무렵이면 첫 번째 원자로가 가동될 것”이라고 확언한다. 하지만 원전 완공 후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국내 소비 전력의 17% 정도에 불과하다.

폴란드 하원의 팔리코트 연대 안드레이 로제네크 대변인에 따르면, “폴란드는 유럽 대국 가운데 핵을 겪어보지 못한 마지막 나라이다. 원전사업이 국내 실제 수요에 부응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그보다는 국가적 자부심 문제에 해당한다.” 폴란드 여당이 원전을 통한 전력 생산에 지지하는 입장이나, 비셰그라드 4개국 가운데 원전 문제에 의견 합일이 가장 이뤄지지 않는 나라가 폴란드이다. 2012년 말, 원전 건설 계획에 지지하는 국민은 52%에 불과했으며, 특히 원전 부지 선정 문제에서 반대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싱크탱크 녹색연구소(Zielony Instytut)의 공동 설립자 베아타 마치에예프스카는 “공스키 주민이 투표를 통해 이 지역 내 원전 설립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표명했다. 폴란드 정부가 민주주의를 표방한다면, 이런 의사를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라며 주민을 옹호했다. 원전 건설 총책임자인 트로야노프스카 재무차관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투표 실시 계획은 없으나, 대국민 홍보 활동과 교육 캠페인을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폴란드 여론의 지지도 높아질 것이라 확신한다. 마치에예프스카는 이 또한 정부의 선전으로 치부하며, 특히 경제가 둔화된 시기에 지각없는 정부의 고집을 비난했다.

폴란드, 국가적 자부심 문제

2012~2013년 비셰그라드 그룹 의장국인 폴란드는 ‘원자력을 다른 에너지원에 버금가는 에너지원으로 격상시키는 것’을 주요 우선과제 중 하나로 정했다. 아울러 이 문제에 대한 정부 간 회의체도 창설할 계획이다. 최근 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 전력 시장이 통합되었음에도, 원자력 생산의 진정한 지역화를 실현하기 위한 선결 조건인 지역 간 연결의 현대화 및 개선 문제는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누가 이 발전소와 원자로의 건설 주체인가’ 하는 문제이다. 2009년 11월 5일 폴란드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와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회담을 가진 이후, 프랑스는 폴란드의 원전산업 개발에 깊이 관여해왔다. 아레바와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폴란드에 유럽형 가압 경수로를 제안하고, 우선 선발 대상으로 들어가 현재 미-일 합작 GE 히타치 및 (일본 기업 도시바가 관할하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겨루는 상황이다. 입찰 발표는 늦어도 2015년이면 이뤄질 것이다. 그린피스의 하베르캄프는 “아레바로서는 이번 입찰이 매우 중요하다. 역내 원전사업에 뛰어들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테멜린 원전 3, 4호기 구축을 위한 입찰에서 프랑스가 탈락된 상황을 빗댄 것이다. 공식적인 탈락 사유는 입찰 절차에서 법적 요구 조건이 빠진 것(8)이었는데, 테멜린 원전 측의 쿠바노바는 프랑스가 배제된 게 “유감스럽고 납득이 안 간다”고 말했다. 더욱이 테멜린 입찰은 지역 내에서 다른 원자로 구축 사업을 위한 첫 단계로 여긴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소재의 콘스탄틴 야초비 에너지 부문 독립 컨설턴트는 “홍보 전략을 펼치는 중간에 어느 한 기업이 약점을 보이면, 그 경쟁 세력 중 하나가 그에 따른 득을 보게 되어 있다. 이번이 정확히 그런 상황이다”라고 분석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정도 규모의 지리적·전략적 결정은 단순한 경쟁의 원칙에 따르기보다 고위 정치권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더 높다며 씁쓸해한다.

러시아 품으로 복귀는 역설적

또한 그는 “러시아가 이 지역 내에서 다시금 배제하기 힘든 대상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한다. “러시아는 일관되게 우위를 점하고 있다. 기술적 지식뿐만 아니라 1980년대 조성된 학술 및 정치 네트워크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종합선물세트’를 제공한다는 강점도 있다. 건설에서 유지, 폐기물 처리 등을 종합적으로 총괄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필요한 경우, 추가 재정 지원도 제공하는데, 헝가리가 확실히 이에 해당한다.” 말 많은 이 컨설턴트 이면에서 옛 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도시들의 원전 건설 분포도가 보였다. 러시아의 공업 단지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발전소가 분포되어 있었다. “오늘날 중부 유럽과 동유럽 지역은 자연스레 러시아의 시장이 되고 있다. 애초부터 옛 소비에트 제국의 생산 지대를 안전하게 보장해주기 위해 조직된 시장인 셈이다. 모스크바는 기존 네트워크에서 주도권을 잃고 싶어 하지 않는다.”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은 러시아 월경지인 칼리닌그라드에 원자력발전소를 건립하는 데 매진하고 있으며, 2017년에는 발전소가 가동될 것이다. 러시아의 원자력수출공사는 러시아 자금을 대거 활용해 벨라루스 서부에 발전소를 세우는 사업을 담당한다. 이곳의 가동은 2018~2019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에너지 수출을 목표로 하는 발전소 건립 계획은 러시아를 주된 전기 수출국으로 만들면서 이 지역의 에너지 지도를 다시 그리게 될 것이다.

다른 주변 국가라고 러시아의 이같은 행보를 모를 리 없다. 부다페스트의 전 그린피스 소속 전문가 페테르 로호니는 퍽시의 차기 원자로 2기가 러시아 제품일 것이라고 어느 정도 확신한다. “헝가리의 어떤 정부도 폴란드 정부가 그럴 수 있었던 것처럼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에 반발하지 않았다. 게다가 퍽시에서 사용하는 우라늄은 거의 전량 러시아에서 들여온다.” 그는 퍽시의 신규 원자로 건립 사업에도 러시아의 재정 지원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예산 문제로 큰 곤경에 빠져 있는 헝가리 정부가 이로써 한숨을 돌릴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는 “체코 전력공사도 사람들 생각처럼 허리가 탄탄하지 못하다. 따라서 이 회사가 JESS 컨소시엄에서 손을 뗄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그 자리를 메우러 들어오는 게 누구이겠는가?”라며 약간 도발적 어조로 자문한다. 야초비도 이에 대한 답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현 사태의 쟁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다. “테멜린 입찰을 가져가는 쪽이 동유럽 시장을 가져가는 셈”이라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판로가 불확실해진 유럽 내 원자력 분야에서 비중 있는 고객이 된 비셰그라드 4개국에서는 모순이 드러난다. 이 지역에서 에너지 독립을 보장해주는 수단으로 간주되는 원자력 부양 사업이 은밀히 러시아와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향후 수십 년간 그런 의존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글•엘렌 비앵브뉘 Héléne Bienvenu, 세바스티앙 고베르 Sébastien Gobert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졸. 역서로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이 있다.  

(1) 국제원자력 사고등급(INES)에서는 0~7등급까지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등급은 8단계로 정의한다.
(2) 1977년 핵연료 교체 과정에서 INES 기준 4등급에 해당하는 사고  가 발생한 이후 이 원자로는 가동이 중단됐으며, 현재 해체 중이  다. VVER-440/V-230 두 원자로가 각각 1978년과 1980년에 야슬로  프스키 보후니체에서 가동되었다. 이 원자로의 안전성 기준에 대해   국제 전문가들이 부적합 판정을 내린, 원자로는 2006년과 2008년   사용이 중지됐다.
(3) 헝가리 대안 정당 LMP는 지난 1월 당이 분열되기 전까지 의회에 15  개 의석을 보유했다. 탈당한 의원 7명은 탈당 후에도 여전히 친환경   노선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4) 리투아니아에서는 2012년 10월 14일, 국민의 의견을 묻는 국민투  표에서 투표자의 64.77%가 신규 원전 건설에 반대한다는 뜻을 보  였다. 반대로 불가리아 유권자들은 지난 1월 27일 동일 사안에 대해   61.49%가 지지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참여율은 20.22%를 넘  지 않았으므로, 정족수 60%에 미치지 못해 투표 결과는 무효로 처  리됐다.
(5) 오랠리앵 베르니에, ‘녹색전기 송전, 민영화의 알리바이’(L’   acheminement de l’'électricité verte, alibi de la privatisatio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5월호.
(6) 아녜스 시나이, ‘국제원자력기구, 독립성 상실한 핵 감독관’   (Un gendarme du nucléaire bien peu infépendant), <르몽드 디플  로마티크> 2012년 12월호.
(7) MVM은 Magyar Villamos Művek Zrt 헝가리 전력공사이며, SE-  ENEL은 슬로바키아 전기공사 SE와 이탈리아 전력공사 ENEL을 함  께 이르는 말.
(8) 아레바 지도부에 따르면, “이같은 입찰 제외 결정은 체코법 및 공공  시장법에 위배된다”고 한다. 아레바의 1차 항소는 지난 2월에 기각  됐다. 이에 아레바는 3월 중순 2차 항고를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