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당 집권 10년, 거리시위에 나선 브라질 국민

2013-07-09     자넷 아벨

 

“평화적인 시위는 정당하며 민주주의에 고유한 의사 표현 방식이다.” 지난 6월 17일 전국으로 확산된 시위 열기에 대해 언급하면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근본적인 문제를 비켜갔다. 1985년 독재가 종식된 이래- 1992년 정부의 부패를 비판하는 시위로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대통령이 하야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토록 많은 대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처음이다. 호세프 대통령의 발언이 있기 전날, 약 20만 명의 시민이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의 거리를 행진했다. 수도 브라질리아에서는 수시간 동안 의회를 점거했다.

대부분 그렇듯이,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첫 불씨가 된 사건은 전혀 다른 성격으로 변모하기 마련이다. 발단은 지난 6월 11일 상파울루 시민들이 버스비 인상(3레알에서 3.2레알로 인상. 약 1660원 인상)에 반대해 벌인 시위였지만, 곧바로 다른 문제들이 가세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양상을 띠었다. 가령, 리우데자네이루 시민들은 월드컵과 올림픽 개최 준비를 위해 지나치게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데 반대하고 나섰다. 전체 예산이 약 500억 레알(26조 원)에 달한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다. 여기에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부패에 넌더리가 난 이들의 분노도 가세했다. 여전히 브라질 국민 대다수는 아플 때 병원에 가고 자식을 괜찮은 학교에 보내는 게 소원이다. 독재 체제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주도로 진행 중인 현 상황은 2014년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서 호세프 정부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정치권 전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정국이 특정 세력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당(PT)에는 2003년 집권 이후 맞는 최대의 위기임이 분명하다.

루이스 이나시우 다 실바 룰라 전 대통령은 집권 후 급격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점진적으로 국민 삶의 질을 개선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룰라의 정책을 계승한 호세프가 집권한 2010년이 세계 경제 상황은 훨씬 불리하게 작용했다.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2010년 7.5%에서 2012년 0.9%로 곤두박질치고 이른바 ‘조기 탈산업화’ 현상(1)이 나타났다. 원료 수출은 증가한 반면 공산품 수출은 급격히 감소했다. 경제력 세계 6위의 브라질 앞에는 여러 가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브라질은 지난 10년간 내수를 진작하고 노동자당의 집권 연장을 보장한 사회적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중국과 경쟁하면서 제조업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기업주들은 내 임기 동안 어느 때보다 많은 수익을 올렸다”며 자랑스러워했다.(2) 이 시스템의 문제점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하자 호세프 대통령은 시사주간지 <베자>(3)가 ‘자본주의적 충격요법’이라고 명명한 방법을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베자>에 따르면, 호세프 정부의 민영화 정책으로 브라질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조화를 이루게 됐다.”(4) 전체 규모 660억 달러에 이르는 민영화 프로그램에는 항만·고속도로·철도 건설 사업과 공항 매각 등이 포함된다.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은 2010년 대선 유세 때 호세프 후보가 과거 페르난두 카르도수 대통령이 추진한 대규모 민영화 정책을 비판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호세프 대통령은 자신의 발전 전략이 ‘자본주의적 충격요법’이 아니라, 투기를 억제하고 산업 생산과 건설을 고무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금리 인하, 전기료 20~30% 인하, 부문별 세금 감면, 장기적 생산 투자 활성화를 위한 단기 투자 과세, 수입품 관세 인상(5)을 통한 국내 산업 보호 등의 정책이 그 예다. 미국 정부가 ‘보호주의’라고 비판하는 일부 정책은 노동자 단체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다. 호세프 정부는 외국 기업이 국내에 들어와 현지인을 고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가령, 대만의 전자 제조업체 폭스콘(6)은 브라질에 8개 공장을 세워 ‘아이폰4’를 생산 중이며, 향후 아이팟과 아이패드 생산도 시작할 것이다. 폭스콘은 브라질 정부로부터 세금 감면 혜택과 정착 지원금을 제공받았다. 또한 브라질 정부가 자동차 수입세를 신설하자 랜드로버와 BMW는 브라질 국내에 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인건비와 지나치게 높은 과세율을 동시에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7) 대규모 다국적 건설업체를 이끌고 있는 마르첼루 오데브레트, 철강 회사 사장이자 연방 경영정책위원회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조르지 게르다우 등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지금까지 노동자당의 지지 기반은 이들 경영인이 아니라 중앙노동자연맹(CUT)과 노동조합의 힘(FS) 같은 노동단체였다. 하지만 최근의 시위 사태는 정부의 대중적 지지 기반이 약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르투르 엔히키 전 CUT 위원장은 항상 정부를 지지했다. 그러나 집권 10년째의 노동자당이 “카르도수 정부가 기존 노사관계를 해체하기 위해 도입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8) 노동자당 중앙위원 발터 포마르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국민 삶의 수준 향상이라는 면에서는 확실히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는 소비 촉진을 위해 임금 인상을 유도했고, 그런 방식은 시장 논리를 강화했다. 사람들은 자식을 비싼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더 많이 벌고자 했다. 이런 전략은 강력한 공공서비스를 발전시키거나,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중요성에 대한 정치적 의식을 고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룰라 집권기 브라질에서는 지금처럼 시위가 벌어진 적이 없다. 그러나 현 정부는 더 이상 그때 같은 우호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더욱이 호세프 대통령의 완고함이 추가적인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

2012년 10년 만에 가장 큰 규모로 공무원 파업이 발생했지만 호세프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107일간 이어진 쟁의에도 불구하고, 호세프 대통령은 임금 재조정 계획을 관철시켰다. 노조는 40~50% 임금 인상과 경력 재평가를 요구했지만, 3년간 점차적으로 임금을 15.8% 인상하는 안에 만족해야 했다.(9) 호세프 대통령이 양보한 것은 파업 기간 임금 지급에 대한 협상 개시 제안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반대로 육·해·공군의 월급은 30% 인상됐다. 브라질의 5대 노총 중 FS, 신노총(NC), 노동자총연맹(UGT), 브라질중앙노총(CTB) 등 4개 노총이 이런 결과에 반발해 비판 성명을 공동 발표했다. CUT도 뒤늦게 합류했다. 3월 6일에는 브라질리아에서 이 노총들이 공동으로 조직한 시위가 벌어졌다.

호세프 대통령은 이제 2002년부터 노조와 맺어온 ‘사회계약’을 재검토하려는 것일까? 브라질의 민주화와 1988년 신헌법안 작성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브라질 노동자 운동은 이 과정에서 주변화될 것인가? 룰라 집권기 동안 많은 정치 인사과 노조 지도자들이 정부 요직에 임명되었고, 그 결과로 사회적 합의를 중요시하는 새로운 형태의 관료제가 형성되었다. 과연 호세프 대통령은 루이스 카를로스 브레세르-페레이라가 명명한 ‘사회적 발전주의 국가’ 모델에 호의적인 사회적 집단을 지지 기반으로 삼으면서 전략적 선회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호세프 대통령은 “브라질을 ‘중산층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호언한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현재 브라질 중산층 인구는 1500만 명이다. 그러나 경제학자 파울루 클리아스가 보기에 이런 계산법은 “빈곤층으로 하여금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믿게 만들려는 속임수”에 불과하다.(10) 수천 명의 젊은이, 가난한 노동자들은 이런 환상에 속는 대신, “우리는 새로운 브라질을 원한다!”고 외치면서 부패 척결을 요구하고, “국제대회에 쏟아 붓는 엄청난 돈을 보건과 교육에 투자하라”고 요구한다.


글•자넷 아벨 Janette Habel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1) Pierre Salama, <Les Economies émergentes latino-américaines,   entre cigales et fourmis>(라틴아메리카 신흥 경제, 개미와 배짱이들)>,   Armand Colin, Paris, 2012(이하 인용된 수치들의 출처).
(2) 게이사 마리아 로차, ‘룰라의 집권 8년, 브라질은 정말 나아진 걸까’   (Bourse et favelas plébiscitent “Lula”)’,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  년 9월호.
(3) 카를라 루치아나 시우바, ‘베자, 브라질 신자유주의의 선봉’(“Veja”, le    margazine qui compte au Brési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2월호.
(4) ‘Desatar o nó Brasil’, <Veja>, São Paulo, 2012년 8월 15일.
(5) 중국산 섬유(2011년 12월부터), 전체 부품 40% 이상이 포함된 자동차, 타  이어, 배수관 등.
(6) 조르단 푸유, ‘폭스콘에 묻다, 중국에서 애플이 사는 법’(En Chine, la   vie selon App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6월호.
(7) ‘We want a middle-class Brazil’, <Financial Times>, 런던, 2012년 10  월 3일.
(8)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인용문은 모두 인터뷰에서 따온 것이다.
(9) 인플레율이 거의 6%에 가까운 상황에서 이루어진 결정이다.
(10) ‘Nova classe média e velha enganaçao’, <Brasil de Fato>, 상파울  루, 2012년 9월 27일.